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63화 (63/197)

야밤의 황무지는 실로 을씨년스럽다.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은 숨을 막히게 만들고 발치에 걸리는 돌과 모래가 이동을 방해한다.

훌쩍. 하암.

날씨가 춥기 때문인지, 리베라가 살짝 붉게 변한 코를 훌쩍이며 하품했다.

로한 역시 머리를 긁적이며 지겹다는 듯 단테의 뒤를 따랐다.

슬슬 지겨울 법도 하다.

언덕에서 뛰어내린 뒤 거의 1시간 정도 걸었다.

그런데 보이는 건 오직 황무지와 사막뿐이었으니까.

“슬슬 뭐라도 보여야 하는데…….”

결국 참다못해 담배를 꼬나문 로한이 말했다.

“정보국 놈들이 실수라도 한 걸까요.”

“흐암…… 그러게.”

그들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적어도 인근에 마수들이 널브러져 있거나, 하다못해 전투의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너무나 평화로운 것이다.

멈칫.

그러나 그때.

앞으로 걸음을 내딛던 단테의 발걸음이 멈추더니, 코트의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꺼냈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실수는 아닌 거 같은데.”

“……예?”

단테는 의문 섞인 목소리로 반문하는 로한을 향해 살짝 시선을 내려 발밑을 가리켰다.

그리고 로한과 리베라의 시선이 대지에 닿은 그 순간부터 두두두- 하는 진동이 느껴졌다.

“무, 무슨?”

로한과 리베라는 당혹감이 섞인 표정으로 제각기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나 정작 단테는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방향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저기로 솟구치겠군.’

그리고 정확히 3초 뒤.

콰드드드득!

마치 대지를 찢어발기듯 거대한 드릴을 단 웬 고철 덩어리가 솟구쳤다.

놈은 하단에 달린 궤도를 미친 듯이 회전시키며 대지 위로 올라왔고, 동시에 단테 일행을 향해 외쳤다.

〔제국 놈들……?〕

경악과 의문이 섞인 외침이다.

어째서 이들이 여기에 있는 것인가, 하는 우려 역시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드릴의 옆면이 열리고 총구가 밀려 나왔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쏘겠다!〕

반면 단테는 마치 두더지와 닮은 굴착기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마감이 말끔한 제국의 기체와는 달리 누더기로 기워 놓은 듯한 외양 때문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일련의 흙먼지가 일었다.

굳이 저게 무엇인지 고민할 이유도 없다.

낮에 보았던 흙먼지와 같았으니까.

그 모습을 본 리베라는 단테의 뒤에서 작게 속삭였다.

“어, 단장?”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요.

그렇게 말하는 듯한 목소리다.

한편 어느새 그들의 앞에 다다른 트럭이 파앗-하고 라이트를 켰다.

곧 어둡던 시야가 환하다 못해 눈이 아플 정도로 번뜩이고, 단테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일사불란하게 자신들을 포위하는 프란 공화국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소대…… 아니, 중대급은 되겠군.’

어림잡아도 1백 명은 훌쩍 넘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놈들의 무장도 사뭇 본격적인 듯했다.

프란 공화국 자체적으로 제작한, 다리 대신 궤도가 달린 나이트 프레임은 물론 낮에 보았던 에이스 기체 또한 있었다.

그때였다.

〔너희들, 뭐냐.〕

낮과 달리 피로에 찌든 목소리로 프란 공화국의 에이스가 물었다.

그는 정말로 귀찮은 걸 마주했다는 듯한 태도였기에, 단테 역시 지극히 무성의한 답으로 화답해 주었다.

“단테 대위다.”

그 이상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자연히 정적이 흘렀고, 프란 공화국의 병사들과 장교들은 사실상의 지휘관인 에이스의 말을 기다리며 대치 상태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에이스의 노곤한 목소리가 울렸다.

〔하아…… 네놈들은 국경을 넘었다. 전향이 목적이 아니라면 꺼져.〕

무심결에 단테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우습지 않은가.

“세르겐의 말을 그대로 읊는군. 감명이라도 받았나?”

〔……뭐?〕

순간 콕피트 안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에이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가뜩이나 지친 상황에서 저런 도발을 들으니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민 것이다.

‘가뜩이나 광대놀음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운데…….’

아무리 상부의 명령 때문이라지만, 매일 국경을 넘어 제국군에게 조롱 아닌 조롱을 받고 돌아오는 것도 지겨운 상태였다.

그뿐인가.

그러고 돌아온 밤이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싸움을 해야 한다.

더욱이 단테가 언급한 세르겐이 누군가.

프란 공화국의 국적이나 다름이 없는, 아크레데 후작가의 당주가 아닌가.

‘빌어먹을 제국의 버러지가……!’

타국의 고혈을 빨아먹는 제국 놈들 주제에 쓸데없이 건방지다.

결국 그는 결심했다.

‘겁만 주자.’

어차피 죽이지는 못한다.

분노나 짜증에 미래를 내다 버릴 정도로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래도 국경을 넘은 죄가 있으니 겁을 주는 것 정도는 괜찮으리라.

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오픈 회선을 아군 채널로 바꿔 나지막이 말했다.

〔다들 물러서.〕

동시에 제일 후미에 서 있던 에이스의 기체가 쿠웅, 하는 발걸음과 함께 앞으로 향했다.

제국군의 나이트 프레임이 기사와 같다면, 프란 공화국의 기체는 둔탁한 기계 골렘과 같은 모습이었다.

등 뒤로 연결된 파이프로 증기가 솟구쳐 나왔다.

돌출된 케이블이 흔들렸고, 덕지덕지 붙이고 보수한 장갑의 흉터가 도드라졌다.

쿠웅!

어느새 병사들을 뒤로 물러섰고, 단테의 앞에 거대한 기계 골렘이 우뚝 섰다.

그는 지상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단테를 내려다보며 오픈 회선으로 바꾼 후 말했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동시에 케이블로 연결된 팔이 그대로 대지를 향해 내리찍혔다.

물론 단테와 뒤에 선 두 남녀를 겨냥하지 않고, 흙먼지나 조금 먹일 생각으로 아예 다른 방향으로 꽂은 주먹이었다.

그러나 그때.

“프란 공화국의 에이스 기체라…….”

반쯤 주먹이 내리꽂힐 때, 어쩐 일인지 지상에 있는 단테의 무덤덤한, 그러나 왜인지 흥미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기대되는데.”

동시에 단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손을 뻗어 목에 걸린 목걸이를 잡고는 내력을 폭발적으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본 프란 공화국의 에이스는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으니…….

“에, 에이스?”

본능적으로 주먹이 느려졌다.

겉으로는 자존심과 애국심 때문에 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그도 알고 있다.

제국의 에이스 기체와 프란 공화국의 에이스 기체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말이다.

그렇기에 맞붙으면 안 된다.

설마 죽이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자신이 여기서 무너지면 이후 임무에 차질이 생긴다.

〔잠까……!〕

그렇기에 그는 곧바로 단테를 향해 싸울 의도가 없었음을 밝히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단테의 목에 걸려있던 흑옥이 내력을 잡아먹듯 묵빛 마나를 흡수하며 번뜩였다.

단테는 우웅-거리는 흑옥의 울음에 놈이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내력을 먹여 주었다.

바람이 분다. 이윽고 회전한다.

단테의 제모가 허공에 붕 떴다가 리베라의 발치에 떨어졌다.

동시에 로한과 리베라는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뒤로 물러섰고.

그 순간.

미처 멈추지 못한 주먹이 대지에 닿으려던 그때.

단테는 나지막이 마스터키의 시동어를 중얼거렸다.

“벤데타.”

의도한 것이 아닌, 직감이었다.

놈을 부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손이 뻗어지는 주먹을 잡았다.

그 진동으로 일렁이는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대지에 강림하니.

“……저게, 단테의 전용기?”

무심결 리베라가 중얼거렸고, 로한은 너털웃음을 흘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대체 저게 뭔…….”

숱한 전장을 오가며, 블랙 가드에 몸을 담으며 무수한 에이스들의 기체를 본 그들이었다.

그러나 로한은 확신했다.

저런 기체 따위, 본 적도 없다고.

서슬 퍼런 눈이 번뜩였다.

묵빛의, 조금은 보랏빛을 띠는 장갑이 단테의 움직임을 따라 유려하게 흔들리고, 마치 기사의 망토를 연상케 만드는 보랏빛 천이 흙먼지를 배경 삼아 휘날렸다.

그뿐인가.

로한과 리베라조차 처음 보는 관절부의 유려한 움직임과 케이블의 구조, 복부의 관절부는 실로 이질적이었다.

때문에 리베라는 무심결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4세대 나이트 프레임은 아닌 거 같은데.”

로한은 침묵했다.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부정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하아…….〕

기체 내부에서, 어딘가 만족스러워 보이는 단테의 나지막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기갑천마

시스템 : 벤데타 가동

“무슨…….”

프란 공화국의 에이스 루이튼은 그저 멍한 눈으로 눈앞에 나타난 기체, 벤데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차라리 그의 반응은 덤덤한 수준이었다.

〔……뭐, 뭐야?〕

〔예전에 봤던 기체랑은 분위기부터 다르잖아……!〕

위압적이다.

동시에 폭력적이며 강압적인 자태를 뽐낸다.

마치 네임드 마수를 마주했을 때처럼 말이다.

루이튼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피곤에 길게 늘어진 다크서클이 떨렸고, 땀에 젖은 머리가 흔들렸다.

스스로 단테 대위라 밝힌 그와 일행을 보았을 때부터 내심 가졌던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제국이 눈치챈 것인가……?’

제국의 에이스를 많이 보지는 못했으나, 그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눈앞에 선 단테의 기체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 정도는 모를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일도 아니야.’

루이튼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고생했기 때문인지 나이에 맞지 않는 주름이 좁혀졌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최근 공화국의 명령은 그가 봐도 지극히 무리수에 가까웠지 않은가.

거기에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단테의 모습이 의심을 더했다.

만약 제국이 프란 공화국의 속내를 간파했다면 고르고 고른 에이스를 보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고민에 고민을 더한다.

이미 루이튼의 기체, 이펠리아의 주먹은 단테의 주먹에 붙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입술을 짓씹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몸에 연결된 케이블을 넘어 느껴지는 위압감에 그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의문을 가질 뿐이다.

……대체 어디서 저런 기체가 튀어나왔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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