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39화 (39/197)

“하, 빌어먹을…….”

로한은 밀려오는 상급 마수들과 뒤늦게 달을 가릴 듯 선 그림자를 발견하곤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세실과 함께하는 동안은 정말 편했다.

간간이 맡은 임무도 요인 암살 내지는 마수 소탕이 전부였기에 내심 꿀을 빨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로한은 짜증이 담긴 손길로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러고는 가트에게서 빼앗은 라이터를 딸깍이다가, 헛바퀴만 돌자 에이 씨, 하고 바닥에 던져 버린 그는 막사 밖으로 나온 솔른의 품에서 성냥을 꺼내 불을 붙였다.

스읍, 후-!

회색빛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고는 격납고로 향하는 단테의 뒷모습을 힐끔 바라보곤 무언가 복잡한 시선으로 지평선을 응시하는 케린과 솔른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형벌 부대로는 턱도 없을 텐데.”

빈정거림이 섞여 있다.

그럼에도 둘은 답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로한은 재미없다는 듯 반쯤 태운 담배를 퉤 뱉고는 몸을 돌려 격납고로 향하며 굳어 있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뭐 해? 뒈지기 싫으면 뭐라도 들고 쏴!”

“……소령님.”

솔른은 곁에 선 케린에게 뭐라고 말하려 했다.

지금 나서는 건 개죽음이다.

몸을 피해야 한다- 따위의 비겁하지만 현실적인 말을 내뱉으려 했다.

그러나 곧 케린이 묵묵히 격납고로 향하자, 솔른 역시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녀가 막 격납고에 다다른 그때.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한 기의 나이트 프레임이 전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기갑천마

군림할 대지를 잃은 자

몰려오는 상급 마수들의 얼굴이 제각기 달랐다.

뱀을 닮은 것, 새를 닮은 것, 하물며 거인이라 생각될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도 있었다.

족히 수십이다.

아니, 백은 넘는다.

그 때문에 병사들은 그저 멍한 눈으로 지평선을 응시할 뿐이었다.

항전하려는 의지도 어느 정도 싸움이 될 때 가질 수 있다.

일개 상급 마수조차 병사들에겐 네임드와 다름이 없다.

고작 대대 수준의 전력으로 마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도망쳐야 해…….”

“미, 미쳤어. 이런 건 말도 안 된다고!”

“빨리 후퇴 명령을!”

비단 병사뿐만 아니다.

부사관들도, 하다못해 장교들조차도 할 말을 잃은 채 그저 밀려오는 거대한 그림자에 압도되어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후퇴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떨리는, 그러나 두려움에 가득 찬 이들과 달리 내뱉어진 굳건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학자와 같은 얼굴이 보인다.

실금이 간 안경과 곳곳이 깨지고 마모된 솔라 신의 묵주를 쥔 중위가 말했다.

“……전 장병은 위치로.”

다크서클이 떨린다.

나아가 죽음의 공포와 직면한 눈동자가 떨린다.

그럼에도 그는 말을 이었다.

“마력 포대를 조준하고, 통신병은 빠르게 본부대에 무전을.”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때 한 소위가 외쳤다.

그는 성큼 걸어와 자신보다 작은 중위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얼핏 봐도 백은 족히 넘어갑니다! 거기에 저기, 저거 안 보입니까? 네임드라고요! 제대로 된 대응도 못 하고 전멸당할 겁니다!”

“……그 말이 맞아. 중위. 마음은 알겠지만.”

뒤늦게 포병 중대의 지휘관인 대위가 소위의 손목을 잡아 놓게 만들고는 보리스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가 도망칠 수 있을 거 같나?”

“……뭐?”

보리스는 멱살을 잡았던 소위를 응시했다.

서늘한 시선이 그에게 닿고, 보리스의 덤덤한 목소리가 병영에 울렸다.

“그래, 자네가 말한 대로 네임드다.”

평소 하급자에게도 존댓말을 하던 그의 입에서 나온 하대였다.

그뿐인가.

평소 ‘은근히’를 넘어서 대놓고 무시당하던 보리스의 분위기가 변했다.

“모습을 보니 이미 관측된 네임드군. No. 21 나이트메어다.”

No. 21 나이트메어.

과거 세계수를 꺾었던 네임드 중 하나이자, 그 기이한 능력으로 위험도 최상급을 달하는 네임드.

“그, 그걸 어떻게?”

보리스의 설명에 대위는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나 되레 한심하다는 시선이 꽂힐 뿐이었다.

“……제국사관학교 중앙 도서관에 있는 네임드 관리 명부에서 봤습니다. 사관학교 내부에서도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크, 크흠!”

오히려 책망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보리스의 말에 대위는 시선을 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리스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병영 안의 모든 이들에게 덤덤하게 진실을 알렸다.

“네임드의 동태는 제국의 정보국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늦어도 1시간이면 비행 함대가 일대를 뒤덮겠죠.”

네임드 사냥은 제국군의 긴 숙명 중 하나다.

더욱이 보리스는 몰랐지만-이미 네임드 등장 전조가 있던 북부인 만큼 대응은 더욱 빠를 것이란 건 자명한 일이었다.

“군법에서 가장 큰 처벌을 받는 죄목 중 하나가 명령 없는 전장 이탈. 즉 탈영입니다.”

그의 시선이 격납고로 향하는 케린에게 닿았다.

이 부대의 지휘관인 그녀의 명령 없는 퇴각은 곧 탈영이다.

“더욱이 네임드와 마주했는데 싸우지도 않고 탈영한다면 그에 대한 처벌은…….”

그 때문에 보리스는 어느새 자신에게 집중된 이들의 얼굴을 천천히 훑으며 말했다.

“장담컨대, 형벌 부대 배속이겠군요.”

“……!”

모두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그들의 시선이 한쪽 허름한 막사에 모여 있던 형벌 부대원들에게 향했다.

“큭큭…….”

“병신들, 꼴좋다!”

“개자식들아! 같이 뒈지자!”

그동안의 울분 때문일까.

형벌 부대원들은 당장 자신들의 목숨도 촌각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일반 병사들과 장교들을 향한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장교들은 귀족이니 기껏해야 형벌 부대 지휘관이나, 집안이 좋다면 몇 계급 강등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평생토록 네임드를 피해 앞장서서 탈영했다는 꼬리표가 붙긴 하겠지만……. 이미 진즉에 버린 양심이니, 상관도 없으시겠습니다.”

동시에 보리스 역시 허탈함이 담긴 비웃음을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는 장교들에게 덧붙였다.

50년간 이어진 전쟁이다.

그 전쟁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으니, 제일 크게 변한 건 군인으로서의 명예가 곧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이전보다 훨씬 심하게.

사교계에서만 통용되면 차라리 다행이다.

집안 자체는 물론이고, 가족과 지인들에게까지 온갖 오명을 안겨 줄 수 있는 문제였다.

“그, 그런…….”

그제야 대위는 물론 다른 장교들 역시 현실을 깨달았다.

병사들은 진즉에 깨달은 현실이기도 했다.

“허.”

보리스는 그저 웃었다.

실금이 간 안경 때문인지, 모두의 표정에 일그러진 균열이 보이는 듯했다.

‘이토록 죽음을 두려워함에도 그토록 많은 죽음을 등 떠민 것인가.’

목에 걸리는 묵주를 쥐었다.

뚜둑, 하고 끊어 낸 후, 병사들이 피워 낸 모닥불 안으로 던졌다.

타닥, 타닥…….

나무로 만들어진 성물이 불탔다.

보리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형벌 부대에게 향했다.

허름한 막사 안에 남아 있는 부대원은 없다.

나이가 몇이든, 죄가 무엇이든, 무슨 삶을 살았든 상관없다.

보리스는 그들에게 말했다.

“가자.”

보리스는 그 말을 한 채로 전장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로 살아남은 수십의 형벌 부대원들이 뒤따랐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억지로 들렸던 총을 스스로 쥔 채로,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은 진창을 향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삶에 대한 희망은 이미 놓았다.

그는 뒤따르는 형벌 부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가슴에 담으며 생각했다.

차라리, 이들과 함께 죽겠다고.

그리고 그 순간.

〔전 장병, 위치로.〕

나이트 프레임을 탄 케린의 확인 사살이 이어지고.

콰과과광!

하는 소리와 함께, 때늦은 포격이 상급 마수들을 향해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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