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검었던 나이트메어의 악몽과 달리, 단테의 주변을 가득 채운 것은 오직 흰색 공간뿐이었다.
이곳은 어디일까.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때 단테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살짝 고개를 돌려 시선을 내리자, 한 아이가 눈에 밟혔다.
새하얀 머리카락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는 이목구비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말했다.
그것이 비록 음성이 아닌 뇌리 속으로 전해지는 전음과 같은 것일지라도.
-너, 뭐야? 이상해.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때문에 단테는 무심한 눈으로 아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무엇이.”
-으음.
단테의 물음에 아이는 고민했다.
아니, 알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에 가까울까.
-너, 뒤틀려 있어.
뒤틀려 있다라…….
단테는 무심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때때로 느낀 것이니.
-있잖아. 너는 나쁜 벌레야?
천진난만한 물음 속에 위화감이 느껴진다.
단테는 답하지 않았고, 아이는 그게 불만인 듯 퉁명스러운 어투로 덧붙였다.
-자고 있었는데, 자꾸 언니가 말해. 빨리 일어나라고. 우리가 함께라면 어머니이자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있다고.
언니라…….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단테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분명 조금 전까진 알고 있었을 터인데.
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언니가 말해. 자꾸만 말해. 너 같은, 과거의 벌레들이 자꾸만 일을 망친다고. 오래전부터 그랬다고 짜증을 내.
너 같은 과거의 벌레들.
단테의 시선이 문득 아이에게 닿았다.
아이는 너무나 천진난만하고 당연하다는 듯 주절거렸다.
-있잖아. 그래서 나는 널 죽여야 한대.
지금도 밖에서 끊임없이 언니가 외치고 있다.
그 벌레를 당장 찢어발기라고.
그런데…….
문득, 아이가 웃었다.
-난 싫어. 너, 뭔가 재미있거든.
아이는 천천히 단테에게서 멀어졌다.
스스로의 성별을 암컷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이는 텅 비어 버린 흰 공간에서 한 바퀴를 빙그르- 돌고는 숙녀와 같은 모습으로 종알거렸다.
-내가 말하고 있어. 내 안에 무언가가 언니의 말을 무시하라고, 널 죽이지 말고 하나가 되라고 계속 말해.
아이는 어느새 단테의 등 뒤에 매달려 그의 목에 팔을 걸었다.
그러고는 묵묵히 자리에 서 있는 단테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니.
-있지, 그러면 나는 어머니이자 아버지보다 강해질 수 있을 거래. 내가 그랬어.
달콤한 속삭임이 귀를 간지럽힌다.
동시에, 아이는 덧붙였다.
-내 능력은 행복한 꿈을 꾸게 해 주는 거야.
둥지에서도 한없이 꿈을 꿨다.
나가서 마음껏 벌레들을 밟아 죽이고, 행복한 새장에 가두고 어느 날 질리면 고통 없이 죽여 주는 그런 꿈.
하지만이 벌레를 만나고 꿈이 변했다.
-같이 벌레를 구경하자. 죽이자. 키우고, 그러다가 심심하면 언니랑 오빠들, 어머니이자 아버지도 죽여 버리는 거야. 어때?
히힛, 하고 웃음 지었다.
동시에, 아이는 단테의 동의 따위는 애초에 필요가 없었다는 듯 어느새 단테의 등을 바라보며 웃었다.
-너는 내 첫 벌레야. 그러니까, 오래오래 예뻐해 줄게.
아직 몸이 완성되지 않아서 너를 소화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착한 아이인 척을 하면 괜찮지 않을까?
쩌어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입이 벌어진다.
분명히 이목구비가 존재하지 않던 자리에 거대한 무언가가 단테를 천천히 집어삼키기 위해 다가왔다.
그때였다.
“나와 같은 벌레들이라 했지.”
단테의 목소리가 온통 흰색으로 점철된 공간을 울린다.
이윽고 그의 고개가 살짝 돌아가고, 아이를 바라본 단테는 덧붙였다.
“대답해.”
그러자 단번에 단테를 집어삼킬 듯 입을 쩍-벌리고 있던 아이는 어떤 변덕이 생긴 건지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처럼 이상한 벌레들이 자꾸만 방해한다고 엄청 화를 냈어. 헤헤.
단테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이젠 되었냐는 듯 히죽 웃곤, 다시금 입을 벌려 단번에 단테를 집어삼켰다.
꿀꺽- 하는 소리와 함께, 단테의 육신이 작은 아이의 입안에 모두 담긴다.
아이는 뭐가 그렇게 만족스러운지 소중하게 배를 쓰다듬으며, 마치 어미가 자식에게 속삭이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히히, 우리 같이 나가면 언니부터 죽일까?
처음에는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는데, 계속 같이 있다 보니까 시끄러워서 죽이고 싶어졌어.
아이는 뱃속의 벌레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때.
“걱정마라, 짐승.”
단테의 음성이 울리고, 내부가 서서히 저릿했다.
때문에 아이가 ‘무슨……?’ 따위의 중얼거림을 내뱉으려던 그때.
-아, 아파아아!
콰드득-!
단테의 손이 놈의 뱃속을 단번에 찢어발기고, 이내 그의 손에 흰색의 작은 무언가가 딸려 나왔다.
단테는 작은 구슬 정도의 크기를 가진 그것을 손안에서 굴리다가, 이윽고 고통에 몸을 떠는 아이, 아니 네임드로 태어나야 했을 짐승에게 속삭였다.
“네 언니라는 놈은, 내 직접 찢어 죽여 줄 터이니.”
덕분에 좋은 선물을 받아 가는구나, 짐승.
단테는 손안에서 굴리던, 아직 순수한 내단을 입안으로 망설임 없이 밀어 넣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아이가 ‘안 돼!’라고 외치며 단테에게 달려들었으나, 멍청하게도 힘의 근원이 되는 곳에 그를 안내한 짐승은 서서히 죽어 갈 시체에 불과했다.
그는 가부좌를 틀었다.
입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기운은 타락한 짐승의 그것이 아니라 순수한 생명력일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말미에 중원에서 들려오던 소문은 사실이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네임드에겐 정순한 내단이 있었다.
하나, 단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내단 따위가 아니었다.
-너 같은 벌레들.
그 말을 듣자, 내심 가지고 있던 의심과 흥미는 확신으로 변했다.
‘이 세계로 떨어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단지 ‘망령된 이’라 생각했다.
목적을 위령으로 잡고,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며 복수에 닿으면 그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점철된 삶의 연장이라면.
‘무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삼킨 내단의 내력이 질주한다.
이미 진즉에 닿은 깨달음을 다시 얻기라도 한 것처럼, 흐릿했던 목적이 세워지자 거짓말처럼 단전이 꿈틀거렸다.
임맥으로 뻗어진 내력이 백회혈에 닿고, 이내 단전으로 복귀한다.
그러길 얼마나 흘렀을까.
한층 정순한 내력이 단테의 주위에 흘렀다.
다시금 눈을 떴을 때, 주변은 흰색 공간이 아닌 추욱 늘어진 무언가의 위였다.
살짝 시선을 내리자 이미 숨이 멎은 거대한 고깃덩어리가 보였고, 양수와 같은 액체가 발에 질척거렸다.
하나, 단테의 시선은 하늘에 닿았다.
“……노곤하구나.”
동시에 그는 가볍게 발을 굴러 둥지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미친 듯이 밀려오는 마수와 나이트메어와 힘겹게 대치하고 있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단테에게 향했고.
단테를 발견한 나이트메어가 무어라 괴성을 내지르려던 찰나.
“번잡하다.”
목적을 견지한 천마가 발을 구르니.
쿠웅!
묵직한 위압감이 일대를 뒤덮고 나아가 공간에 패도를 흩뿌린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핏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떨어지는 적색 눈이 번뜩이며 성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명했다.
“꿇어라.”
기갑천마
짓누르면 그뿐이니
한낱 뭉개진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린 둥지 위에 선 단테의 시선이 전장에 닿았다.
무심하고 때때로 무감했던 얼굴이 어느새 절대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우연인 줄 알았으나 필연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금 군림할 대지 위에 섰으니, 이 순간 그는 언젠가 읊조렸던 말을 중얼거렸다.
“본좌는 본좌일 뿐이다.”
비일상이 일상이 된 세계다.
나아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세계이기도 하다.
이 대지에 발을 디딘 이들은 누구일까.
또한 그들은 어떤 대의를 품은 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을까.
단테는 핏물과 양수에 젖어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스스로에게 답했다.
그저, 이제부터 알아보면 그만인 것이라고.
〔다, 단테?〕
〔어떻게…….〕
살아남은 이들은 한 줌이다.
데미안은 이미 목숨을 잃었고, 태반의 파일럿들이 마수와의 격전에서 짓뭉개졌다.
헤라는 벽에 기대어 기절하고, 세로스와 로한, 리베라만이 겨우 정신을 차린 채 마수들에게 대항하고 있었다.
한때는 흰색이었을 대리석 위로 마수와 인간의 시체가 뒤섞였다.
그것을 본 단테는 하아, 하고 숨결을 내뱉었다.
실로 혐오스럽다.
또한 번잡하다.
그 때문에 그는 발을 굴렀고, 한층 고강해진 내력이 사방으로 퍼졌다.
뻗어진 발 구름에 일순간 지축이 흔들린다.
묵직한 위압감이 일대를 뒤덮고, 단테의 안위를 파악하고자 달려오던 이들은 일제히 발걸음을 멈췄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눈앞의 단테가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쿠웅!
묵빛 내력이 공간을 울렸다.
-키, 키에에!
중급 마수들의 영혼에 두려움이 각인되었다.
-캬아아아아아!
상급 마수들의 몸이 떨리고, 맹수를 만난 들개처럼 발광했다.
퍼어엉!
그리고 이젠 생명을 잃은 심장에 연결되어 있던 탯줄이 쪼그라들며 바닥을 기어 다니던 근위갑귀들의 육신이 일제히 터져 나가니.
온갖 더러운 오물이 단테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녹아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를 향해 나이트메어가 입을 쩌억- 벌리며 포효했다.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저 미물이, 벌레의 몸 안에 자리한 동생의 기운을 말이다.
그렇기에 나이트메어는 몸을 짓누르는 패도적인 기운을 단번에 뿌리쳤다.
쩌저적- 소리와 함께, 놈의 육신을 보호하는 보랏빛 장막이 깨져 나갔으나 전혀 개의치 않고 곧바로 단테를 향해 거대한 육신이 돌진했다.
8개…… 아니, 이제는 7개가 되어 버린 날개를 펄럭거리며, 이젠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동생의 육신을 짓밟았다.
평소보다 배는 빨라진 속도에 ‘콰과과광-!’ 따위의 폭음이 터지고 심장이 터지는 듯한 피육음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나이트메어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거대한 앞발로 단테를 걷어찼다.
작은 신영이 걷어차진 발을 따라 솟구친다.
이윽고 나이트메어의 발길질이 성채의 벽을 부쉈고, 돌과 흙, 핏물이 섞인 연기 사이로 단테의 육신이 쏘아지듯 날았다.
-아, 아아아아아!
분노한 악몽이 울부짖었다.
태어나지 못한 동생을, 자매를 추모하기 위해 눈앞의 벌레를 기필코 죽이리라 다짐하는 것이다.
그때였다.
“하긴, 아직 네놈에겐 버틸 만한 힘이겠지.”
얼핏 나이트메어에게 걷어 차인 듯한 단테는 일말의 상처도 없이, 펼쳤던 호신강기를 거두고 폐허가 되어 버린 대지로 가볍게 안착했다.
단테는 잠시 눈을 감고, 내면을 관조하였다.
찰나의 순간이 길게 느껴지던 환각 속에서 삼킨 내단이 얼마만큼의 힘을 돌려줬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록 정순한 내단이었다고는 하나, 전생과 같은 경지까진 아직 무리이리라.
이윽고 그의 적색 눈이 떠진다.
‘일류의 벽을 깨었고, 절정의 끝자락인가.’
막혀 있던 혈도가 타동 되었다.
세맥이 꿈틀거리고, 한층 눈이 맑아짐과 동시에 육신에 과거의 시간이 아로새겨지는 느낌이었다.
과연, 태어나기만 해도 재앙이라 불리는 네임드에게 썩 걸맞은 내력 양이 아닌가.
쿠웅! 쿠웅!
단테는 폐허가 된 시가지를 미친 듯이 내달려서 자신에게 돌진하는 나이트메어를 보았다.
환각 속에서 얻은 것은 단순히 내력뿐만이 아니었다.
확신을 얻었다.
-결국 놈들 역시 두려움을 느끼는 한낱 짐승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말이다.
대지에 닫으며 살짝 박힌 발을 길게 끌어 선을 그었다.
눈가를 가리는 검은 머리를 쓸어 넘기자 적색 눈동자가 번뜩이고 나아가 스읍, 소리와 함께 내뱉어진 숨결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콰아아아아앙!
머잖아 나이트메어가 폐허가 된 옛 위라트 본성의 교회를 짓밟으며 단테에게 날개를 뻗었고, 단테는 그 즉시 대지를 박차고 놈을 향해 날아올랐다.
‘파아앗-!’과 같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귀를 스치고, 곧 대지에 박힌 거대한 날개의 깃털이 마치 고슴도치처럼 솟구쳐 단테를 단번에 찢어발기려 했다.
흙과 폐허의 잔재가 먼지 속에서 섞여 흩날리며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일순간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작은 구덩이가 생길 정도로 높게 뛰어오른 단테의 신영이 깃털을 짓밟고 다시금 도약한다.
마치 작두를 타는 것과 같이, 그의 발치에 닿은 깃털이 스칠 때마다 서늘한 예기가 흘렀다.
그뿐인가.
도약하는 그때 지상에서 솟구친 섬광이 단테의 발밑을 노리고 정확히 뻗어진다.
그러나 그 순간.
흐읍-!
숨결을 들이마신 단테는 아주 작은 호신강기를 일으켜 섬광의 일부분을 튕겨 낸 후, 그 반탄력으로 허공을 돌아 다시금 뛰어오른다.
족히 하나의 산이라 말할 수 있을 거대한 짐승을 향해 한낱 인간이 허공을 날아 다다른다.
그리고 단테가 놈의 머리에 닿은 그 순간.
“꿇으라 했는데.”
-말이 말 같지가 않은 모양이구나. 일전에 내게서 도망친 놈 주제에.
유달리 뺨에 그어진 긴 실선이 마음에 든다.
단테는 실로 오랜만에 지극히 오만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금 천마묵환강(天魔黙丸鋼)을 뿜어내었다.
침묵 속에서 일렁이는 구가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대로 몸의 정수리를 향해 뻗어진다.
콰과과과과광!
폭음이 울렸다.
일순간 나이트메어의 육신이 흔들리고 놈의 앞발이 잠시나마 꿇렸다.
하나 그뿐.
취약하였던 날개와 달리 놈은 안광을 뿜어내며 더욱 더 집요하고 강하게 단테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물론 단테는 곧바로 뒤로 물러서며 폐허 속을 내달렸다.
때때로 반쯤 무너진 성벽을 박차고 놈의 살점을 뜯으며 맞서는 것이다.
인간과 괴물의 서사시가 이러할까.
서서히 밝아지는 하늘이 보랏빛으로 점멸하며 섬광을 뻗어낸다.
불꽃이 튀고, 그 불꽃 사이에서 쏘아진 신영이 거대한 괴물의 육신을 수차례 타격했다.
공기가 터져 원을 그리고.////
흙이 튀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폐허는 공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모두 보고 있던 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나이트메어의 환상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했다.
이미 로비 내부는 정리가 끝났다.
단테의 정체 모를 발 구름에 생긴 틈을 놓칠 정도로, 그들은 무능하지 않았기에.
끝까지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로한과 리베라, 그리고 세로스뿐이었다.
헤라를 비롯한 몇몇 파일럿들이 겨우 목숨을 부지하긴 했으나 그뿐.
이미 정신을 잃은 지 오래던 것이다.
……이미 죽을 이들은 모두 죽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어느새 콕피트를 열고 복잡함과 의문, 나아가 미약한 두려움마저 섞인 눈으로 로비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블랙 가드. 너희들 대체, 무슨 개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거냐.”
입가에 묻은 핏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세로스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리베라와 로한은 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정적이 이어지길 얼마일까.
“하.”
열린 콕피트 입구에 털썩- 주저앉은 로한이 땀에 절은 붉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담배를 꼬나물고 답했다.
“저도 궁금합니다, 제기랄.”
세로스의 복잡한 시선이 두 블랙 가드에게 얽혔다.
하나 정작 리베라와 로한은 세로스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직감이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단테를 두고 벌어질 일에 자신들도 포함되리라는 불길한 직감 말이다.
그리고 그때.
“어?”
리베라의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단테의 신영이 빠르게 뻗어져 다시금 로비의 벽을 뚫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헤라의 곁에 서 있던 동상을 정확히 부순 후 대지로 안착했다.
단테의 머리에 회색빛 먼지가 묻었다.
문득, 핏물에 비친 자신을 본 단테는 어쩐지 과거 잿빛 머리였을 때를 떠올리며 무심결 입꼬리를 올리며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살짝 올라온 핏물이 침 사이에 섞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쿠웅-거리며 달려오는 나이트메어가 눈에 밟혔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더럽게 크다.
둥지 안의 짐승이 인간을 보고 벌레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위라트 본성의 절반쯤 되는 크기를 가진 놈들이니 얼마나 작게 보이겠는가.
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초절정의 벽을 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이트메어를 단신으로 죽이는 것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그때 문득 단테의 발치에 엉망으로 망가진 거대한 저격 총이 밟혔다.
“……이건?”
시선을 돌리자, 벽에 기대어 기동을 정지한 금빛 천사와 같은 기체.
4세대 나이트 프레임, 글로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개인별로 제작해 준다는 말이 사실인지, 헤라의 기체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외양을 하고 있었다.
단테, 그러니까 진짜 단테의 기억 속 천사의 모습을 마장기로 본뜨면 이런 모습일까.
〔단테! 일단 물러서!〕
그때 뒤늦게 나이트메어가 다시금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다는 걸 깨달은 세로스와 로한, 리베라가 기체 안에 탄 후 외쳤다.
그러나 그런 세로스의 외침에 단테는 물을 뿐이다.
“세로스.”
〔어, 어?〕
“4세대 나이트 프레임은 주인을 가립니까.”
너무나 생뚱맞은 물음에, 세로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다, 당연하지. 애초에 개인을 위해 제작된 거라고. 남이 억지로 타려고 하면 기체 자체가 거부를…….〕
거기까지 들은 단테는 어느새 거의 근접한 나이트메어를 바라보다가, 망설임 없이 대지를 박차 헤라의 콕피트 앞에 다다랐다.
세로스의 말을 무시한 게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잘 들었다.
콰드득- 따위의 소리와 함께 콕피트가 열린다.
망가진 이음새가 덜컥거렸으나, 단테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내부로 들어갔다.
확실히 양산기 내부보다 크고 케이블이 배는 많았다.
단테는 곧바로 의자에 앉아 있는 헤라의 맥을 짚었다.
죽지는 않았다.
단지, 밀려오는 탈력감에 기절했을 뿐.
단테는 그녀의 몸을 들어 콕피트의 뒤쪽, 의자 뒤에 눕히곤 그 자신이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 순간,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파일럿을 인지한 기체가 케이블을 뻗어왔다.
팔, 다리, 척추…….
온갖 부분에 케이블이 연결된다.
서서히 기체의 안광이 들어오는 걸 본 세로스는 오픈된 회선으로 경악하며 외쳤다.
〔단테! 당장 내려와! 자칫하면 반발력으로 머리가 녹아 버릴 수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의자에 몸을 묻은 단테는 어느새 부서진 벽을 다시 부수며 로비 안으로 들어선 나이트메어를 바라보며 답했다.
〔반발력 따위, 짓누르면 그뿐이니.〕
이윽고 단테의 조종을 거부한 기체 내부의 메인 코어가 빨갛게 변하며 내부에 잔류하던 헤라의 마나가 역류했다.
우우웅, 소리와 함께 몸의 혈도로 이질적인 내력이 침투하고, 머잖아 단테의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단테-!〕
누가 내뱉었는지 모를, 우려와 걱정이 담긴 소리에 시선을 올리자 나이트메어의 7개의 날개가 그를 노리고 뻗어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끼기긱- 하는 굉음과 함께, 헤라의 글로리아의 주먹이 놈의 날개를 잡았다.
기갑천마
짐승을 죽였다
혈도를 따라 상상을 초월한 반발력이 밀려온다.
만일 경지가 지금보다 낮았더라면 세로스의 말대로 뇌가 녹아 버릴 정도로 폭발적인 동시에 반항적이다.
기체에 잔류한 헤라의 마나가 꿈틀거리며 그의 지배를 거부했다.
동시에 메인 코어가 우웅- 소리를 터트리며 외치는 것이다.
내 주인은 너 따위가 아니라고.
제작 때부터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마장기다.
비록 하나의 인격체는 아니었으나 주인을 가릴 정도는 되었다.
침을 삼키고, 눈을 감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단테는 주화입마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세상의 시간과 의식의 시간이 분리되고, 수차례나 굴복시키기 위해 찍어 눌렀다.
그리고 마침내.
나이트메어가 날개를 뻗은 그 순간.
‘네 주인이 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단테는 끝도 없이 자신에게 반항하고 발악하는 기체에게, 또 메인 코어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주인이란, 그것을 아끼는 마음이 있을 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단테는 이 기체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단지, 잠시 쓰고 버릴 뿐.’
쿠웅- 소리와 함께 단테의 묵빛 내력이 일순간 케이블을 따라 기체 내부로 파고들었다.
헤라의 금빛 마나들이 발악이라도 하듯 깜빡였으나 단테의 내력은 순식간에 금빛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곤 이윽고 메인 코어에 다다르니.
우우우웅!
붉게 달아올랐던 메인 코어를 순식간에 침식했다..
자신의 거부하는 놈의 뇌를 망가트리고 사고를 정지하여 부서트린다.
마침내 코어가 서서히 진정했을 때, 코어는 원래의 푸른색이 아닌 묵빛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끼기긱- 하는 굉음과 함께 헤라의 기체인 글로리아의 팔이 뻗어져 한 점으로 날아오던 깃털의 끝자락을 손에 쥐었다.
파아아앙!
뻗어진 깃털들이 공간을 갈라 버린 것인지, 원 모양으로 터진 공기가 일순간 눈에 보였다.
동시에 기체의 주도권을 잡은 단테는 곧바로 놈의 날개 끝자락을 쥐었다.
-아, 아아아아!
어딘가 모르게 당혹감이 맴도는 놈의 외침이 콕피트를 넘어 귓가를 스쳤다. 단테는 그대로 놈의 날개를 잡아끌었고, 그것에 나이트메어는 반사적으로 반응해 역으로 당겨 끌었다.
당연하게도 단테는 나이트메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벽을 짚은 글로리아의 발에 아지랑이처럼 내력이 맺힌다.
동시에 나이트메어가 끌어당기는 그 순간 망설임 없이 벽을 부수고 쏘아진다.
끌어당기는 나이트메어의 힘.
벽이 부서질 듯 박찬 순간적인 가속.
눈 깜짝할 사이에 단테가 탄 글로리아가 허공을 날았다. 힘을 주지 않은 날개가 뒤로 늘어져 접히고, 단테는 금빛으로 번뜩이는 기체의 주먹을 그대로 나이트메어의 목에 박아 넣었다.
뻗어진 주먹이 푹신한 털을 지나, 그 안의 살점을 향했다.
그리고 머잖아 내력이 터지기 직전, 단테는 생각했다..
늘 느끼던 거지만.
이놈은 말이 너무 많다고.
콰드드드득!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거대한 나이트메어의 육신이 뒤로 밀려난다.
7개의 날개가 추락하는 천사의 날개처럼 흩날리고, 육신은 그대로 로비의 후미에 있던 거대한 석상을 들이받았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일렁였으나, 나이트메어의 크기를 가리기엔 모자란 감이 있었다.
동시에 단테의 기체가 이름 모를 상급 마수의 사체 위로 추락했다.
짓밟히고 터진 사체에서 핏물과 함께 검은 재로 변해 버린 시체가 부서진다.
때마침 정신을 차린 나이트메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단테를 응시하던 그때.
“큭?”
갑작스럽게 날개 죽지에서 밀려오는 이물감에 살짝 시선을 돌리니, 익숙하지 않아 반쯤은 까먹었던 날개가 꿈틀거렸다. 이미 기체를 장악했으나 날개에 남았던 헤라의 마나가 단테의 뒤를 찌른 것이다.
순간 단테의 미간이 좁혀졌다.
‘필요도 없는…….’
실제로 생과 사가 오가는 전투에서 찰나의 틈이 엄청난 차이를 벌리고는 한다. 그리고 단테의 입장에선 익숙하지도, 그렇다고 쓸 이유도 없는 날개는 짜증 나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때문에 단테는 손을 뻗어 날개를 쥐었다.
콰드득- 소리를 내며 날개와 연결된 관절부가 뒤틀렸다.
동시에 단테는 날개 죽지가 칼로 그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고통에 익숙해진 그로서는 그저 미간을 좁힐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콰득!
마침내, 단테의 손에 한 쌍의 날개가 쥐어졌다.
부서진 관절부의 끝으로 단테의 내력으로 보이는 묵빛 스파크가 일렁이고, 케이블 끝이 지지직거렸으나 그뿐.
쿠웅, 쿠웅.
단테는 무거운 날개 2개를 바닥에 버리고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나이트메어에게 시선을 옮겼다.
서슬 퍼런 안광은 똑같았으나 태도가 변했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정말로 그를 죽이려면, 흥분해서 미쳐 날뛰는 게 아니라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걸.
동시에 종족 번영의 목표가 있는 대군주의 딸로서 되뇌인다.
이대로 살려 보내선 안 되는 벌레라고.
-아아아아아아아!
안광이 번뜩였다.
거대한 로비에 가득 채워진 나이트메어의 마나가 일대를 뒤덮고, 조금 전까지 천마의 공간이었던 곳을 악몽으로 변모시켰다.
네임드라 함은 무엇인가.
대군주의 진정한 자식이자, 그분의 뜻을 위해 벌레들을 잡아 죽이는 대행자다.
때문에 악몽이라 이름이 붙여진 대군주의 딸이 이 자리에서 선언하는 것이다.
너는 결코 살아서 나가지 못하리라고.
검보랏빛의 장막이 단테를 감쌌다. 동시에 우주를 연상시키는 빛이 번뜩이고 나이트메어의 심상이 콕피트를 지나 단테에게 닿았다.
-네놈이었구나.
둘러싸인 장막이 단테의 과거를 살폈다. 동시에 나이트메어는 깨달았다. 눈앞의 벌레가, 언젠가 어머니이자 아버지에게 상처를 입혔던 ‘그’였다는 것을.
-네놈마저, 너희는.
당혹감과 분노가 섞였다. 동시에 이놈을 미리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을 담아 환희했다. 검은 여자의 형상을 한 나이트메어는 검은 장막 안에 묵묵히 서 있는 글로리아, 그 안에 앉아 있을 단테에게 말했다.
-내 자매는 나와 대척되는 아이였다. 네놈이 죽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보다 완벽해질 수 있었을 터인데……!
자매를 잃은 울분을 터트렸다.
흔히 벌레들이 말하는 마수들 따위, 얼마나 죽어 나가든 하등 상관이 없다.
놈들은 벌레보다 조금 나은 존재들일 뿐이니.
하지만 자매와 형제는 다르다.
그들은 특별했다. 말하자면 선택받은 이들이라는 뜻이다.
대군주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자신들의 조물주이자 창조주이신 그분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눈앞의 벌레가 그것을 망쳤다.
-영원한 악몽 속에 가둬 주겠다.
때문에 나이트메어는 드물게 모든 권능을 밀어 넣어 단테를 가뒀다.
검은 장막은 곧 우주이며 그를 가두는 것은 시간일 테니.
이제 놈에게 남은 것은 장막 속에서 천천히 붕괴되어 죽어가는 것일 뿐이다.
물론 나이트메어 역시 손쉽게 이 공간을 펼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본체는 지금쯤 벽에 기대어 묵묵히 서 있을 것이다.
의식이 이곳에 함께 갇혔으니까.
말하자면 무방비.
하지만 나이트메어는 확신했다.
고작 벌레 따위가 이 공간을 버틸 순 없을 것이라고.
일전에 악몽을 깬 것은 단순히 우연이었을 뿐이라고.
그때 기체 안에 앉아 서서히 공간을 잠식하는 음울한 악몽을 지그시 응시하던 단테가 나지막이 입술을 달싹였다.
“글쎄…….”
문득 웃음이 나왔다.
악몽 따위를 다루는 미물과 대척된다던 흰색 아이가 떠오른 것이다.
뭐라고 말했던가.
-내가 말하고 있어. 내 안에 무언가가 언니의 말을 무시하라고, 널 죽이지 말고 하나가 되라고 계속 말해.
놈이 지칭하던 것은 자신이었다.
즉, 저 장막 너머에서 쓰러져 있을 거대한 시체였다.
-내 능력은 행복한 꿈을 꾸게 해 주는 거야.
행복한 꿈이라…….
그럼 녀석의 이명은 기몽귀(欺夢鬼)라 불렸겠지. 요괴들이, 마수들이 꾸게 해 주는 행복한 꿈 따위는 결국 기만일 뿐이니.
-같이 벌레를 구경하자. 키우고, 죽이자.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언니랑 오빠들, 어머니이자 아버지도 죽여 버리는 거야. 어때?
마침내 기억이 났다.
단테는 실로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올린 채 콕피트 너머에서 자신을 똑똑히 바라보고 있는 멍청한 괴물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 동생이라던 괴물은 달리 말하던데.”
그제야 단테는 어째서 검황이 네임드의 내단을 먹고 미쳤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단이란 본디 힘을 뭉쳐 놓은 것임과 동시에 삶을 축적한 것이다.
말하자면 본디 그것을 품었던 존재의 의(意)라는 것이다.
아직 부화하지 않은 네임드는 때 묻지 않은 아이와 같다.
인간을 보고 벌레라 지칭하는 것은 단지 그렇게 보이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 부화한 이후에는 단지 거귀, 대군주의 뜻을 따르는 짐승으로 전락한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검황이 마수처럼 변해서 죽었다 하였지.’
차라리 검황이기에 그것으로 멈췄으리라.
고지식하고 아집이 넘치는 노인이긴 했으나 적어도 자신만의 협의는 지키려 했던 자였으니까.
그때 단테의 중얼거림에 나이트메어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렸다.
-네가 뭘 안다고…….
하나 단테는 더 이상의 대화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스윽-.
시선을 내려다보자, 일전에 보았던 악몽이 다시 덮치기라도 하려는 듯 피로 된 손이 뻗어진다.
때문에 그는 이 웃기지도 않은 공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멍청한 놈, 큭큭!
나이트메어의 비웃음이 온 공간에 울렸다.
그리고 마침내 단테의 손이 공간의 끝자락을 쥐었고.
“네 자매라는 괴물이 그러더구나.”
단테는 서서히 공간을 잡아 뜯으며 나지막이 덧붙였다.
“밖으로 나가면 너부터 죽여 달라고 말이다.”
-뭐?
놈의 눈이 커졌다.
진실을 구분할 수 있기에 순간적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데에 빈틈이 생겼다.
그리고 단테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눈앞을 가리는 공간.
그저 마나로 뭉쳐놓은 허상을 잡아 뜯어 버렸다.
콰드드드득- 소리와 함께, 그를 집어삼켰던 장막이 언제 일렁였냐는 듯 부서져 내렸다.
-무, 무슨. 내 자매가 그럴 리가…….
그러나 놈은 공간이 깨진 것보다 단테가 말한 진실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무어라 중얼거리기에 바빴다.
때문에 단테는 어느새 현실로 돌아온 의식을 확인하곤 오물에 반쯤 잠겨 있던 나이트 프레임의 손에서 검 하나를 쥐었다.
묵직한 감각이 케이블을 따라 손에 감기고, 눈을 뜬 나이트메어를 향해 곧바로 도약했다..
그러나 놈은 아직까지도 단테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조금은 반응이 느렸다.
그리고 단테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스릉.
검집이 없는 검이 뽑히듯 출수 되는 것과 동시에 허공으로 솟구친다. 묵빛 검기가 폭발적으로 흩뿌려지고, 나아가 긴 선을 그리며 추락하니.
-아, 아아아!
뒤늦게 나이트메어가 날개를 뻗어 막았으나, 단테는 전혀 개의치 않고 검을 그었다.
서걱- 따위의 소리와 함께 핏물이 튀기며 시야를 가리고, 이윽고 단테가 대지에 발을 디딘 그 순간 나이트메어의 잘린 날개의 끝이 일제히 대지로 추락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울린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고통에 정신을 차리기라도 한 것인지, 놈은 뒤늦게 힘을 끌어모아 단테를 향해 섬광을 뻗었다.
분노와 당혹이 담긴 마이너스의 감정은 놈의 섬광을 단테의 팔까지 인도했다.
-파아아아아!
뻗어진 섬광이 글로리아의 오른팔을 집어삼킨다.
완전히 붉게 물든 안광이 놈의 정신을 대변하는 듯했다.
단테의 정체를 알았다.
동시에 믿고 있던 자매의 본심을 알았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오히려 귀찮게 되었나.’
그의 시선이 살짝 내려가 날아간 어깨를 바라보았다.
저릿한 고통이 밀려왔으나 오히려 기회다.
생각할 줄 아는 짐승조차 하찮거늘.
그저 날뛰는 짐승을 베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콰아앙!
곧바로 대지를 박찼다.
수없이 많은 전투로 깨지고 박살 나 가루가 되어 버린 대리석이 오물과 섞여 사방으로 흩어지고, 나이트메어의 잘린 날개의 끝자락이 그를 향해 쇄도했다..
제일 아래서 쏘아진 날개를 디뎠다.
사방을 빽빽이 수놓은 깃털을 박찼고, 머잖아 로비의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샹들리에에 닿았다.
스윽.
검을 내린다.
그리고 그대로 놈의 머리를 향해 추락했다..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나이트메어라는 이명과 걸맞지 않은, 그저 시끄러운 짐승이 울부짖으며 단테를 향해 무든 공격을 쏟아부었다.
금빛의 글로리아의 어깨 갑옷이 깃털에 박살 났다.
섬광이 오른쪽 다리를 꿰뚫었고, 케이블을 끊고 관절부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피해의 기준치를 넘어선 기체가 파일럿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자기방어로 한 줄기 섬광으로 변모하여 헤라의 목덜미에 걸쳐진 마스터키로 회수된다.
〔끝……인가?〕
무심결에 그 모든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로한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세로스가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그리고 세로스의 말이 내뱉어진 순간.
푸욱.
기체에서 떨어져, 단신으로 추락한 단테가 거대한 검을 나이트메어의 심장에 꽂았다.
그렇기에 입을 벌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려는 놈의 귓가로 단테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울리니.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수라참(天魔修羅斬).
이윽고 거대한 검신에 맺힌 묵빛 검강이 비틀어지며-.
서걱.
놈의 심장이 갈라짐과 동시에 단테의 입가에 묽은 핏물이 흘렀다.
그리고 머지않아.
쿠웅.
서서히 뒤로 쓰러진 나이트메어의 육신이 반쯤은 찢어지고 짓눌린 둥지를 감싸듯 허물어지고, 동시에 놈의 몸에 가려졌던 창가에서 빛이 내리니.
“하…….”
단테는 눈이 저릴 듯 비치는 빛을 느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켜보고 있음을 안다.”
나이트메어의 심장에서 흩뿌려진 핏물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내가 찾아야 할까.”
아니면…….
“네가 나와야 할까.”
그리고 그 순간.
한쪽 구석의 장막이 걷어지고, 검은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는 제복의 사내가 정중히 고개를 조아리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기갑천마
그뿐인 이야기
“결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입가를 가린 검은 마스크가 달싹거렸다. 살짝 눈가를 가리는 금발이 흔들리고, 금색 눈과 블랙 가드의 상징이 각인된 검은 제복이 눈에 밟혔다.
“블랙 가드인가.”
“예, 그렇습니다.”
단테의 물음에 남자는 공손한 존대를 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블랙 가드 내에서 조원 급인 단테에게 보이기엔 과한 예의였으나 이 자리의 누구도 그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조금 전 그의 무력을 보았다면.
한편 붉은 눈동자의 동요 따위는 없이 자신을 지그시 응시하는 단테를 마주 보던 남자는 손에 낀 검은 장갑 아래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느껴지는 기운은 단장급에 미치지 못하는데.’
어느새 기체에서 내려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로한이나 리베라와 같은 조장급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단장급도 마주 상대할 수 있는 자신이다.
한데 조금 전 단테의 모습은 흡사 원로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원로들은 괴물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문득 자신의 무력이 초라하게 느껴져 조소를 머금었다.
그는 손에 찬 땀을 꽉 쥐며 천천히 열리는 단테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무슨 일이지.”
확실히 기도가 변했다.
그는 괜스레 마스크를 한번 고쳐 쓰고는 답했다.
긴장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자신은 단순한 전령의 역할만 수행하면 그뿐이니까.
스윽-.
품으로 손을 넣었다.
딱딱한, 또는 날카롭게까지 느껴지는 편지가 손에 집히고, 그는 검은 편지지로 고급스럽게 동봉된 편지를 꺼내어 단테의 앞으로 향했다.
순간 단테의 손끝이 무심결 꿈틀거릴 땐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으나,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을.”
최대한 공손하게 편지를 내밀었다.
단테가 그것을 받아들자, 뒤이어 기체에서 내려 단테에게 다다른 로한과 리베라, 세로스의 모습이 보였다.
중심에 단테를 놓고 좌측엔 남자가, 우측에는 로한 등이 서 있는 모습이다.
로한은 잠시 남자의 문양을 확인하곤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소속입니까?”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다.
저렇게 대놓고 블랙 가드라고 자랑하는데 어떻게 모르겠는가.
다만 궁금한 것은 소속과 목적이다.
“…….”
그러나 돌아온 것은 깔끔한 무시.
단테를 제외하곤 대화조차 나누지 않겠다는 태도가 너무나 명확해 리베라는 헛웃음을 터트렸고, 로한 역시 짜증과 굴욕이 섞인 눈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그렇다고 사리 분별도 하지 못하는 애처럼 날뛰진 않았다. 머리를 굴려 생각했다..
둘은 각각 7단의 1조, 3조의 조장이다.
그런 둘을 대놓고 무시할 정도라면…….
순간 로한과 리베라의 시선이 맞닿았다.
둘 다 하나의 이름을 떠올린 것이다.
-원로원.
당주의 아래에 있으나, 사실상 블랙 가드의 전반적인 모든 일을 처리하는 그들을 일컫는 말은 많다.
혹자는 진짜 제국의 기둥들이라고 추앙하고.
혹자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암중 세력이라 매도하며.
혹자는 당주는 허상이며, 원로원이 실체 된 권력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어떤 게 진실인지 둘은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으니, 눈앞 남자의 정체를 대략 가늠할 수 있었다.
‘원로원의 이름 아래에서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놈들.’
속칭 「하운드」.
그런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간단하다.
블랙 가드에 몸담은 놈들치고 정상이 어디 있겠냐마는, 하운드 놈들은 특히 심했다.
사냥개라는 이름답게 원로원이 물으라고 하는 건 물고 놓으라고 하는 건 곧바로 놓는 것이다.
‘거기에 무력은…….’
개개인이 아무리 낮게 쳐줘도 단장급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때문에 로한과 리베라는 입을 닥치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그때.
당연히 위와 같은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세로스가 미간을 좁히며 성큼 걸어가 남자에게 향했고, 차마 로한과 리베라가 말리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로열 가드 제4 단장 세로스 드 아크레데다. 네 소속과 이름을…….”
때문에 로한과 리베라는 혹여 세로스가 죽기라도 할까 봐 말리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아무리 같은 단장이라고 해도 블랙 가드와 로열 가드는 그 차이가 너무 컸으니까. 그러나 그 순간.
스윽-.
내민 편지가 세로스의 앞에 팔랑거렸다.
단테의 것과 다른 순백의 편지지를 본 세로스가 이게 뭐냐는 듯 눈동자를 굴렸으나, 남자는 그저 열어 보라는 듯 바라볼 뿐이다.
“하, 이건 또 무슨…….”
세로스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편지를 받아 들고 곧바로 뜯었다.
지익거리는 종이 소리가 울리고, 곧 편지지를 든 세로스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니.
-로열 가드 제4 단장은 블랙 가드에게 최대한 협조하라.
단 한 문장.
그러나 찍혀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닌 자신의 주군이자 제국의 주인이신 황제 폐하의 직인이 아닌가.
“……폐하께서?”
세로스는 시선을 들어 마스크를 쓴 하운드를 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단지 현실을 인정시켜주는 끄덕거림 뿐.
때문에 세로스는 잠시 복잡한 눈으로 단테와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니, 애초에 황제 폐하의 명령서까지 들고 오지 않았는가.
물론 위조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게 옳겠으나…….
그때 하운드를 곱게 보지 않고 있던 리베라가 살짝 세로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 남자, 원로원의 밑에 있는 하운드야. 그러니 네가 본 것은 아마도 진실이겠지.
당연히 외부인이자 로열 가드인 세로스에게 알려 줘선 안 되는 정보였으나, 리베라 나름의 복수였다.
실제로 그것을 들은 하운드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때.
“그러니까…….”
단테의 무심한, 아니 묘하게 우습다는 듯한 목소리가 울리자 하운드는 곧바로 단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단테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을 정확히 응시하며 물었다.
“나를 대위로 진급, 블랙 가드 내부에서는 새로이 창설 예정이던 제10 단장의 자리를 맡기겠다고.”
“……뭐?”
동시에 로한과 리베라의 목소리가 겹친다.
하지만 하운드는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고 여기선 말씀드리긴 어려우나, 제도에서 일전에 만나셨던 제7 단장이 한 가지를 더 전해 드릴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도 정확히 어떤 것이 전해질지 몰랐다.
애초에 궁금증을 가지지도 않았다.
원로원의 수족인 하운드다.
명령이 떨어지면 단지 실행할 뿐이다.
물론 추측은 갔다.
아마도…….
“나이트 프레임인가.”
단테의 말에 무심결 눈을 깜빡였다.
무언의 긍정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이제 전할 말은 모두 전했다.
“그럼.”
리베라의 독단을 개인적으로 기억하며, 남자는 일단 물러서야 할 때임을 깨닫고 곧바로 사라지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한 가지를 묻겠다.”
단테의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남자는 살짝 고개를 돌려 끄덕였고, 단테는 손에 쥔 편지를 가볍게 우그러트리며 물었다.
“나와 같은 이들이 블랙 가드에 있나.”
“…….”
나와 같은 이들.
그 말을 들은 남자의 눈동자가 굴러간다.
금발에 살짝 가려진 눈에 고민이 맺히고, 그는 어디까지가 좋을까- 따위의 고민을 하다가 이내 답했다.
“머지않아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럼.”
전할 말에 포함되지 않았던 물음이다.
그는 그렇게 답한 후 곧바로 품속의 마도구를 누르자, 몸이 천천히 투명해지며 사라졌다.
때문에 잠시 놈을 잡아서 추궁할지 고민하던 단테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나를 피하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아주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그렇기에 단테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선선히 중얼거렸다.
“머잖아 알게 될 것이라…….”
진실은 무엇인가.
또한 그것은 과연 달가울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단테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그때.
“무, 무슨!”
“나이트메어가…….”
뻥 뚫린 로비 너머로, 급하게 달려온 듯한 온갖 병기들과 함께 제국군의 깃발이 휘날렸다.
족히 수백은 될법한 나이트 프레임이 끼긱거리며 가동을 정지하고, 궤도차에 탄 병사들은 둥지를 감싸듯 죽어 있는 나이트메어를 바라보며 볼을 꼬집었다.
동시에, 세로스는 뒤늦게 한쪽 구석에 쓰러진 데미안의 기체와 시신을 바라보며 씁쓸함에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 같은 세상이야.”
단테는 품 안에 구겨진 편지를 밀어 넣고,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온갖 마수들의 핏물이 갈라진 틈으로 맺힌 대리석을 디뎠다.
죽어 버린 짐승들을 지났고, 우그러진 군번줄만이 남은 고깃덩어리를 지났다.
마침내 구원하러 온 제국군 병사들 앞에 선 단테의 시선에 콕피트를 열고 내려와, 혈육의 생존에 안도하며 눈물을 흘리던 세실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다, 단테.”
그녀는 뒤늦게 자신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눈가를 닦았다.
그리고 언제 무너진 표정을 지었냐는 듯, 다시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물었다.
“단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그러나 그때.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스윽-.
단테는 그녀의 곁을 지나가며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리고 놈을 죽였습니다.”
그뿐인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죽고, 그 목숨을 발판 삼아서 결국엔 죽였다.
결국 그것뿐이다.
의미도.
신념도.
가치도.
그저 생존을 위한 발버둥의 다른 이름일 뿐이리라.
단테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밖으로 향했다.
갈라진 병사들 사이로 성채 밖으로 나서자, 번뜩이는 빛이 눈을 찌른다.
단테는 눈가를 살짝 일그러트리며 전장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뒤로.
“와, 와아아아아아아!”
“이겼어! 이겼다고오!”
“우아아아아아!”
“특임대 만세에에!”
죽음을 연장한 이들의 환호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