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체는 이미 이륙 전부터 조정되어 있었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 임무에 차출된 파일럿들은 제각기 격납고에 서서 점점 격해지는 기체의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기체 내부의 통신기로 함장의 결연한 목소리가 울렸다.
〔부디, 무사 생환을 바란다. 제군의 앞길에 행운이 가득하길.〕
쿠우우웅!
특임대를 태운 비행함이 급강하한다.
나이트메어는 물론 공중에 날아다니는 마수들을 피하고자 한계까지 높인 고도였기에 밀려오는 압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으윽…….〕
〔크으으윽…….〕
고된 훈련을 받거나, 혹은 살아남음으로써 강해진 나이트 프레임 파일럿마저 일순간 고통에 신음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끼이익-!
기체 바로 아래 위치한 통로가 열리고, 어깨에 별도의 두꺼운 케이블이 연결된다.
단테는 직접 연결되지 않았음에도 어깨에 느껴지는 감촉에 무심결 시선을 돌렸다.
그때 문득 그의 시선에 기체에 오르지 않고 천천히 열리는 격납고의 문을 바라보는 이들이 담겼다.
세로스, 데미안, 헤라.
모두 에이스라고 공표된 이들이다.
더욱이, 내심 단테도 궁금한 4세대 기체를 가진 이들이기도 했다.
오직 그들만은 다른 이들과 달리 기체에 오르지 않고, 이륙할 당시 양산형 기체를 실었던 문 앞에 서 있었다.
‘뛰어내리기라도 하려는 건가.’
과거라면 의문을 가졌겠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이 세계의 마도 공학과 마도구에 익숙해졌기에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4세대 나이트 프레임은 일반 양산형과 달리 ‘마스터 키’라는 작은 마도구에 기체를 보관할 수 있다고 했으니…….
다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내심 흥미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삐이이이이.
그때 마침내 목표한 고도에 다다랐는지 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각 기체의 발밑에 열린 통로로 일제히 기체들이 빨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좁은 통로로 기체가 지나며 소리가 울린다.
채 10초가 지나지 않아 비행함의 바닥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단테는 머잖아 기체가 족히 수백 미터는 넘는 곳에 케이블에 의지하여 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찰나였다.
떨어져도 기체에 손상이 없을 때까지 케이블이 내려지자, 케이블 자체가 뚜둑- 끊어지며 기체를 떨어트렸다.
쿠웅, 소리와 함께 기체가 대지를 디뎠다.
이윽고 기체들이 완전히 착지를 마치자, 그들은 어깨에 연결된 케이블의 잔재를 잡아 바닥에 버리곤 전황을 파악했다.
〔특임대 지원 중대다! 지원이 필요하다!〕
콰아아앙!
콰과과과광!
때마침 포격 소리와 병사들의 외침이 생생히 들려왔다.
단테가 시선을 돌리자, 본성의 입구로 보이는 곳, 폐허가 된 마을 앞에서 마수들과 교전 중인 병사들이 보였다.
지원 중대로 투입된 이들이었다.
나이트 프레임이 가장 취약한 하강 시간을 벌기 위해 한발 앞서 투입된 그들은 정예답게 수백에 달하는 중급 마수들을 상대로 시간을 벌고 있었으나, 그것도 지원이 없다면 그리 길게 이어지진 못할 듯했다.
〔지원해!〕
〔산개해! 최대한 피해를 줄이되, 버릴 땐 확실히 버려야 한다!〕
그들의 지원 요청에 제국군 소속 기갑 파일럿들은 곧바로 제각기의 무기를 들고 마수들을 향해 돌진했다.
〔흐아아아!〕
끼기긱, 소리를 내며 거대한 중갑을 입은 거인이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자 뻗어진 촉수가 콕피트를 노렸으나, 미스릴과 강철이 섞인 중갑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프에에엑!
마치 개구리에 다리를 수십 개 붙여 놓은 듯한 중급 마수는 푸른 피를 토하며 머리가 으깨졌다.
뒤이어 꿈틀거리며 재생하려는 놈의 두개골 사이로 병사 한 명이 수류탄을 던졌고, 그대로 콰아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머리였던 고기 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족히 위라트 요새와 비견될 만한, 아니 그보다 더 큰 본성의 성문 앞에 순식간에 수십의 시체가 쌓였다.
단테 역시 달려드는 중급 마수 2마리를 단번에 베어 넘긴 후, 이어 달려드는 마수에게 향하려 할 때였다.
“사, 상급 마수들이다!”
궤도차 위에 놓인 포탑을 조준하던 장교가 외쳤다.
그의 말에 따라 시선을 옮긴 단테는, 입을 쩍- 벌린 채 입질하는 중급 마수의 미간에 정확히 검을 박아 넣었다.
콰드득!
뼈는 물론 뇌까지 단번에 꿰뚫어 버린 검격의 서늘한 울림이 울렸다.
그러나 단테의 관심은 고작 중급 마수에게 향하지 않았으니.
“많군.”
-캬아아아아!
-쿠어어어어어어!
무너진 성문 너머로, 족히 백은 넘어 보이는 상급 마수들이 밀려온다.
놈들은 한시라도 빨리 인간을 죽이겠다는 듯, 때때로 성벽까지 부수며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예상은 했지만…….〕
〔많기도 하네.〕
단테와 마찬가지로 중급 마수들을 손쉽게 사냥하던 리베라와 로한의 목소리가 울리고, 특임대를 보조하기 위해 투입된 중대는 다급히 외쳤다.
“수가 너무 많습니다! 이대로라면 전멸……!”
정예라는 뜻이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다.
비록 덤덤히 죽음을 감내하며 전장으로 향한 그들일지라도 눈앞에 직면한 공포에는 떨 수밖에 없었다.
쿠우웅! 쿠웅-!
묵직하고 제멋대로인 발걸음이 성문을 통과하고, 선두에 선 나이트 프레임을 향해 밀려왔다.
그 모습을 본 단테는 곧바로 앞으로 쏘아지듯 달리며 밀려오는 상급 마수들을 베어 넘기려 했다.
그러나 그때.
〔상부가 원하는 건 20분이니까…….〕
통신기 너머로, 여태껏 들리지 않던 세로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상급 마수에게 거의 근접한 단테의 머리 위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추락하는 소리가 울렸다.
“무슨……?”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이내 그 자리에 멈춰선 후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비행함에서 떨어져 내리는 세로스를 바라보았다.
맨몸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흡사 자살을 연상토록 만들었으나, 통신기 너머의 반응은 실로 덤덤했다.
〔끝이군.〕
다름이 아닌 로한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순간.
“…….”
세로스의 입이 달싹거린다.
동시에 그의 마나 하트가 꿈틀거리고, 일순간 섬광이 일대를 뒤덮었다.
파아앗!
콕피트 너머로 비치는 강렬한 빛과 마나의 폭풍에 단테 역시 눈살을 찡그렸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세로스, 아니 세로스의 기체를 본 단테는 무심결 중얼거리고 말았으니.
“……말도 안 나오는군.”
푸른빛이 도는 장갑이 철그럭거렸다.
양산형 기체보다 2배는 거대한 프레임이 사소한 움직임에도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이내 손에 쥔, 마치 마상 경기에나 쓸법한 푸른 렌스가 대지에 꽂혔다.
쿠웅, 소리와 함께, 세로스는 말했다.
〔19분 안에는 복귀하자고.〕
그리고 그때.
통신기 너머로, 제국군 소속의 한 파일럿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게 바로……. 플라네스?〕
플라네스.
룬어로 해석하자면, 유성(流星).
마침내, 유성이 둥지에 꽂힌 것이다.
기갑천마
둥지 파괴 (4)
콰아앙-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세로스의 푸른 기체를 뒤따라 제각기 금색과 갈색을 베이스로 한 기체가 섬광과 함께 지상에 닿았다.
〔이야, 플라네스 오랜만에 본다.〕
데미안의 목소리였다.
그의 기체는 오직 2족 보행만 가득했던 양산형 기체들과 달리 사뭇 기괴했으니.
다름이 아닌 말과 사람을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 흔히 반인반마라고 불리는 전설 속의 요괴처럼 말이다.
특히 기체의 외향이 갈색과 검정이 섞여 더욱 그랬다.
그뿐인가.
〔소령님, 전장입니다. 집중하시길.〕
헤라의 기체는 대지에 닿지 않았다.
어떤 금속으로 만들어졌는지 가늠도 가지 않은 거대한 날개가 유기적으로 펄럭이며 그녀를 허공에 띄웠다.
거기에 금색과 흰색이 섞인 장갑은 마치 천사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코르디스, 그리고 글로리아.〕
단테가 그들을 응시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인지, 뒤에 선 로한이 말했다.
〔용기, 그리고 영광이란 뜻이야.〕
그 순간, 대지에 꽂혔던 플라네스의 거대한 렌스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뽑혔다.
그러자 상급 마수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으나.
우우웅.
기체 안, 콕피트에 타고 있는 세로스의 마나 하트가 일순간 꿀렁거렸다.
그리고 곧 그의 기체와 걸맞은 푸른…… 아니, 때때로 녹색 빛이 도는 오러가 렌스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런 렌스의 앞으로 흑백사의 쩌억 벌려진 그 순간.
세로스는 렌스를 뻗었다.
소리조차 없다.
단지, 뻗어지는 섬광이 일순간 놈의 몸을 꿰뚫었다.
긴 선이 유성의 꼬리처럼 그어진다.
-캬아?
당혹감, 아니 공포일까.
흑백사는 순간적으로 몸이 부풀어 오름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하나 놈이 내뱉는 단말마는 유언이 되었다.
파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흑백사의 육신이 허공에 잠깐 떠오르며 반으로 갈라졌다.
곧 좌우로 떨어진 육신의 안쪽은 새카맣게 탄 후였다.
〔아무리 봐도 사기라니까.〕
리베라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투덜거리며 앞에 있는 중급 마수의 팔을 으깼다.
단테는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의 팔걸이를 쓸었다.
‘어째서 양산형이라 불리는지 이제야 알겠군.’
성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때때로 상승 무공을 사용하였을 때 망가지는 기체가 조금은 불만이긴 했으나, 딱 그 정도였다.
하나 실제로 조작해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유려한 움직임을 보이는 3기의 4세대 나이트 프레임은 그 자체로 기체라 부르기도 모호할 정도로 매끄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그래, 마치 인간과 닮았다.
-크아아아아아아!
그러나 단테의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으니, 일전에 병사들을 덮쳤던 언데드 비스트의 포효 때문이었다.
놈은 척추가 드러나는 입안을 여실히 보여 주며 제일 먼저 돌진했고, 뒤이어 다른 상급 마수들 역시 그들을 향해 밀려왔다.
내딛는 걸음에 때때로 죽은 마수가 밟혔다.
그뿐인가.
거대한 상급 마수들은 대지에 구덩이를 만들고 성벽과 건물들을 부수며 오직 둥지를 침범한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달렸다.
인간을 만만히 본 것도 있다.
하지만 곧 그들의 안광이 붉게 물든 것은 유전자에 각인된 대군주의 명령 때문이었다.
-목숨을 바쳐서 둥지를 지켜라.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목숨 따위는 하등 가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오직 동족을, 그리고 대군주를 위해 태어난 것이 자신들이었기에.
-쿠어어어어어!
-끼레에엑!
흉흉한 안광이 번뜩인다.
그런 상급 마수들의 포효에 중급 마수들 역시 몸을 부르르- 떨며 미친 듯이 주변에 있는 적들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상급 마수는 우리가 맡습니다! 중급 마수를 정리하세요!〕
헤라 대위의 명령에 제국군은 곧바로 일사불란하게 지원 중대와 협력하여 중급 마수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쏘아진 포에 마수가 쓰러진다.
때때로 총탄이 눈에 박혀 눈이 터졌고.
이어지는 나이트 프레임들의 공격에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수가 빠르게 줄었다.
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단테는 검이 쥐어지지 않은 왼손으로 중급 마수의 머리를 으깼다.
문득, 그의 시선이 상급 마수를 상대하는 3기의 기체에 닿았다.
제각기 유성, 용기, 영광을 뜻하고 있는 기체들이 전장을 종횡한다.
데미안은 마치 말을 탄 기사처럼 상급 마수들 사이를 내달리며 거대한 낫으로 몸을 찢었다.
뒤이어 섬광처럼 뻗어진 렌스가 꽂히고, 하늘 위에선 타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헤라의 손에 들린 저격 총이 불을 뿜었다.
“음.”
단테는 어느새 주변에 중급 마수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근처에 있던 놈들은 모조리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상급 마수는 아직 수가 많았다.
그 때문에 단테는 상급 마수들을 죽이기 위해 단전을 움직였다.
콰득-!
일순간 단테가 탄 기체의 발끝이 대지를 파고들었다.
동시에 하단 부분에 연결된 케이블이 폭발적인 내력에 부풀고, 머잖아 대지를 박찬 그때.
콰아앙!
마치 폭음과 같은 소리를 내며, 대지를 박차 그대로 상급 마수에게 쇄도했다.
그리고 뒤늦게 그 모습을 본 헤라가 경악하며 외쳤다.
〔저, 저런 멍청한……!〕
헤라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녀 역시 풍문을 들었다.
단신으로 백에 달하는 상급 마수와 맞섰다느니, 나이트메어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느니…….
하는 소문들을 듣고 얼마나 우스웠던가.
아니, 그건 불쾌함이었다.
말이 되는가.
이제 열여섯 살의 소년의 업적이란다.
물론 실제로 보고 생각보다 성숙해 보여 의외이긴 했으나 그뿐이다.
블랙 가드의 영웅 만들기.
딱 그 정도가 단테가 블랙 가드임을 아는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지극히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시선임과 동시에 이성적인 시선이었다.
그 때문에 헤라는 붉게 충혈된 안광을 번뜩이는 상급 마수에게 달려드는 단테를 향해 일갈하곤 곧바로 총구를 돌렸다.
그렇다 한들 이곳에 투입되었다는 건 인재라는 뜻이기에, 허무하게 죽일 순 없었다.
조준경에 단테의 기체와 마수가 비친다.
‘늦었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예상보다 단테가 접근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하지만 그뿐.
그녀의 눈에 비치는 단테는 단지 상급 마수의 먹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나 그때.
스릉.
분명히 마수들의 포효와 전투의 잡음으로 가득 찬 전장 속, 단테의 검이 뽑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래, 분명히 나이트 프레임에 지급되는 미스릴 소드에는 검집이 없을 텐데…….
“무슨-.”
헤라의 입술이 달싹였다.
스치듯 지나간 허상에 마수의 미래가 보였다.
그리고 머잖아 묵빛 섬광이 일순간 허공에 반월을 그렸다.
“……소문이.”
헤라는 무심결 손에 쥔 저격 총을 내렸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지상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소문이, 사실이었다고?”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난 그때.
서걱, 투웅-.
거대한 늑대와도 같은 모습을 했던 상급 마수의 목이 붉은 핏물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대지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