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70화 (70/197)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이 더 지났다.

그사이 제도에 잠시 들른 그들은 각자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찬 채 그대로 공화국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비록 제도에서 출발해 시일은 조금 걸리겠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희 기차는 다음 역인…….〕

“에휴.”

흔들리는 기차의 진동과 방송 사이로 로한의 한숨이 울렸다.

다행히 세르겐과 같은 기차에 타는 불상사는 면했기에 조금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면 단테는 무심한 눈으로 늘 그랬듯 창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전에 황무지와는 다르게 초목이 우거진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단테는 생각했다.

‘공화국.’

이 시기에 공화국이라…….

그는 머릿속으로 블랙 가드의 의도를 가늠하다가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그놈이 공화국으로 도망친 건가.’

블랙 가드가 자신을 언제부터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항상 시험이라도 하듯 전장으로 인도했다.

때문에 그 가능성을 품으며 단테는 살짝 시선을 내렸다.

철그럭.

목걸이가 살짝 흔들리며, 제복에 박힌 철제 계급장에 부딪혔다.

그는 소령 계급을 힐끔 바라보곤 이내 흑옥으로 완전히 시선을 돌렸다.

벤데타.

0세대 나이트 프레임이라는 기이한 기체이자, 왜인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듯한 편안함을 주는 기체.

……또한.

‘아직 완전히 운용하지 못하고 있는 기체.’

놈을 느낄수록, 명검을 닭 써는 데에 쓰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렇기에 단테는 주둔군 따위는 내던지고 전장으로 향할까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부화하지 않은 둥지를 뜯어 영약을 취하거나 아예 폐관 수련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건 일단 보류한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화하지 않은 둥지는 찾기 힘들다.

그리고 그저 폐관 수련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장소도 시간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으로써는 전장이 제일 최선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단테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물이나 마셔야겠군.’

목이 탔다.

단테는 객실 내부에 달린 벨을 눌렀고 곧 기차 내에 상주하는 승무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친절히 물었다.

“소령님,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물을 좀…….”

시원할 필요는 없으니, 다만 목을 축일 정도면 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입술을 달싹거리던 단테는 문득 승무원의 뒤를 지나가다 멈칫한 갈색 머리의 군인을 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린 그 순간.

“단테?”

세실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진다.

다소 차가운 인상을 얼굴에 당혹감과 조금의 반가움이 머물렀다.

그러나 이윽고 그녀의 시선이 단테의 계급장으로 향한 그 순간.

“……소령이라고?”

그녀의 목소리엔 오직 당혹감밖에 남지 않았다.

기갑천마

열차 안의 불청객

“에…….”

반쯤 열린 객실의 입구 사이에 승무원이 두 소령의 눈치를 본다.

하필 자리도 사이라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적나라했다.

그렇기에 그는 이내 침을 한번 삼키곤 최대한 평온하고 정중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어, 자리를 비켜 드리겠습니다. 부디 편안한 승차가 되시기를.”

처음에 조금 말을 흐린 것 빼고는 조금의 흠결도 잡을 수 없는 문장과 호흡이다.

그는 그들이 답하기도 전에 실로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음.”

빠르게 자신을 스쳐 객실 너머로 사라지는 승무원의 뒤를 바라보던 세실은 무심결 볼을 긁적였다.

그때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던 로한은 크흠-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 화장실 좀 가야겠다.”

누가 들어도 어색한 말투였기에, 정작 로한은 말을 내뱉자마자 머리에 쓴 제모를 깊게 눌러쓰곤 눈을 감았다.

동시에 이대로면 빼도 박도 못하고 불편한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위기감이 그를 감쌌다.

그러나 그때.

“소령님, 왜 여기에……. 어?”

뒤늦게 유엘이 세실에게 성큼 걸어와 객실 안으로 빼꼼 머리를 들이밀었고, 곧 단테와 로한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로한은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유엘에게 다가갔다.

“이야, 유엘. 오랜만이다.”

“어…… 상사가 되셨네요?”

“그래, 임관하고 두 번째인가? 시간 참 빨라.”

그는 태연하게 유엘과 대화를 이어 가며 지극히 자연스럽게 객실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완전히 복도 밖으로 나서자 턱- 하고 유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말했다.

“그나저나, 두 소령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네. 그러니까 나랑 같이 얘기나 좀 하고 있자. 객실이 어디야?”

“예? 어, 이쪽이에요.”

“좋아. 가자.”

객실 안에서 얘기를 듣던 단테마저 무심결 실소할 정도로 빠른 임기응변이었다.

단테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다는 듯 멀어지는 로한을 바라보고 있는 세실에게 말했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으음.”

들어오려면 와라.

그런 뜻으로 단테가 조금 전까지 로한이 앉아 있던 자리를 턱짓으로 가리키자 세실은 잠깐의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객실의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

덜컹, 덜컹.

흔들리는 기차의 잔잔한 소음이 귀를 스쳤다.

단테는 뒤늦게 물을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객실 문 쪽을 보며 미간을 좁혔고, 세실은 머리에 정갈하게 쓴 군모를 벗어 객실 벽에 수납한 후 턱- 하고 간이 탁자 위에 팔을 올렸다.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이윽고 세실이 붉은 입술을 살짝 열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단테.”

그녀의 부름에 어느새 창가로 시선을 돌렸던 단테의 붉은 눈동자가 움직여 그녀에게 닿았다.

세실은 몇 번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이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단테가 임관한 것을 시기로 따지면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사이 자신과 같은 계급까지 오른 것이다.

세실도 평균보다는 진급이 빠르다는 걸 생각하면 단테의 진급 속도는 비정상적이었다.

훈련병, 그것도 부사관 훈련병에서 소령.

전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아니, 전시라는 걸 생각해도 전례가 없는 진급 속도가 아닌가.

그때 단테가 말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의 답에 세실은 문득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들은 가문을 영광을 넘어 하나의 도시 전설 따위로 생각할 일을 저리 쉽게 넘기다니.

‘아니, 이편이 단테 같기는 한데. 그래도…….’

물론 훈련병 때부터 알았던 단테의 성격은 언제나 보여 주는 능력에 비해 무심하긴 했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한 세실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리곤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여전히 무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단테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대체 서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있나? 듣기로는 서부 국경 분쟁 당시에 디센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녀의 물음에 단테는 로한과 리베라, 세르겐의 말을 떠올렸다.

결과적으로 서부에 나타났던 네임드 관련 정보는 모두 은폐되었다고 했던가.

머리에서 리베라가 말하는 듯했다.

-뭐, 간단한 거야. 네임드로 인한 피해가 밝혀지면 공화국 의원 모가지 1~2개로는 수습할 각이 안 보이니 이권을 넘겨주고 묻은 거지. 그쪽 의원들하고 총통은 일단 그렇게라도 권력을 잡고 있어야 살 수 있으니까.

그녀의 말마따나 공화국의 네임드 관련 정보는 은폐되었다.

그 대신 서부에서의 분쟁 종식과 공화국 근처 마수들의 개체 수가 늘었다는 명분으로 합의가 된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런 이유로 주둔군을 받아들일 공화국이 아닐 텐데.”

세실은 그렇게 말하며 떨떠름함을 드러냈다.

그녀의 말마따나, 명분이라고 밝힌 것들은 민간의 눈에선 납득할 수준이었으나 군인들에겐 그저 보기 좋게 포장된 허울뿐인 명분이었다.

때문에 최근 서부에 있었던 단테에게 묻는 것이다.

그녀의 말에 단테는 입을 열었다.

“공화국과 제국의 국경 사이에 네임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였죠.”

“뭐?”

실로 담백한 요약이었다.

반면 그의 말을 들은 세실은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네임드?’

네임드는 그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이 아니다.

남이 얘기했다면 아마도 농담으로 알아듣고 넘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말을 내뱉은 상대가 다름이 아닌 단테였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네임드라면…….”

세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단테는 여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덧붙였다.

“1년간 둥지인 줄 알고 병력을 밀어 넣고 있었더군요.”

마치 ‘사과는 빨개요.’ 정도의 가벼운 말을 내뱉는 평온한 어조로 어쩌면 극비일 단어를 말했다.

때문에 세실은 객실 밖을 힐끔 바라보다가 품에서 사일런스 마법이 각인된 마도구를 꺼내 눌렀다.

우웅.

짧게 마나가 공명하는 소리가 울리고 이내 둘의 객실이 옅은 막으로 둘러싸였다.

그렇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끝마친 그녀는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굳이 감출 이유가 없다.

때문에 단테는 그저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의 진실만을 그녀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흘렀을까.

고치에서 나타나 도망친 놈에서 이야기가 끝이 나자, 세실은 들어선 안 될 것을 들었다는 듯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소령도 상부에서 조절 중인 거였나.”

단테의 말이 절반만 사실이어도 이미 준장 정도는 달아 줘야 옳다.

그도 그럴 게 네임드 사냥 전적만 2번이지 않은가.

힐끔.

시선을 들어 여전히 무표정인 단테를 응시했다.

도통 속을 모르겠다.

아니, 정체도 모르겠다.

블랙 가드에서 탐을 낸 것도 인정할 만하다.

이 정도의 인재라면 어느 조직에서라도 군침을 흘릴 테니까.

다만 의문은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입을 열어 단테에게 물었다.

“단테, 넌…….”

……블랙 가드에 자발적으로 남아 있는 거냐고 물으려 했다.

〔본 열차는 곧 프란 공화국 국경 지대에 진입합니다. 10분간 이어지는 터널로 객실 밖이 어두워질 예정이니…….〕

그때 마침 들려온 구식 통신기의 안내 방송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세실은 말이 끊겨 입을 다물었고, 곧 방송대로 열차는 드득-거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검은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만.”

그리고 창밖이 검게 변하자, 단테는 다시 말을 이으려 입을 벌리는 세실에게 눈짓하곤 승무원을 부르는 벨을 눌렀다.

띠잉.

터널 안에 들어왔기 때문인지, 이전엔 들리지 않았던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객실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조금 전 보았던 남자 승무원이 아닌, 꽤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여자 승무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왜인지 세실을 잠깐 훑고는 이내 단테를 보며 웃었다.

단테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나 단테는 개의치 않고 여전한 얼굴로 말했다.

“물 좀 가져다주지. 시원하진 않아도 되니까 빠르게.”

“알겠어요. 잠시만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은근한 시선으로 단테를 훑었다.

그러고는 문조차 닫지 않은 채 복도로 향해 곧 물병과 잔 2개를 가져와 탁자에 정갈하게 내려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단테 소령님?”

단테의 제복에 달린 명찰을 읽고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물을 따랐다.

그 노골적인 유혹의 몸짓에 세실은 미간을 좁히고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너무나 평온한 단테의 모습에 입술만 짓씹을 따름이었다.

턱- 하고 잔을 쥐었다.

조금 서늘하다.

그는 얼른 마시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승무원의 시선에 망설임 없이 물을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그런 단테의 모습에 세실 역시 물을 마시려던 찰나.

“무색무취라……. 과거 당문이 생각나는군. 놈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팔대극독 중 그런 게 있긴 했지.”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놈들이 꽤나 애지중지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꽤 많은 마수가 그 독에 혈수가 되어 녹아내렸다던가.

퉤.

단테는 입에 머금었던 물을 망설임 없이 승무원의 발치에 뱉고는 입안에 내력을 굴려 독기를 털어 냈다.

그러고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손을 등 뒤로 향하는 승무원에게 말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곤, 손에 아직 쥐여 있던 물 잔에 잔잔한 내력을 머금곤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이건 극독이라 말하기도 우습다는 점이다.”

“-자유를!”

단테의 말이 끝나자 그녀는 곧바로 총을 뽑아 들어 그와 세실을 겨냥하더니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내력을 머금은 단테의 유리잔이 섬광처럼 그녀의 복부로 쏘아졌다.

“커어헉!”

입에서 핏물이 터졌다.

동시에 그녀는 닫혀 있던 객실의 문을 뚫고 복도의 벽까지 튕겨지고, 막 권총을 뽑던 세실은 멍한 눈으로 단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 무슨……?”

그러나 이미 단테는 그녀의 앞에 없었다.

그는 쏘아지듯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벽에 기대어 각혈하며 몸을 떠는 그녀의 앞으로 걸었다.

터벅.

나무로 마감된 열차의 바닥에 군화가 닿으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는 핏물을 토하면서도 놓친 권총을 더듬거리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목적이 뭐지?”

입가에 살짝 닿았던 것은 독이었다.

그가 독공에 조예가 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다만 의문인 것은 동기와 목적이었다.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혹시 세실이 목표였나 싶어 고개를 돌렸으나, 정신을 차린 세실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흐음.”

일단 둘은 답을 모른다.

때문에 단테는 숨을 헐떡이며 몸을 떠는 여자 승무원과 시선을 맞추고 물었다.

“배후를 말하면 편히 죽여 주지.”

내력을 담아 물 잔을 던질 때 정확히 명치를 노렸다.

아마 지금쯤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일 터.

그러나 단테의 말에도 그녀는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내 배후는…… 쿨럭, 공화국의 인민들이다. 큭큭!”

“뭐?”

도통 모를 소리를 지껄였다.

때문에 단테는 미간을 좁히며 고민했다.

분근착골을 해야 하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때.

“자유를!”

“타앙!”

그들이 있던 바로 옆의 객실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러고는 곧 ‘끄아악-!’ 소리와 함께 객실의 문이 부서질 듯 열리더니 중령의 계급을 단 군인 한 명이 비틀거리며 달려 나왔다.

“도, 도와……!”

그는 복도에 서 있는 단테를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 순간 등 뒤에서 쏘아진 탄환이 심장을 관통했고, 이름 모를 중령은 핏물을 흩뿌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뭐야?”

그리고 중령의 뒤에 서 있던 여자는 단테와 쓰러진 여자를 번갈아 보다가 입술을 짓씹으며 단테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때.

타앙!

단테의 뒤에서 상황을 살피던 세실이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고, 정확히 미간에 적중한 탄환에 쓰러졌다.

꽤 고급스럽게 장식되었던 열차 내부가 순식간에 핏물로 점철되었다.

그리고 그때.

콰앙!

바로 다음 칸과 이어진 복도의 끝 방에서 문이 부서지며 웬 남자가 벽에 부딪혔다.

그는 이미 수차례 얼굴을 주먹으로 맞았는지 퉁퉁 부은 상태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 사려 주세여. 사랴 주세여.”

퉁퉁 부은 입술 사이로 이빨 조각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런 남자의 앞에는, 손에 핏물이 묻은 상태로 퉤- 하고 침을 뱉는 로한이 걸어 나왔다.

“갑자기 총을 들이밀고 지랄이야. 뭣도 없는 놈이.”

그런 로한의 모습을 본 단테는 실소했고, 세실 역시 어이가 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제국의 침략을 몰아내자! 공화국을 위해!”

뒤쪽 제국군 장교들이 대여한 열차 문 너머로 들려오는 말을 듣자 그들은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습격인가.”

단테는 실로 어이가 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닥에 쓰러져 고개를 숙인 채 기절한 승무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콰아아아앙!

폭음이 울리며, 열차가 일순간 흔들렸다.

기갑천마

드사 노스라의 아스렌

콰아아아앙!

열차를 흔들 정도의 폭음이 울린 직후, 객실 내부의 빛이 몇 번 깜빡거리다가 이윽고 꺼졌다.

터널을 통과 중이었기에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은 없었고, 어둠이 장막처럼 시야를 가렸다.

유일한 빛은 때때로 터널 사이에 설치된 작은 조명이 전부다.

그러나 딱히 의미는 없었다.

제각기 마나 하트가 있는 그들에겐 단순히 마나를 순환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어둠 속에서 앞을 볼 수 있었으니까.

단테도 마찬가지였다.

-단테.

그때 단테의 뒤에 서 있던 세실이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굳이 말을 더 잇지 않아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뻔히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이리라.

때문에 그는 고민했다.

차라리 평원이나 시가지였다면 선택지가 조금 넓었을 것이나, 열차라는 공간은 그로서도 그다지 익숙한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직 적을 특정하지도 못했다.

죽이는 건 쉽다.

그러나 점차 이 세계의 얽히고설킨 구조를 이해하고 의심하는 그로선 이 또한 누군가의 수작이 아닐까- 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그 시각.

-어쭈, 막아? 뒈질래?

-죄, 죄성하니다. 때, 때리지…… 끄억!

로한은 이미 싸울 의지를 잃은 테러범의 뺨을 툭툭 치면서 껄렁한 자세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필요 이상의 폭력이었으나 그로서도 할 말은 있었다.

가뜩이나 세실과 마주해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도망쳐서 유엘과 페고르를 붙잡고 신경질을 내며 기분을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르지도 않은 승무원이 기어들어 와선 총을 뽑는 게 아닌가.

그래…… 거기까지도 참았다.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지 않은가.

가끔 괜히 모르는 사람한테 총구도 겨누고 방아쇠도 당겨보고 싶은 날.

백번 이해한다 이 말이다.

문제는 놈이 지껄인 개소리다.

처음 총구를 겨눴던 놈은 유엘과 페고르가 굳어 버리고 로한도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으니 갑자기 무슨 웅변대회라도 나온 것처럼 지껄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유 공화국인 프란 공화국 인민의 명을 따라 이권을 침탈하려는 추악한 제국의…….

쓸데없이 장황하고 되지도 않은 미사여구로 점철된 문장이었기에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래도 당시엔 꽤 들어 줄 만했다.

특히 얘기하면서 점점 감정이 과잉되는 놈의 표정이 백미였지.

그리고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레지스탕스인가.’

심드렁한 시선으로 놈을 살폈다.

총을 파지한 모습이 공화국군의 정규군과는 다르다. 들어 본 적이 있다.

아마, 공화국의 부정부패와 싸운다고 말하는 머저리들의 모임이었던가.

그런데 그렇게 듣고만 있던 로한을 빡치게 만든 대목은 하나였다.

-너희가 아니어도 우리 공화국은 능히 네임드를 잡을 수 있는 국력이 있으며…….

-개자식이!

거기서 참지 못했다.

로한은 곧바로 놈이 반응조차 하지 못할 속도로 권총을 들고 있는 왼손을 발로 차서 부러트렸고, 그대로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퍼억!

-자, 잠깐! 커억!

로한이 거침없이 내뻗는 주먹에 옥수수가 객실 바닥을 굴렀다.

참고로, 옥수수는 놈의 이빨이다.

로한은 유엘과 페고르가 차마 반응하기도 전에 놈을 반쯤 죽여 놓았고, 잠깐 저릿한 손을 터는 사이에 다급히 도망치려고 하기에 발로 차서 문짝과 함께 복도로 걷어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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