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진 전투는 격렬했다.
족히 배는 되는 상급 마수와 중급 마수가 본성에 가까워질수록 밀려왔고, 밀폐된 콕피트 내부까지 온갖 피 냄새가 들어올 정도였다.
생과 사가 갈린다.
2개 중대는 1개 중대로 줄었고, 나이트 프레임 4기가 진입하는 도중 쓰러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달렸다.
관측 결과, 둥지는 본성의 로비 부분에 있었기에 몇 개의 정원과 성벽을 지나야 했기에, 그들은 그저 앞을 가로막는 것을 모조리 부수며 나아갔다.
〔사, 살려…… 끄아아악!〕
또 한 명의 파일럿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수십의 마수가 목숨을 잃어야 했다.
쿠우우웅!
또 하나의 벽을 허물자, 그들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미친…….〕
본래 거대한 성의 로비였을 공간을 마치 심장과 같은 타원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푸른, 붉은, 보랏빛의 혈관이 꿈틀거리고 이어진 탯줄은 무언가를 그렇게 빨아들이는지 꿈틀거리기 바빴다.
본디 대리석으로 장식되었을 대지는 핏물인지 점액인지 모를 액체로 끈적거리고, 사방에서 온갖 오물을 합친 듯한 냄새가 풍겼다.
마치 지옥이 있다면 이곳일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기괴하고 두려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때.
스으으윽.
마치 유령처럼, 허공에 일련의 마수들이 떠올랐다.
심장을 연상시키는 둥지의 탯줄이 울컥거리며 움직인다.
뒤이어 탯줄과 연결되어 떠오른, 마치 기사와 닮은 마수들을 본 단테는 무심결 중얼거렸다.
“……근위갑귀(近衛鉀鬼).”
실로 오랜만에 보는.
둥지의 파수꾼…….
이곳의 기준으로, 최상급 마수였다.
기갑천마
둥지 파괴 (5)
탯줄에 매달려 허공에 떠오른 수십의 근위갑귀의 가슴이 꿈틀거린다.
동시에 피보다 더욱 짙은 붉은 갑주가 번뜩였다.
핏물을 머금은 금속이라도 쓴 걸까.
그게 아니면, 근육이 굳어 갑주가 된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단지 확실한 것은 하나뿐.
〔가디언이다! 빠르게 정리해야 해!〕
놈들은 둥지를 지키는 괴물이고, 그들은 둥지 속에서 꿈틀거리는 괴물을 죽이기 위해 온 이들이라는 것이다.
세로스의 외침에 살아남은 이들은 일제히 전투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탯줄에 매달려 유령처럼 움직이던 근위갑귀들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쇄도했다.
놈들은 입이 없었다.
단지, 탯줄에 매달려 마치 끈에 조종당하는 마리오네트처럼 날카로운 톱니가 달린 팔을 뻗을 뿐.
“갈겨어어!”
“쏴! 쏘라고오!”
타다다당, 소리가 울리며 병사들의 총구가 흔들렸다.
쏘아진 탄환이 피로 물든 듯한 근위갑귀의 외피를 두드리고, 사방에 카트리지가 흩뿌려진다.
〔데미안!〕
세로스의 외침에 말을 탄 기사와 같은 모습의 기체.
코르디스의 허벅지가 일순간 팽창했다.
동시에 점액으로 가득한 대지를 내달린 그는 거대한 낫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서걱, 콰그그긍!
묵직한 울림과 함께, 근위갑귀들의 몸이 썰리고 베이며 뜯겨 나갔다.
뒤이어 헤라의 총성이 울리고, 세로스와 단테의 공격이 빠르게 놈들을 찢고 베었다.
해가 떴음에도 어두움으로 가득한 로비에 섬광이 번뜩였다.
죽음에 신음하는 이들의 기도가 울리고, 꿈틀거리는 마수들의 그들의 목숨을 수확한다.
〔흐아압!〕
데미안은 갈색 빛 마나를 흩뿌리며 거대한 반월을 그렸다.
그러자 톱니와 함께 근위갑귀의 육신이 갈라졌다.
하지만 그 순간.
〔어, 어라?〕
분명히 베었다.
거대한 낫이 놈들의 육신을 헤집고 끈적한 핏물과 함께 살을 꿰뚫고 나온 것이다.
마수라 한들 죽지 않을 수가 없는 상처인데.
꿀렁- 하는 소리와 함께 탯줄이 일순간 팽창하고, 놈의 육신이 빠르게 재생되었다.
그 모습을 본 헤라가 외쳤다.
〔탯줄! 탯줄을 베어야 합니다!〕
헤라가 그것도 미리 숙지하지 못했냐는 듯, 그를 타박하는 어투로 외치며 탯줄을 노리고 총구를 겨눴다.
그리고 이내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리자 미처 재생을 끝내지 못한 근위갑귀의 탯줄이 터져 나갔다.
파아앙!
마치 풍선이 터지는 소리와 같이 탯줄이 터졌다.
동시에 막 재생을 끝내 가던 근위갑귀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세로스 역시 이미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놈들의 탯줄을 노렸다.
그러자 육신을 벨 때와 달리 놈들은 탯줄을 보호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우우웅!
마나 하트를 빠르게 운용했다.
섬광과 같은 속도로 쏘아진 창은 단번에 놈들의 외피를 부수며 뻗어졌고, 이윽고 창의 끝점에 모인 기운이 공간을 진동시킬 듯 점멸했다.
〔흐아아압!〕
푸른빛을 띠는 장갑이 철컹거린다.
거대한 기체의 뒤에 맺힌 마나가 일순간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출력을 높인다.
메인 코어가 회전하고, 동시에 뻗어 나가니.
콰드드드득!
서늘하고 묵직한 소리가 울린다.
마치 장대에 꿰인 죄인처럼 단번에 꿰뚫린 근위갑귀는 몸을 부르르- 떨며 톱니와도 같은 팔을 뻗었으나 세로스의 장갑에 자그마한 상처만을 남길 뿐이다.
탯줄이 반쯤 찢겼다.
그 때문에 무심결 안도하며 마무리를 하려던 그때.
‘콰앙!’ 소리와 함께, 단테의 기체가 대지를 박차고 높게 뛰어올랐다.
동시에 그의 검에 묵 빛 검기가 맴돌아 탯줄을 자르기 위해 내리 찍힌 그 순간.
스르륵.
마치 아쉽다는 듯, 분명히 세로스의 렌스에 꽂혀 있던 근위갑귀가 마치 거짓말처럼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러자 세로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건…… 산 넘어 산이군.〕
재생력이 말도 안 된다.
분명 방금 공격으로 적잖은 피해를 보았을 텐데, 허공으로 솟구친 놈은 꿀렁이는 탯줄 덕분인지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단테 역시, 조금 전 광경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재생력이…….’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충 주변을 메운 근위갑귀는 서른쯤 된다.
그런데 손쉽게 치명상을 입히고 있음에도 죽인 놈은 헤라가 쏜 1마리밖에 없었다.
‘탯줄이 노려지는 걸 깨닫고,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놈들도 아는 것이다.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둥지가 깨어나면, 눈앞에 있는 적들은 모두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을.
스으윽.
단테는 곧바로 자신을 향해 뻗어지는 근위갑귀의 톱니를 피했다.
동시에 일검을 그어 놈의 가슴을 베는 즉시 탯줄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쯧.’
이어지는 두 개의 톱니가 정확히 콕피트를 노리자 뻗던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단테의 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제국군 기갑 장교가 당하고 말았다.
콰드드득!
〔끄아아악!〕
단두대와 같이 거대한 톱날이 콕피트를 단번에 가른다.
규격이 엉망인 톱니 사이로 내장이 끼어 주르륵 떠오르고, 뒤이어 반으로 갈라진 기체가 콰앙- 하는 폭음과 함께 터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세로스가 외쳤다.
〔헤라! 둥지를 쏴!〕
〔아, 알겠습니다!〕
세로스의 명령에 그녀는 곧바로 허공에서 선회하여 제일 후방으로 물러섰고, 마찬가지로 세로스의 명령을 들은 로열 가드들이 다급히 그녀의 아래에 서서 몰려오는 근위갑귀를 막았다.
덕분에 생긴 찰나의 틈으로 헤라는 마나를 밀어 넣으며 눈을 번뜩였다.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기회다!’
이대로 둥지를 끝내기만 하면, 모두가 살아 돌아갈 수 있다.
그녀는 그런 기대를 품으며 자신의 마나 하트를 한계 직전까지 밀어붙이며 마나를 농축했다.
거대한 총구의 끝이 붉게 달아오른다.
뒤이어, 헤라의 미간이 좁혀지고 몸이 떨렸다.
한계까지 마나를 끌어 올리는 것은 당연하게도 적잖은 부담을 안겨 주니까.
하지만해야 한다.
‘단 일격. 일격으로 끝내야 해.’
그러면 아주 적절한 것이 있다.
흔히 과거에 규격 외로 구분되는 기사들이 사용했다는 이른바 비기의 명맥은 끊기지 않고, 대신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것을 쓸 수 있냐, 없냐에 따라 에이스로 구분될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윽고 마나 하트가 멈췄다.
모든 준비를 마쳤기에, 주인의 결단을 기다리는 것이다.
헤라는 옅은 심호흡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떴다.
동시에, 그녀의 양 눈에 십자 모양이 떠오르고 총구가 정확히 둥지의 중앙, 괴물이 꿈틀거리고 있을 그곳을 겨눈다.
우우웅.
마나가 질주한다.
동시에 허공에서 펄럭이던 날개가 정지하고, 체감되는 시간이 초 단위까지 떨어진다.
기체의 떨림.
전투의 굉음.
나아가, 끝낼 수 있다는 믿음.
마침내, 그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짐과 동시에 눈가 근처에 실핏줄이 터지고. 입술이 달싹여지니.
시그니처(Signature).
심판(審判).
마침내 시간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반탄력을 이기지 못한 헤라의 기체가 뒤로 밀려나며 벽과 부딪힌다.
콰아아아아앙!
일순간 뻗어진 금빛 섬광이 앞을 가로막는 근위갑귀들을 꿰뚫고 쏘아진다.
검고 음울한 로비의 샹들리에에 달린 유리에 번뜩여 공간을 빛내고, 이윽고 심판이 둥지에 닿으니.
꿈틀.
본능적인 위협감을 느낀 탓일까.
심장을 닮은 둥지가 일순간 고동쳤다.
그리고 마침내 놈의 공격이 둥지에 닿으려던 그 순간.
〔무, 무슨!〕
〔안 돼!〕
사방에서 기체들을 상대하던 근위갑귀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올라 심판의 앞을 가로막았다.
파앙!
터져 나가는 육신이 사방에 흩뿌려지는 모습은 가히 압도적이었으나 그뿐.
꿀렁- 하는 소리와 함께 탯줄에 맺힌 근위갑귀들이 재생한다.
재생된 고깃덩어리들은 미친 듯 심판의 앞을 가로막았다.
파앙!
퍼어엉!
1초에서 수십 번씩 고깃덩어리가 터지는 소리가 울린다.
점액으로 가득 찬 대리석에 핏물이 강이 되어 흐르고, 사방으로 떨어진 고깃덩어리는 신경이 남아 있는 듯 꿈틀거렸다.
그러길 수십, 아니 수백 번.
마침내 둥지에 닿은 심판이었으나…….
‘콰드드득-!’과 같은 소리를 내며 조금의 상처를 입혔을 뿐이었다.
〔말도 안 돼……. 쿨럭!〕
대지로 추락한 헤라는 입가에 묻은 핏물을 닦아 내며 몸을 떨었다.
단번에 끝내기 위해 기체를 운용할 최소한의 마나만 남겨 둔 채 쏘아 낸 심판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터어엉.
저격 총, 아니 이젠 고철이 되어 버린 총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러나 그때.
〔기회입니다.〕
단테의 목소리가 울리고, 세로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이어진 데미안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헤라는 경악했으나, 그들은 느낀 것이다.
근위갑귀, 가디언이 무력화된 지금이 기회라고 말이다.
푸른 마나가 폭주하고, 거대한 렌스가 정확한 수직을 그리며 둥지를 겨냥했다.
동시에 데미안의 기체의 앞발이 대지를 끌었고, 단테의 검이 묵빛 기를 머금으니.
제일 먼저 세로스가 대지를 미끄러지듯 쏘아진다.
렌스는 그 자체로 거대한 유성이 되어 공간을 가르니, 그의 기체가 지나간 곳을 따라 길게 선이 그어진다.
때때로 재생된 가디언이 앞을 가로막았으나, 놈들은 한낱 혈수가 되어 흩뿌려질 뿐이다.
마도 공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4세대 메인 코어가 진동한다.
동시에 그의 렌스의 끝이 둥지에 닿고, 세로스는 무심결 미소를 머금으며 확신했다.
‘끝인가.’
이대로 찌르고, 터트리면 된다.
헤라가 무리를 해서 시그니처를 써 준 덕에 일이 한결 쉬워진 것이다.
물론 그의 공격만으로는 모자랄 것이다.
다만 단테와 데미안까지 뒤이어 찢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푸욱.
렌스의 끝이 마침내 붉은 살덩이를 꿰뚫었다.
뒤이어 단테의 묵빛 검강과 데미안의 낫이 꽂히려 허공에 제각기 반월을 그린 그때.
‘……이건!’
기를 끌어 올린 채 단번에 둥지를 베려던 단테는 익숙하고 낯이 익은 감각에 순간 본능적으로 검을 놓았다.
뻗어진 검이 허공에서 돌아 심장에 박히고, 단테는 곧바로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물러서-!〕
곧바로 뒤로 물러선 채 허공을 응시한 단테와 조금 측면에 있던 데미안과 달리, 세로스는 정확히 정면에서 렌스의 반절을 꽂아 넣은 채 섬광을 터트리려 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대로 터트리기만 하면, 원흉을 제거할 수 있으니 순간의 경고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다만.
-아아아아.
그 순간, 내리꽂히는 보랏빛 섬광과.
콰아아아아아앙!
천장을 부수고, 거대한 몸을 이끌고 내려와 세로스를 내려다본 나이트메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끄아아아악!〕
〔세로스!〕
미처 피하지 못한 세로스의 기체, 플라네스가 보랏빛 섬광에 직격당했다.
동시에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몸이 떨리고, 한계까지 치켜 올려진 육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드물게 분노한 나이트메어가 포효한다.
놈의 등 뒤에 달린 8개의 날개가 펄럭거리고, 동시에 부름을 받은 수백, 수천의 마수들이 전장에서 둥지로 복귀하니.
로한은 털썩 주저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망했군.〕
기갑천마
둥지 파괴 (6)
-아아아아아아!
거대한 위라트 본성의 천장이 무너진다.
콰과과광- 따위의 굉음이 울리고 자욱한 먼지와 함께 악몽이 지상에 닿았다.
〔커헉…….〕
신음이 섞인 세로스의 통신이 들렸다.
때문에 데미안은 곧바로 전력으로 대지를 박차 그의 기체를 데리고 뒤로 물러섰다.
〔정신 차려, 세로스!〕
〔하아, 하아…….〕
생각보다 충격이 컸는지, 세로스는 대답이 아닌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일단 살아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안도할 때였다.
“으아아아아아!”
나이트메어의 등장에 제국군 파일럿들이 빠르게 제각기의 무기를 뽑고 놈에게 쇄도했다.
아마 저들 딴에는 선공을 하는 것이 우세하리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마수였다면 틀린 생각도 아니다.
그래, 일반적인 마수였다면 말이다.
문제는 그들이 상대하는 것이 일반적인 마수가 아닌, 네임드라 명명된 개체라는 점이었다.
“끄아아아악!”
“커허헉!”
돌아오는 건 비명과 공포가 담긴 신음뿐이었다.
그리 길게 이어진 전투도 아니었다.
나이트 프레임들은 제각기의 무기로 놈에게 닿으려 했고, 나이트메어는 단지 섬광과 뻗어지는 날개로 기체들을 도륙했다.
콰아아아!
미스릴과 강철로 만들어진 기체가 검은 연기에 휩싸이며 불타고, 중심부에 인간이었던 살덩이가 잿더미가 되어 추락했다.
점액질로 가득한 바닥에 떨어진 파일럿은 잘린 다리로 일어나려 꿈틀거리다가 재생된 근위갑귀에게 온몸이 토막이 났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감.
순식간에 살아남은 파일럿이 한 자릿수가 되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리베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최악이네. 여러모로.〕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을 전장을 분석한다.
나이트메어는 돌아왔고, 밀려드는 마수들에 막혀 지원군은 요원하다.
그뿐인가.
둥지는 언제 깨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며 아군의 사기는 바닥이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조직의 규칙을 깨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때 데미안의 손에 이끌려 간신히 뒤로 물러섰던 세로스의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울렸다.
〔아, 죽겠네…… 하하.〕
늘 그랬듯이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하지만 그것이 꾸며 낸 것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진즉에 다 죽었으니까.
‘제기랄.’
실제로 세로스는 몸을 떨며 의자에 최대한 밀착하여 아직까지 이어지는 충격을 애써 감내하고 있었다.
앙다문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흐른다.
아무래도, 내장이 상한 듯싶다.
그는 식은땀으로 고정이 풀린 머리를 쓸어 넘기며 통신기에 닿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방심했나.”
나이트메어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목표인 둥지에 눈이 멀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조금 전의 상황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방심이었고, 모험이었다.
그때 문득 콕피트 너머의 전황이 눈에 밟혔다.
쿠구구구궁!
대지가 울린다.
아마 지금쯤 평원에 있을 마수들이 둥지로 밀려오고 있겠지.
굳이 평원까지 확대하지 않더라도 나이트메어의 명령을 받은 일대의 모든 마수가 몰려왔을 거다.
퇴로가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세로스는 곁에 서 있는 데미안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데미안.〕
〔……그래.〕
비록 이름을 읊조린 게 전부였으나, 몇 번이나 같은 전장에 섰던 둘이기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실, 애초에 살아 나갈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나이트메어를 죽이고, 둥지를 찢어발긴다.
오직 그것뿐인 것이다.
그 때문에 세로스는 조금은 진정된 몸을 이끌어 근처 바닥에 떨어진 창을 주웠다.
이빨 사이로 흘러내린 핏물 사이로 피식 웃음이 흐른다.
〔렌스가 없으니 허전하긴 하다만…….〕
그가 애용하던 렌스는 그대로 둥지에 반쯤 박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주인을 모를 거대한 창을 쥐고 중얼거렸다.
〔뭐, 이것도 나쁘지 않아.〕
창대가 부러질 듯, 콰드득, 소리를 내며 쥐어진다.
나아가 그의 마나 하트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니, 이윽고 하나의 선을 그리며 의지를 대변한다.
세로스의 눈이 푸르게, 또는 녹색으로 번뜩였다.
어느새 떨리는 몸은 가라앉고 그는 단지 눈앞의 나이트메어를 바라볼 뿐이다.
-아아아아!
그때 나이트메어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세로스를 향해 다시금 섬광을 쏘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로스 역시 방심하지 않았다.
창대를 쥔다.
동시에, 일직선을 그리며.
마침내 쏘아지니.
파아앙!
처음엔 단지 공기를 뚫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지랑이처럼 섞이는 푸른빛과 녹색 빛이 점멸하고.
-콰과과과과광!
이윽고 하나의 창이 수십 개로 갈라진다.
갈라진 창에서 또 하나의 창이 뻗어지고 단지 하나였던 창대는 곧 수십, 수백 개의 창이 되어 나이트메어의 눈을 어지럽히니.
시그니처(Signature).
유성우(流星雨).
마침내 그의 시그니처가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세로스의 유성우가 놈에게 닿기도 전.
투다다다다!
점액과 시체, 온갖 파편으로 가득한 대지를 데미안의 기체, 코르디스가 내달린다.
서걱, 툭.
그는 사방에서 톱날을 뻗어 대는 근위갑귀를 거대한 낫으로 단번에 베어 버리곤, 마침내 다다른 나이트메어의 거대한 다리를 향해 갈색 빛 마나가 담긴 공격을 흩뿌리니.
시그니처(Signature).
대반월(大半月).
거대한…… 나이트메어와 맞먹을 만큼 큰 반월이 그어진다.
그 순간 세로스의 유성우가 나이트메어에게 꽂히고.
콰아아아아앙!
뒤이어 데미안의 손에서 그어진 갈색 빛 대반월이 놈의 육신을 가를 듯 뻗어지니.
스그그그긍!
머잖아 묵직하고 서늘한 울림이 대지를 가득 채웠다.
자욱한 연기가 나이트메어의 육신을 가리고, 뒤이어 리베라와 로한을 비롯한 다른 이들 역시 공격을 이어 나가려고 할 때.
〔멈춰!〕
단테의 외침이 울리고.
-아아아아아.
마치 아쉽다는 듯한 나이트메어의 저릿한 울림이 공간을 메운다.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나이트메어의 주변에는 깨진 장막의 파편만이 자리할 뿐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이트메어의 8개의 거대한 날개가 순식간에 촤르륵- 펼쳐지니.
단테는 곧바로 대지를 박차고 도약해 거대한 검을 휘둘러 놈의 머리를 노리며 그어 내렸다.
묵빛 마나가 빠르게 회전하고, 그의 입에서 천마신공-이라는 읊조림이 읊어지려던 그때.
파아아아앗!
쏘아지는 놈의 깃털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송곳처럼 일대를 뒤덮었다.
단테는 어쩔 수 없이 검을 거두고 빠르게 기체를 회전시켜 깃털을 막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뻗어진 섬광이 단테의 기체를 때렸다.
-콰과과광!
‘크으윽…….’
짓눌리는 압력 속에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장갑이 일그러지고, 케이블이 끊어지는 고통은 피부가 뜯어지고 혈관이 터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고통이었으니.
단테는 하릴없이 지상으로 추락했고, 동시에 그의 기체의 왼팔이 떨어져 나가 바닥을 굴렀다.
〔으아아아아!〕
데미안이 다시금 놈을 향해서 낫을 휘둘렀다.
장막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일단 이 장막을 깨트리면…….
〔아, 젠장.〕
데미안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뒤늦게 자신의 머리 위로 드리워진 놈의 날개 끝을 확인하곤 몸을 틀었으나, 이미 늦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콰지지직!
그리고 그의 중얼거림이 끝난 그 순간.
벌레를 으깨듯, 나이트메어의 날개 끝이 데미안의 기체를 단번에 우그러트리며 벽으로 날려 버렸다.
콰아아앙-폭음이 울리며 벽 한쪽에 자리했던 거대한 동상과 데미안의 기체가 뒤섞인다.
동시에 우그러진 콕피트에서 핏물이 흐른다.
즉사였다.
〔소, 소령니임!〕
간신히 버티고 있던 헤라가 찢어질 듯 외치고, 세로스는 어느새 일그러진 얼굴로 다시금 창을 쥐고 놈에게 쇄도했다.
〔으아아아아아!〕
헤라 역시, 망가진 총을 대신하여 근처에 널브러진 라이플을 쥐고 또다시 심판을 쏘아 내려 했다.
그러나 그것을 눈치챈 마수들의 공격에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크윽!〕
〔빌어먹으을-!〕
로한과 리베라와 같은 이들 역시 최선을 다해 닿으려 노력했으나 사방에서 그들을 괴롭히는 근위갑귀와 깃털, 뒤에서 밀려드는 마수는 절망을 불러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때 단테가 천천히 기체를 일으켰다.
왼팔이 뻐근하다.
고개를 돌리니, 왼팔이 떨어져 나간 걸 확인했다.
그의 얼굴에 노곤함이 감돌았다.
그러나 동시에 묘한 위화감에 시선을 올렸다.
-아아아아아.
나이트메어의 시선과 마주한다.
조금 전부터 느낀 위화감이다.
그리고 단테가 나이트메어와 시선을 마주한 그 순간.
순간이지만, 놈의 눈이 찢어질 듯 확장되고 뺨에 길게 그어진 상처가 지끈거리는지 눈가가 떨렸다.
그 때문에 단테는 무심결 웃고 말았다.
‘기억하는 건가.’
놈이 기억하는 것이 천마 천휘인지, 블랙 가드 단테인지는 모르겠으나, 놈은 분명히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단테는 검을 쥔 채 곧바로 엉망이 된 로비의 바닥을 박차고 도약해 놈에게 쇄도했다.
이어진 공격이 그를 노리고 뻗어지고, 사방에서 근위갑귀들이 몰려왔으나 개의치 않는다.
일전에 약속을 했으니 지켜 줄 생각이었다.
-다음에 만나면, 날개를 뜯어 주마.
언젠가, 노곤한 시선으로 내뱉었던 말이다.
단테는 그 약속을 지켜 줄 생각으로 빠르게 나이트메어를 향해 돌진했다.
푸른 하늘 아래, 음울한 보랏빛 기운이 가득 찬다.
동시에 묵직한 울음이 뻗어지고 동시에 허공에 떠 있는 단테의 기체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다, 단테-!〕
나이트메어의 날개와 한창 전투를 벌이던 세로스가 외쳤고, 동시에 살아남은 이들 모두가 허공에서 온갖 공격의 표적이 된 단테를 응시했다.
하늘에선 보랏빛 섬광이.
좌우에선 4쌍의 날개가.
지상에선 수십의 근위갑귀까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 때문에 몇몇은 눈을 감았고 리베라와 로한, 세로스는 단테를 구하기 위해 대지를 도약했다.
그러나 그때.
갑작스럽게 단테의 기체의 허리가 돌아갔다.
허공에서 한 바퀴 돌려진 허리가 콕피트의 입구의 방향을 정확히 나이트메어의 머리를 향하게 만들었고.
그 순간.
우웅, 소리와 함께, 콕피트의 입구가 열리며 단테는 의자를 발판 삼아 그대로 나이트메어의 머리로 날아올랐다.
몸 곳곳에 연결된 케이블이 그를 따라 콕피트 밖으로 딸려 나오다가 머잖아 떨어진다.
〔무슨……?〕
아마 그 광경을 본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특히 로한과 리베라는 경악에 가까운 시선이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콰아아아아앙!
미처 틀지 못한 공격이 단테의 뒤에 추락하던 기체를 박살 내며 폭발을 일으켰고, 단테는 그 폭발을 추진력 삼아 마침내 나이트메어의 등 뒤에 다다른 후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나이트메어는 곧바로 일전의 악몽을 불러일으켜 단테의 움직임을 멈추려 했으나, 단테는 놈의 악몽이 발현되기도 전에 내력을 터트렸다.
우웅.
묵빛 마나가 단전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혈도를 따라 종횡하고, 머잖아 다다른 손끝에서 그의 의지를 대변하니.
파스슷.
이윽고 그의 손이 마치 작은 공을 잡은 듯 천천히 휘감기고 거대한 구가 손끝에서 생겨 일대를 삼킨다.
비록 내력이 부족하여 과거와 같은 크기는 아니라 하나, 충분히 놈의 날개를 끊을 정도는 되는 것이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묵환강(天魔黙丸鋼).
침묵 속에서 꽂아 내린 일격이 정확히 놈의 날개 죽지에 닿았다.
원을 그리는 묵빛 기운이 일순간 패도적인 내력을 뿜어내며 그어진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콰과과과과과과광!
침묵을 깨는 거대한 폭음과.
-아아아아아아!
고통과 분노가 섞인, 나이트메어의 포효뿐이었다.
기갑천마
번잡하다. 꿇어라
로비 안에 정적이 맴돌았다.
쿠웅, 소리와 함께 나이트메어의 날개 한 개가 추락하고, 고통과 분노가 섞인 괴성이 울려 퍼진다.
동시에, 로한과 리베라는 자신들도 모르게 나지막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경악보단 당혹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둘의 시선이 대지로 추락하는 단테를 쫓았고, 머잖아 떨리는 세로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 저건 대체……?〕
기체도 타지 않고, 나이트메어의 날개를 추락시켰다.
그것을 본 세로스는 무심결 과거에 실존했다던 기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작위로서가 아닌.
검에 오러를 피우고 단신으로 드래곤마저 사냥했다던 인외의 괴물들.
전쟁 이후에 태어난 그로선, 정말 실존했다는 걸 믿기조차 힘든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가능성이 뛰어난 후배로 생각했던 단테가 그런 힘을 보인 것이다.
눈을 의심했다.
아니, 차라리 꿈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그런 세로스와 어딘가 복잡한 로한, 리베라의 시선과 달리 단테는 저릿한 손을 부여잡으며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아직은 무리였나?’
적잖은 부담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단테는 대지로 추락한 날개를 응시하며 썩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비록 내력이 일류라 하나, 그 깨달음과 경지는 아득한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단테의 옆으로 근위갑귀가 톱날을 뻗었다.
마치 유령처럼 뻗어진 공격은 단숨에 단테를 베어 낼 듯했으나, 단테는 금나수의 묘리가 담긴 손짓으로 놈의 톱날을 잡아끌어 단번에 목을 틀어쥐었다.
콰드득- 하는 소리가 울리고, 놈의 몸이 일순간 축 처지자 단테는 곧바로 발로 탯줄을 짓밟아 터트렸다.
퍼어엉!
마치 풍선이 터지듯 터진 살점 속에서 뭔지 모를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나이트메어가 가만히 두고 볼 리가 만무했다.
분노에 찬 보랏빛 섬광이 흩뿌려진다.
뒤이어 남아 있는 7개의 날개가 오직 단테를 노리며 뻗히자, 단테는 곧바로 대지를 박차 올랐다.
내력이 긴 선을 그리며 단테의 발치를 뒤따랐다.
이어진 공격에 대지가 뒤집히고, 단테는 뒤에 있는 둥지를 박차고 나이트메어에게 도약하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아아아아아!
그러자, 나이트메어는 서슬퍼런 울음을 내뱉으며 입가의 부리가 달싹거렸다.
동시에 또다시 악몽이 단테를 휘감으려 했으나…….
“가당치도 않구나.”
단테의 짧은 중얼거림이 내뱉어지고, 그의 주먹이 정확히 놈의 얼굴을 노리고 뻗어졌다.
그러나 곧 떠오른 보랏빛 장막에 막혀 그대로 퉁겨진다.
파앗!
놈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지, 단번에 그를 집어삼키고자 입을 쩍- 벌렸다.
하나 그것은 되레 자충수가 되고 말았으니.
천마월광천하(天魔月光天下).
뻗어진 섬광이 폐허가 된 성채에서 다시금 흩뿌려지니, 놈은 되레 입안에서 터지는 공격에 몸을 떨며 몇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흩뿌린 깃털은 하나하나가 단테보다 거대한 단두대나 다름이 없었기에, 그는 정면에서 날아오는 깃털을 박차고 올라 둥지의 바로 위에 안착했다.
물컹- 하는 소리와 함께, 썩 좋지는 않은 감촉이 발치에서 느껴졌다.
그러나 단테는 도리어 웃는 얼굴을 한 채 실로 패도적인 내력을 끌어 올렸다.
“멍청한 놈.”
둥지를 지키고자 하는 놈이 이토록 우둔해서야 되겠느냐.
지키고자 하던 둥지에 단테를 인도한 셈이다.
-아, 아아아!
나이트메어도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는지, 다급히 단테를 죽이고자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미 단테는 남아 있는 내력을 담아 둥지를 터트릴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주먹을 뻗을 필요조차 없다.
단지 단 한 번의 발 구름.
그것이면 이 웃기지도 않은 고깃덩어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꿈틀거리리라.
그때였다.
-안 돼. 하지 마.
마치 어린아이가 칭얼대듯, 무언가가 단테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단테가 찰나의 순간 멈칫하자.
쩌어어억-!
갈라진 둥지가 단번에 단테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