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임대 구성은 그리 큰 비밀이 아니다.
애초에 몇 번이나 전적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제국군의 적이 같은 인간이 아닌 마수였으니까.
다만 회의장 자체는 여러 가지 마법적 장치가 구비된 암실에서 진행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국군이란 깃발 아래에 선 이들이라도 제각기 지향하고 목적하는 바는 다르기 마련이었기에.
자리에 모인 것은 총 3개의 세력이었다.
위라트 요새에 주둔하는 8군단의 수장이자 공작인 리모튼 드 록펠트린 중장을 위시한 제국군의 귀족 장교들.
제4 황녀, 시리아 폰 레벤스라트를 위시한 로열 가드.
마지막으로 단테를 비롯한 블랙 가드들까지.
각각 귀족과 황실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동시에 같은 진영이었으나 지향하는 바가 다른 이들이기도 했다.
특히 귀족들이 블랙 가드를 보는 눈은 절대 곱지 않았다.
-아마, 널 죽어라고 노려볼걸.
단테는 문득 회의장 안에 들어오기 전, 리베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단테를 노려보는 시선들이 꽤 매섭다.
-당연하지. 귀족들 태반이 저들이 뭔가 특별하고 대단해서 귀족으로, 나아가 장교가 된 줄 알거든. 그런데 평민, 그것도 데지안 왕국 출신이 갑자기 소위 계급장을 달았대. 얼마나 화가 나고 자존심에 금이 가셨겠어?
리베라의 말 안에는 비웃음이 가득 머금어져 있었다.
물론 자리가 자리인 만큼 어설프게 시비를 거는 이는 없었지만 말이다.
“먼저.”
그렇게 분위기가 한참 경직된 와중.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이 아닌 제4 황녀였다.
그녀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리모튼 중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특임대 건을 상의하기에 앞서, 제4 황녀인 저 시리아 폰 레벤스라트는 이번 둥지 파괴 작전에 제 직속 로열 가드를 배속할 정당한 권리를 황제 폐하께 이미 윤허받았음을 말씀드릴게요.”
특유의 잿빛 머리카락이 살랑거리고, 총명함을 머금은 눈이 노장과 맞닿았다.
리모튼 중장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확인했나이다, 황녀 전하.”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하필 이 시기에 북부로, 그것도 위라트 요새로 왔다는 대목에서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이들은 모두 예상하던 부분이었으니까.
시가에 불을 붙이기 전, 살짝 황녀에게 시선을 보내 허락을 구했다.
시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모튼은 치익, 습- 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시가를 물고 연기를 뻐끔거렸다.
살짝 붉게 타다가 이내 재가 되어 떨어졌다.
그는 묵묵히 몇 입을 더 태우다가, 탁자 위에 놓인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곤 시리아 황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면 몇 명을 생각 중이신지요.”
중요한 문제다.
특임대.
비록 임시라지만 말 그대로 특수한 임무를 실행해야 할 조직인 만큼 많은 수를 데려갈 수도 없을뿐더러 자칫 지휘 체계 자체가 흔들리면 둥지 파괴라는 선결 과제 자체가 어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로스 단장과 에이스급 실력을 갖췄다 평가받는 단원 3명 정도를 생각 중이에요.”
그의 물음에 시리아 황녀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그러자 리모튼 중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도합 4명.
마침 리모튼 중장이 생각한 마지노선에도 딱 들어맞는 수다.
‘황실에서 부담을 나눠주는 동시에, 감시하려 드는가.’
그리 기분 나빠 할 일만은 아니다.
비록 전례 없는 강력한 황권을 가지고 있는 황제라 하나, 전쟁이 지속되고 계급이 존속하는 한 귀족파와 완전히 대립할 수는 없다.
때문에 이번 로열 가드 포함은 그 자체로 황제가 주는 당근이자 감시역인 것이다.
‘문제는…….’
신경이 쓰이는 것은 황녀나 로열 가드가 아니다.
그는 한쪽 자리를 차지한 3명의 블랙 가드들을 훑으며 미간을 좁혔다.
비록 노장이 되었으나 그가 뿜는 기도는 범상치 않았다.
‘쥐새끼 같은 놈들.’
귀족파를 떠나 군인으로서, 또한 제국의 공작으로서 블랙 가드라는 단체를 좋아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당장 저 단테라는 소위만 봐도 그렇다.
-에이스급의 실력을 갖췄다 들었다.
물론 풍문이고 소문인 만큼 걸러서 들어야 할 정보도 꽤 있겠으나, 그렇다 해도 고작 부사관 교육을 받은 이가 아닌가.
과장도 과장할 무언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재능이 있다면, 아예 속 빈 강정이 아닌 이상에야 반드시 쓰임이 있고 말이다.
‘또 하나의 인재가. 쯧.’
길고 긴 전쟁에 한 명의 인재가 모자란 때다.
그는 입에 문 시가를 조금 깊이 빨아 한 모금 머금었다.
답답한, 어쩌면 짜증에 가까운 감정 때문이었다.
“저, 중장님.”
그때 리베라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인원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정적이 흘렀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녀가 블랙 가드임을 알고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 해도 일개 조장 따위가 감히 공작에게 먼저 물어볼 짬은 되지 않지 않겠는가.
“리베라 중위……!”
그 때문에 리모튼 중장의 부관이 무어라 말을 하려던 그때.
“이건 저도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만, 각하.”
이번에는 블랙 가드 쪽이 아닌, 황녀의 바로 뒤에 서 있던 세로스가 물었다.
때문에 리베라를 나무라려던 부관은 입을 다물었고, 리모튼은 무언가 심기가 불편한 듯 눈썹을 꿈틀거리다가 이내 답했다.
“그래, 슬슬 회의를 진행해야겠지.”
세력 간의 알력다툼, 내지는 감정싸움 따위에 시간을 쏟기엔 아깝다.
그는 부관에게 눈짓했고, 빠르게 표정을 수습한 부관은 언제 인상을 일그러트렸냐는 듯 회의장 벽면에 있는 지도의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먼저, 특임대는 20기의 나이트 프레임과 2개 중대 규모의 지원 병력으로 차출될 예정입니다.”
그들의 임무는 나이트메어 사냥이 아니라, 오직 둥지만을 파괴하는 일이다.
부관은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산맥을 지나 있는 구-위라트 본성을 짚고는 말을 이었다.
“먼저 이곳으로 2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투입 후, 나이트메어를 유인합니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울지 몰라도, 본성과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틈에…….
“둥지가 틀어진 후방에 특임대와 엄호 부대를 투입.
20분 안에 둥지를 파괴하고 본대와 합류 후 나이트메어를 죽이는 것이 최종 계획입니다.”
결국, 간단한 일이다.
시간을 끌 때 빈집을 털어 마수들이 그토록 아끼는 네임드의 새끼를 잡아 죽이는 것.
계획이랄 것도 없다.
이미 몇 번이나 쓰였던 작전이고, 그때마다 피해는 있을지언정 먹혀들어 갔던 작전인 것이다.
“작전 개시일은 동이 트는 새벽.”
리모튼 중장은 와인을 단번에 털어 넣고 탁, 하고 탁자 위에 잔을 내려놓으며 세로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나.”
호의보단 불편함이 담긴 목소리다.
하나 그런 그의 말에도 세로스는 특유의 호탕한 얼굴로 답했다.
“그럼요,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