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하게도 싸우네.”
로한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비행함 아래로 빠르게 지나가는 전장을 응시했다.
단테 역시 거추장스러운 코트는 벗어 둔 채 시선을 내렸다.
동이 트자 진입된 2개 사단은 곧바로 마수들을 타격하며 빠르게 돌진했다.
때때로 상급 마수들이 병사들과 나이트 프레임을 죽이긴 했으나, 압도적인 화력 속에서 그저 피를 흘리며 쓰러질 뿐이다.
“여기 있었네?”
그때 객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로한은 빠르게 ‘화장실이…….’ 따위의 중얼거림을 내뱉고 밖으로 사라지자, 세로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런 놈이 무슨 블랙 가드라고.”
살짝 시선을 뒤로 향하자, 늘 그의 곁에 붙어 있는 마리가 보였다.
그녀는 단테가 자신을 바라보자 살짝 고개를 숙였다.
“끙차.”
그러거나 말거나, 세로스는 아주 익숙하다는 듯 객실 자리에 앉고는 단테에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직 시간이 좀 있는데. 얘기 좀 하자고.”
“예, 그러시죠.”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다.
단테가 자리에 앉자 세로스는 품에서 작은 힙 플라스크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고 슬쩍 단테에게 건넸다.
“한잔?”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라고 중얼거린 세로스는 살짝 고개를 기울여 술을 한 모금 머금었다.
간단하게 가지고 다니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힙 플라스크였으나 마법이 실존하기에 상태는 병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크!”
세로스는 알싸한 알코올이 목젖을 때리는 것을 느끼며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곁에서 마리가 업무 중에 술을 마시냐는 듯 타박하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그뿐이었다.
“협박이라도 당했냐?”
뜬금없이 내뱉어진 말이었으나, 뜻을 모를 리가 없다.
단테는 그의 말을 묵묵히 곱씹다가 답했다.
“뭐, 지쳤을 때 잡혀가긴 했습니다.”
사실이다.
반쯤은 방심이었고, 반쯤은 어떻게 되어도 딱히 상관은 없다는 무심함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 블랙 가드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웃음기가 찬 눈에 일말의 불쾌함이 찼다.
동시에, 그는 반쯤 찰랑거리는 술을 단번에 들이켜곤 말했다.
“나올 생각은?”
진지한 목소리다.
원하면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테는 고개를 저었다.
“흥미가 생겼습니다.”
언젠가부터 느낀 이질감이자 흥미다.
놈들이 가진 신념과 목표, 조직이 가진 모습과 체계 등…….
단테는 어느 순간 생각했다.
한번 훑어볼 재미는 있겠다고.
더욱이 단장이 되면 4세대 나이트 프레임도 준다고 하지 않던가.
“흥미라…….”
잠시 그 말을 곱씹던 세로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고는 무심결 중얼거렸다.
“아, 진짜 아까운데.”
처음에는 단지 실력을 보았으나, 때때로 들려오는 풍문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다시 조우한 단테는 실로 재미있는 후배였다.
“그래, 뭐…… 알아서 잘하겠지.”
비록 만난 시간이 많지 않았으나, 온갖 인간 군상과 마주하며 로열 가드의 단장까지 올려놓은 직감이 말하고 있다.
이놈은 범상치 않다고.
그때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흐응, 세로스. 지금 우리 단테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간단히 세수라도 한 듯, 턱을 따라 물방울이 흘렀다.
비행함의 진동에 따라 머리가 흔들리고 검은 제복 사이로 도드라진 흰 피부가 보였다.
대화가 대화인 만큼 당황할 법도 하건만.
세로스는 오히려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너희들 일 처리가 더러우니까.”
“그건 인정!”
리베라 역시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일순간 마주친 둘의 시선이 달갑지 않았다는 건 단테와 마리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묘한 정적이 흐른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비행함이 우우웅- 따위의 소리를 내며 갑작스럽게 하늘 위로 솟구쳤다.
“으음.”
세로스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울리고, 리베라는 세수를 하며 물기가 묻은 앞머리를 털며 묵묵히 제복을 걸쳤다.
그리고 단테 역시 자리에서 일어난 그때.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울리며 통신기에서 살짝 노이즈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함장이 전파한다. ……아군 상공에 네임드, 나이트메어가 등장했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과연, 함장의 말이 옳았다.
온몸에 가득한 깃털과 말을 연상시키는 몸뚱이, 그리고 등에 달린 4쌍의 날개와 불길한 기세를 뿜는 안광까지.
-아아아아아.
네임드.
나이트메어(Nightmare)였다.
기갑천마
둥지 파괴 (3)
-아아아아아.
특유의 거대한 육신이 드물게 지상과 가까워졌다.
동시에 4쌍의, 총 8개의 날개가 마치 원을 그리듯 펼쳐지고, 놈은 격양된 음성으로 외치는 듯했다.
감히,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발을 디뎠느냐고.
본디 인간의 대지였던 곳에 선 마수가 선언한다.
이 땅은 나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며, 조물주이신 대군주의 것이라고.
“……개소리를.”
비록 말을 알아듣진 못했으나, 모두가 놈의 ‘선언’을 느꼈다.
그렇기에 돌려줄 대답은 하나뿐인 것이다.
“전군, 발포하라!”
모선의 포탑들이 움직인다.
나이트 프레임들이 쥔 총구가 놈을 향했고.
포병대의 장교들은 사수들을 재촉하며 빠르게 포대를 올렸다.
“허.”
이어지는 포격을 본 단테는, 내심 장관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앙!
뻗어지는 포탄이 놈의 장막을 부술 듯 때린다.
우우웅!
과열된 마석이 진동하고.
콰과과과광!
이윽고 쏘아진 수백, 수천 발의 포탄에서 뿜어낸 열기와 파괴력이 거대한 육신을 뒤덮듯 쇄도했다.
연기가 일대를 뒤덮는다.
그럼에도 제국군은 포격을 멈추지 않았고, 마수들은 천지가 뒤흔들리는 굉음에 포효했다.
구름과 마주할 정도로 높은 고도임에도 연기가 일순간 시야를 가릴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리고 특임대는 그사이에 빠르게 나이트메어를 지나 산맥을 넘었다.
비록 한참은 높은 고도임에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
일순간 ‘공간이 뒤틀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의 포격이었음에도 기체 내부는 매우 조용했다.
경험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 나이트메어가 고작 저런 공격에 죽을 리가 없다는 것을.
“……연막 값으론 너무 비싸.”
그 때문에 세로스는 무심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조금 전 포격은 의도한 연막이었다.
나이트메어가 특임대가 탄 비행함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반쯤은 도박이었다.
미리 우회하여 진입하는 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게 아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너무 부족했다.
세로스는 비어 버린 힙 플라스크를 대충 품에 구겨 넣으며 입맛을 다셨다.
‘둥지를 너무 늦게 발견했어.’
조금만 더 빨리 발견했더라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그때였다.
그들이 자리한 객실 밖에 일련의 발소리가 들렸다.
머잖아 문이 열리고 중사 계급을 단 비행함의 승무원이 경례를 올리며 말했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함장님께서 목표 지점에 곧 도착하니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절도 있는 경례와 함께, 제국군 특유의 간결한 군복의 끝자락이 흔들린다.
그리고 그 순간.
단테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거참, 겁이 없는 건지…….”
둥지 파괴.
그 말만 들어도 지레 겁을 먹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부화가 임박한 둥지라면 더더욱.
이유는 간단하다.
생환율이 절망적이니까.
그런데 단테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그러게 말이야.”
그리고 그런 단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세로스와 리베라는 그 말을 끝으로, 마찬가지로 망설임 따위는 없는 발걸음으로 객실 밖 격납고로 향했다.
“에휴, 내 팔자야.”
객실 밖으로 나서자, 언제 돌아왔는지 로한이 붉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이내 단테를 비롯한 모두가 객실 밖으로 나와 격납고로 향하자 묵묵히 그 뒤를 따를 뿐이다.
터벅, 터벅…….
비행함의 복도를 지난다.
복도의 조명이 깜빡거리고, 증기와 마나로 과열된 파이프가 달아오르며 끼긱거렸다.
그런 그들을 마주친 승무원들은 경례를 올렸다.
“제국에 영광을, 무사한 생환을.”
2개의 복도를 지났다.
1개의 로비를 지났고, 마침내 격납고에 다다랐다.
이미 격납고엔 블랙 가드와 로열 가드를 제외한, 순수 제국군 기갑 장교들이 기체를 정비 중이었다.
“아, 왔네?”
그때 다른 이들과 달리 구석에 한 여자와 대화를 나누던 금발의 남자가 그들을 발견하고 반가운 표정으로 외쳤다.
“세로스!”
그가 세로스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자, 함께 서 있던 여자도 함께 다가왔다.
하나, 그와 달리 적잖이 불편한 표정이었다.
“비행함에 오를 때도 봤으면서 반가운 척은……. 데미안.”
“뭐야, 반응이 왜 그래? 나름 반갑게 반겨 줬는데.”
금발의 남자.
데미안은 세로스의 반응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투덜거렸으나,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사뭇 세로스와 닮아 있었다.
그때 단테의 뒤에 서 있던 로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친구끼리는 닮는다더니.”
이번에는 드물게 단테도 동의하는 바였다.
생긴 모습을 빼면 세로스와 닮은 모습이 보였으니.
한편 세로스는 뒤에 서 있는 이들에게 데미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 데미안 소령. 보이는 건 좀 가벼워 보여도 나름 제국군 에이스라고 불리는 놈이지.”
“반가워, 블랙 가드 친구들.”
데미안의 입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갔다.
뒤에서 어딘가 불편하게 서 있는 여자와 달리, 데미안은 일말의 선입견도 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아차!’ 싶은 얼굴로 뒤에 선 여자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내 정신 좀 봐. 이쪽은 나랑 마찬가지로 에이스인 헤라인데…….”
데미안의 소개에 차가운 인상을 한 여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헤라 대위에요.”
내뱉어진 말은 존대였으나, 그녀의 시선은 오직 세로스와 마리에게만 향했다.
그런 태도로만 봐도 적잖이 블랙 가드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가늠토록 만들었다.
그 때문에 리베라는 특유의 쾌활한 음성에 비웃음을 담아 뭐라고 말을 하려 했다.
쿠우웅!
갑작스럽게 흔들린 비행함과, 이어진 함장의 방송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도착 5분 전.〕
목적지가 정해진 일이기에, 굳이 주어를 말할 필요도 없다.
“자, 인사는 나중에 살아서 하고.”
그렇기에 리베라는 언제 비웃음을 머금었냐는 듯 활기찬 표정으로 돌아와 손뼉을 짝, 하고 치며 말했다.
“할 일이나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