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아아아!”
“제국군 만세! 만세에!”
사방에서 쏟아지는 경의 담긴 외침을 느끼며, 제국군들은 당당하게 앞으로 걸었다.
어깨에 견착한 소총이 흔들리고, 때 묻지 않은 신상 전투복의 빳빳한 천이 땀을 머금는다.
쿠구구궁.
궤도에 탑재된 마력포대가 비스듬한 하늘을 가리키며 대로를 지나고, 비스듬하게 세워진 거대한 창들은 마치 신전의 동상들처럼 용사들의 개선을 축복했다.
그리고 어느새 황성으로 먼저 다다른 황제는 제국군이 아닌, 제도의 제국민들을 향해 연설을 내뱉었다.
-길고 긴 전쟁이 시작된 지 50년, 이종이라 불리던 이들이 제국의 품으로 안기고 도태된 나라들이 마수에게. 군단에게 먹혀 갔을 때…….
이번에는 꽤 길고, 장엄했으며, 때때로는 격양된 연설이었다.
그러나 핵심을 짚는 문맥과 숙달된 실력으로 지루하지 않았고, 때때로 몇몇의 이들은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승리하리라!
“와아아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제국 만세!”
그렇게 모든 개선식 일정이 끝이 나고, 단테를 비롯한 이들은 황성 내부의 귀빈실로 안내되었다.
물론 당연히 부담스러운 제안이었기에 로한과 리베라는 거부하려 했으나, 단테가 무심히 고개를 끄덕여 버린 것이다.
“귀빈실 상층에 자리를 마련해 주거라.”
거기에 다름이 아닌 황제 폐하의 윤허가 떨어졌다.
거절하는 순간 블랙 가드고, 뭐고 황실 모독으로 차가운 돌바닥에 누울 수도 있던 것이다.
“허허…… 황성이라니, 마굴보다 무섭다던 황성이라니.”
로한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옆방으로 들어갔고, 리베라는 되레 신이 난 얼굴로 향했다.
그리고 둘 사이에 껴 있는, 가장 큰 방으로 들어선 단테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
귀빈실이라 했던가.
족히 수십은 잘 수 있는 막사보다 큰 방 안에는 방이 또 있었다.
침실과 욕조를 비롯하여 온갖 귀한 사물들로 가득 차 있는 방 안의 모습은…… 뭐랄까, 흡사 보물 창고를 보는 듯했다.
터벅.
발을 내디디며 방 안을 훑었다.
그러다 문득 느꼈다.
가구들이 만들어진 지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보존이 되는 마법이라도 걸어 놓은 건가.’
자세히 보니 무언가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 있는 듯도 싶었다.
하나 단테는 이내 가구에서 관심을 끊고 겉에 걸쳤던 코트를 벗었다.
한쪽 의자에 대충 던져진 검고 긴 코트가 스윽, 소리와 함께 걸쳐지고, 단테는 무심한 손길로 셔츠를 풀어 반팔이 된 상태로 바닥에 엎드렸다.
‘요즈음 단련에 소홀했지.’
운기조식이야 매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체력적인 단련은 계속된 임무로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단테는 묵묵히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1시를 넘은 시간이 어느새 저녁 즈음이 되니, 옆방에서 무언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력을 집중하면 엿들을 수 있겠지만, 단테는 별로 개의치 않고 묵묵히 하던 운동을 계속했다.
어려진 육신의 좋은 점은 그만큼 운동을 잘 먹는 몸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얼마나 운동을 하고 몸을 일으켰을까.
비단 팔굽혀 펴기만 한 게 아닌, 할 수 있는 모든 부위를 단련했기에 단테의 육신은 어느 때보다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
똑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울리고, 막 수건을 찾아 화장실로 가고 있던 단테의 시선이 문에 닿았다.
“단테, 저녁 연회가 열린다는데?”
문 너머에서 리베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회, 연회라…….
단테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안 갑니다.”
“어? 왜? 맛있는 것도 많을 텐데?”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다.
그러고 보니 단테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리베라를 바라보았다.
나이트메어 이후 어딘가 자신을 어려워하는 로한이나 세로스와는 달리, 리베라는 이전과 같은 자세로 단테를 대했다..
그 모습이 왜인지 기꺼웠기에, 그는 직접 문을 열어 리베라를 향해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그러자 단테는 자신보다 살짝 아래에 걸리는 은발 정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베라, 저는…….”
리베라의 시선이 단테에게 닿자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동시에 묘한 눈으로 단테의 몰골을 훑던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씻자, 단테.”
기갑천마
얽혀 가는 상황 속
연회장 안은 북적거렸다. 귀족들은 제각기 고급 재질로 만들어진 정장과 드레스를 입고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라는 이름의 암투를 벌였고, 그와 별개로 초대된 장교들은 지난 전투를 회상하며 술잔을 마주했다.
챙!
술잔과 술잔이 마주하며 울린다.
메이드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연회장의 음식과 술을 채웠다.
황실 집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샹들리에가 흔들리며 반짝인다.
커튼이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 흔들리고, 검은 하늘을 비추는 달빛이 테라스를 비춘다.
“우와……!”
유엘은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벌렸다.
그러자 되레 페고르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 쪽팔리게…….”
“그럼 너는 안 신기해?”
“……응.”
“거짓말은.”
그때 두 하사의 대화를 듣던 세실은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세실의 제모에 각인된 소령 마크가 번뜩인다.
“신기한 게 당연해. 황실 연회니까.”
둘 다 데지안 출신임을 떠나서, 가끔가다 세실도 놀라는 행사가 황실 연회다.
물론 집안이 집안이다 보니 몇 번이나 와 보긴 했으나 올 때마다 그 화려함은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세실은 특유의 갈색 머리를 살짝 넘기며 말했다.
“그래도 이번엔 규모가 작은 편이야. 애초에 장교들을 대상으로 열린 연회니까.”
그 반증으로 몇몇 귀족을 제외한 대부분이 장교들의 가족이나 반려, 또는 연이 닿기 위해 온 이들이 태반이었다.
때문에 세실은 어깨에 걸친 코트를 여미며 자리에 앉았다.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으니, 두 하사가 적당히 즐기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어? 저 사람들은…….”
“그 특임대다!”
연회장의 소음 사이로 섞인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세실은 곧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는 흑발에 적안을 가진 남자, 단테를 발견했다.
“……대위.”
그때 참치가 얹어진 크래커를 막 입에 넣으려던 페고르가 멍한 눈으로 단테의 계급을 바라보며 중얼거렸고, 세실은 스스로도 모르게 힐끔 자신의 계급장을 보았다.
소령.
왜인지,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