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내정된 작전이었던 만큼,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장교들 역시 마음의 준비는 모두 해 놓은 듯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없었다.
모선급 비행함 5척과 수십 척의 호위·전투함이 정비를 끝내고 이륙 허가를 기다린다.
궤도에 실어 이동을 가능하게 만든 마력포들이 속속들이 요새 밖으로 떠났고, 병사들은 유서를 쓴 채 묵묵히 지휘를 따라 군장을 챙겼다.
그리고 그건, 세실을 비롯한 유엘과 페고르도 마찬가지였다.
“대위님, 다 챙겼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유엘 하사.”
유엘과 페고르는 연대 임무를 끝마치고 정식으로 하사 계급을 받고 임관되었다.
그리고 세실은 가장 똘똘했던 둘을 로한의 빈자리에 채워 넣고 북부로 향했다.
“하아…….”
대위 계급장이 각인된 외투를 입고, 배정받은 격납고로 향한다.
그들은 모두 기갑 장교였기에 평원 전투에 배정되었다.
그때 묵묵히 격납고 안에 들어선 그들의 귓가로 정비공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특임대에 그 소위도 들어갔다며? 그렇게 잘 싸우냐?”
“난들 아냐. 직접 보지도 못하는데. 그런데 듣기로는 전투 한번 다녀오면 정비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라던데?”
“오래 살기는 글렀구먼.”
뒤에서 유엘이 물었다.
“……단테,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하지만 세실이라고 알 리가 없다.
다만 블랙 가드에 들어갔으리란 추측만을 해 볼 뿐.
때문에 세실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잘해 낼 거다. 원래 그랬으니.”
“……그러겠죠.”
페고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단테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걸 똑똑히 기억하는 그로서는, 이것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의 최선이었기에.
“어.”
그때 유엘이 발걸음을 멈췄다.
자연히 세실과 페고르의 시선도 그녀를 따라 돌아갔고, 곧 비행장으로 향하는 일련의 장교들과 중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이 적지 않았다.
세로스와 마리, 로한과 그의 곁에 있던 은발의 여자, 마지막으로 단테까지.
그러나 그뿐.
그들을 발견한 3명과 달리, 곧바로 비행장으로 향한 그들은 곧 뒷모습만을 보이며 사라졌다.
“특임대, 위험하겠죠?”
유엘의 목소리에 세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할 거다.
무려 네임드의 둥지를 파괴하는 임무이니.
그런데 왜일까.
세실은 얼마 전 달빛이 비치는 호수 위에 있던 단테를 떠올리곤 중얼거렸다.
“글쎄…….”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이 내뱉어진 직후.
특임대를 태운 비행함이 하늘로 떠올랐다.
기갑천마
둥지 파괴 (2)
동이 터 왔다.
해가 떠오르고, 밤새 뒤덮인 눈 위로 주홍빛 하늘이 드리웠다.
그리고 그런 숲 사이로 궤도에 탑재된 마력포가 무거운 소리를 내며 돌진했다.
쿠구구궁.
고요한 숲속에 묵직한 기계음이 울렸다.
체인이 회전하고, 마석의 충전량을 알리는 불이 때때로 깜빡였다.
군인들은 묵묵히 철모를 눌러쓰고 서늘하다 못해 차가운 총을 쥔 채 앞으로 걸었다.
저벅, 저벅- 따위의 발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머잖아 잠에서 깨어난 마수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다가오는 개미들을 응시했다.
붉은 안광이 깜빡인다.
누런 침이 흰색과 검정이 뒤섞인 대지 위로 추락하고, 뒤틀린 육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놈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 전, 하늘을 뒤덮은 비행함의 포대들이 불을 뿜었다.
콰아아앙!
콰과과과광!
적색, 녹색, 푸른색…….
수많은 섬광이 서늘한 한기가 맴도는 숲을 녹일 듯 쏘아진다.
긴 선을 그리고 일순간 사라진 불꽃이 대지를 뒤덮고 사방에 핏물을 흩뿌린다.
“포병대!”
하급 마수들 태반이 하릴없는 비명조차 내뱉지 못하고 산화했다.
백색의 눈은 녹아내리고, 그 자리는 시체가 뒤섞인 진창으로 변했다.
서늘한 감촉의 그립을 쥔다.
장교의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긴다.
타다다당! 타다다다다!
금속으로 만든 총구의 끝에서 수많은 죽음이 흩뿌려진다.
간신이 폭격에서 목숨을 부지한 마수들 역시 수백, 수천, 수만 발에 달하는 총탄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궤도가 돈다.
마력 포대가 바쁘게 움직이며 놈들을 조준하고, 일순간 쏘아진 포는 단번에 놈들을 갈아 버리기에 충분했다.
이른 아침의 겨울 숲이 불탄다.
언제나 한기가 맴돌던 공간에 매캐한 연기가 자리하고, 고통 섞인 마수들의 비명이 울린다.
-캬아아아아!
-크아아아!
그때 눈 속에 반쯤 파묻힌 채 잠을 청하던 상급 마수가 몸을 일으켰다.
요새보다 거대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괴한 육신이 일순간 몸을 부르르- 떨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쿠아아아아아!
온갖 동물들을 기워 놓은 듯한 육신이다.
또한, 온몸에 흐르는 진물이 악취를 풍겨 낸다.
그리고 그 순간, 놈이 뼈가 드러난 4개의 다리를 움직여 병사들의 위로 도약했다.
“도, 도망쳐!”
“상급 마수, 언데드 비스트다!”
파르르, 놈의 입꼬리가 떨린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당황하긴 했으나 그래 봐야 고깃덩어리 아니겠는가.
때때로 쏘아진 총탄과 포격이 육신을 조각내고 터트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콰아앙- 따위의 소리와 함께 놈의 육신이 대지를 밟았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 줘! 살려 줘!”
유서를 적었던 손이 뜯겼다.
군번줄이 감겨 있던 목이 짓눌리고, 뇌가 조각나 사방으로 흩어진다.
-키에에엑!
-커헝!
상급 마수가 돌진함으로 만들어 낸 공백 너머로 살아남은 하급 마수들과 중급 마수들이 일제히 돌진한다.
병사들이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방아쇠를 당기고 수류탄을 던졌으나, 일개 인간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족히 작은 마차와 같은 크기를 가진 마력포가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아 진창에 처박혔다.
마수들의 이빨과 발톱, 촉수와 독에 얼굴이 짓눌리고 몸이 터져 나갔다.
“아, 아아…….”
이름 모를 병사의 철모가 흘러내렸다.
상병이라 적힌 계급이 무색했다.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아마 병장이 되겠지.
아니, 어쩌면 하사가 될 수도 있다.
왜냐고?
이미 태반이 죽었으니까.
“피, 피…….”
군화에 핏물과 함께 사람이었던 고깃덩어리가 물컹, 하고 밟혔다.
시선을 내리니, 군번줄이 밟혔다.
떨리는 손으로 쥐고 훑으니 익숙한 이름이다.
‘분대장…….’
성격이 꽤 괜찮았던 사람이다.
얼마 전 제대 후에 고향에 살 집을 샀다고 자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멍한 눈으로 군번줄을 훑던 그의 세상이 어두워졌다.
아니, 단지 그림자가 드리운 것뿐이었다.
삐걱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어머니.”
온갖 동물의 사체를 주워 하나의 호랑이와 같은 모습으로 기우면 저렇게 생겼을까.
이빨 사이로 이름 모를 장교의 군복이 보였다.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탓이다.
총이 보이지 않는다.
큰일이다.
총이 있어야 자살이라도 할 텐데.
-크르르르.
침이 뚝, 뚝…… 떨어진다.
떨어진 침이 옷을 더럽히고, 머리카락을 떡이 지게 만들어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다가올 죽음에 떨고 있는 것 말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넓게 드리운 세상이 가느다란 선으로 암전되는 그 너머, 거대한 마수의 입을 끝으로 그는 삶을 포기했다.
그래, 분명히 그랬는데.
-끼기긱!
익숙한 기계음이 울린다.
‘혹시?’라는 일말의 희망에 눈을 뜬 그는 곧 힘겹게 상급 마수를 막아 내고 있는 거인을 보며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나이트 프레임…….”
미스릴 장갑과 강철이 섞인 갑옷의 겉이 상급 마수의 이빨에 긁혀 긴 선을 그렸다.
〔움직일 수 있겠나?〕
조금은 무뚝뚝하지만 우려가 담긴 목소리가 울린다.
동시에 케이블과 관절부가 도드라진 팔이 꿈틀거리고, 놈의 공격을 막고 있는 거대한 창에 녹색 마나가 일렁인다.
“아……. 예! 우, 움직일 수 있습니다!”
〔상처가 심하군. 빠르게 이탈해라.〕
얼굴조차 보지 못한 기갑 장교의 목소리에 뒤늦게 고통이 밀려왔다.
조금 전 상급 마수가 돌진하며 돌멩이라도 튀었는지 뺨과 팔에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뺨은 그나마 괜찮은데 팔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파여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는 다급히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풀린 다리를 언제 일으켰는지 모른다.
지금 뇌리를 가득 채운 것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자신을 살려 준 저 기갑 장교에 대한 감사함뿐이었다.
그리고 멀어지는 병사와 달리, 각기 아틀라스와 자이언츠라는 이름이 붙은 기체가 달려와 상급 마수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세실 대위님! 엄호하겠습니다!〕
-크허어엉!
포효를 터트렸다.
살덩이가 떨어져 뼈가 드러남에도 놈은 몸을 떨며 세실의 기체를 향해 입질을 뻗었다.
그러나 그 순간.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놈의 입에 정확히 포격이 꽂혔다.
그러나 포를 쏜 것은 비햄함이나 포병대가 아닌 페고르의 손에 들린 172mm 바주카였다.
〔흐아아압!〕
뒤이어 유엘의 손에 들린 미스릴 소드가 그어지고, 상급 마수는 고통 섞인 괴성과 함께 단번에 세실의 창을 밀어냈다.
〔물러서!〕
애초에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아까 도망친 병사를 비롯하여 상급 마수의 사정권 안의 군인들이 모두 물러났으니 더 이상의 교전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커허어엉!
사체를 누더기처럼 기운 듯한, 그러나 엄청난 크기의 앞발이 유엘을 노리고 뻗어진다.
페고르가 뒤늦게 포를 쐈으나 이미 늦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세실은 당황하지 않았다.
단지 콕피트 내부에 비치된 시계를 응시하다가 이내 나지막이 중얼거릴 뿐.
“지금.”
새벽 5시 29분을 가리키던 분침이 30분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순간.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엘을 노리고 앞발을 뻗던 상급 마수가 멈칫했다.
-커헝?
의문 섞인 목소리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순간 십자 모양으로 섬광이 번뜩인 구름 저편을 바라본 순간.
우우웅!
남색의 하늘과 구름을 가리는 거대한 모선의 주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타격점은 단 하나.
죽어야 했으나 죽지 못한 거대한 마수일 뿐이다.
이윽고 섬광이 뻗어진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지축을 울렸고, 콕피트 안에 타고 있음에도 열기가 뚫고 파일럿들을 스친다.
세실은 그야말로 증발한 상급 마수의 흔적을 묵묵히 응시하다가, 끼긱-거리는 관절을 움직여 창을 쥐었다.
〔소대. 진입한다.〕
그녀의 명령에 유엘과 페고르가 기체를 바로잡았고, 뒤이어 궤도차 뒤에서 충격을 피한 그녀의 소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철컥, 스윽- 따위의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전 제국군의 무전 너머로, 이번 작전의 총 지휘관인 리모튼 드 록펠트린 중장의 목소리가 울린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전쟁이 시작될 시기에 태어나, 일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노장이 말했다.
〔죽이고, 살아남아라. 후방에 있는 가족을 위해서.〕
제국을 위해서, 내지는 미래를 위해서라는 상투적인 개소리를 지껄이지 않는다.
다만 개인을, 나아가 가족을 위해 싸우라 말했다.
그 때문에 쓰러진 군인은 총을 쥐었다.
궤도차라 명명된 이동식 마력 포대가 앞으로 돌진했고, 수백에 달하는 나이트 프레임이 나무를 베고 마수들을 베어 넘긴다.
그렇게 초토화된 지상으로, 특임대가 탄 고속 비행함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