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72화 (72/197)

제국의 열차는 기본적으로 타국보다 객차가 꽤 큰 편이다.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국력이 받쳐 주어 그런 것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열차가 크면 그만큼 적재할 화물도 많아지는 게 진리였으니.

덕분에 장 피르는 자신이 머무는 방과 비슷한 크기의 기관실의 의자에 앉아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버러지 같은 제국 놈들.”

이따위로 쓸 자원이 남아돌면, 공화국에 기부라도 하면 얼마나 좋은가.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었으나 장 피르는 스스로 생각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에게 제국이란 일생을 걸어서라도 무너트려야 할 악의 축과도 같았으니까.

그때 기관실의 문이 똑똑- 두드려지고 투박한 안경을 쓴 여자가 들어와 말했다.

“장, 일이 꼬였어.”

“뭐가?”

인상을 찡그리며 내뱉은 말에 장 피르는 담배를 꼬나물며 되물었다.

그녀는 그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를 뺏어 바닥에 던지곤 말했다.

“일부 제국군을 제압하는 데 실패한 모양이야. 지금 후방 객차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

열차 자체가 길기에 아직 큰 위험까진 아니지만, 이대로 뚫린다면 자칫 거사가 틀어질 수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가 봐야겠어. 1조와 2조를 데리고 가면 아무리 제국군이라고 해도 금방 제압을…….”

“아니. 가지 마, 셀리.”

“뭐?”

그녀…… 아니, 셀리는 안경 너머의 흰 이마를 좁히며 되물었다.

그러나 장 피르는 오히려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장……!”

기관실 내에는 인질로 잡은 기관사와 열차를 대신 운전하고 있는 단원들이 있다.

때문에 그녀는 장 피르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그는 오히려 그녀의 가슴에 옆머리를 기대곤 다시금 담배를 물었다.

“셀리, 지금 놈들은 조급한 거야. 일종의 발악이지. 그러니 지금 가서 굳이 싸울 바에는 차라리 체념시키는 게 빨라.”

불.

그렇게 말하듯 담배의 끝자락을 까닥거리는 장 피르의 모습에 셀리는 입술을 짓씹으면서도 그의 담배 끝자락에 불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장 피르는 그녀의 가슴에서 살짝 떨어졌고, 안심한 셀리가 뭐라 말하려던 그때.

“으읏!”

장 피르는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그녀를 앉혔고, 곧 의자를 빙그르 돌려 열차의 운전대 방향-창 너머를 보게 했다.

그러고는 그는 입에 문 담배를 한번 깊게 들이마시곤 묘한 웃음을 지었다.

“셀리, 너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놈들이 우리에게 지원한 건 이번 침입 루트뿐만이 아니야.”

“……뭐?”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녀는 반문하면서 점차 가까워지는 터널의 끝을 응시했고, 나아가 장 피르는 운전대를 쥐고 있는 단원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속도를 줄여.”

“예.”

단원은 실로 간결하고 정확한 목소리로 답했고, 이내 터널의 입구와 근접하며 열차의 속도는 천천히 줄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관실이 열차에서 통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

쿠우웅!

“무, 무슨?”

열차가 흔들리며 일순간이지만 천장을 따라 진동이 울렸다.

셀리는 그를 내려다보며 무슨 상황인지를 물었으나 정작 장 피르는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를 살짝 밀고는 말했다.

“직접 눈으로 봐.”

“……하.”

장 피르의 성격은 늘 저렇다.

때때로 짜증이 날 정도로 음흉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고 시선을 뒤로 향했다.

곧 열차 위에 자리한 무언가를 본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랄 수밖에 없었으니.

“저, 저건-?”

8개의 다리가 마치 벌레처럼 객차의 벽과 천장에 박혀 달리는 기차 위에 안정적으로 서 있었고, 나아가 등에 달린 거대한 관절의 끝에는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마력 포대가 장착되어 있었다.

흡사 거미, 혹은 기계 곤충과 같은 모습이다.

셀리는 저 기체가 뭔지 단번에 깨닫고 장 피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놀란 시선을 즐기기라도 하듯 장 피르는 실로 경쾌하게 웃으며 외쳤다.

“스파이더. 놈들이 우리에게 준 유쾌한 선물이지! 어때, 이 정도면 제국 놈들에게 한 방 먹이지 않았어?”

스파이더(Spider).

연합 왕국의 2.5세대 보병 지원 기갑 장비.

분명히 연합 왕국의 최전선에서 쓰이는 주력 기체가 멀고 먼 공화국과 제국의 국경에 나타난 것이다.

때문에 셀리는 뭐라고 말하지도 못한 채 입술을 뻐끔거렸다.

“너, 대체 저런 걸 어디서…… 아니, 애초에 가능할 리가.”

스파이더는 비록 2.5세대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연합 왕국에서 현역으로 사용되는 기갑 장비다.

당연히 외국으로의 반출은 금지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셀리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장 피르는 말했다.

“자, 모든 판이 깔렸어. 이제 20분쯤 남았으니 곧 제국에서 연락이 오겠지.”

부패한 정치인들이 팔아넘긴 나라를 되찾는 대업이다.

혹자는 마수와의 전쟁에서 이렇게 활동하는 것 자체가 인류의 멸망을 사보타주 한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장 피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끼이익.

오히려 그는 기관실 내부의 사다리로 올라가 천천히 기동을 시작하는 스파이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통신기를 쥐었다.

“일단 천장부터 날려 버려. 그럼 오줌을 질질 싸면서 빌빌거릴 거다.”

〔크흐, 그거 재미있겠군요.〕

기갑 장교가 얼마나 있든, 이런 열차에선 의미가 없다.

에이스 파일럿이라도 타고 있지 않은 한 말이다.

콰드득!

“꺄아아아아악!”

곧 장 피르의 명령에 따라 8개의 다리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달리는 열차의 반발력을 이겨내고 날카로운 발톱의 끝으로 창문과 천장의 강철을 꿰뚫자 곧 저 멀리 승객들의 비명이 울렸다.

그리고 이내 장 피르는 멍한 눈으로 창가에 서 있는 셀리에게 물었다.

“그놈들, 어디까지 왔다고?”

“1, 17번 객차까지…….”

무심결 셀리가 답했고, 장 피르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통신기에 읊었다.

“17번 객차 놈들은 본보기로 모조리 갈아 버려.”

〔확인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국을 미워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자유 프란이다.

때문에 스파이더에 탑승한 단원 역시 웃음마저 지으며 그대로 천장을 꿰뚫고 총구를 밀어 넣었다.

〔자, 잘 가라! 빌어먹을 제국의 돼지 놈들아!〕

스파이더의 파일럿은 그렇게 말하곤 총구와 연결된 방아쇠를 누르려 했다.

하지만 그때.

“벤데타.”

분명히 바람 소리와 소음에 묻힐 객차 내부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고, 어딘가 본능적인 싸함에 그가 멈칫한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사방이 막혀있던 객차가 좌우로 찢어지며 스파이더가 허공으로 날았다.

당연히 그 모습에 웃으며 담배를 태우던 장 피르는 손에 쥔 담배를 기관실 천장에 떨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뭐?”

강철로 만들어진 객차가 사방으로 찢어지며 흩뿌려지고, 움푹 들어간 하부만이 간신히 살아 탈선 직전인 듯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건…….〕

난생 처음 보는 검은 기체가 말했다.

〔거미인가.〕

그리고 곧 벤데타에게 다리가 붙잡힌 스파이더는 허공에서 버둥거리다가 그대로 열차 밖으로 던져졌으니.

〔가당찮군.〕

자유 프란의 비밀 병기는 그대로 사막 한가운데에 유기되고 말았다.

기갑천마

그냥 멍청할지도

콰드드득!

거미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트럭 정도 크기의 스파이더가 벤데타의 손길에 허공을 날아 그대로 사막에 추락했다.

열차의 선로가 길게 이어진 대지의 옆으로 자욱한 흙먼지가 일렁거렸고, 달리는 열차의 창문에 스친 다리들 때문에 열차에 긴 상처가 그어졌다.

“꺄아아아악!”

“으아아!”

때문에 레지스탕스에게 제압되어 숨을 죽이고 있던 승객들이 내뱉는 비명이 들려왔다.

그들로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추워. 젠장.”

그러나 그들은 로한 등을 비롯하면 훨씬 나은 상태였다.

적어도 달리는 열차의 바람을 직방으로 맞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엣취!”

뒤에서 유엘의 기침 소리가 들린다.

살짝 시선을 돌리니 세실이나 페고르 역시 묵묵히 제복을 여미며 볼이 빨개지고 있었다.

그나마 아스렌은 멀쩡했지만.

그들이 서 있던 17번 객차는 뭐랄까. 열차의 객실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모습이 되었다.

단테가 내부에서 벤데타를 소환했기에 벽은 진즉에 갈가리 찢겨 하늘을 날았고, 온갖 잡동사니들 역시 함께 부서져 남아 있는 거라곤 움푹 파인 바닥밖에 없는 것이다.

휘이이이잉!

바람에 머리가 흩날린다.

제복의 끝자락이 펄럭거리고, 그들은 그나마 남아 있는 벽 일부와 객실의 구석에 서서 단테를 바라보았다.

그때 로한은 어느새 목에서 삐져나온 목걸이를 살짝 내리곤 중얼거렸다.

“나도 탈까.”

로한의 머리색과 닮은 적색의 보석이 반짝인다.

이왕 받은 거, 한번 시험해 보고 싶기는 한데.

한편 로한이 그런 중얼거림을 내뱉고 있을 때 세실과 유엘, 페고르는 그저 멍한 눈으로 단테가 탄 기체, 벤데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로선 단테의 전용기를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저게…… 단테의 전용기?”

“와……!”

세실은 놀란 눈으로 중얼거렸고, 유엘은 특유의 금색 눈을 초롱초롱하게 번뜩이며 입술을 뻐끔거렸다.

페고르라고 딱히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스렌은 겉으로 한없이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속으로 단테의 기체를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제국의 4세대 나이트 프레임이라기엔 발전된 부분이 너무 많은데.’

기존의 나이트 프레임은 전쟁을 위해 생산된 마장기지만, 그 이면에는 마도 공학과 함께 드워프들의 발달된 기계 공학 역시 함께한다.

그렇기에 제일 우수한 나이트 프레임이라 평가받는 제국의 4세대 나이트 프레임도 내심 기계적인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단테의 기체는 달랐다.

모든 관절이 마치 진짜 사람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엘프의 눈은 밤에 조금 어둡다 한들 다른 어떤 종족들보다 섬세하다.

그렇기에 아스렌은 속으로 은인에 대한 정보를 새겼다.

‘4.5세대, 아니면 5세대에 가까운 기체를 가지고 있음.’

그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일종의 종족병과 같은 것이었다.

대수림이란 터전을 잃고 인간 세계에서 자리 잡은 엘프들은 언제나 확실한 정보들을 취합해 미래를 대비해야 했으니까.

‘겸사겸사, 은인에 대해 알면 좋고.’

아스렌은 진심이 담긴 웃음을 지으며 단테의 기체를 눈에 담았다.

아무렴 어떤가.

지금 그는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였다.

그때였다.

흥분된, 그리고 격양된 가슴으로 단테의 기체를 훑던 아스렌은, 문득 들려오는…… 무언가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 귀를 쫑긋거렸다.

때문에 뒤를 돌아본 순간 그는 아- 하고 입술을 벌린 채 중얼거렸다.

“안 죽었네?”

동시에 로한 역시 고개를 돌렸고, 곧 무언가 맛이 간 듯 연기와 우그러진 장갑을 덜렁거리며 달려오는 스파이더를 바라본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답했다.

로한과 아스렌의 눈이 마주쳤다.

둘 다 어쩔까- 따위의 생각을 하다가, 이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굳이 나설 필요가 없을 것 같았기에.

파바박!

8개의 다리에 연결된 관절부 중 파손된 케이블이 미친 듯이 달리는 다리의 움직임에 따라 앞뒤로 흔들렸다.

구겨진 장갑이 기계를 건드리며 스파크를 일으켰고, 용접이 뜯어진 곳에선 연기가 흩날려 흙먼지와 섞였다.

송곳과도 같은 기체의 다리가 대지에 박힌다.

열차는 장 피르의 명령으로 느려졌기에 몇몇 다리의 관절부가 파손된 스파이더로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파바바박!

어느새 정체불명의 검은 기체에 거의 근접했다.

스파이더에 탑승한 파일럿은 던져지며 받은 충격으로 인해 이마에 흐르는 핏물을 느끼며 조종간을 부서질 듯이 잡고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뇌진탕인지, 흐릿한 시야와 콕피트 내부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연기에 정신이 멍하다.

그럼에도 그는 제국에 대한 분노를 무기 삼아 조종간의 버튼을 눌렀다.

타다다다다다!

곧, 스파이더의 등 뒤에 달린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보병들이나 쓸 법한 구식이었지만 달리 선택지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던 장 피르는 다급히 통신기를 들어 외쳤다.

“허리! 허리를 노려!”

속도가 줄었다고 하나, 여전히 빠르게 달리는 열차와 그 가운데에 위태롭게 서 있는 정체를 모를 나이트 프레임.

그리고 그런 기체를 향해 미친 듯이 기관총을 쏘아 대는 스파이더의 모습에 일순간 희망을 느낀 것일까.

장 피르는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목소리로 나이트 프레임들의 가장 보편적인 약점 중 하나인 허리를 노릴 것을 명령했고, 곧 스파이더의 파일럿도 그 말을 듣고 총구를 허리로 겨냥했다.

타다다다다다다!

콰아아앙!

그뿐만이 아니라, 기관총의 곁에 달린 거대한 주포 역시 불을 뿜었다.

그야말로 필사의 각오로 화력을 쏟아붓는 모습이었다.

〔죽어라아아-!〕

그러나 단테의 벤데타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스파이더는 직접 몸으로 열차 밖으로 밀어 버리라는 생각으로 기체를 도약해 그대로 단테를 덮치기 위해 쇄도했다.

그런 스파이더와 그를 지켜보는 자유 프란의 단원들은 기적을 바라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법이라고.

……하지만.

〔흠.〕

그런 것도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어야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다.

콰지직!

스파이더가 도약하며 드러난 배에 벤데타의 손이 정확히 꽂혔다.

동시에 단테는 날카로운 송곳과도 같은 다리의 끝으로 팔을 긁어 대는 놈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굳이 죽고 싶다면.〕

조금 전에는 반쯤 귀찮아서 던졌다.

그런데 굳이 죽고자 찾아왔는데 자비를 베풀어 줄 이유는 없으리라.

묵빛 액체로 가득한 콕피트에 단전에서 끌어 올린 내력을 퍼트렸다.

그러자 케이블 대신 그의 농밀한 내력을 삼킨 벤데타는 검은 심장처럼 생긴 메인 코어를 두근, 뛰게 만들며 스파이더를 쥔 손으로 기를 흘렸다.

콰드드득!

손끝이 박힌 복부가 단 한 번의 주억거림에 우그러졌다.

동시에 파일럿은 미친 듯이 밀려오는 압박감에 몸을 떨며 고통 섞인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조종간을 쥔 손은 이미 놓은 지 오래고, 흐릿한 시야와 정신 역시 여태껏 느껴 보지 못한 고통에 멀쩡해지고 다시 흐릿해지기를 반복했다.

끼기긱- 따위의 소음과 함께 8개의 다리가 사방으로 비틀어지고, 이윽고 스파이더의 복부를 완전히 고철로 만들어 버린 단테는 고민했다.

일단 제압은 했는데, 이렇게 들고 있기에도 뭐하니.

문득 벤데타의 콕피트 너머, 열차의 이어진 선로 저 멀리에 사막의 끝과 함께 꽤 거대한 호수가 눈에 띠었다.

단테는 열차가 그곳을 지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곧바로 스파이더를 강가로 던져 버렸다.

파아아앙!

트럭 크기의 고철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자, 거대한 물기둥이 치솟으며 열차를 덮쳤다.

덕분에 로한을 비롯한 일행들은 때 아닌 물벼락을 맞을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레지스탕스들이 동요하는 건 매우 당연한 수순이었다.

“에, 에이스가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

“이런 미친. 이러다가 우리 다 죽어! 제국에서도 최정예 취급을 받는 놈들이잖아!”

“빠, 빨리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야?”

장 피르는 스파이더가 던져지는 순간 곧바로 기관실의 천장에서 내려와 당황과 분노, 나아가 혼란이 뒤섞인 표정으로 손톱을 짓씹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셀리가 다가와 외쳤다.

“장! 일단 도망쳐야 해! 이대론 협상이고 지랄이고 다 죽는다고!”

“……조용히 해 봐, 셀리. 생각 중이잖아.”

그들이 이번 일을 계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열차라는 특수한 장소와 나이트 프레임의 부재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조금이나마 구식 공화국 나이트 프레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제국의 4세대 기체에 비할 바는 전혀 아니었다.

셀리의 제안은 지극히 최선이었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열차의 운전대를 쥐고 있는 단원조차 동요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장……! 지금 고민을 할 때가……!”

“이런 젠장!”

타앙!

총성이 울린다. 동시에, 셀리는 몸을 부르르 떨며 귀 옆을 스치고 지나 벽에 박힌 총탄을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지, 지금 무슨…….”

“시끄럽다고 했잖아!”

장 피르는 언제나 급진적이고 과격했다.

그래도 그가 언제나 조직에서 인정을 받고 사람들이 따르는 이유는 그가 적어도 아군에게는 합리적이고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금 행동은 분명히 선을 넘었다.

셀리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제야 장 피르도 손에 쥔 권총을 아래로 내리며 입술을 짓씹었다.

뿌득.

장 피르는 이를 갈았다.

그도 조급해진 마음에 실수했음을 깨달았으나, 지금 중요한 것은 연인에게 한 실수를 수습하는 게 아닌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곧바로 기관실을 박차고 나가 1번 객차의 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러자 보인 것은 묶여 있는 인질들과 그들을 감시하고 있던 단원들의 모습이었다.

“대, 대장?”

기관실의 총성을 들은 것인지, 인질들을 지키고 있던 단원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장 피르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인질들을 훑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의 시선이 객차의 끝자락에 있는 제복 차림의 은발 여자에게 닿았다.

장 피르는 곧바로 인질들을 밀치고 그녀에게 향한 후 깊게 눌러쓴 제모를 들어 올렸다.

“그래.”

이윽고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곧바로 은발 여자의 머리를 틀어쥐고는 거칠게 당겼다.

은발의 여자는 크윽- 따위의 신음을 흘리며 장 피르의 우악스러운 손길을 따라 기관실로 끌려갔다.

“……대장님.”

조금 전 나갔던 장 피르가 웬 은발의 여군을 데리고 걸어오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단원이 미간을 좁히며 무어라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장 피르는 특유의 서늘한 안광을 번뜩이며 말했다.

“닥치고 속력이나 높여. 상공에 제국군 비행함이 보이면 바로 탈선시킨다고 협박할 준비하고.”

“……예.”

단원의 시선은 은발을 틀어쥐지 않은 손으로 쥔 권총에 닿았다.

무언가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이건 아니라고 말리고 있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그는 묵묵히 속력을 높였다.

“따라와.”

셀리는 구석에서 장 피르를 노려보고 있었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은발의 여군을 먼저 기관실 위로 올려 보냈다.

그러고는 권총으로 견제하며 그 자신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이미 손목과 몸은 묶은 상태였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반항하지 않고 기관실 천장에 장 피르와 함께 서자, 그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그녀의 미간에 서늘한 권총을 가져대며 검은 기체를 향해 외쳤다.

“30초를 주겠다-!”

그는 어느새 돌아온 광기를 머금고, 살짝 시선을 내려 제복에 적힌 그녀의 이름과 계급을 읊으며 협박을 이어 나갔다.

“리베라 대위를 살리고 싶으면, 당장 항복하는 게 좋을 거다! 하하하핫!”

그리고 그 순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단테와 로한의 시선이 콕피트 너머로 마주하고, 둘은 거의 동시에 중얼거렸다.

〔가지가지 하는군.〕

“저 미친년.”

동시에 둘은 생각했다.

저 장 피르라는 놈, 그냥 멍청한 걸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기갑천마

소동의 끝

“뭐 해? 이년 머리에 바람구멍 뚫리는 거 보고 싶어?”

장 피르는 이젠 아예 대놓고 기세가 등등한 얼굴로 단테에게 외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단테와 로한은 그저 어이가 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장 피르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리베라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무림에 있었으면 볼 만했겠어.’

언뜻 정상인가 싶으면서도 때때로 미친 짓을 하니, 아마 별호에 광(狂) 자는 반드시 붙지 않았을까.

‘예사 미친년은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애초에 싸돌아다니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라서 없어도 그러려니 했다.

습격 당시에도 없었으니 후방 객차에서 농땡이라도 때우고 있으리라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설마 인질로 잡힐 줄은 몰랐다.

물론 리베라가 의도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그 대상이 된 것이 로한이었다면 단테는 멍청한 놈이라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리베라는 달랐다.

단테와 로한은 확신하고 있었다.

……저건 일부러 잡힌 거다.

때문에 둘은 오히려 리베라가 아닌 그녀를 인질로 쥐고 있는 장 피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기가 누구를 인질로 잡고 있는지도 눈치채지 못하면서 저리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는 꼴이 참으로 가엾지 않은가.

단테는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건 로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 구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소령님.”

그러자 되레 유엘과 페고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세실은 단테와 로한의 침묵에 의문스러운 시선을 보내다가 이윽고 결심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군모를 눌러썼다.

동시에 그녀는 유엘과 페고르에게 말했다.

“둘은 여기 있어라. 로한 상사.”

“예?”

갑작스러운 세실의 호명에 로한은 무심결 굳은 채 되물었다.

그러나 세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고는 로한이 잠깐 입을 뻐끔거린 사이 그를 지나쳐 다음 객차로 향하는 문 앞에 서서 말했다.

“빠르게 돌입한다. 엄호는 맡기지.”

어느새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로한은 다급히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뭐라고 말하겠는가, 아예 대놓고 저년 미친년이니까 안 구해도 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그사이.

콰앙!

“아오! 리베라!”

세실은 단번에 열차 내부로 돌입했다.

곧 타앙- 하는 총성이 울리자 로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도 곧바로 총을 뽑아 들고 안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한편 로한까지 돌입하자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아스렌은 재미있겠다는 듯 멍하니 보고만 있는 유엘과 페고르를 살짝 돌아보며 말했다.

“두 분은 안 가십니까?”

“어…… 예?”

철컥.

손에 들린 기관단총을 장전하고는, 코트 안에 넣어 둔 탄창의 개수를 확인했다.

대략 남은 탄창은 7개.

충분하다.

습- 하는 소리와 함께 언뜻 시가를 닮은 푸른 숨결을 깊게 들이마신다.

그리고 그는 살짝 들려 있던 중절모를 깊게 눌러쓰고 들이마신 연기를 내뱉었다.

“그럼 저 먼저 갑니다.”

그러고는 뒤에 서 있는 유엘과 페고르를 향해 눈을 한번 찡긋해 주곤 곧바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뭐, 굳이 구하지 않아도 될 거 같지만…….’

상황을 오해한 세실이나 페고르와 달리 엘프인 아스렌은 분명히 보았다.

리베라라는 이름을 가진 대위의 얼굴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목에 살짝 도드라진 은빛 보석이 각인된 마스터키가 흔들리는 걸.

‘에이스.’

나이트메어를 죽인 특임대의 세 명이 전원 에이스로 격상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때문에 아스렌도 그녀가 나이트메어를 죽인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구출하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간단했다.

‘애들 돌보기는 취향이 아니기도 하고…….’

겸사겸사 작은 빚이라도 갚으면 좋은 거 아니겠는가.

거기에 자유 프란이라면 기회가 될 때마다 죽여 놓는 게 낫다.

즉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흠흠.”

이미 다음 객차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세실과 로한이 훑고 지나간 탓이다.

그러나 아스렌은 옅은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그대로 열차를 지나 다음 객차로 향했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것은, 꽤 많은 수의 레지스탕스와 대치 중인 세실과 로한의 모습이었다.

“아스렌?”

그때 반쯤 강제로 끌려와 머리가 복잡한 로한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그리고 아스렌은 곧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지스탕스들을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리곤 로한과 세실에게 물었다.

“이 기관단총의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둘의 얼굴에 동시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스렌은 당연히 그런 반응일 줄 알았다는 듯 총구를 전면에 겨냥하고 나지막이 덧붙이니.

“타자기.”

“에, 엘프 마피아다! 그냥 쏴 버려!”

그 순간, 레지스탕스들은 뒤늦게 아스렌의 정체를 알아채고 다급히 방아쇠를 당기려 했으나.

타다다다다다!

죽음이 흩뿌려진다.

아스렌의 총구는 그 작은 총구 들림도 없이 사이좋게 레지스탕스들의 몸에 바람구멍을 내 줬고, 곧 총탄을 모두 소진한 탄창이 바닥으로 추락해 텅- 하는 소리가 울렸다.

채 1분도 전에 다섯 명의 레지스탕스가 죽었다.

그러나 정작 아스렌은 태연하게 새 원형 탄창을 꺼내 총구에 끼우곤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시죠?”

그리고 살짝 붉게 물든 총구 끝을 본 둘은,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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