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42화 (42/197)

케린 소령 예하 대대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부대원 630여 명 중 생존자 132명.

나이트 프레임을 입고 전투에 참여한 기갑 장교 태반이 전사, 내지는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다.

그뿐인가.

부대 자체의 핵심 간부였던 케린 소령과 솔른 상사를 비롯한 이들이 모조리 죽었다.

그 때문에 제국군 내부에서 전후 조사를 나왔을 때 불려간 것은 다름이 아닌 보리스 중위였다.

그의 목에서 반쯤 탄 솔라 신의 묵주가 흔들렸다.

그는 자신의 앞에 선 조사관들에게 덤덤한 어조로 모든 상황을 나열했다.

케린 소령과 솔른 상사,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한 이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

즉 아군 살해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그는 마지막 전투에서 그들의 공을 더하며 당당하게 조사관들에게 건의했다.

-공과 실이 이리 명백하니, 조용히 처리하기를 건의드립니다.

이례적인 부탁이었으나, 받아들여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피해 입은 것이 형벌 부대라는 걸 둘째로 치더라도 무려 네임드를 저지하여 보다 큰 피해를 막은 것이 주요했다.

물론 단테에 대한 말도 언급이 되었다.

-새로 임관한 소위가 에이스급의 실력을 가졌다더라.

-단테? 단테가 누구야?

-제국 사관학교에 그런 이름은…….

본디 일회용으로 쓰려던 단테의 신분이었지만, 이렇게 제국군 내부의 이목이 집중되자 블랙 가드 측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미 일을 묻기엔 변수가 너무나 많아진 탓이었다.

그렇기에 로한은 불길했다.

당장 임무지를 바꿔 주지 않는 상부가 불안했고, 왜인지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나오지 않는 단테가 불길했다.

“……눈이 엄청 오는구먼.”

무심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름이 아닌 바크트였다.

대대가 해체 수순을 밟아 임시로 역 근처 호텔에 머무는 것이다.

문제는 며칠을 기다려도 임무가 배속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홍차를 끓이며 탁자 위에 발을 턱, 하고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때아닌 눈 폭풍으로 흔들리는 창문을 지그시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뭔가 불안한데.”

이놈의 촉이라는 건 참 신기했다.

한없이 미신인 듯싶다가도, 때때로 정확히 들어맞을 때가 많으니까.

그리고 그런 로한의 촉은 아주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똑똑.

그들이 머무는 호텔 객실 문이 두드려진다.

때문에 로한이 본능적으로 권총의 그립을 쥐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들어간다!”

콰앙- 따위의 소리를 내며 문이 거칠게 열렸다.

당연히 문을 잠그는 걸쇠는 박살이 났고, 문을 지지하는 경첩 역시 단번에 부서져 허공에 떠올랐다.

그러나 로한은 총을 뽑지 않았다.

그 대신, 멍한 눈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온 여자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로한, 여전히 야비하게 생겼네!”

“리, 리베라?”

은발과 은안을 가진, 젊은 여자였다.

얼핏 성스러워 보일 수도 있을 외모와 달리 쾌활한 미소를 지은 그녀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로한에게 성큼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뭐야, 못 볼 거라도 봤어? 반응이 왜 그래?”

“아, 아니…… 네가 여기에 왜…….”

로한이 당황하는 이유는 꽤 여러 가지였으나,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직책 때문이었다.

“1조장인 네가 왜……?”

“아, 맞다.”

뇌리에 불길함이 스쳤다.

그리고 그의 말에 제복 품에서 블랙 가드 인장이 찍힌 편지를 꺼내는 리베라의 모습은 로한의 불길함에 쐐기를 박았다.

“여기!”

쾌활하게 건네주는 편지를 떨리는 손으로 집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인장을 뜯어 펼치자, 로한은 그제야 어째서 통신기로 명령이 떨어지지 않고 리베라가 직접 편지를 들고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아하핫!”

입꼬리가 올라간다.

뜨인 적안에 살기가 돌았다.

그리고 동시에 상관 살해를 어떻게 하면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 무, 무슨 내용이길래?”

편지를 쥔 손이 떨린다.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리베라가 조심히 편지를 훑었고, 뒤늦게 똥 씹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망할 단장.”

어쩐지, 편리한 통신기 놔두고 굳이 편지로 써서 임무 하달한다고 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그녀는 부들거리는 로한을 힐끔 바라보곤 생각했다.

‘이 새끼 발작하면 귀찮은데.’

그때였다.

끼이익-거리며 방문이 열리고, 수련이라도 한 듯 땀에 전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며 나오는 단테를 본 리베라의 눈이 반짝였다.

“아, 네가 그 신참이구나!”

“음?”

단테는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친근하게 자신을 부르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에 리베라는 헤-웃으며 부들거리는 로한을 지나 단테의 양 손을 맞잡았다.

“반가워, 나는 리베라야! 편하게 누나라고 불러!”

“…….”

쓸데없이 쾌활하다.

단테는 고개를 돌려 충격에 빠져 있는 로한을 응시했다.

그러자 로한은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허탈한 듯 웃었다.

“허허, 허허허…….”

그 때문에 단테가 미간을 좁히며 이 상황이 뭔지 생각하려던 그때.

리베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놔 둬. 지금 제정신 아니야.”

“어째서 그렇습니까?”

“아, 그게 왜냐면…….”

그녀는 몸을 돌려 로한의 손에서 편지를 뺏었다.

그러고는 단테에게 스윽- 내밀며 직접 읽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편지를 쥐었다.

그리고 시선을 내리자, 유려한 필체로 쓰인 문장이 적혀 있었다.

부가적으로 적힌 내용은 많았으나 결국 요약하면 간단한 내용이다.

-둘의 계급은 고정. 제1 조장 리베라와 협력하여 임무를 속행할 것.

그러니까 단테는 계속 소위다.

그리고 로한은 계속 중사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리베라는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참고로, 나는 중위야. 내가 상급자네?”

“하핫, 일단 로비를 지나면서 가드를 죽이고, 상층부까지 올라가려면…….”

뒤이어 로한의 광기 어린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내용을 살피니 대충 단장을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는 듯했다.

“흐음.”

단테는 수건을 목에 둘렀다.

그러고는 자신을 등지고 서 있는 로한을 향해 말했다.

“중사,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아.”

뚜둑- 하며 로한의 이성이 끊어졌다.

동시에 리베라는 새삼스럽다는 시선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지루하진 않겠다.’

어차피 로한의 발광도 한시적일 뿐이다.

음흉한 주제에 누구보다 현실적이라…….

말로만 단장을 죽이네, 마네 하면서 실행은 못 할 게 뻔했다.

아니, 애초에 한다고 해도 가능할 리도 없고 말이다.

“으아악! 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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