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털었다.
거대한 미스릴 소드에 깊게 파인 혈조로 이미 핏물이 흘러내렸으나, 습관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때 후방에서 세로스의 통신이 울렸다.
〔……아무래도, 로한이 기대하던 대로 반쯤은 죽여 놔야겠는데.〕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동시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어투였다.
단테는 자신을 향해 뼈로 된 가시를 쏘는 묵골이룡의 가시를 죽은 늑대의 사체로 막아 내곤 답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로한에게 딱히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때때로 놈이 보이는 반응이 옛 부하이자 친우를 떠올리게 만들어 즐거울 따름이다.
그때 한창 전장을 종횡하며 낫을 휘두르던 데미안이 외쳤다.
〔뭐야! 소문이 진짜였네?〕
여전히 활기찬 목소리였으나, 이면에는 묘한 피로감이 녹아 있었다.
그렇기에 단테와 세로스는 대답 없이 곧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데미안의 낫이 휘둘려 상급 마수들의 육신을 찢는다.
세로스의 렌스가 섬광의 꼬리를 그리며 놈들을 찌르고.
단테의 검로가 놈들의 사지를 끊어낸다.
타아앙!
뒤늦게 정신을 차린 헤라의 지원사격까지 이어지자, 상급 마수들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족히 수백은 넘는 중급 마수들을 죽이고 앞을 봤을 땐, 살아 있는 상급 마수는 없었다.
그저 죽은 상급 마수들 위로 서 있는 4기의 기체만이 존재할 뿐.
단 5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닿았다.
그러나 에이스들의 시선은 오직 단테에게 닿았다.
그뿐일까.
리베라는 늘 겉으로 보이던 쾌활한 모습이 아닌 블랙 가드에 어울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단테를 바라보았고, 로한은 단장 개새끼-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가올 미래를 저주했다.
동시에, 단테의 활약을 지켜본 제국군과 로열 가드 측 파일럿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밀려오는 혼란을 애써 삼켜야 했다.
당연한 일이다.
이 자리에 섰다는 건, 어느 부대, 어느 나라에 가서도 웬만큼의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생환한다면 에이스 자리를 약속받은 이들도 몇몇 있었다.
그런데 문득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저 단테라는 소위가 에이스라 불린다면, 나는 과연 저렇게 할 수 있는가.
그때였다.
쿠웅.
정적을 깨고, 단테는 별다른 명령이 없었음에도 성벽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모습이 그들에게 제한된 시간을 일깨웠다.
〔허.〕
세로스의 묘한 웃음이 터졌다.
동시에 그는 뒤늦게 단테를 따라 걸으며 외쳤다.
〔진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