열차 수습에 인원이 몰린 탓에 운전대는 로한이 잡게 되었다.
물론 계급상으로는 유엘이나 페고르가 하는 게 맞긴 했으나.
“에휴, 내 팔자야.”
“죄, 죄송합니다.”
유엘과 페고르는 운전할 줄 몰랐다.
면허가 없는 걸 떠나서 아예 운전대를 잡아 본 적도 없는 것이다.
결국 로한이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테와 리베라와 다니며 운전하는 것을 어느 순간 체념했기 때문일까.
그는 별달리 말을 덧붙이지 않고 시동을 걸었다.
덜컹.
이윽고 차가 크게 한번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이미 길을 대충 물어봤기에 로한은 묵묵히 루틀담의 도로를 따라 앞으로 내달렸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묵묵히 공화국의 모습을 살폈다.
그런 단테의 곁에 앉은 리베라는 힐끔 시선을 돌리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개판이죠? 소령님.”
그녀의 말에 단테는 무심결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그가 본 제국은 투박할지언정 낙후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놀라게 하는 점도 많아 중원과 비교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통신기가 그러했고, 산맥을 통째로 뚫는 터널이 그러했으며, 드높은 건물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루틀담은 달랐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루틀담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엘은 무심결 중얼거렸다.
“꼭, 데지안 왕국 시골 마을을 보는 거 같아요.”
굳이 답하진 않았으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법한 말이었다. 루틀담은 여전히 나무와 대충 돌을 깎아 만든 구식 벽돌로 집들이 지어져 있었고, 제일 높은 건물도 3층을 넘지 못했다.
그뿐인가.
차들이 다니는 도로 역시도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흙길이었다.
만약 루틀담이 정말로 시골 마을이라면 딱히 문제가 될 건 없다.
그러나 공화국 내에서 루틀담은 꽤 큰 도시에 속한다.
때문에 그들은 공화국과 제국의 격차를 다시금 느낄 수밖에 없었다.
“……흠.”
창밖을 바라보던 단테의 시선에 공화국 사람들의 얼굴이 담긴다.
눈이 죽어 있다.
혹은 그저 무료함에 찌들어 있다.
벽에는 군 입대를 권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고, 고아인 듯한 아이들은 골목에 모여 담배를 태우고 술에 취해 있다.
“용케 아직 안 망했어.”
때문에 단테가 내뱉을 말은 이게 전부였다.
일전에 둥지 때도 느꼈지만 공화국은 이미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었다.
부우웅.
그렇게 얼마나 흙길을 달렸을까.
언덕을 올라가는 차의 진동이 점점 약해진다.
그리고 이내 차가 멈추고 로한은 지친다는 듯 손목을 가볍게 털고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단테가 내리고, 뒤이어 세실과 리베라가 내렸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올려 본부를 바라본 단테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여긴…….”
“거의 유적인데요?”
리베라가 말했고 세실이 내심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차에서 내린 로한과 유엘, 페고르의 의견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척 보기에도 지어진 지 100년은 족히 될 듯한 외관에 실제로 한창 청소가 이뤄지고 있었다.
“거기! 조심해!”
“끄응차!”
병사들이 썩은 나무들을 들어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성 내부에 방치된 가구부터 문짝, 하다못해 기둥들까지 모조리 치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뿐인가.
몇몇은 아예 나이트 프레임까지 동원해서 녹슬고 망가진 초소를 철거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공사판이나 다름이 없는 현장에 그들은 잠시 차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끼이익!
꽤나 육중한 크기의 트럭이 그들이 주차한 자리의 근방에 멈춰 섰고, 곧 장교가 조수석에서 내려 병사들에게 외쳤다.
“끌고 내려!”
그러자 곧 일련의 병사들이 장전된 총을 들고 트럭의 뒷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곧 끌려 내려오는 죄수들의 얼굴은 실로 익숙하다.
“이제 이송됐나 본데요.”
다름이 아닌, 열차를 납치했던 자유 프란의 생존자들이었다.
그들은 줄줄이 엮인 밧줄로 운신의 자유조차 없이 차에서 끌어 내렸다.
“아으, 아으!”
그중 단테의 시선은 선두에 선 장 피르에게 닿았다.
리베라의 주먹에 이빨이 날아가고 혀가 잘렸기 때문인지 제대로 된 발음이 되지 않는 듯했다.
거기에 추가적인 구타까지 있었는지 얼굴도 퉁퉁 부어 있었고 말이다.
“…….”
그리고 그런 장 피르의 뒤로는 셀리를 비롯한 단원들이 뒤따랐다.
그래도 곧바로 투항하고 최대한 협조한 셀리는 안경이 깨지고 볼이 살짝 부운 것 말고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그들을 인솔하던 병사가 외치자, 움찔한 그들은 빠른 발걸음으로 성 내부에 마련된 감옥으로 들어가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흐, 흐이기!”
선두로 서서 끌려가던 장 피르의 시선이 단테와 리베라에게 닿았다.
그러자 그는 경기를 일으키며 몸을 떨었고, 곧 리베라가 한번 씨익 웃어 주자 다급히 눈을 깔았다.
“…….”
반면 뒤따르던 셀리는 단테를 바라보며 갈등의 시선을 보냈다.
마치 무언가를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때.
“아, 오셨습니까.”
그들에게 다소 낯이 익은 얼굴이 접근했다.
단테는 잠시 기억을 되짚다가 곧 그가 세르겐의 부관이라는 걸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당신은…….”
“예, 세르겐 소장님의 부관, 흐룬 원사입니다.”
“그렇습니까?”
어쩐지 낯이 익다 했다.
종종 그와 스치듯 지나갔기에 그런 것이리라.
그런 단테의 반응에 흐룬 원사는 말했다.
“이미 간부용 거처는 청소가 완료되었으니, 이걸 들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는 품에서 웬 금빛 열쇠를 건넸다.
그러자 로한은 기가 찬다는 듯 중얼거렸다.
“언제 적이야.”
단테도 열쇠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생각했다.
아무래도 공화국은 생각보다 더 낙후된 곳인 거 같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