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우웅.
과연 세르겐이 타는 차답다고 할까.
단테는 일반 군용차보다 훨씬 부드러운 승차감에 내심 만족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단테가 문득 의문이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전투 흔적이 적은데.”
“서부는 원래 그렇습니다.”
그의 말에 답한 것은 운전대를 잡고있던 세르겐의 부관이었다.
그는 운전대 옆에 설치된 백미러로 뒤에 앉은 단테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공화국, 제국, 그리고 법국의 국경이 걸치는 곳인 것도 있지만 카샤 왕국의 국경 부근에 있는 카샤트 산맥이 마수를 상당수 막아 줍니다.
덕분에 그 끝자락에 국경이 있는 프란 놈들만 고생하고 있죠.”
서부의 지형은 꽤나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서부는 꽤나 비옥한 땅이지만, 국경 부근부터 카샤 일대는 왜인지 급격하게 사막화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기이한 현상이었지만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여하튼.
지금이야 평화로우나 과거엔 나름 많은 전쟁이 일어났던 곳인 것이다.
그리고 그 지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이 다름 아닌 프란 공화국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국가는 프란 공화국을 동정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저들 스스로 만들어 낸 재앙이기 때문이다.
프란이 아직 왕국일 때, 주변국의 만류에도 약소국이었던 카샤를 억지로 공격해 멸망시켰으니까.
“프란 놈들에겐 마수들이 더욱 악재였습니다. 그렇게 공을 들여서 카샤를 무너트렸는데 갑자기 나타난 마수들에게 그 영토를 홀라당 빼앗겼으니까요.”
프란 왕국이 공화국이 된 이유도 그것이었다.
국력 대부분을 쏟아부었음에도, 심지어 성공했음에도 돌아오는 이득은커녕 마수들에게 한없이 밀리기만 하니 왕국이 버틸 재량이 있겠는가.
“음.”
거기까지 들은 세르겐은 궐련을 입에 물며 덧붙였다.
“그런데 확실히 지난 1년간은 마수가 정말 급격히 줄었지.”
“급격하게 말입니까?”
단테가 물었고, 세르겐은 잠시 불을 붙이며 고민하다가 직관적인 수치를 읊었다.
“1년 전에 비하면…… 그래, 아무리 높게 쳐도 40%에 미치질 않아.”
순간 단테의 표정이 굳었다.
머리 사이로 무언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반면 리베라는 놀랍다는 듯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거의 60%…….”
“그 탓에 북부로 차출된 군인이 많았지.”
실제로 서부에서 군 생활 태반을 보낸 이들이 많이 북부로 투입되어 목숨을 잃었다.
세르겐은 왜인지 입술이 쓴 걸 느끼며 반쯤 탄 담배꽁초를 밖으로 털었다.
그리고 그때.
끼이익- 소리와 함께, 시동을 끈 부관이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소장님.”
“아, 그런가?”
일반적인 군용차와 다르게, 세르겐의 지위 때문인지 뒷좌석은 세 명이 앉아도 넉넉했다.
물론 로한은 조수석에 앉았다.
그렇게 차에서 내리자 보이는 것은 국경 근처 언덕에 자리한 대대 병영이었다.
그들은 세르겐이 올 줄 알았는지 대대의 지휘관인 소령이 나와 경례를 올렸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그래,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를 좀 하자고.”
“예, 알겠습니다.”
세르겐의 말에 이름 모를 소령 역시 기다렸다는 듯 그를 언덕 끝자락으로 데려갔다.
단테는 그 뒤를 따랐고, 로한과 리베라, 부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마력 포대 몇 개와 포커를 치다 말고 눈치를 보는 병사들을 지나 언덕에 다다르자 저 멀리서 일렁이는 흙먼지를 볼 수 있었다.
쿠웅, 쿠웅!
이젠 익숙한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동시에 다소 기괴한 소리를 역시 섞여 들리고 있다.
끼기기긱.
우우웅.
마치 궤도차가 대지를 달리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흙먼지를 뚫고 나타난 프란 공화국의 나이트 프레임들을 본 단테는 무심결 실소를 터트렸으니.
“이건 또 새롭군.”
그건 다름 아닌, 모습을 드러낸 프란 공화국의 나이트 프레임들의 외형 때문이었다.
끼기긱- 따위의 소리를 내며, 다리 대신 장착된 세모 모양의 궤도가 힘차게 회전한다.
때때로 제국군에선 거의 퇴역한 2세대 나이트 프레임, 훈련기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런 단테의 뒤로 리베라가 제일 후미에 선 기체를 보며 무심결 중얼거렸다.
“저건 에이스 기체네?”
당연히 단테의 시선 역시 그녀를 뒤따라 제일 후미에 서 있는 기체에 닿았다.
아무리 그래도 에이스가 쓰는 기체라는 것인지, 제국의 4세대 나이트 프레임과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때. 단테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세르겐의 부관이 말했다.
“에이스 기체라고 부르기엔 모자란, 말하자면 3.5세대 기체입니다. 마스터키가 아닌 격납고에 보관하고 출력도 사실상 3세대보다 조금 나은 격이니까요.”
말하자면, 그저 빛 좋은 개살구라는 거다.
그리고 그런 부관의 설명에 단테가 머리에 쓴 모자를 고쳐 쓰며 고개를 끄덕인 그때.
마침내 흙먼지가 멎고 쿠웅- 소리와 함께 에이스 기체가 성큼 걸어 나와 외쳤다.
〔이 더러운 제국의 돼지 놈들아!〕
기갑천마
부디 멍청하지 않기를
프란 왕국…… 아니, 공화국은 국제사회에서 여러모로 혹평을 많이 받는 국가다.
좋게 말해도 과도기적인 상태고, 나쁘게 말하면 실패한 정치체제의 표본과도 같은 것이다.
처음 귀족들을 단두대에 매달고 혁명을 일으켜 의회를 만들 때는 기세가 등등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채 10년을 가지 못하고 혼란에 휩싸였다.
그렇게 혼란의 시작부터 그들과 제국의 악연이 시작되었으니…….
스읍, 후-.
세르겐은 입에 문 궐련의 마지막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시곤 꽁초를 바닥에 떨궜다.
“30년쯤 전이었나.”
공화국이 선포되고 10년쯤 지났을 무렵, 공화국의 일부 의원들이 제국에 비밀리에 제안해 왔다.
나라를 넘길 테니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해 줌과 동시에 공화국의 모든 인민을 제국의 품에 차별 없이 끌어안아 달라고 말이다.
명목상의 애국이며.
실로 이기적인 매국이었다.
그러나 제국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당시 아크레데의 가주, 세르겐의 부친에게 제국군 2군단을 맡기며 침공을 개시했다.
“부친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국경을 넘으셨지.”
그는 딛고 있는 대지를 발로 쿵- 하고 짓밟았다.
흙에 뒹굴던 꽁초가 바스라지고, 급격히 사막화가 진행되는 황폐한 토지에 깊은 발자국이 새겨졌다.
결과는 제국의 승리였다.
그러나 반쪽짜리였다.
내부에서 호응하기로 한 의원들이 축출됨과 동시에 법국의 중재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화국은 그 대가로 서부, 디센과 그 일대를 잃고 말았다.
프란 공화국은 카샤트 산맥 끝자락, 마수들이 나올 유일한 통로까지 국경이 밀렸다.
그러니 저들이 저리도 제국을 증오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현시점에도 제국의 간 자들이 공화국 내부에서 사보타주를 일삼고 있다는 개소리가 먹히겠는가.’
뭐, 그건 일단 제쳐두고-라 중얼거린 세르겐은 익숙하다는 듯이 확성 기능이 있는 마도구를 부관에게 받아 들고는 입을 열었다.
〔아아.〕
간결하게 목을 풀었다.
그리고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을 프란 공화국의 이름 모를 에이스 파일럿에게 말한다.
〔반갑다. 제국군 육군 장성이자 아크레데 후작가의 당주인 세르겐 드 아크레데 소장이다.〕
그는 덤덤히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저 멀리 언뜻 고철처럼 보이는 프란 공화국 파일럿들의 동요가 느껴진다.
아크레데 후작가.
프란 공화국에게 국적이나 다름이 없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르겐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귀관들은 현재 비무장지대를 넘었다. 속히 귀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하나 돌아가지 않는다면…….〕
순간 그의 뒤에 있던 부관이 소령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대대의 지휘관인 소령은 대기 중이던 포병 장교들에게 외쳤다.
“마력 포대 준비!”
우웅- 소리를 내며 언덕 위에 나열된 마력 포대가 일제히 프란 공화국 기체들을 조준했다.
긴 포신의 끝에선 언제라도 포를 쏠 수 있다는 듯 미약한 마나가 맺혔다.
끼기긱.
우웅.
프란 공확국 파일럿들의 동요한…… 아니, 차라리 당황에 가까운 기척이 느껴졌다.
때문에 단테는 벤데타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건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서서히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나 그때.
〔……돌아간다.〕
미처 외부 회선을 끊지 않았던 건지, 작게 중얼거리는 프란 공화국 에이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다른 파일럿들 역시 망설임 없이 기체를 돌려 쿠웅, 하는 울림과 함께 빠르게 본국으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흐음.”
단테는 미간을 좁혔다.
실로 허무한 상황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의 반응을 살폈으나, 곧 그는 눈에 이채를 띠며 생각했다.
‘익숙하군.’
대대에 있는 병사들은 물론, 세르겐이나 소령, 부관마저 저들이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는 듯 반응하고 있다.
그저 프란 공화국 놈들이 또 ‘뻘짓을 하는구나.’ 정도의 감흥이리라.
때문에 단테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익숙한 일인가 봅니다.”
“예.”
그의 물음에 부관은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기억이 났다는 듯 화답했다.
“어림잡아도 한 달은 넘었군요.”
“……한 달.”
단테의 미간이 좁혀졌다.
1년 사이 눈에 띠게 줄어든 마수.
한 달 사이 동안, 의미 없는 도발로 제국군의 시선을 차단.
이 모든 것이 과연 우연일까.
단테는 고개를 저으며 확신했다.
‘그럴 리가.’
……아무래도, 일이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