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스.
지박식귀가 터지며 일대를 잠식한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폭발을 막아 낸 호신강기가 깨진 유리처럼 추락했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다만 전장을 살폈다.
실로 난장판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러나 이윽고 그의 시선은 지박식귀가 있었던, 정확히는 놈의 심장 대신 박혀 있던 번데기를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꿈틀.
몸을 터트리면서도 의식적으로 번데기를 보호한 것인지, 아직 신경이 살아 있는 온갖 근육들이 작은 알처럼 번데기를 보호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 모습만 봤다면 이곳이 둥지라고 얘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번데기의 크기는 작았다.
기껏해야 인간 아이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때문에 단테는 손을 뻗어 번데기를 감싸고 있는 근육을 뜯었다.
콰드드드득!
번데타의 손길에 꿀렁이는 근육이 뜯어져 대지로 추락했다.
그러자 곧 동그랗게 감싸진 근육의 중심부에 반쯤 떠 있는 흰색 고치가 눈에 들어왔다.
‘음.’
이윽고 단테의 미간이 좁혀진다.
이질적이었다.
겉으로 느껴지는 것은 여태까지 보았던 어떤 마수의 그것보다 미약한데도 직감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단테는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내력이 검로를 따라 긴 선을 그린다.
그러자 순간 고치 안의 번데기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으나 단테는 개의치 않았다.
빠르게 그어진 검신은 곧바로 고치를 베어 넘길 듯했다.
그러나 그때.
꾸드득!
갑작스럽게 이변이 생겼다.
고치를 감싸던 근육들이 의지를 가진 듯 그대로 단테의 검로에 끼어든 것이다.
덕분에 횡을 그리며 그어지던 단테의 검에 베인 것은 근육뿐이었다.
꿈틀.
검에 베인 근육이 마치 슬라임이라도 된 것처럼 눌어붙었다.
베일지언정 베게 두지는 않겠다는 의지인지 실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파앙!
근육 안쪽에 파묻혀 있던 혈관이 터지고, 죽어 버린 핏물이 고치에 튀었다.
그러나 살아 있을 때조차 그에게 베였던 하잘것없는 살덩이에 불과했기에, 단테는 무심히 검에 내력을 더했다.
질긴 고기를 무딘 칼로 억지로 자르듯, 묵직하고 질긴 감촉과 함께 근육이 찢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단테의 검격이 고치에게 닿으려던 그 순간.
쩌저적…….
공중에 떠 있던 고치의 겉에 균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곧 섬광과도 같은 흰색 연기를 흩뿌리며 고치를 이루고 있던 흰색 실들이 끊어진 근육 위로 추락했다.
〔……이 무슨.〕
무언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마수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고, 네임드라고 하기엔 기운이 하찮았기에 단테는 무심결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실루엣이 너무나도 익숙함과 동시에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아이?’
사박.
소리와 함께 새하얀 발이 더러운 핏물과 실로 점철된 대지를 디뎠다.
그리고 매끈한 육신의 굴곡을 따라 양수와도 같은 점액이 흘러내렸다.
단테의 시선과 아이의 시선이 콕피트를 지나 맞닿았다.
고치에서 깨어난 아이의 외형은 실로 기이했다.
온전한 백색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새하얀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아 있다.
동시에 새하얀 눈동자가 주변을 살폈다.
열 살 정도로 보이는 몸은 완전한 나신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몸에는 특징이 없었다.
마치 진흙으로 가장 완벽한 모습의 인간 아이를 빗은 것과 같이 완벽했지만, 성별적인 특성을 보이는 어떠한 신체도 지니지 않은 것이다.
말 그대로 무성(無性).
때문에 단테의 가슴에 본질적인 혐오감이 일어났다.
겉모습에 현혹되기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본 그였기에.
때문에 단테는 곧바로 아이를 짓뭉개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렸다.
하나 그때였다.
성별도, 이름도, 정체도 특정할 수 없는 기이한 아이는 주변을 살피다가 이내 단테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고는 이내 혈관이 비칠 정도로 창백한 안면을 움직이며 입술을 뻐끔거렸다.
-너.
아이의 백색 눈동자가 번뜩인다.
동시에 무심한 시선의 끝자락에서 아이는 단테의 뇌리로 속삭였다.
-죽어. 유모. 너.
지극히 엉망인 말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이, 어쩌면 또 다른 네임드일지 모를 괴물의 말을 들은 단테는 조소를 머금은 채 시선을 내렸다.
꿈틀.
이젠 형체조차 남지 않고, 때때로 근육만이 꿈틀거리는 지박식귀의 시체를 한번 훑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어쩌면, 둥지가 맞았을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진화한 건가.’
인간을 어설프게 따라 한 반인의 귀태가 중원에 없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눈앞의 모순적인 존재는 느낌부터 달랐다.
그렇기에 그는 시간을 끌지 않고 곧바로 괴물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단번에 으깨 버릴 생각이었다.
파아아앙!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벤데타의 메인 코어인 검은 심장이 두근-하며 단테의 내력을 게걸스럽게 삼켰다.
하지만 그때.
자신에게 뻗어지던 주먹을 지그시 응시하던 아이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유모라 불렸던 네임드의 사체에 속삭였다.
-막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술이 달싹거리자, 이내 대지에 널브러져 있던 사체 파편이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으로 솟구쳐 단테의 주먹을 향해 달라붙었다.
그러나 일전에 겪었던 것을 또 당할 단테가 아니었기에 그는 팔에 달라붙는 살점들을 떼어 내고자 무공을 펼치려 했다.
주먹을 말아 쥐고, 콕피트에 가득 찬 묵빛 액체에 내력을 흘렸다.
그리고 막 출수하려던 그때.
-안 돼.
단테의 뇌리에 지극히 평온한, 그러나 찢어질 듯 강렬한 아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단테의 이마에서 혈관이 도드라지고, 단전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뻗고자 하는 주먹이 뒤로 밀렸다.
신경에 담긴 명령이 혼란을 일으켰다.
이내 단테는 입술을 짓씹으며 놈을 노려보았다.
‘이, 무슨 빌어먹을……!’
어지간한 정신 공격은 감히 닿지조차 못하는 내면의 벽을 두드렸다.
그것만으로도 저 괴물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대충이나마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 심력을 갉아먹는 괴물이리라.
‘……버러지가.’
아이라는 외형에 속지 않았다.
단테는 어느새 핏물이 흐르는 턱을 느끼며 안광을 터트렸다. 적안이 번뜩였다.
‘하찮다!’
어설픈 놈이 어찌할 수 있는 그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게 가능하다면 단테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일도 없었으리라.
콰드득!
벤데타의 팔이 미친 듯이 팽창했다.
동시에 묵빛 액체 안에 있는 단테의 목과 팔을 따라 미친 듯이 혈관이 도드라졌다.
-어, 아.
백색의 단발을 흔들던 아이는 당황이라도 한 것인지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고는 무어라 다시금 말하려던 그때.
뿌득.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단테의 주먹이 그대로 아이를 짓누를 듯 바닥을 내리찍었다.
거대한 거인이 인간을 단번에 짓이기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콰아아앙!
내리 찍힌 주먹은 자욱한 연기와 함께 균열로 가득한 대지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곧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투명한 액체가 바닥에 흐른다.
그러나 단테는 개의치 않고 다시금 주먹을 내리찍었다.
콰앙-거리는 굉음을 내며 수차례 바닥을 찍은 주먹에 투명한 액체가 맺혔다고 흙과 뒤섞이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몇 번을 내리찍었을까.
내심 단테도 이쯤이면 되었으리라 생각한 그때.
먼지가 걷히고 곧 괴이한 실루엣이 보이자 이번엔 단테도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불사라도 되는 건가.〕
일반적인 주먹이 아니다.
단순히 내려찍은 주먹임에도 그의 경지가 오름에 따라 온갖 무공의 오의가 점철된 주먹질인 것이다.
그런데도…….
비틀.
아이는 살아 있었다.
비록 매끈하던 온몸에 투명한 점액과 같은 핏물이 흐르고 몸 곳곳이 부러지고 찢어진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숨이 붙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피해는 입었으나 죽이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때문에 단테는 다시금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때.
-도, 와.
놈이 내뱉은 명령이 그를 지나 전장에 울렸다.
그래, 부탁이나 제안이 아닌 명령.
그것이 전장을 메우고 파도처럼 군인들을 몰아붙이던 마수들에게 닿았다.
동시에 마수들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아이는 어느새 서서히 재생되는 육신을 잔잔하게 떨며 적의를 담아 읊조렸다.
-죽어.
그리고 그 순간.
-캬아!
서서히 고개를 돌린 수백, 수천의 마수들의 시선이 단테-벤데타에게 닿았다.
〔이건 또 무슨…….〕
그리고 단테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술을 들썩거린 그 순간.
쿠구구구궁!
전장으로 내달리던 마수들의 발길이 일제히 돌아감과 동시에 마치 농작물을 갉아먹는 수많은 황충과도 같이 놈들은 오직 단테를 향해서 밀려들었다.
콰드득, 콰득!
벽을 내달려 비행함을 노리려 도약했던 마수가 단테에게 떨어져 내렸다.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을 가릴 것 없이 전장에 자리한 모든 마수가 오직 그를 죽이기 위해 서로를 짓밟으며 내달렸다.
〔다, 당장 막아아!〕
〔이건 또 무슨 거지같은……!〕
이를 본 카트린과 리베라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군인들을 등지고 단테를 향해 밀려가는 파도의 뒤를 따랐다.
‘빌어먹을.’
그리고 그 중심이 된 단테는 내력을 끌어 올려 단번에 아이를 끝내려 했으나, 이미 상황을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 후였다.
-쿠어어어어!
마치 거대한 원숭이를 갈가리 찢어서 기운 듯이 생긴 놈이 천장에서 떨어져 단테와 아이 사이에 착지했다.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곧 단테의 벤데타는 밀려오는 마수들의 파도 아래로 잠수할 수밖에 없었다.
콰드득! 콰직!
미친 듯이 주먹을 뻗어 놈들을 죽였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밀려오는 놈들에 의해 시야는 점점 좁아질 뿐이었다.
〔흐읍!〕
그는 곧바로 죽은 살점을 터트리며 발을 굴렀다.
그러자 곧 군림보가 일어나 수십 마리의 마수를 터트리고, 족히 십 분지 일은 되는 마수들의 뇌리에 공포를 각인시켰으나 그마저도 압도적인 수에는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죽여야 한다!’
밀려드는 마수들과 흔들리는 대지, 살과 핏물로 점철된 시야 속에서 단테는 아이를 찾았다.
처음엔 그저 혐오하던 것에 불과했으나 이젠 뇌리에 경종이 울렸다.
……위험하다.
갓 태어난 네임드가 저러할진대, 이후에는 어떻게 성장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외형을 가졌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단테는 점차 빠르게 고갈되는 내력과 밀려드는 피로감에도 미친 듯이 마수들을 죽이며 전진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그의 손에 죽은 마수의 수가 세 자리를 넘어갔다.
이때까지 변변찮은 상처도 없었던 벤데타 역시 미친 듯이 밀려드는 놈들의 공격에 점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상급 마수의 눈에 손가락을 찔러 단번에 머리를 터트린 그 순간, 어느새 상처를 완전히 회복한 채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뻐끔- 하고 아이의 입술이 들썩거렸다.
동시에, 아이의 생각이 단테의 머리를 스쳤다.
-너. 죽어. 다음.
실로 오만하고도 버러지 같은 말임과 동시에, 도망을 시사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단테는 잡아 터트린 마수의 머리를 놈을 향해 던졌다.
콰지직!
뼈와 살로 이루어진 고깃덩어리가 바닥에 부딪쳐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정작 놈은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은 채 단테를 지그시 응시하며 덧붙이는 것이다.
-봐. 다음.
그리고 그 순간.
아이의 발밑이 꿰뚫리고, 거대한 뱀과 같은 마수가 나타나 단번에 아이를 삼킨 채 사라졌다.
〔…….〕
실로 허망하게 놓치고 말았다.
때문에 단테는 실로 오랜만에 밀려오는 짜증과 분노를 머금고 자신을 감싼 마수들을 응시했다.
서슬 퍼런 안광이 번뜩이고, 때마침 서서히 저물어 남색이 된 하늘이 눈에 밟힌다.
동시에 그의 육신을 넘어 벤데타의 기체에 묵빛 내력이 흐르니.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학살이 시작되었다.
기갑천마
공화국으로
네임드를 죽였지만 그 안에서 태어난 또 다른 괴물을 놓친 직후 이어진 것은 오직 마수들의 학살뿐이었다.
타다다다당!
나이트 프레임들의 총탄이 마수들의 육신을 꿰뚫었다.
뒤늦게 수습한 보병들 역시 포병들과 함께 전선으로 나섰고, 엄청난 폭음과 함께 사방에 다시금 처참한 죽음이 흩뿌려졌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마지막이라는 점일까.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뜬다.
그리고 마지막 총성이 멎자 마침내 지독한 악몽이 끝이 났다.
〔……하아.〕
단테는 밀려오는 피로감에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벤데타를 역소환하고 대지로 추락했다.
떨어지는 그의 목덜미에서 흑색의 목걸이가 흔들리고, 이내 그는 작은 산을 이룬 마수들의 시체 위로 착지했다.
퍼억- 하는 둔탁한 고기 소리와 함께 그의 군화에 핏물과 살점이 튀었다.
그러나 단테는 저릿한 손목의 통증을 느끼고 미간을 좁힐 뿐이다.
꽉.
주먹을 쥐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모든 여력을 쏟아부었다면 죽일 수 있었을까.
밀려드는 마수들을 도륙하며 수없이 계산해 보았으나 가늠이 서질 않았다.
놈의 재생력은 상상외의 것이었으니까.
문득 시선을 발밑으로 내렸다.
그러자 뒤늦게 밀려온 바람에 실린 짙은 피 냄새가 그의 코를 간질였다.
족히 수천에 달하는 마수와 인간이 죽었고, 그로 인한 살점과 핏물은 드넓은 공간을 옅은 호수로 만들었다.
……이곳에 자리한 죽음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윽고 정적을 깨며 공화국 병사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와아아아아아아!”
“우아아아아!”
손에 쥔 총을 높이 들어 올리며 미친 듯이 함성을 내질렀다.
장교와 사병을 가릴 것 없었다.
지난 1년간 내뱉었던 고통이나 두려움, 분노와 절망에 찬 외침이 아니다.
드디어 끝이 났다는 안도감.
이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환희.
죽지 않았다는 기쁨이 뒤섞인 울분이었다.
그때 땀과 핏물이 절어 시야를 가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 넘기자 일련의 군인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모두가 익숙한 얼굴들이다.
리베라와 로한은 물론 카트린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마수들에 둘러싸인 단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기에 그저 후련한 얼굴이었다.
“살다 살다 네임드 공략을 두 번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제일 먼저 단테에게 다가선 인물은 리베라였다.
그녀는 언제 정색을 했었냐는 듯 너스레를 떨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그러나 정작 이쯤에서 무어라 틱틱거려야 할 로한은 그저 담배를 뻐끔거린 채 무언가를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단테의 시선이 로한에게 닿을 새도 없이, 카트린이 성큼 다가와 이윽고 경례를 올렸다.
각자 몸담은 국가나 나이, 신념을 떠나 군인으로서 보내는 경의였다.
“……큰 빚을 졌습니다, 단테 대위.”
준장이 일개 대위에게 보이는 경의치고는 과할 수 있겠으나, 단테의 무력을 본 이들은 절대 그런 생각을 품지 못했다.
오히려 몇몇 장교들은 카트린의 행동에 발맞춰 함께 경례를 올리기까지 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드디어어!”
“집이다! 집으로 갈 수 있다고!”
그때 드넓은 전장의 함성 사이로 들려오는 병사들의 눈물 섞인 외침을 들은 카트린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많은 것들이 변할 겁니다.”
그녀는 단테에게 말했고,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가 생각하는 건 공화국이 아니라 조금 전 놓쳤던, 괴이의 존재였지만 말이다.
하나 카트린의 생각은 오직 공화국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단테 대신 리베라가 화답했다.
“변하기만 하면 다행이겠죠?”
묘한 말이었다.
하지만 반박하기가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의 승리와 생존에 취한 이들은 몰라도, 그녀는 지휘관이기에 현실을 객관적으로 봐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관점에서 이번 네임드 토벌은 공화국에게 어떠한 이득도 안겨 주지 못한, 오히려 실패로 점철된 패배였다.
단순히 잃은 인력과 장비만 해도 얼마인가.
또 그렇게 투입하고도 결국 제국의 도움을 받은 모양새가 되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카트린은 무심결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공화국의 해체를 말이다.
문득 쓴웃음이 지어졌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공화국은 여태까지 주변국들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에서 존재할 수 있던 국가나 다름이 없다.
해체까진 가지 않아도 많은 이권을 내주어야 할 것이다.
‘이 또한, 시대의 흐름인가.’
아마 저 리베라 대위가 한 말도 같은 맥락이리라.
이내 그녀는 생각을 멈추고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가올 고난을 생각하면, 머리만 아팠으니 말이다.
대륙의 겨울은 서서히 끝나 가는데, 공화국의 겨울은 이제야 시작되는 것이다.
그때 단테는 잠시 마수의 시체가 산이 되어 쌓여 있는 방향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윽고 앞으로 걸었다.
터벅- 하고 내뱉는 걸음에 주변의 시선이 몰렸으나, 단테는 무심히 카트린을 지나쳤다.
그런 그를 돌아본 카트린은 무심결 말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기를.”
그녀의 목소리가 닿았음에도 단테는 멈추지 않았다.
단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길이 열린다.
단테를 필두로 한 세 명의 검은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거대한 지옥과 같은 공동의 밖으로 향하고,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트린은 왼쪽 눈의 통증조차 잊은 채 입을 벌리며 외쳤다.
“전군-!”
중년의, 그것도 지친 몸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가 공동을 가득 메운다.
“-경례!”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에 외침을 멈춘 병사들은 이내 울린 카트린의 명령에 일제히 경례를 올리며 화답하니.
“충성! 인류에 자유를!”
경례를 받은 그들의 코트 자락이 바람에 살짝 휘날리고, 머지않아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공화국 군인들은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으니.
실로 장관이라 할 만했다.
……그리고 그 시각.
구석 그늘진 곳에 몸을 숨긴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제4 원로 이슈페인은 품속에서 꺼낸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이건 계산하지 못한 오류인데…….”
골치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좁히다가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언제부터 대군주의 군단이 예상대로 움직였냐마는…….”
그랬다면 여기에 있을 이유도 쓸데없이 오래 살 이유도 없지 않았을까. 소년의 외모를 한 그는 그저 쓰게 웃으며 이윽고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딸깍.
무언가 버튼을 누르는 소리와 함께,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공동에 남은 것은 어느새 경례를 거두고 뒷수습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카트린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