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66화 (66/197)

콰직!

벤데타의 발밑에서 입을 벌리던 곤충 모양의 상급 마수의 육신이 짓밟히며 터졌다.

묽은 핏물과 함께 장기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습…….〕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동시에 네임드, 지박식귀의 앞에 안착한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기둥과도 같은 다리가 휘둘렸다.

파아앙!

공기가 찢겨 나갔다.

단테는 팔을 들어 측면에서 휘둘리는 거대한 다리를 막아 냈다.

콰과과과광-!

굉음이 울리고, 벤데타의 발이 대지에 긴 상처를 남기며 그대로 벽까지 몰려 버렸다.

그러나 정작 기체에는 어떤 상처도 나지 않았다.

내력을 끌어 올렸다.

단테의 적안이 번뜩이며 그대로 대지를 박차 공중으로 떠올랐고, 찰나의 순간 그가 있던 대지가 산산이 부서지며 그를 덮쳤다.

그러나.

천마월광천하(天魔月光天下).

뻗어진 섬광이 그의 시야를 가리는 잔해들을 일제히 소각시켰다.

그리고 지박식귀의 눈동자가 벤데타를 쫓은 그 순간.

파슷!

점멸한 섬광과 함께 역소환된 벤데타에서 단테의 육신이 추락했다.

그는 일순간 붕 뜬 몸을 허공에서 뒤틀며 묵빛 내력을 끌어 올렸다.

“실로 역겨운 자태구나.”

처절한 전장의 중심에 서 있다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평온한 목소리가 울렸다.

대지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하는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펄럭이는 검은 제복과 양손에 흐르는 묵빛의 아지랑이는 길게 선을 그리며 그를 뒤쫓았다.

이윽고 단테는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며 포효하려는 놈을 향해 말했다.

“맹주가 내게 틀린 말을 전했다.”

어느새 뒤집힌 그의 몸이 허공에서 유려한 선을 그리며 추락했다.

동시에 단테는 섬뜩한 비웃음을 입가에 그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식귀가 아니라, 식충이거늘.”

-까드드득!

그것이 자신을 모욕하는 말이라는 걸 알아먹기라도 한 것인지, 놈은 입을 미친 듯이 부르르 떨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단테를 단번에 집어삼키겠다는 듯 녹색 점액이 사방으로 흩어질 정도로 거대한 입을 쩌억 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천마신공(天魔神功).”

덤덤히 내뱉어지는 목소리에 단전이 꿈틀거렸다.

본능적인 위기를 느낀 놈이 다가올 주먹을 경계하며 입을 조금 다문 그 순간.

씨익.

비릿하게 올라간 단테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고 끌어 올린 내력을 목에서 흔들리는 흑옥에게 전하며 덧붙이니.

“벤데타.”

내뱉어진 목소리에 다시금 묵빛 거인이 그의 육신을 감쌌다.

동시에 단테는 자신의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건방진 벌레의 아래턱을 지그시 응시하며 검파를 쥐었다.

동시에 생각한다.

일단, 입을 좀 찢어야겠다고 말이다.

천마수라참(天魔修羅斬).

서걱!

그어진 선이 놈의 아래턱에 달린 3개의 갈래에 닿고, 이내 추락해 하잘것없는 살덩이로 전락해 버렸다.

-캬아아아아아아악!

뒤늦게 고통이 밀려온 것일까.

놈은 몸을 떨며 고통과 분노가 담긴 괴성을 내질렀으나 이미 단테는 뒤로 물러선 후였다.

〔……스읍.〕

그러나 실로 기예라 부를 만한 것을 두 번이나 시전 한 단테도 아예 부담이 없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초조함이나 두려움 따위가 아닌 묘한 미소를 띤 채로 주먹을 쥐었다.

‘상상 이상이다.’

벤데타의 성능이 예상 밖이었다.

동시에 놈을 천천히 이해하게 되자 일전에 생각했던 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벤데타를 완벽하게 다루고 있는 건 아니다.’

놈은 단테를 주인으로 인정했으나, 자신의 모든 부분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흑옥에 담긴 복수의 깊이는 얼마나 깊을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통에 떨다가 다시금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식귀, 아니 식충을 바라보았다.

〔쓸데없이 크다.〕

놈의 크기는 정말 컸다. 일전에 마주했던 나이트메어가 무심결 작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때문에 단테는 자신을 감싼 액체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벌레의 미래를 점지해 주었다.

〔바닥에 기게 만들어 주지, 벌레답게.〕

동시에 그의 기체가 다시 솟구쳤다.

콰아아앙!

굉음이 울리고, 갈라진 대지에서 떨어진 살점이 튀었다.

그리고 그런 단테의 뒤로, 공화국에게 반쯤 빼앗은 기체에 탄 로한의 울분 섞인 외침이 흘렀다.

〔으아아아아!〕

정확히는 울부짖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력도 안 되는 놈들이 개조는 왜 해서……!〕

로한이 받은 기체는 그들의 말 대로 제국에서 밀수한 양산기의 부품을 조합해 만든 기체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품질이 그야말로 최악이라는 점이었으니.

끼기긱, 소리를 내며 관절이 삐걱거린다.

곳곳에 연결된 케이블이 흔들렸고, 심지어는 다리 대신 달린 궤도마저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폐기 직전인 기체였으나, 공화국 측도 어쩔 수 없었다.

매일 수백 명씩 죽어 가던 전장인 데다가, 공화국 사정상 보급이 풍족할 수가 없으니 저런 기체라도 일단 굴려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기체가 하필 로한에게 배정된 것은 여러모로 불행이었다.

“에라이, 씨!”

결국 콕피트 안에서 답답함으로 떨던 로한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기체를 발로 거세게 내리찍었다.

그리고 그 순간.

끼기기긱…….

“얼씨구?”

무한궤도가 멈추고, 이내 콕피트 내부의 불빛이 꺼지며 그의 몸에 연결되었던 케이블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로한은 멍한 눈으로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중얼거렸다.

“머, 멈춰? 발로 한번 깠다고?”

공화국의 기술력에 경의를 표했다.

이렇게 어려운 시국 속에서도 이런 신기술을 만들어 내다니.

허탈함에 그딴 실없는 생각을 하던 그는 이내 담배를 피고자 품속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잡히는 건 없었다.

“하아…….”

재수가 없으면 아예 없다고 하든가.

그는 치솟는 혈압을 애써 가라앉히려는 듯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였으나, 채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빌어먹을!”

성큼 내디딘 걸음이 콕피트의 입구로 향했다.

뒤이어 그는 이음새를 향해 힘찬 발길질을 뻗었고, 곧 터엉, 하는 소리와 함께 문짝 채로 바닥에 추락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 단테와 네임드의 전투가 한눈에 담겼다.

그러자 흥분했던 그의 기분은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키에엑! 키에에에엑!

포효하며 미친 듯이 몰아붙이는 네임드의 모습만 보면 오금이 저리겠으나, 정작 로한의 시선은 단테의 기체 벤데타를 향해 있었다.

“거참…….”

아무리 뛰어난 에이스라고 해도, 네임드와 단신으로 맞설 수는 없다.

굳이 긴 말이 필요 없는 상식이자 당연한 이치다.

한데 정작 그는 그런 상식 밖의 광경을 한 번도 아니라 두 번째 보는 게 아닌가.

그렇기에 생각했다.

‘자연사는 글렀군, 음…….’

세례명과 더불어 또 하나의 희망을 버렸다.

그는 어느새 체념을 삶의 자세로 삼으며 콕피트에서 뛰어내려 그대로 다른 기체를 찾으려 했다.

그래, 찾으려 했다.

“이야, 들었던 대로 잘 싸우네요?”

순간적으로 뒤에서 들리는 낯선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어.’

로한의 실눈이 드물게 떠지며 동시에 침을 삼켰다.

그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마나를 끌어 올렸고, 이내 권총의 그립을 잡으려던 그때.

“아, 뒤를 돌지는 마세요. 당신은 아직 제 얼굴을 볼 자격이 없는지라…….”

그는 어느새 눈동자를 굴리는 로한의 귓가로 성큼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너무 앳되진 않은, 어딘가 천진난만하면서도 묘한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렇기에 로한이 막 뒤를 돌아 그의 얼굴을 확인하려던 그때.

“블랙 가드의 제4 원로라고 불리고 있는 천…… 아니, 이슈페인이라고 합니다.”

로한의 몸이 굳고, 뒤이어 이슈페인은 입꼬리를 부드럽게 말아 올리며 덧붙였다.

“반가워요, 로한.”

기갑천마

비웃음을 머금고

‘뭐? 반가워요. 로한……?’

실로 경쾌하고도 발랄한 인사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로한은 입안에 맴도는 찝찝함과 섬뜩함을 애써 무시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분명히 전장이기에 두려움의 대상은 마수와 네임드가 되어야 할 텐데, 정작 대상이 된 것은 뒤에 선 이슈페인인 것이다.

‘제4 원로라니.’

그런 그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슈페인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야.”

아니, 정확히는 허공과 대지를 전장으로 삼아 네임드를 몰아붙이는 단테의 뒤를 쫓는 시선이었다.

비록 뒤를 돌아보지 못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무심결 생각했다.

아마 웃고 있지 않을까 하고.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과연 실제로 보니까 말로만 듣던 것보다 감동이 더한데요? 확실히 저분이라면…….”

이슈페인은 의미를 모를 말들을 지껄였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이내 말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원로의 태도에 로한은 괜스레 침을 삼키며 눈동자를 굴릴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막 나갈 땐 한없이 막 나가는 그라고 해도 상대가 블랙 가드의 원로 앞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는 혹여 고개를 돌려 얼굴을 바라보는 불상사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목을 딱딱하게 고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로들이 어떤 존재들인가.

개인 개인이 괴물이라 평가받으며, 일부를 제외하곤 수가 몇 명인지, 그 무력의 한계가 어디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거기에…….’

거기까지 생각한 로한은 문득 과거 제7 단장이 그가 조장에 막 올랐을 때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조직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을 당시, 단장들이 원로원에 반기를 들었던 일이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단장급이 가진 무력을 아는 로한은 내심 원로원이 꽤 고생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들이었으니.

-그리고 그날. 단장급들은 물론 관여된 모든 이들의 ‘가문’이 지워졌지.

비단 개인뿐이 아닌, 그들과 연결된 모든 이들이 죽었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었지.

-하운드가 그렇게 강하다고요?

지극히 상식적인 물음이었다.

말단 조직원에게 오픈되는 정보는 한정적일뿐더러, 아무래도 소수인 원로원이 직접 나섰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로한의 말을 들은 제7 단장. 리스울은 손 안에서 위스키 잔을 가볍게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운드의 짓이 아니었다. 그들이 한 것은 정보의 은폐뿐이었지.

-그럼…….

-원로 두 명.

과거의 로한이 침을 삼켰고, 현재의 로한이 식은땀을 흘렸다.

-제1 원로와 제4 원로의 손에 몇천이 죽었다.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말이야.

평소 리스울의 일 처리 방식이나 성격에 불만을 느끼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신뢰성이 없는 말을 입에 담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이런 순간 기억이 되짚어지는지도 모른다.

로한은 실눈 안으로 미친 듯이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어깨를 쥐고 있는 제4 원로의 작은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제거당하는 건가?’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아니, 오히려 많다는 쪽에 걸겠다.

그가 바보도 아닌데 어째서 모르겠는가.

일전에 하운드가 찾아옴으로써 블랙 가드 측에서 단테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또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더욱이 원로원과도 어떤 식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그러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문득, 직접 죽인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아들아,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2개란다. 줄을 잘 서는 것과 아가리를 닫아야 할 때 아주 빠르게 닫는 거.

쓰레기라는 말도 부족한 작자였지만, 그래도 꽤 쓸 만한 가르침이지 않은가.

로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무엇을 지키지 못했나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그때.

“걱정하지 마세요, 로한.”

이슈페인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보인다는 듯,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렀다.

그러자 흠칫 떨리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저 부탁을 좀 드리려고 부른 거니까요.”

어린 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능글맞은 목소리다.

그의 말을 들은 로한은 이내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엇을.”

고개를 돌릴 수가 없어 답답하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단지 로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원로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뿐이었다.

“역시 7단장이 아끼는 부하답습니다. 눈치가 빠르네요.”

이슈페인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길고 긴 삶을 살면서 이런 유형을 제일 선호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눈치가 빠르고 호기심을 표출하지 않으면 그만큼 불필요한 말과 폭력을 줄일 수 있기에. 이윽고 이슈페인은 입을 열었고, 로한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

“…….”

그렇게 둘의 대화는 처절한 전장의 구석에서 읊조려졌다.

아주 은밀하고도 조용하게 말이다.

여러모로,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으나, 동시에 블랙 가드의 본질을 드러낸 모습이기도 했다.

물론 그 시간에도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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