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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천마-67화 (67/197)

콰드드드득!

검은 기체의 굴곡진 장갑을 따라 식귀의 송곳과도 같은 다리가 긴 선을 그었다.

그러나 흉터도 남지 않고 미끄러진 다리를 따라 단테는 그대로 앞으로 쇄도한다.

끼기긱!

기름칠이 되지 않은 기계의 관절부가 억지로 움직이는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단번에 지박식귀…… 아니, 식충의 다리를 따라 올라온 단테는 얇은 막과 살점으로 가득 찬 관절부를 보며 그대로 내력을 끌어 올렸다.

〔흡.〕

실로 짧고 간결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검을 뽑아 내리찍었다.

그러자 곧 몸부림치는 놈의 떨림과 함께 파슷, 하고 녹색 점액이 튀었다.

실로 역겹고 혐오스럽다.

그러나 단테는 반쯤 잘린 다리에서 만족하지 않고 벤데타에게 명령했다.

‘짓밟아.’

일전에 했던 말을 지켜 줄 생각이었다.

애초에 벌레라면 벌레답게 바닥을 기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단테의 생각을 다행히 벤데타는 아주 잘 이해했다.

콰지지지직!

-까드드득! 캬아아아아!

거대한 몸이 흔들림에 따라 도시 하나는 들어갈 정도로 드넓은 공동이 흔들린다.

오죽하면 또 다시 일어난 균열에 마수들이 추락해 나이트 프레임들에게 학살을 당하겠는가.

“갈겨어어!”

“쏴! 쏘라고 이 새끼야!”

벤데타의 콕피트 너머로, 실로 처절한 공화국군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렇기에 단테는 곧바로 대지를 박차고 뛰어올라 놈의 등에 닿았다.

쩌적, 소리와 함께 견고한 어깨 날개가 우그러진다. 이전과 달리 자세히 바라보니 움푹 파인 선이 존재했다.

‘날 수 있는 건가.’

벌레들이 그러하듯, 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마치 그의 생각에 화답이라도 한 것인지 놈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이내 날개 위의 견갑을 움직였다.

〔크윽…….〕

마치 땅이 물결치며 밀려나듯, 벤데타 역시 그대로 주욱 멀어졌다.

동시에 족히 하나의 호수와 비견될 법한 거대한 날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까드드드드득!

놈이 날개를 펼친 그 순간, 이젠 위와 좌우, 5개밖에 남지 않은 입을 이리저리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단테에 의해 3개의 다리가 끊어졌기 때문인지, 조금은 휘청거리는 모습이 퍽 우스웠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살려……!”

물론 단테의 시선과 달리, 나머지 이들에게는 네임드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때문에 엄청난 대지의 충격과 갈라지는 균열 사이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것을 단테도 모르지 않는다.

때문에 손을 뻗어 빠르게 위아래로 흔들리려는 놈의 날개를 잡았다.

-키에에에!

생명이 가진 본능적인 불안함인가.

놈은 단테의 손길이 닿기 전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으나 그것은 단지 소망에 불과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는지…….〕

나이트메어든, 이놈이든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갔다.

단테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을 쥔 손을 그었다.

스으으읏.

검에 일렁이는 묵빛에 일순간 달빛이 스몄다.

동시에 지천에 죽음이 가득한 공동에 한줄기의 섬광이 번뜩였다.

천마신공과 더불어, 그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비기가 또 다른 세상에 드러나니.

순간적으로 검을 쥔 벤데타의 케이블이 혈관처럼 솟구쳤다.

일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

내력을 많이 잡아먹는 것도 문제였으나, 양산기가 버티지 못할 것이 자명한 일이었으니까.

단순히 주먹을 휘두르고, 뻗고, 나아가 검을 찌르고 베는 것과는 다르다.

일격에 그어지는 것인 만큼 팔에 가해지는 부담이 상상 이상인 것이다.

하지만 벤데타라면 가능하다.

추측이나 소망이 아니다.

벤데타가 가능하다고 말했고, 단테 역시 가능하리라 확신했다.

때문에 긋는다.

그뿐인 것이다.

백월신공(白月神功).

이윽고 허리 뒤로 늘어져 있던 검이 허리의 궤적을 따라 길게 횡을 그렸다.

동시에 마치 반월과 같은 묵빛과 은빛이 섞인 빛이 번뜩이고 머잖아 뻗어지니.

실로 오랜만에 읊조리는 무공명.

묵월참(墨月斬).

왜인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단테는 그대로 놈의 날개와 등을 향해 검을 그었다.

파슷-!

공간을 자르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이내 뻗어진 반월은 막 날아오르려던 지박식귀의 날개를 비스듬히 스치며 그대로 놈의 등에 닿았다.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라도 하는 듯, 지박식귀는 여전히 날개를 펄럭였고, 단테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단테의 검이 다시금 비스듬히 눕힌 그 순간.

-까드득?

단지 순수한 의문을 머금은 놈의 고개가 살짝 갸우뚱해지고, 벤데타의 장갑을 뚫으며 몇몇 케이블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까, 까아아아아아앍!

마수들과 군인이 뒤섞인 전장에 고통과 두려움이 담긴 놈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공중에 뜬 비행함이 흔들리며, 때때로 추락한다.

나이트 프레임들은 강풍마저 일으킨 놈의 괴성에 휘청거리고, 군인들 몇몇은 고막이 나가고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

〔단테?〕

리베라 역시 갑작스러운 충격에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할 말을 잃고 손에 쥔 대검을 비스듬하게 내릴 수밖에 없었으니.

〔무, 무슨…….〕

리베라의 은빛 눈이 흔들렸다.

그래, 더 강해졌다는 건 이미 눈치를 챈 지 오래다.

전용기에 올랐으니 시너지는 배가 되었으리라 머리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일정 선이 있는 게 아닐까.

네임드의 등에서 핏물이 봇물 터지듯 솟구쳐 올랐다.

수십 겹의 날개가 대지로 펄럭이며 추락하고, 놈의 등은 비스듬하고 긴 상처가 남아 속살을 드러냈다.

단테는.

그 위에 오롯이 서 있다.

마치 자신이 네임드에게 이런 상처를 남겨 주었다고 선언하는 듯한 모습이다.

물론 그의 기체도 정상은 아니었다.

검을 쥔 팔의 장갑이 떨어져 나갔고, 마치 사람의 팔처럼 매끈한 기체의 안에서 케이블이 튀어나와 단테의 검은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휘날렸다.

그럼에도 네임드와 마주한 상처라기엔 너무나 소박한 상처였다.

스윽.

그때였다.

슬슬 전투를 끝내려는 듯, 단테는 검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든 채 높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단번에 찍어 버리려는 듯, 마나가 일렁이는 검을 그으려 했다.

때문에 혼란 속에서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들의 마음에 자그마한 희망이 싹텄다.

이 순간, 저 기체의 주인이 제국군이든 공화국군이든 하등 상관없다.

단지 이 전투가 빨리 끝나기만을 소망할 뿐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까드드득.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었으니.

-까드득.

순간 단테는 의미를 모를 위화감을 느낀 채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동시에 끌어 올린 내력의 일부를 눈에 감아 잘린 지박식귀의 상처 안쪽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살점으로 가득했던 놈의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놈의 상처를 바라보던 단테는 지극히 이질적인 무언가를 발견했다.

‘……번데기?’

놈의 심장이 되는 부분에 심장이 아닌 흰색 실에 휘감긴 번데기가 있었다.

마치 작은 아이 하나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번데기가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

척추를 따라, 벤데타가 느낀 살기가 전해졌다.

그리고 반쯤은 본능으로 검을 내려찍으려던 그때.

-까득.

어딘가 비웃음처럼 느껴지는 지박식귀의 울음과 함께.

콰아아아아아아앙!

놈의 몸이 그대로 폭발했다.

기갑천마

이질적인 아이

벌레가 터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벌레를 터트리면, 다리가 중구난방으로 이리저리 뒤틀린다.

늘 육신을 보호해 주던 외피가 깨지고 부서지며, 내장이 진물을 흘리며 터진다.

묽은 핏물이 흐르고 더러운 살점이 바닥에 눌어붙는다.

작은 벌레가 하나만 터져도, 놈은 자신보다 배는 넓은 곳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벌레가 족히 하나의 산과 맞먹는 크기를 가졌다면 어떨까?

콰아아아아아아앙!

지박식귀라 이름 붙여진 네임드의 육신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거대한 다리가 흩어지고, 나아가 녹색과 보랏빛이 섞인 살덩이가 드넓은 대지에 박혔다.

“으아아아아!”

“사, 살려……. 커억!”

파편 하나하나가 인간보다 커 보였다.

또한 폭발로 흩어진 연기와 핏물은 생리적인 역겨움을 동반함과 동시에 숨 쉬는 것을 방해했다.

살덩이와 외피에 깔린 군인들은 신음 한번 터트리지 못하고 즉사했다.

짓눌린 시체에선 핏물이 흘러나와 난장판인 땅을 적신다.

그뿐인가.

허공에선 비행함이 고도를 잃고 추락하고, 지박직귀가 등지고 서 있던 협곡의 벽이 무너져 카샤트 산맥 안쪽과 연결된 길이 더욱 넓어지고 말았다.

콰과과광!

궤도에 탑재된 마력 포대가 꺾인다.

〔기체에서 탈출…… 끄억!〕

나이트 프레임들 역시 폭발에 휘말리거나 파편에 휩쓸려 벽과 바닥을 구른다.

한편 카트린은 총구에 착검한 전기톱을 바닥에 박아 넣어 폭발의 충격을 견딜 수 있었다.

그녀는 연기가 걷히자마자 통신기를 틀어쥐고 외쳤다.

〔당장 전장에서 이탈해! 명령이다!〕

궤도차나 나이트 프레임에 탑승하고 있던 군인들은 운이 나쁘게 깔려 죽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나마 무사했지만, 지상에 있던 보병이나 포병들은 달랐다.

“아, 아아아. 눈, 눈이!”

폭발의 섬광이 시력을 앗아 간다.

“으, 으으……. 아, 아파.”

고막이 터졌고, 폭발에 휩쓸려 허공에서 추락해 몸이 꺾인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카트린은 일단 보병들의 퇴각을 도운 후 상황에 대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크아아아아!

〔신이시여…….〕

폭발에 함께 휩쓸렸으나,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은 마수들이 연기를 뚫고 미친 듯이 전장으로 내달리자 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앙!

퍼어엉!

일부 건재한 기갑 장교들과 포병 장교들이 놈들의 돌진을 막아 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카트린의 통신기엔 수많은 장교의 무전이 울렸다.

〔준장님! 명령을……!〕

〔뒤, 뒤쪽 벽이 무너졌습니다! 마수들이 더 밀려오고 있단 말입니다!〕

〔으아아아아아아!〕

지난 1년의 모든 혼란을 합친 듯한 상황이다.

때문에 그녀는 아려오는 왼쪽 눈을 부여잡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통신기를 부여잡고 외쳤다.

〔전선을 유지해! 보병들을 후방으로 배치하고 파일럿들이 어떻게든 막아 내야 한다!〕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드디어 이 빌어먹을 협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녀는 몸에 연결된 케이블에 마나를 때려 박았다.

우우웅- 소리와 함께 메인 코어가 회전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비롯한 공화국군의 나이트 프레임들이 몰려오는 마수들을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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