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62화 (62/197)

한편 그 시각.

본 부대의 집무실.

탁자에 앉아, 늘상 그렇듯 궐련을 태우며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세르겐의 귀에 일정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똑똑.

그러자 세르겐은 펜을 놓으며 답했다.

“들어오게.”

그의 화답에 부관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열었다가 닫고는 무언의 경례를 올렸다.

세르겐이 대충 받아 넘기자 그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단테 대위와 리베라 대위, 로한 상사가 말씀하신 대로 국경 쪽으로 향했습니다.”

“으음.”

그 말에 세르겐은 잠시 손에 쥔 담배를 굴렸다.

그러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등 뒤에 뚫린 창문을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스읍, 후.

내뱉는 회색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조금은 독한 잔향을 느끼며 그는 허공에 잔잔히 퍼진 담배 냄새 속에서 눈을 감았다.

“흐룬 원사.”

“예, 세르겐 소장님.”

흐룬 원사.

세르겐의 부관이자 가신으로서, 그의 오랜 수족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장 믿을 만한 수족에게 명령했다.

“가문 내 그림자 중 가장 은밀한 놈들을 붙이게. 혹여 블랙 가드에게 붙잡혀도 정보를 발설하지 않을 이들로.”

누구에게나 그림자는 있는 법이다.

특히 권력자에겐 더더욱 말이다.

세르겐의 명령에 흐룬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집무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세르겐은 무심결 담배 하나를 더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대체 제국에, 대륙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직관하지 못하는 시대의 흐름은 언제나 일개 인간에게 두려움을 남길 뿐이다.

그래.

그런 것이다…….

기갑천마

이질적인 기체

본 부대를 나서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차고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생각했는지, 보초병은 특별한 검사 없이 그들을 통과시켰다.

덕분에 로한이 다시 권총을 꺼낼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그들은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서부를 달렸다.

비옥한 대지는 빠르게 척박하게 변한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을까 하고 무심결 생각할 정도로 극단적인 변화가 아닌가.

부우웅.

달리는 바퀴 소리가 귀를 스쳤다.

그들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서부 국경 지대, 그중에서도 가장 외곽인 프란 공화국와 맞닿은 부분이었다.

“하암…….”

벌써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운전대를 잡고 있는 로한의 하품 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원래라면 30분쯤이면 닿을 거리였으나, 군에서 놓은 도로가 아닌 사막을 달리고 있기에 느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도로로 갔다면 몇 번이고 군인들과 마주쳤을 테니까.

단테는 목에서 흔들리는 흑옥의 감촉을 느끼며 제모를 살짝 눌러쓴 채 팔짱을 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하려는 의도였다.

부우웅.

그렇게 30여 분쯤 더 갔을까.

이윽고 끼이익,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추는 소리가 울리고, 로한은 운전대에서 손을 놓은 채 살짝 고개를 뒤로 돌리며 단테에게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실로 묘한 풍경이 그들을 반겼다.

“우와!”

곁에서 함께 내린 리베라의 미약한 탄성이 울리고, 로한 역시 내심 볼만 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단테 역시 눈앞의 풍경을 잠시 눈에 담았다.

그들이 차를 세운 곳은 언덕이다.

그 언덕 아래로, 끝도 없는 황무지와 산맥의 끝자락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깔린다.

그리고 그런 대지를 감싸듯 검은 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은 꽤 볼 만한 경관이었다.

하나 그뿐.

“로한.”

“예이.”

단테의 건조한 말 한마디에 로한은 곧바로 품으로 손을 집어넣어 작게 접어 놨던 지도 하나를 꺼냈다.

그는 차의 보닛에 지도를 잠시 펼쳐 방향을 확인하곤 언덕 아래, 왼쪽 방향을 가리키며 답했다.

“저쪽인 거 같은데요, 단장.”

로한의 손가락을 따라 단테와 리베라의 시선이 옮겨진다.

단테는 잠시 로한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차는 놓고 간다.”

단테의 말에 로한과 리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명령이었다.

타국의 국경을 넘는 일이니 괜히 소음을 내며 동네방네 소문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 언덕은 어떻게…….”

로한이 물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단테는 몸으로 보여 주었다. 곧바로 뛰어내린 것이다.

쿵.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살짝 시선을 내리니 단테가 언덕 아래에서 흙먼지를 털며 자신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특유의 적안에서 묘한 압박이 느껴졌다.

빨리 떨어지라는 그런 압박이.

“……에휴.”

참고로 언덕이라 해서 절대 완만한 경사가 아니었다.

말이 언덕이지, 사실상의 절벽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로한과 리베라는 잠시 한숨을 내쉬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당연히 오르기에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래도 자칫 마나가 흔들리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으니 되도록 안전한 길로 가고 싶었건만…….

“어쩌겠어, 로한.”

그때 곁에 서 있던 리베라가 피식 웃으며 로한의 등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차마 그가 반응하기 전에 스윽- 밀면서 덧붙였다.

“꼬우면 단장해야지.”

“……너! 흐아악!”

기우뚱하고 몸이 기울고, 이내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뒤이어 리베라 역시 뛰어내렸고,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쿠웅- 따위의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이, 이 미친년…….”

“엄살은.”

아무리 로한이라고 해도, 미리 준비하고 떨어지는 것과 준비하지 않고 떨어지는 건 확실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정작 리베라는 웃음을 머금은 채 로한의 어깨를 두드릴 뿐이다.

그러나 단테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코트에 묻은 먼지를 대충 털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출발하지.”

그가 보기에 둘 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아니, 고작 이 정도 떨어지는 데 다친다면 차라리 연극일 것이다.

때문에 단테는 그 말을 내뱉곤 곧바로 황무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응.”

그리고 로한과 리베라 역시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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