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51화 (51/197)

전황은 빠르게 수습되었다.

아니, 수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복에 가까웠다.

둥지를 중심으로 몰려든 마수들은 군단의 화력에 태반이 죽었다.

구심점이 되어 주던 네임드가 죽었고, 상급 마수는 물론 중급 마수들조차 씨가 말라 가는 지경이었다.

때문에 8군단의 주도하에 위라트 요새를 거점으로 일대 영토 수복에 나섰다.

물론 일부에선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가능성이 높은 사업이었다.

하지만 위라트 요새에 맴도는 것은 승전의 기쁨이 아닌 죽은 이들을 보내야 하는 이들의 애도뿐이었다.

“아, 고마워. 마리.”

“……예.”

세로스는 마리가 챙겨 온 술병을 들고 망설임 없이 머금었다.

평소라면 환자가 그러면 안 된다고 타박했을 그녀였으나, 이번만큼은 그녀도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 아아아. 흐으윽!”

헤라의 눈물이 데미안의 관에 맺혔다.

뒤늦게 안 사실이었으나, 데미안과 헤라는 연인 관계에 가까웠다.

마리에게 세로스가 그러하듯, 헤라도 데미안에게 마음을 품은 것이다.

세로스는 복잡한 시선을 관을 끌어안은 채 일어나지 못하는 헤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무심결에 얼마 전 단테를 떠올리곤 술을 머금었다.

-원망하진 않는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단테가 일부러 힘을 숨기거나 그런 것 따위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

다만 아쉬움에 가까운 것이리라.

그때였다.

스윽- 하는 소리와 함께 관의 위로 흰색의 꽃이 놓아진다. 시선을 돌리니 로한과 리베라가 서 있었다.

“……단테는?”

“막사 안에. 내상이 가볍지는 않나 봐.”

“……그런가.”

분명히 마지막에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보았다.

녀석도 무리를 했으리라.

그때 리베라가 씁쓸한 눈으로 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에브게니아로 가겠네.”

“그러겠지.”

-에브게니아.

룬어로 해석하자면 「고귀」.

그 이름을 들은 세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로 제국군이 승리한 땅이자 이제는 도시 하나가 거대한 묘지로 쓰이는 곳.

가장 영광된 묘지이자.

모든 군인이 묻히지 않기를 바라는 곳.

당연한 일이다.

처절한 전장에서 죽어야만 묻힐 수 있으니까.

때문에 세로스는 반쯤 남은 술병을 한 모금 머금고 중얼거렸다.

“……잘 가라, 데미안.”

그래도 즉사한 거면, 그리 나쁜 죽음은 아니다.

세로스는 그렇게 말하며 관 위에 마시다 만 술병을 놓고 몸을 돌렸다.

이제, 제도로 향할 때였다.

기갑천마

개선식

특임대의 역할은 하나, 둥지를 파괴하는 것뿐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나이트메어를 특임대가 죽인다는 것은 추측으로도 입에 담기가 뭐할 정도로 가치가 없는 가설이었으니까.

차라리 전장에서 나이트메어가 죽었다면 모를까, 그 때문에 나이트메어가 둥지로 날아갔을 때 모두가 특임대의 전멸을 예상했다.

그렇기에 이번 작전을 주도한 8군단은 특임대의 시체라도 보전하기 위해, 최대한 정예를 추려 선봉을 꾸린 후 무차별적인 포격 이후 돌입시켰다.

그 결과 대략 두 시간 정도의 사투를 끝으로 본성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본성으로 돌입한 선봉대가 가져온 소식은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것이었으니…….

-트, 특임대가 나이트메어와 둥지를……!

둥지를 부순 것도 모자라 뒤이어 날아온 나이트메어까지 죽였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식이었으니까.

오죽하면 최초로 보고를 들었던 리모튼 드 록펠트린 중장은 물론이고 제4 황녀, 심지어 도청 중이던 블랙 가드의 제7 단장조차 믿지 않았겠는가.

합당한 의심이다.

또한 지극히 합리적인 도출이었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어째서 전쟁이 50년씩이나 이어졌겠는가.

하지만 곧 나이트메어의 시신과 고깃덩어리에 불과해진 둥지 안의 네임드를 직접 확인하자, 그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피해는 적지 않았다.

추정되는 병사 피해가 족히 3천을 넘었다.

나이트 프레임 파일럿들은 물론 하급 장교 수백까지 갈려 나갔다.

순수한 인재로만 따지면 사단 하나가 사라진 수준의 타격이었다.

그럼에도 값진 승리였다.

이렇게 인류는 한발 앞으로 진일보 한 것이다.

때문에…….

-와아아아아아아!

-제국이여 영원하라!

비행함 아래로 보이는 광경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길게 늘어진 병사들이 도로 위를 통제하고, 개선식이 이어질 길목에는 척 보기에도 휘황찬란하게 치장된 나이트 프레임들이 거대한 장창을 들고 겹쳐 하나의 아치를 그렸다.

제국을 상징하는 깃발이 휘날리고, 거리에는 개선식이라는 소식에 들쓴 아이들이 어설프게 만들어 입은 군복을 펄럭이며 뛰어다닌다.

그리고 비행함이 착지할 자리엔, 미리 출발하여 이미 사열을 맞춘 8군단의 장병들이 군기가 바싹 든 표정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숨이 막히는구먼.”

“그러게.”

로한이 말하자 리베라가 답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둘의 계급이 중사, 중위가 아니라 상사, 대위로 변했다는 것이다.

물론 진급한 사람이 둘뿐만은 아니었다.

둘의 시선이 살짝 돌아가 제복을 펄럭이며 소매를 여미는 단테가 눈에 밟혔다.

머리에 쓴 군모에는 대위를 뜻하는 계급장이 각인되어 있다.

거기에 나이에 맞지 않게 큰 체구는 흡사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열일곱 살도 되기 전에 대위라……. 아마 최단 기간, 최연소 진급이 아닐까?”

“맞겠지. 문제는 어디까지 올라갈지 감도 안 잡힌다는 건데 말이야. 헛.”

로한의 속삭임에 리베라는 특유의 쾌활한 웃음을 섞어 답했다.

그때 그들의 객실 문이 열리고 잿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 제4 황녀 시리아 폰 레벤스라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옷을 여미고 군모까지 눌러쓰는 단테를 힐끔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느끼고 옅게 웃으며 말했다.

“자, 우리 전쟁 영웅분들. 곧 도착하실 시간이랍니다.”

“……그거 안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싫어요.”

로한의 말에도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몇 번이나 쪽팔린다고 전쟁 영웅이니 뭐니 하지 말아 달라 했건만…….

그때였다.

“황녀 전하.”

뒤에 선 세로스가 무어라 속삭이고, 그녀는 잿빛이 은은하게 맴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번 일이 보통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꽤 놀랍긴 하네요.”

무심결에 그녀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때마침 비행함이 활주로에 착지했다.

“……예?”

그리고 되묻는 로한의 목소리와 함께, 저 밖에서 함성이 들려오니.

-황제 폐하께 경례!

-충성! 제국에 영광을! 황실에 충성을!

모두의 시선이 제4 황녀, 시리아 폰 레벤스라트에게 꽂혔다. 그리고 그녀는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당연하게도,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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