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43화 (43/197)

그렇게 얼마나 로한의 지랄…… 아니, 발광이 이어졌을까.

머잖아 현실을 받아들인 로한이 추욱 늘어진 상태로 자리에 앉자, 그때까지 단테를 구경하며 딴짓을 하던 리베라는 반쯤 부서진 문을 닫고 사일런스 마법이 각인된 마도구를 꺼냈다.

우웅-거리는 소리가 울리며 장막이 방 안을 감싼다.

그렇게 방음이 되자, 리베라는 자리에 앉은 단테와 로한에게 말했다.

“자, 할 말이 많긴 하지만제일 먼저 이걸 말해야겠네.”

허리까지 내려온 긴 은발이 찰랑거린다.

나아가, 그녀는 특유의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임드가 남하한 이유를 찾았어.”

기갑천마

유달리 담배가 썼다

서서히 아침이 찾아오는 밤.

남색 하늘도 서서히 붉은 하늘에 잠식되고, 이내 지평선 너머에서 떠오른 해가 하늘색으로 물들인다.

달리던 기차가 덜컹, 하고 흔들린다.

단테는 흔들림에 따라 살짝 떨어진 머리를 다시 쓸어 넘기며 묵묵히 창밖을 응시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검은 터널 안으로 들어가자 창밖의 모습은 사라지고 객실 내부의 모습이 비쳤다.

“으음…….”

검은 배경에 군모를 푹 눌러쓰고 잠을 자는 로한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때마침 객실의 문이 열리며 리베라가 들어왔다.

“뭐야. 안 자네?”

리베라.

로한의 말에 따르면 블랙 가드 7단의 1조장을 맡은 여자.

그녀를 며칠간 곁에서 지켜본 단테의 감흥은 하나뿐이었다.

‘귀찮은, 그래도 뜻밖에 선을 지키는 여자.’

쓸데없이 밝은 척하는 성격 때문에 귀찮긴 했으나 그 이상 선을 넘은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예.”

단테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곤 터널을 벗어나 다시 펼쳐지는 기차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며칠 전, 호텔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정확히 로한의 발작이 시작될 무렵이었나.

-네임드가 남하한 이유를 찾았어.

리베라의 말에 로한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언제 발광을 했냐는 듯, 진지한 얼굴로 단테의 곁에 앉아 리베라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그녀 역시 품에서 작은지도 하나를 꺼내어 펼치곤 말을 이었다.

-먼저, 위라트 요새는 알지?

당연히 단테는 몰랐지만, 이어지는 리베라의 설명으로 대강 추측은 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저것 설명은 길었으나 요약하자면, 과거 권세를 누렸으나 마수 군단 침공 이후 멸문한 위라트 공작가의 마지막 성채라고 한다.

-공작가 멸문 이후 마지막 후손이 제국군에 성채를 매각하고, 원래는 병참 기지 정도로 쓰이다가 현재는 북부 최대의 격전지로 불리는 곳이야.

전선이 밀리고 밀린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트 프레임과 총이 제대로 보급되기 전에는 제도 근처까지 밀린 적도 있다고 하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몇 달 전부터 갑자기 공세가 더 강해졌다는 거고, 세계수 사건 이후로 모습을 감췄던 나이트메어가 인근에서 계속 발견되었다는 건데…….

처음에 상부에선 계속된 공세의 이유를 나이트메어가 남하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제국군 정보국이 숱한 요원들과 정찰기를 갈아가며 인근을 관측한 결과 애초에 전제부터 틀렸다는 걸 깨닫고 만 것이다.

-나이트메어 때문이 아니었어.

스윽.

리베라의 손이 지도에 표시된 위라트 요새를 한번 찍고, 앞의 산맥을 넘어 반쯤 지워진 위라트 공작가 본성을 가리켰다.

로한과 단테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우리가 생각하는 그게 맞느냐고.

-그래.

리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둥지야. 둥지가 생겼어.

둥지.

여러 가지 뜻이 있으나, 마수들의 둥지라면 하나뿐이다.

‘새로운 네임드의 탄생.’

단테도 몇 번이지만 본 적이 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이트메어라고 불리는 몽귀가 중원에서 태어난 네임드니까.

‘둥지. 둥지라…….’

단테의 시선이 창문 너머, 어딘가에 있을 둥지를 향했다.

느껴지거나 보이진 않았으나, 기억 한편에 자리한 모습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때 묵묵히 창문을 응시하던 단테의 귓가로 리베라의 쾌활한 목소리가 울렸다.

“뭘 그렇게 봐? 풍경 보는 게 재미있어?”

“예, 재미있습니다.”

“칫! 넌 재미없어.”

단테가 그녀의 성격을 대강은 파악했듯, 리베라 역시도 단테의 성격을 얼추 가늠은 한 상태였다.

‘뭐 이리 말이 없담.’

간간이 로한을 갈구는 재미는 있었지만, 그래도 워낙 과묵한 성격인지라 때때로 답답하다고까지 생각되는 것이다.

그때 그런 그녀를 구원하기라도 하는 듯 열차 내부 방송이 울렸다.

〔본 열차는 곧 위라트 역에 도착합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정차하기 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시고…….〕

‘아, 다행이다.’

리베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곤, 귀신같이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드는 로한에게 말했다.

“자, 갑시다. 단테 소위. 그리고 로한 중사!”

“아…… 탈영하고 싶다.”

물론 그 뒤에 이어진 로한의 중얼거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끼이익.

위라트 역에 열차가 정지하자, 곧 하급 장교 객실은 물론 대부분 객실에서 군인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도 그럴 것이, 위라트 역이라고 명명된 것으로도 알 수 있듯 군 거점이라는 걸 제외하곤 어떤 쓰임도 없어진 곳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작게나마 마을이 유지된 바크트와 비교하면 훨씬 더 극단적인 경우였다.

“하암.”

로한이 가뜩이나 게슴츠레한 실눈을 감으며 하품을 내뱉었다.

그 뒤로는 리베라가 하아, 하는 숨을 내쉬며 옷을 여몄고, 마지막으로 내린 단테는 소위 계급장이 각인된 모자를 눌러쓴 채 시선을 돌렸다.

날씨가 추웠다.

본디 바크트도 추웠으나, 이곳 위라트는 더욱 북쪽이기 때문인 듯했다.

“충성. 휴가 가십니까?”

“아니, 제대인데?”

“저, 저도 데려가십쇼. 제발…….”

“어림도 없지. 이쪽으로는 오줌도 안 쌀 거다.”

열차의 플랫폼에는 온갖 계급이 얽혀 있었다.

때때로 보급이나 면회를 온 민간인들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태반은 군인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요새니까.

“여긴 언제와도 짜증 나는군요.”

무심결 로한이 투덜거렸다.

이번만큼은 리베라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우리 정체를 아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

그녀의 말대로, 몇몇 높은 장성들은 로한과 리베라의 얼굴을 보곤 쯧, 하고 혀를 차거나 아예 무시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놓고 시비를 걸거나 정체를 밝히진 못하는 게 블랙 가드의 위상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어, 단테?”

“응?”

갑작스럽게 뒤에서 울린 목소리에 리베라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뒤따라 고개를 돌린 로한의 얼굴이 어색하게 변했고, 단테는 무심한 눈으로 열차에서 내린 이들의 얼굴을 응시했다.

“……뭐, 단테라고?”

뒤이어 귀에 익은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고, 제일 마지막에 내린 갈색 단발의 여자는 그대로 굳었다.

“아.”

그녀와 로한의 눈이 마주한 순간, 리베라는 뒤늦게 그녀의 정체를 깨닫고 자연스럽게 로한의 곁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러기가 무섭게 그녀, 아니 세실이 입을 열었다.

“로한 중사. 그리고 단테……. 소위가 되었다는 말은 들었다.”

“소, 소위라고요?”

“그런…….”

뒤이어 곁에 서 있던 유엘과 페고르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단테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단 한마디의 답.

익숙한, 지극히 단테와 같은 답이었기에 세실은 내심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씁쓸했다.

그가 로한과 함께 이 자리에 왔다는 말은 곧…….

‘블랙 가드가 된 건가.’

의심은 소위 계급장을 보자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의문은 어째서 블랙 가드가 단테를 원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세실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성큼 단테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실력과 공훈, 출신 등을 복합적으로 상정하여 폐하께서 은혜를 내려 주었다고 들었다. 축하해.”

그녀의 말을 듣자, 일전에 리베라가 설명해 준 현재 신분이 떠올랐다.

……대충 망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한 귀족과 먼 혈연관계로 엮어 명분을 만들었다던가.

덕분에 뜻하지 않은 성까지 생겼다.

“……단테 드 헤로이스 소위.”

“예.”

헤로이스.

딱히 정감이 가는 성은 아니다.

그 때문에 단테는 그저 무심히 넘겼고, 세실 역시 마주 악주한 단테의 손을 잠시 잡곤 이내 말했다.

“그럼 가 보지.”

“충성, 제국에 영광을.”

“……충성, 제국에 영광을.”

가볍게 경례를 올린다.

뒤이어, 애써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로한 역시 경례를 올렸으나, 세실은 경례를 받지 않고 그대로 유엘과 페고르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렇게 그녀가 멀어지자 로한은 반쯤 똥을 씹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제기랄, 제대로 미운털이 박혀 버렸구먼.”

“흐응, 사랑했니?”

“닥쳐, 리베라.”

사적인 마음이 아예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진짜 걸리는 점은 그녀의 오빠 때문이었다.

몇 년간 함께하며 적잖이 얼굴을 봤기에 내심 두려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 그 양반 화나면 진짜 무서운데.’

과연 세실이 말을 했을까, 안 했을까.

불안한 심정을 대변하듯 미간이 떨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됐어. 가자.”

리베라의 나만 아니면 된다는 중얼거림과 함께 그들은 플랫폼을 벗어나 대기 중인 운전병과 합류해 차에 올랐다.

그렇게 30여 분쯤 흘렀을까.

리베라는 입김을 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더럽게 크네. 음산하고.”

“……그러게 말입니다.”

이어진 로한의 긍정에 단테 역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요새라는 말과 어울린다.’

나이트 프레임 2개는 족히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성채와 그 위로 빼곡하게 자리한 마력포와 온갖 무기들이 눈에 박혔다.

그뿐인가.

요새 뒤로 건축된 수십 개의 격납고는 이곳에 배치된 나이트 프레임의 수를 가늠토록 만들었고, 속속들이 요새를 중심으로 끝이 없게 펼쳐진 긴 방어선들이 안개에 가려져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북해빙궁이 보면 뭐라고 말할까.’

무심결 궁금해졌다.

그토록 음기라느니, 빙백신장이라느니 하지 않던가.

그러나 그런 실없는 생각은 곧 요새 안에서 차가 멈추자 끝이 났다.

“쿨럭, 도착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운전병의 말과 함께 차에서 내리자, 곧 혼잡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 거기 말고 옆에 파라고!”

“빈디카 상단에서 왔습니다. 이번에 보급된 빵에 문제가 있다고요.”

“19번 격납고 기체 후방으로 보내야합니다.”

“왜?”

“파일럿이 죽었어요.”

요새라는 말답게, 수천은 거뜬히 넘는 군인과 관계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훑던 단테의 곁에 서 있던 로한은 뒤늦게 ‘아, 맞다!’라고 중얼거리곤 곁에 선 리베라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희 임무가 뭡니까?”

“아…… 그거?”

대외적인 시선을 의식해 존대했다.

생각해 보니 둥지라느니, 위라트 요새라느니 말은 들었으나 정작 임무에 관한 얘기는 듣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단테도 리베라를 바라보며 무언의 물음을 던졌다.

“그게 있잖아.”

두 남자의 시선에 리베라는 살짝 시선을 피했다.

때문에 로한의 척추를 따라 또다시 불안감이 맴도는 그때.

리베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별건 아니고. 그냥……. 둥지 파괴하는 임시 특임대 합류일 뿐이야.”

단테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반면 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물었다.

치익, 습, 하고 한 모금 머금자 회색빛 연기가 푸른색과 흰빛이 섞인 요새 위로 흩어지고, 로한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염병…….”

세실과 함께한 시간은 아마도 신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앞으로 고생할 때 억울하지 말라고.

유달리 담배가 썼다.

기갑천마

앞으로 잘해 보자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특임대는 곧바로 창설되지 않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으나 각 세력 간의 알력다툼이 원인인 듯싶었다.

그 때문에 단테를 비롯한 일행들은 뜻하지 않게 대기 명령을 받게 되었다.

당연히 로한은 기뻐했으나 문제는 리베라와 단테의 성격이었다.

-단테.

-예.

처음으로 둘의 마음이 맞았다.

리베라는 빠른 행동력으로 상부에게 정찰소대를 받아왔고, 단테는 후방으로 배속될 뻔한 기체들을 대강 수리하라고 정비공들을 협박…….

아니, 재촉해서 기체 3기를 단번에 구했다.

그리고 현재.

그들은 정찰 임무라는 이름의 사냥을 나와 신명나게 마수들을 죽이고 있었다.

콰드득!

단테의 주먹…….

아니, 정확히는 그가 탄 기체의 주먹이 콕피트를 노리고 뻗어진 촉수를 틀어쥔다.

뒤이어 오른손에 쥔 검이 촉수와 함께 마수를 단칼에 베어 넘겼다.

손을 턴다.

핏물이 떨어지고, 단테는 살짝 시선을 내려 지상을 응시했다.

“일점사 해!”

“수류탄 던져!”

두꺼운 동계 장비를 입고, 능숙하게 숲속을 종횡하며 마수들을 따돌렸다.

제국군 내부에서도 전투력으로 따지자면 늘 상위로 언급되는 북부 정찰병들이었다.

캬아아- 따위의 괴성을 내지르는 놈들의 입안에 수류탄이 박혔다.

숙련된 저격수가 마수의 눈을 맞춰 시야를 가렸고, 이어진 일점 타격에 하급 마수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단테, 우측에 중급 마수를 부탁해!〕

리베라의 목소리가 울리기 전부터 이미 단테는 우측에서 달려오는 곰과 닮은 마수를 관측한 후였다.

때문에 그는 대답 대신 손에 쥔 검으로 뻗어지는 앞발을 잘랐다.

-쿠어어어!

고통 섞인 울림이 이어지지만, 그것에 연민이나 동정을 느끼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앞발을 잃어 미간을 좁혔다.

단테는 고통스럽게 몸을 비트는 마수의 목을 단번에 베었다.

서걱,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순백의 대지가 피로 물든다.

그렇게 얼마나 전투가 이어졌을까.

마지막 하급 마수가 리베라의 손에 쓰러지자, 단테는 콕피트 한쪽에 놓아 둔 물통을 집어 한 모금 삼켰다.

그때 까먹고 통신기를 끄지 않았는지 귓가로 로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아, 더럽게 춥네.〕

무의미한 혼잣말이었으나, 언제든 로한을 놀릴 기회를 놓치지 않는 리베라에겐 아주 좋은 떡밥이었다.

〔큼, 로한 중사, 상급자에게 반말인가?〕

〔……아, 통신기가 고장 났나.〕

이윽고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통신기가 꺼졌다.

그러자 리베라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슬슬 돌아가자!〕

아직 해가 저물진 않았으나, 돌아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게 옳았다.

3기의 나이트 프레임과 30여 명의 소대원은 빠르게 저 멀리 윤곽만 보이는 요새로 발걸음을 옮겼다.

쿠웅.

쿠우웅.

돌아가는 길 자체는 그리 험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렇게 멀리 나온 이유도, 요새 인근 지역은 아예 주기적으로 마수를 청소하기 때문이었으니까.

단테의 시선이 앞서 걸어가는 로한과 리베라의 기체에 닿았다가, 이내 지상에서 기체와 발맞춰 걸어가는 소대원들에게 향했다.

‘벌써 일주일인가.’

일주일간 정찰을 핑계로 한 사냥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으나, 정말로 마수만 죽인 건 아니었다.

단테는 고개를 돌려 요새보다 가까운 산맥을 바라보곤 생각했다.

‘둥지라……. 어쩌면.’

일전에 로한에게 영약에 관해 물었을 때, 그는 ‘그런 건 모르겠는데?’라고 답했다.

그 때문에 후에 알아보기로 했지만 사실 반쯤은 관심을 끄고 있던 게 사실이다.

정확히는 있으면 좋겠으나 굳이 필요할까.

정도의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곳에 와 단전을 만들고 내력을 쌓은 것이 대략 7개월.

그사이에 일류에 닿은 것이다.

‘과거 일류에 닿는 데에 얼마나 걸렸지.’

모르긴 몰라도 몇 년은 걸렸다.

그런데 비록 이미 걸었던 길이라 하나 속도가 매우 빠른 것도 사실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풍부한 자연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둥지라는 소식을 듣자 언젠가 들었던 풍문이 뇌리를 스쳤다.

영약이란 무엇인가.

만년하수오와 같이 오래된 약재일 수도 있고, 공청석유처럼 대지의 기운이 담긴 이물(異物)일 수도 있다.

또한, 영물들의 내단 역시 아주 귀한 영약으로 취급을 받는다.

그래, 영물들의 내단.

거기서 무림인들이 혹시나 싶어 온갖 마수, 그러니까 요괴들을 베고 찢고 삶아 보았으나 돌아온 것은 재가 되거나 그냥 맛있어진 마수 고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때 황보세가를 투귀(鬪鬼)가 몰살시켰지.’

마치 나찰과 같은 모습을 한 놈을 죽이기 위해 무림맹 최정예 무력대인 현무, 주작대가 투입되었다.

그리고 끝내 무림맹주였던 검황이 나선 후에야 놈을 죽일 수 있었다.

족히 나이트 프레임과 견줄 정도로 거대한 육신이 태산에 몸을 뉘었고, 검황은 놈의 내단으로 추측되는 걸 들고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쯤 후였나.

‘마수처럼 변해서 죽었지.’

무림맹 몰락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아예 경원시하던 네임드의 내단이었으나 단테가 둥지를 떠올린 이유가 있었다.

개방의 거지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 전에 들은 한 가지 풍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 만주에서 미처 태어나기 전인 거귀의 새끼를 죽이고 내단을 취한 이가 절대 고수가 되었다더라.

……하는 풍문이었다.

물론 그것만을 믿고 둥지를 향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기대를 해 보는 것이다.

그때였다.

〔뭐야, 왜 이렇게 어수선해?〕

초소 몇 개를 지나 요새에 다다르자, 평소와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비단 리베라와 로한뿐만 아니라 소대원들도 그걸 느꼈는지, 제일 막내를 보내 알아보게 시키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단테를 제외한 둘이 먼저 격납고에 나이트 프레임을 놓고 내려오자, 소식을 알아보러 갔던 이등병이 흥분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대박 사건입니다!”

“……쟤 왜 저래?”

“글쎄요.”

리베라와 로한이 중얼거렸다.

‘뭐, 제4 황녀님이라도 온 건가?’라는 상상을 한 로한은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

북부 시찰을 자주 한다고 얘기는 들었으나, 그가 그 많고 많은 황족 중 제4 황녀를 떠올린 이유는 오직 하나, 세로스 때문이었다.

설마 일이 꼬여도 그렇게 꼬일까.

“제4 황녀 전하께서 시찰을 오셨대요! 로열 가드님들도 오셨습니다!”

그리고 로한은 결심했다.

조만간 솔라 신의 신전에 가서 고해성사와 기도를 해서 몸에 붙은 악령을 좀 떨쳐내야겠다고 말이다.

“무슨 일입니까?”

때마침, 정비공과 얘기를 나누고 내려온 단테가 묻자 리베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저 멀리, 비행장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4 황녀 전하께서 시찰 오셨대. 참, 소문은 무성했는데 진짜 시찰을 다니시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고 쾌활했으나, 그 안에 담긴 것은 묘한 비웃음이었다.

단테는 물론 로한도 그런 점을 단번에 눈치챘으나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제4 황녀라…….’

단테의 시선이 비행장 입구로 향했다.

병사들이 몰렸던 것도 잠시, 이내 장성들의 명령과 함께 빠르게 군기가 잡혔다.

제4 황녀는 몰랐지만, 관련된 사람이라면 떠오르는 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단테는 여동생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자를 떠올리곤 앞을 바라보았다.

“황녀 전하께, 경례!”

“충성! 제국에 영광을! 황실에 충성을!”

평소 군인들끼리 내뱉던 경례가 아닌, 황실에 대한 충성의 의미도 담긴 경례다.

그렇게 경례가 이어지고 곧 모습을 드러낸 여자를 본 단테는 무심결 웃고 말았다.

“아, 다들 고생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제국의 기둥이에요.”

허리까지 내려오는 잿빛 머리카락과 잿빛 눈동자는 과거의 자신과 사뭇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무술을 연마한 흔적이 있긴 하군.’

전시 시찰이란 말답게 군복에 가까운 옷으로 몸을 가려 확신할 순 없겠으나, 꽤나 단련이 된 몸이다.

그때 황녀를 살피던 단테의 시선이 세로스와 마주했다.

씨익.

세로스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러나 그 대상은 단테가 아닌 단테의 곁에 서 있던 로한이었다.

“아, 젠장.”

로한은 본능적으로 뭣 됐음을 느끼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리베라의 손이 로한의 뒷목을 틀어쥐었다.

“얍!”

“어, 어? 이거 놔!”

그리고 그사이.

“전하, 잠시…….”

“아, 네. 알겠어요.”

장성들과 함께 요새 내부로 들어가는 제4 황녀에게 양해를 구한 세로스는 마나까지 발에 담아 빠르게 격납고도 달렸다.

겨우 리베라의 손길에서 벗어난 로한이 뒤늦게 도망치려 했으나.

“오랜만이다. 로한?”

“……아, 빌어먹을.”

이미 앞에 다다른 세로스의 목소리를 듣자 그는 도망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서늘한 목소리부터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왔다고 말하는 듯했다.

“발칙한 짓을 했던데.”

뚜둑- 하며 손을 푸는 소리가 들린다.

하긴, 세실의 오빠임을 떠나 로열 가드의 단장쯤 되면 모르는 게 이상하다.

‘아, 평소에도 나 마음에 안 들어 했는데.’

그래도 블랙 가드니까 죽이진 않을 테지만, 내심 쫄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총도 살살 맞으면 안 아플까-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던 로한의 귓가로 뜻밖에 너그러운 세로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에휴, 너희들이 하는 일이 그렇지, 뭐.”

“꼬우면 알지?”

뒤이어 리베라가 답한 것을 들은 로한은 그제야 살짝 눈을 떴고, 돌아온 것은 세로스의 피식 웃는 얼굴뿐이었다.

“뭐, 내가 널 죽이기라도 할까 봐?”

“네…… 반 정도는 죽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세실을 엿 먹인 것도 있지만, 단테는 로열 가드에서 먼저 침을 바른 인재가 아닌가.

비록 당사자가 거절했다고는 해도 어찌 보면 블랙 가드에서 추잡한 짓을 한 셈이다.

그런데 세로스는 리베라와도 아는 눈치였다.

때문에 로한이 눈동자를 굴리며 리베라에게 무슨 상황이냐 물었으나, 돌아오는 건 장난기 가득한 비웃음뿐이었다.

한편 세로스는 그런 로한을 바라보다가 묵묵히 곁에 서 있던 단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일전에 만났을 때와 달리, 검은 군복에 각인된 소위 계급장이 인상적이다.

세로스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그렇게 선택한 거냐?”

지켜보는 이들도 꽤 있었기에, 주어는 뺀다.

하지만 4명 중 주어를 알아듣지 못할 이는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세로스는 일전과 마찬가지로 단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곤 말했다.

“그래, 뭐…… 네 선택이니까. 그래도 혹시 나오고 싶으면 말해라. 설마 로열 가드 단장을 건드리겠어? 하핫!”

여전히 말이 많고, 여전히 쾌활한 사내다.

그런데도 별달리 밉지 않아 단테는 그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단테와 가볍게 회포를 푼 세로스는 이내 곁에 서 있던 로한의 어깨를 탁 붙잡고 속삭였다.

“아, 그리고 로한, 앞으로 잘 부탁한다.”

“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순간 로한의 시선이 떨렸다.

매우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그때.

씨익- 올라간 입꼬리로 세로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특임대.”

기갑천마

둥지 파괴 (1)

세로스가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자, 로한은 아무래도 마가 끼어도 단단히 낀 것 같다며 요새 내부의 신전으로 달려갔다.

리베라는 그 모습에 폭소를 터트렸고, 단테는 멀어지는 세로스와 로한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배정된 막사로 향했다.

막사 안은 꽤 따뜻했다.

그는 두꺼운 외투를 벗고, 곧바로 침대에 걸터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이윽고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옅은 숨소리만이 막사 안을 채운다.

충만한 자연지기가 혈도를 종횡하며 단전을 채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요새 안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완전히 저물지 않았던 하늘이 검게 물들고, 막 운기조식을 끝마친 단테의 막사 밖에서 리베라와 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세례? 꺄하핫!”

“……나도 받고 싶어서 받은 건 아니라고.”

머잖아 막사의 문 역할을 하는 천이 스륵- 들리고, 눈물이 맺힌 채로 웃는 리베라와 머리를 긁적이는 로한이 들어왔다.

단테가 둘을 바라보자 리베라는 곧바로 그에게 달려와 외쳤다.

“단테! 저 미친놈이 세례를 받아 왔대!”

“……세례라면?”

단테의 시선이 로한에게 닿자, 못 보던 묵주를 맨 채 로한이 똥 씹은 표정으로 답했다.

“아, 아니……. 갑자기 가자마자 ‘오, 형제님. 환영합니다.’ 이러면서 세례명부터 주는데 어떻게 안 받아.”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군종 사제들은 세례자를 늘리면 따로 법국에서 인센티브를 받는단다.

가뜩이나 심적으로 고통받던 로한은 의문의 호구를 당한 셈이었다.

터벅.

그때 갑작스럽게 막사 밖에서 일련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자 곧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가겠습니다.”

막사의 문이 걷어지자, 전혀 뜻밖의 제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이 아닌 로열 가드의 붉은 제복인 탓이었다.

선두에 서서 입을 연 여자의 얼굴이 막사 내부의 등불에 비친다.

그녀는 단테에게도, 로한에게도, 심지어 리베라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로스의 부관인 마리였으니까.

“아, 여기 모두 계셨군요.”

그녀의 시선이 3명을 훑었다.

마침 잘되었다는 듯 그녀는 왜 찾아왔냐는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3명의 군인…… 아니, 3명의 블랙 가드들에게 곧바로 용건을 말했다.

“특임대 건으로 회의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동행을 부탁드립니다.”

특유의 딱딱하고 사무적인 목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가져온 소식은, 모두가 내심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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