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54화 (54/197)

스윽.

단테는 비뚤어진 제복의 매무새를 가볍게 고치곤 곁에 서 있는 리베라에게 말했다.

“굳이 이래야 합니까?”

“왜? 연회 재미있잖아.”

“귀찮습니다.”

“……너무해.”

리베라는 특유의 아름다운 외모를 무기로 단테에게 시선을 보냈으나, 단테는 그저 개무시로 화답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단장이 이번에 연합 왕국 쪽에 들를 일이 있다고, 오늘 꼭 만나야 한다던데……. 누가 황실 안에 머문다고 해서 만날 계획이 확 어그러졌지 뭐야.

단장이 단테를 볼 일은 하나뿐이었다.

다름이 아닌 전용기가 될 나이트 프레임을 전해 주는 일.

문제는 단장이 오늘 만나지 않으면 한 달 후에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단테는 물었다.

-그러면 그냥 사람을 보내서…….

-단테, 4세대 나이트 프레임을 뭘로 보는 거야?

그 순간만큼은, 리베라는 특유의 웃음을 거둔 채 말했다.

-찍어 내듯 만들 수 있는 양산형과는 비교가 안 돼. 타 봐서 알잖아? 괜히 단장이나 에이스급들에게만 지급하는 게 아니라고.

4세대 나이트 프레임 10기면 한 도시의 1년 예산과 맞먹는다.

그만한 기체를 들면 없던 욕심도 치솟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사례가 있었으니.

-그래서 단장급들이 직접 전해 주는 거야. 우리와 달리 단장들은 블랙 가드의 무서움을 더 잘 알고 있거든.

결국 그런 이유로 단테는 직접 연회장에 올 수밖에 없었다.

귀찮긴 했으나 내심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과거와 달리 그도 이젠 나이트 프레임에 대해 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특히 4세대 나이트 프레임을 한 번 몰아 본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나만의 기체가 있었다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들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문득 시야의 한구석에 세실 등의 익숙한 얼굴들이 밟혔다.

순간 세실의 갈색 눈이 갈등했다..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가볍게 눈짓했다.

결국 눈인사로 끝내려는 듯한 모습에 단테 역시 그저 눈인사로 화답해 준 후, 앞서 걸어가는 리베라를 뒤따라 한쪽 벽에 놓인 탁자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지나가던 집사에게 술을 시킨 단테는 이윽고 무언가 까먹었다는 걸 깨닫고 리베라에게 물었다.

“로한 상사는?”

“……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리베라의 몸이 멈칫거렸다.

그녀는 잠시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볼을 긁적였다.

“……까, 까먹었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 말에 단테가 피식 웃었다.

리베라의 행동을 떠나 로한의 반응이 선했기 때문이다.

지금쯤 조용한 방 안에서 담배라도 태우며 인생을 곱씹고 있진 않을까.

한편 주변의 반응은 실로 묘했다.

“단테 대위, 리베라 대위라…….”

“아무리 전시라지만……. 흠.”

“애초에, 네임드가 약했던 것은 아닐까요?”

장교인 이들, 특히 특임대의 죽음을 눈앞에서 봤던 이들은 그들에게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미약한 호감을 드러냈으나, 귀족들은 달랐다.

그들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두 남녀, 정확히는 단테를 바라보며 온갖 화법으로 점철된 개소리들을 지껄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단테!”

제4 황녀가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 곧바로 단테에게 향하자, 제각기 누가 누가 개소리를 잘하나, 겨루던 귀족들의 입이 일제히 다물어졌다.

애초에 이런 자리에 참석한다는 뜻은 간단하다.

애매한 놈들이라는 뜻이다.

잿빛 머리카락이 찰랑거리고, 나풀거리는 드레스의 뒤로 로열 가드 정복을 입은 세로스와 마리가 뒤따랐다.

둘은 한쪽에 앉아 있는 세실과 눈인사를 주고받곤 곧바로 시리아를 따라 단테에게로 향했다.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단테와 리베라는 가볍게 묵례하며 그녀를 반겼다.

하나 시리아는 그러거나 말거나 단테의 앞으로 성큼 다가와 씨익 웃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내기에서 이겼어요.”

“내기라면?”

문득 세로스의 떨떠름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단테에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나는 네가 연회장에 안 온다는 데에 걸었거든.”

비록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으나, 사람을 보는 눈이 좋다고 자부하는 그였기에 확신했다.

단테는 절대 이런 자리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말이다.

시리아 황녀 역시 그 점에는 동의를 했다.

한데 왜인지 올 거라는 의견은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는 세로스의 패배였다.

“뭘 걸었는데요?”

그때 곁에 서서 술잔을 홀짝이던 리베라가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세로스가 아닌 시리아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반년 치 월급요.”

“……단테가 잘못했네.”

그제야 리베라는 세로스가 왜 곁에 선 마리의 눈치를 보는지 깨닫고는 그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그때 시리아는 잠시 눈동자를 굴리다가 물었다.

“그런데 전쟁 영웅 한 분이 안 보이네요?”

“부르는 걸 까먹어서요.”

“아쉽네요.”

시리아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조금은 커진 눈으로 피식 웃었다.

“놀리는 맛이 있었는데.”

마지막 말은 단테 역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슬슬 대화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시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 순간, 실로 자연스럽게 드레스의 끝자락을 밟은 그녀의 몸이 단테를 향해 기울었다.

“어머?”

정말로 실수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시리아는 단테의 품 안에 안긴 게 아닌 어깨를 부여 잡힌 채 허공에 비스듬하게 뜨게 되었다.

“……빠르시네요?”

“예.”

우스꽝스러운 자세였기에, 시리아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동시에 단테는 ‘왜 이런 장난질을……?’ 따위의 시선을 보냈다.

그런 단테를 보며 시리아는 생각했다.

‘……쓸데없이 반응이 빨라.’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

어찌 보면 제일 중요한 말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녀는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황태자를 조심해요.

아주 작게, 단테에게만 들릴 정도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러고는 언제 넘어졌냐는 듯 능청스럽게 드레스를 털고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부디 즐거운 연회 즐기시기를. 영웅님들.”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갔고, 단테는 미간을 좁혔다.

황태자를 조심하라는 그녀의 충고가 가볍게 들리지 않은 탓이다.

그때 곁에 있던 리베라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왔네.”

그녀의 말에 시선을 돌리자 낯이 익은 중년 남성이 눈에 밟혔다.

떡 벌어진 어깨에 금테 외 안경을 낀 그는 군인이라기엔 귀족에 가까운 외양이었다.

특히 고풍스러운 지팡이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다.

턱, 터억.

지팡이를 짚으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윽고 둘의 앞에 다다른 중년의 남자는 특유의 냉철한 얼굴과 걸맞은 모습으로 말했다.

“빈디카 상단 제도(帝都) 지점장. 리스울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들었는지 번들거리는 장갑의 재질이 썩 괜찮았다.

단테는 잠시 그가 내민 손을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고는 화답했다.

“예, 처음 뵙겠습니다.”

동시에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귀족들은 놀라움에 찬 얼굴이었지만, 장교들은 흥미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꽤 유명 인사인 듯싶었다.

그러나 단테는 다른 이유로 감명이 깊었으니.

‘연기력이 좋군.’

리스울, 과거 자신을 데려오는 데에 전면으로 나섰던 인물이자 현 블랙 가드의 제7 단장.

그나저나 빈디카라면…….

단테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자 머잖아, 대륙 5대 상단 중 하나라는 걸 깨닫곤 실소했다.

조직을 이끄는 데 중요한 건 많겠지만, 한때 신교를 이끌었던 그가 장담컨대 자금력은 절대 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 가드가 어디까지 이 제국에 뿌리를 내렸는지 새삼 깨닫는 것이다.

“오랜만이에요, 지점장님.”

그때 곁에 서 있던 리베라가 능청스러운 태도로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리스울 역시 특유의 냉철한 모습은 버리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여유로운 태도로 그녀에게 답했다.

“예, 오랜만입니다. 이번에 고비를 넘으셨더군요.”

기본적인 태도는 버리지 않으면서, 사람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감정을 주변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드러낸다.

실로 대단한 연기력이 따로 없지 않은가.

조장이나 조원, 혹은 준 조직원은 어느 정도 양지에서 밝혀진 이들이 존재하는 것과 반해, 단장급부터는 신상이 절대적으로 극비다.

더욱이 평소 리스울이 사교계에서 만들어 둔 평판은 그가 단순히 새로운 투자 대상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보이게 만들 것이다.

구태여 연회장을 고른 이유였다.

그는 손에 쥔 술잔을 살짝 돌리며, 금테 안경을 가볍게 쓸곤 말했다.

“듣기로는 이번에 두 분…… 아니, 로한 상사까지 포함해서 에이스로 발탁이 될 거라는 소문이 있습니다만.”

그리고 그가 막 품에서 작은 목함 하나를 꺼내 단테에게 건네려던 그때.

“황태자 전하, 오셨나이까!”

실로 거슬리는 단어가 단테의 귓가를 스쳤다.

기갑천마

벤데타

리스울은 목함을 쥐었던 손을 거두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연회장의 입구에서 온갖 귀족과 장교들의 인사를 받으며 걸어오는 남자를 향해 흠결 없는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황태자 전하를 뵙나이다.”

단테의 시선이 리스울을 따라 황태자에게 닿았다.

시리아 황녀와 달리 조금은 검은색에 가까운 잿빛 머리카락과 눈동자. 적당한 체격과 대비되는, 군인이라기엔 학자에 가까운 외양에 미소 띤 얼굴까지.

‘……흠.’

겉으로 보이는 특이한 점은 없었다.

물론 미소는 가식적으로 꾸며 냈다는 걸 알았으나 그것은 황녀 또한 마찬가지다.

애초에 권력에 가까운 이들은 수십 개의 가면을 쓰고 사는 법 아니겠는가.

그때 리스울의 인사에 반응한 황태자가 그들을 향해 성큼 걸어왔다.

“아, 리스울 지점장.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이쪽은…….”

황태자의 시선이 단테와 리베라를 훑었다.

대위라는 계급장과 훈장은 물론, 가슴팍에 달린 이름까지 확인한 그는 머잖아 리스울을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역시 지점장이라고 해야 할지. 빨라도 너무 빠르신 건 아닌지요.”

“크흠, 무슨 말씀이신지…….”

리스울은 내심을 들켰다는 듯 헛기침을 했고, 그 순간 단테의 등 뒤로 리베라의 손끝이 스쳤다.

뒤이어 둘은 늦게나마 경례를 올렸고, 황태자는 되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긴 전쟁 동안 끝도 없이 헌신해 준 제국군의 노고를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큰일을 해 주셨다지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다.

그러나 단테는 순간 싸늘하게 굳어 버리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곤 실소를 참아야 했다.

‘블랙 가드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달리 이유가 있는 것인가…….’

이 자리에 장교들이나 귀족들 태반은 블랙 가드임을 모르겠으나, 적어도 황족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눈동자를 살짝 틀었다.

그러자, 저 멀리 귀족 영애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하면서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시리아 황녀와 눈이 마주친다.

‘무언가 있긴 하군.’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한편 단테와 리베라가 침묵하자 황태자가 무어라 말을 내뱉으려던 그때였다.

“제국의 주인이시며 모든 제국군의 주군, 황제 폐하께서 납시나이다!”

황실 집사장의 외침과 함께, 귀족이나 장교들이 들어오고 나가던 정문이 아닌, 황궁과 곧바로 연결된 후문을 통해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딛는 걸음걸음에 절대자의 면모가 흘렀다.

일전에도 느꼈으나, 유한 모습과 위엄이 함께 느껴지는 사내다.

펄럭.

군인들을 위한 연회이기 때문인지, 입고 온 제복의 어깨에 걸친 화려한 코트가 휘날렸다.

동시에 그는 연회장의 제일 상석에 멈춰 섰다.

일순 정적이 흘렀다.

좌중은 제국의 주인을 바라보며 침묵하고, 때때로 영광된 일이라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문득 황제의 시선이 단테와 황태자에게 닿았다.

그러나 둘을 보는 시선에 담긴 감정은 극과 극, 호의와 답답함이었다.

단테에겐 호의를.

황태자에겐 답답함을.

황제의 시선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황태자의 눈이 떨렸다.

그러나 그뿐.

황제도, 황태자도 어떤 감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은 채 서로의 표정을 갈무리했다.

이윽고 황제가 입을 열었다.

“연회를 계속하라. 단지 장병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온 것이니.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즉, 부담 가지지 말고 놀다 가라는 배려였다.

때문에 제국군의 장교들은 감사의 경례를 올린 후 다시금 대화를 시작했다.

황태자는 연회장 내부의 분위기를 가볍게 살피다가, 이내 아쉽다는 듯한 눈으로 그들을 훑으며 말했다.

“추후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군요. 아, 리스울 지점장께는 내 곧 편지를 보내지요. 부탁할 일이 있는지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나이다.”

리스울은 ‘기꺼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영광이라는 듯 고개를 숙였고, 황태자는 그런 리스울의 태도에 만족한 듯 웃으며 그들을 지나 황제에게 향했다.

동시에 그의 뒤에 있던 로열 가드들이 뒤따랐다.

그때 그들의 뒤를 바라보던 단테의 뒤에서 리베라가 말했다.

“시르투스.”

단테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려진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리베라는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덧붙였다.

“황태자 이름이야.”

시르투스 폰 레벤스라트.

레벤스라트 제국의 제1 황자이자 황태자이며, 명군이라 칭송받는 현 황제에게 알게 모르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

그 정도가 블랙 가드에서 파악한 시르투스의 정체였다.

‘시르투스…….’

단테는 그 이름을 머리 한편에 박아 두곤 황제와 황태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둘의 대화는 지극히 평범한 부자 관계와 같았으나, 은연중에 불편한 기류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머잖아 둘이 연회장을 한번 훑고 밖으로 나서기 위해 몸을 돌리자, 연회장 내부의 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황제와 황태자를 배웅했다.

그리고 그 순간.

리스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스윽.

품에 손을 넣고 고개를 숙여 사각지대가 생긴 그때 목함을 쥐고 단테에게 건넸다.

단테는 유려한 손길로 목함을 받아 들곤 품에 넣었다.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리스울은 되었다는 듯 눈을 깜빡이곤 아주 낮게 속삭였다.

“안에 쪽지가 있다더군.”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명령을 받았음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고, 리스울은 되었다는 듯 한층 여유로운 얼굴로 술잔을 쥐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주변에 들으라는 듯, 지극히 상인이 할법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교계에 각인된 리스울이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계산적이며 때때로 오만하다.

때문에 그는 빈디카의 투자를 받아볼 생각이 없냐는 둥, 온갖 말을 던져 단테의 마음을 동하게 하기 위해 연기했다.

말미에는 가족과의 혼인까지 걸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흐음, 자네가 원한다면 내 이거까지 해 줄 수 있는데 말이야.”

만약 단테도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면 잠깐쯤은 속았을 정도로 철저히 돈과 시장 논리로 움직이는 상인의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가만히 지켜보다 못한 세실이 그에게 작작하라는 듯한 시선을 보냈을까.

“그렇군요.”

물론 단테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말을 무시하고 넘기는 것은 기본에 때때로는 그가 말을 걸고 있음에도 리베라를 보는 등의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리스울의 접근을 아주 능숙하게 밀어내는 듯한 연출이 된 것이다.

“건방지군요.”

“하지만 그럴 만한 업적이긴 하지.”

당연히 주변에서 그를 보는 시선도 둘로 나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으니…….

“리베라.”

이미 할 일은 모두 끝이 났다.

이쯤 했으면 리스울의 연기에 장단도 꽤나 맞춰줬다고 생각했다.

단테는 리베라에게 눈짓했고, 그것을 본 리스울은 헛기침을 크흠, 하고 내뱉으며 꾸며 낸 얼굴에 굴욕감을 드러냈다.

“……그럼, 다음에 뵙지요.”

누가 보더라도 무시를 당했으나 품위를 지키려는 모습이었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단테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까닥거렸고, 순간 리스울의 눈이 정말로 흔들리는 일이 일어나긴 했으나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테는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리베라를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리베라는 에휴, 하는 한숨을 내뱉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들어가자.”

단테의 성격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판이 깔리면 즐길 줄 알았다.

지금 행동은 완벽한 오판이었다.

‘로한이나 데리고 다시 올까…….’

놀랍게도 그녀가 로한을 까먹은 건 진심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그런 생각을 곱씹으며 연회장의 밖으로 나서는 단테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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