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37화 (37/197)

아침이 밝아오고 로한이 다시 찾아왔을 때 혹시 몰라 영약에 대해 간단히 물었으나, 돌아온 답은 ‘그런 건 모르겠는데?’였다.

그 때문에 단테는 추후 알아보기로 마음을 먹은 채 운기조식과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로한은 블랙 가드의 위장 거처이자 꽤 고급스러운 호텔의 문을 열고 들어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게 말이 돼?”

어딘가 모르게 억울함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단테는 몸을 단련해 흘린 땀을 닦아 내며 로한이 손에 쥔 명령서를 읽었다.

그러고는 무심결 실소하고 말았으니.

-로한 중사 신분 고정.

-단테는 신임 임관 소위로 배정, 위장 신분은 아래 프로필을 참고할 것.

다름이 아니라, 배정된 계급 때문이었다.

기갑천마

개판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본 열차는 곧 종착역인 바크트 역에 도착합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정차하기 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시고…….〕

단테와 로한이 앉아 있는 하급 장교 전용 객실 내부에 설치된 구식 통신기를 통해 지지직거리는 안내 방송이 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한은 똥 씹은 표정을 한 채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아니, 가뜩이나 세실 대위님한테 찍힌 것도 가슴 아파 죽겠는데, 이제는 하다하다 내가 가르치던 훈련병을 상관으로…….”

질겅- 필터를 씹었다.

때마침 내리는 창밖의 눈을 바라보며 타들어 가는 담배는 썩 운치가 있었으나, 곧 들려오는 단테의 무심한 목소리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시끄럽다, 로한 중사.”

“……아, 하극상 마렵네, 진짜.”

‘어쩌면 이대로 상관을 살해해도 실질적으로는 하급자니까 나는 무죄가 아닐까?’라고 중얼거리던 로한은 그대로 객실의 간이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대군주, 여기다. 여기로 쏴라…….”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다.

한편 단테는 살짝 덜컹거리는 기차 내부의 흔들림을 느끼며 빠르게 흘러가는 바깥의 풍경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순백의 평원이 길게 물결친다.

붉은 선이 겹쳐지고, 나아가 회색빛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 가는 모습은 꽤 드물게 감흥을 일으켰다.

잠시 그 풍경을 눈에 담던 단테는, 이윽고 품속에 넣어 놓은 블랙 가드의 엠블럼을 살짝 꺼내어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형적이야.’

검은 바탕에 금색 눈이 그려진 문양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이번에 몸담게 된 블랙 가드에 관한 생각이었다.

며칠간 로한에게 들은 조직은…… 뭐랄까, 기형적이었다.

‘일개 조직이라고 치부하기엔…….’

꺼림칙한 부분이 많았다.

당장 로열 가드와 비교해도 권한이 막대했다.

정말로 하나의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황실과도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듯 보였다.

조직의 크기도 쉬이 가늠할 수 없었다.

로한의 말에 따르면, 이른바 ‘준조직원’까지 포함하면 웬만한 사단급의 수를 자랑한단다.

그 뒤로 뭐, 태반은 자기들이 블랙 가드와 연관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이라고 덧붙이긴 했으나 그래도 단테로서는 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가 무능한 건가, 아니면 이유가 있는 건가.’

황실에게 마교라 배척받았던 신교의 주인인 그는 황제라는 족속을, 나아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존재들이 가진 필연적인 경계심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권력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손에 쥐려고 하며, 뺏길 바에는 차라리 망가트리고 부숴 버리는 것이 그가 본 위정자들인 것이다.

“흠.”

미간을 좁혔다.

블랙 가드에 들어온 이후 묘한 의문과 어색함에 종종 괴리감이 들곤 했다.

그런데 그때.

끼이익, 소리와 함께 열차가 흔들리고 곧 안내 방송이 울렸다.

〔본 열차는 종착역인 바크트 역에 도착했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제국에 영광을.〕

“에휴! 가시죠, 소위님.”

기차가 멈추고, 로한은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군모를 눌러쓰고 방한 외투를 걸쳤다.

그 모습에 단테 역시 피식 웃으며 마찬가지로 훈련병 계급이 아닌 소위 계급장이 달린 군모를 푹 눌러썼다.

비록 나이는 열여섯 살이라지만, 단테의 체격과 분위기가 워낙 어른스러워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기엔 충분한 모습이었다.

하급 장교 객실을 나서자 보이는 건 텅 빈 객실과 비어 있는 복도뿐이었다.

서늘한 입김과 어우러져 사뭇 을씨년스러운 광경이었지만, 둘은 개의치 않고 열차 밖으로 나섰다.

“……쿨럭! 어우, 춥네.”

플랫폼에 발을 디디자 로한은 옷을 여미며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힙 플라스크를 꺼내 독한 위스키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러고는 문득 단테를 바라보며 살짝 건넸다.

“우리 소위님도 한 모금?”

껄렁한 표정으로 건네는 모습에 기분이 나빠질 법도 했지만, 정작 단테는 그저 같잖다는 듯 가볍게 로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가지, 로한 중사.”

“……허허.”

로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할 수 있었다.

올라가자마자 단장을 총으로 쏴 죽일 거라고 말이다.

한편 단테는 서늘한 입김을 후- 내뱉으며 플랫폼 너머로 보이는 바크트라는 도시를 응시했다.

“어촌이었나?”

“예, 그렇습니다.”

단테의 중얼거림에 답한 것은 로한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자 상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병사 한 명이 경례를 올렸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충성, 제국에 영광을.”

경례를 받아 주자, 뒤늦게 멘탈을 수습한 로한이 성큼 걸어와 상병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단 본부에서 나왔나?”

“예, 그렇습니다!”

단테는 현재 부사관이 아닌 장교로서 배속된 것이기에, 사단의 본부대에 얼굴을 비친 후 배치받아야 한다.

이미 블랙 가드 측에서 모두 말을 맞춰 놨다고 해도 일종의 요식행위 정도는 해 줘야 뒷말이 없는 것이다.

단테는 척 보기에도 꽤 군기가 잡힌 상병을 잠시 응시하다가 무심히 말했다.

“안내해.”

“아, 알겠습니다!”

그러자 상병은 그런 단테의 모습에 압도당하기라도 한 건지, 조금 더 군기가 든 모습으로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로한은 기가 찼지만 말이다.

‘뭐야? 왜 저렇게 익숙해?’

상대를 하대하는 게 물 흐르듯 흘러나왔다.

심지어 말이 상병이지, 어림잡아도 단테보다 족히 열 살은 많을 텐데 명령을 내리는 게 너무 익숙했다.

무심결에 ‘정말 몰락 귀족인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만큼 말이다.

블랙 가드의 정보가 틀릴 리가 없다.

특히 단테의 정보는 원래 데지안 측에서 활동하던 조직원들과 생존한 감시국 잔당들을 족쳐 얻어 낸 것이니 더더욱.

‘아, 몰라.’

그 때문에 로한은 아주 현명한 삶의 자세를 되새기며 담배를 물고 그들의 뒤를 쫓았다.

어차피 정보를 캐는 건 정보국에서 할 일이니까.

밖으로 나가자, 도시의 전경이 눈에 담겼다.

“……거, 썰렁하네.”

말 그대로 썰렁했다.

하늘에선 언제 그칠지 모른다는 듯 순백의 쓰레기…… 아니, 눈이 내렸다.

제국군이 임시로 만들어 놓은 듯한 도로 위에는 눈이 쌓여 제설 작업을 하는 인부들을 제외하면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앞서 안내하던 상병이 역 앞에 세웠던 군용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타시면 됩니다, 소위님.”

“그래.”

미리 히터를 켜 둔 건지, 차의 뒷좌석은 꽤나 뜨듯했다.

단테와 로한은 내심 만족하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물론 군용차이니만큼 푹신함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출발하겠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상병이 말했고, 단테와 로한은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상병 역시 대답을 기대하고 말한 것은 아닌지 묵묵히 차의 시동을 걸고 그대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우웅- 하는 마석 소리와 함께 바퀴가 구른다.

도로를 따라 펼쳐진 도시의 모습은 꽤 특이했다.

역과 일부 구획을 제외하면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았다.

즉, 비어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리 멀지 않은 강가엔 버려진 작은 배들이 시체처럼 쌓여 있었고, 때때로 그물들이 바람을 따라 휘날렸다.

“아까 어촌이었냐고 물으셨죠?”

단테가 풍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본 상병이 입을 열었다.

단테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익숙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50년, 그러니까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셰먼이라는 거대한 생선을 잡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어촌이라고 말하기엔 규모가 컸죠. 질 좋은 셰먼 중에서도 바크트 셰먼이 제일이었거든요.”

어딘가 추억에 젖은 목소리로 말을 이으며, 상병은 서서히 멀어지는 도시를 백미러로 힐끔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쪽이 최전선 중 하나가 되고 서서히 사업이 죽었습니다. 어획량이 준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사람과 마수의 핏물을 먹고 큰 셰먼을 어떻게 팔겠습니까.”

바크트를 지나는 강은 꽤나 거대해서, 전선이 완전히 고착되기 전에는 많은 수의 시체가 강에 잠겼다.

“그 뒤로는 대충 예상이 가네. 사람들도 떠나고 고향을 버리지 못한 노인이나 고아들만 남아서 군대에 의지해 겨우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겠지.”

“뭐, 그렇죠.”

이어진 말은 로한의 심드렁한 목소리였다.

상병은 정확히 읊어진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 여태까지 침묵하던 단테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잘 아는군. 토박이인가?”

“예, 뭐…… 그렇습니다. 하핫.”

상병은 어색하게 웃었다.

어느새 도시의 경계선을 벗어난 그들은 강가를 따라 이어진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역에 내렸을 때까지만 해도 완전히 저물진 않았던 해가 자취를 감추고, 검은 하늘이 그들의 머리 위를 가득 채웠다.

머잖아 저 멀리 조명이 보이자 상병은 천천히 속도를 낮췄다.

“정지, 정지!”

초병이 차를 멈춰 세우자, 상병은 자신이 창문 대신 로한 쪽의 창문을 내렸다.

“새로 배속된 단테 소위님과 로한 중사다. 열어.”

“충성! 제국에 영광을!”

이미 연락이 되었기에 초병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

그렇게 본부대 안으로 들어서자, 상병은 지정된 곳에 차를 세우곤 단테와 로한에게 백미러 너머로 경례를 올렸다.

“도착했습니다. 소위님, 중사님.”

“그래, 수고했다. 토미.”

“옙.”

로한의 말을 끝으로 둘은 차에서 내렸고, 곧바로 본부대 건물로 향해 신고를 마쳤다.

말 그대로 요식행위였기에 둘은 잠시 눈을 붙일 새도 없이 곧바로 일선 부대로 향했다.

공병들이 임시로 만든 도로를 따라 강가 옆을 달렸다.

그렇게 1시간쯤 달렸을까, 늦은 밤임에도 적잖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도착했습니다.”

운전병은 그렇게 말하곤 곧바로 돌아갔고, 차에서 내려 도착한 대대를 눈에 담은 로한은 무심결에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 저건 또 뭐야?”

단테와 로한의 시선이 강가를 따라 펼쳐진 긴 참호로 향했다.

각종 마력 포대와 기관총, 심지어는 대공포까지 거치된 그곳을 보수하는 광경이었으나 어딘가 이상했다.

“야, 빨리빨리 안 움직여, 이 새끼들아?”

“오늘 다 못하면 밥 없다. 알지?”

“커헉!”

삽과 곡괭이 등을 들고 땅을 파는 이들의 뒤로 기관단총을 쥔 일련의 병사들이 필요 이상의 폭력을 가하는 모습이었다.

그뿐일까.

심지어 몇몇은 아예 억지로 웃통을 벗겨 놓은 채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척 보기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 때문에 로한은 피식 웃으며 힙 플라스크에 남은 위스키를 단번에 때려 박았다.

알싸한 알코올이 목젖을 때렸다.

동시에 단테가 말했다.

“중사, 설명해 봐.”

“……예, 그래야죠.”

아주 대놓고 반말이다.

로한은 ‘에휴, 내 팔자야…….’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곤 자세한 임무 내용을 읊조렸다.

“형벌 부대를 특정한 가혹행위가 심각하다는 첩보였습니다. 적힌 걸 보면 저건 오히려 약과입니다만.”

오히려 저 정도 선에서 끝나면 지휘관만 문책하면 끝이다.

문제는 놈들이 일종의 프래깅, 그러니까 고의적인 아군 살해라고 볼 수 있는 짓거리들을 했다는 점이다.

물론 형벌 부대의 특성상 아예 없던 일도 아니었기에 블랙 가드까지 나설 필요는 역시 없었다.

그러나 블랙 가드에서 사람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

“조만간 북부가 개판이 날 예정인데, 여기가 중요 거점 중 하나라서 말입니다.”

절차대로 헌병을 보내고, 문책하고, 또 정상화를 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일종의 극약 처방인 셈이다.

굳이 단테에게 네임드에 대한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물론 이미 네임드의 북상을 알고 있는 그였지만 말이다.

“일단 지휘관부터 만나시죠, 단테 소위님.”

일부러 이름과 소위를 덧붙였지만, 단테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막사로 향했다.

운전병에게 부대 안이 아닌 인근에 세우라고 했기에 뒤늦게 둘을 발견한 초병들이 성큼 다가왔다.

“단테 소위님, 로한 중사님 맞으십니까?”

입김과 함께 둘의 이름과 계급이 읊조려졌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곧바로 지휘관 막사로 보이는 곳으로 둘을 안내했다.

그러나 막 막사의 문을 열려던 그때.

“꺼지라니까!”

“커헉!”

무언가에 차인 듯, 막사를 뚫고 안경을 쓴 남자 한 명이 바닥을 뒹굴었다.

눈과 흙이 섞여 생긴 진창이 군복을 더럽혔으나 정작 병사들은 남자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단테와 로한에게 말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끄윽…… 커헉!”

신음을 흘리며 배를 부여잡는데도 마치 보이지 않는다는 듯 행동했다.

때문에 로한의 미간이 좁혀지려던 그때, 곁에 있던 병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무시하시죠.”

“뭐?”

“……진심으로 드리는 충고입니다. 그러는 게 좋습니다.”

그사이, 안경 쓴 남자는 잠시 막사 안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비틀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순간.

“쯧, 병신 같은 샌님 주제에……. 응? 너희들은 뭐야?”

남자가 걷어차인 막사 안에서 나온 금발의 여자는 조금 전까지 뭘 한 건지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가슴 근처가 늘어난 티 하나만 입은 상태로 담배를 꼬나물며 말했고, 안에서 주섬주섬 군복을 입고 있는 남자를 본 단테는 혀를 차며 무심히 중얼거렸다.

“쯧, 개판이군.”

로한은 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기갑천마

잘못된 신념이 더 무섭다

어깨까지 내려온 금발이 막사 내부의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담배의 불을 붙인 그녀는 또렷한 이목구비를 살짝 일그러트리며 되물었다.

“뭐?”

입술의 달싹거림을 따라 흔들린 담배의 재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목에 걸린 군번줄이 찰랑거리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때 단테와 로한을 안내했던 병사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귓가에 다가가 속삭였다.

“소령님, 일전에 배속된다던 단테 소위님과 로한 중사님입니다.”

“응?”

그러자 순간 욕지거리라도 내뱉을 듯 일그러졌던 그녀의 표정이 심드렁하게 변했다.

“아, 그래?”

그녀는 머리를 잠시 긁적거리다가, 마침 옷을 다 입은 채 그녀의 어깨에 외투를 걸쳐 주는 남자에게 물었다.

“솔른 상사, 일주일 전쯤인가 충원된 죄수 새끼들 말고 새로 오기로 했던 애들이 있던가?”

“예, 말씀드렸습니다, 소령님.”

“그래?”

솔른 상사라 불린 건장한 체구에 짧게 자른 머리를 한 남자가 답하자, 그녀는 ‘뭐, 상관없겠지.’ 정도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케린 소령이다. 조금 전 했던 말은 엄연히 상관 모욕으로 군법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그녀는 잠시 단테와 로한을 훑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사관학교에선 사소한 일도 무슨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처럼 겁을 주니까?”

소위라는 직책 때문인지, 케린은 ‘하여튼, 늙은 꼰대들이 문제야. 세상이 개판인데 무슨 그리들 지켜야 할 게 많은지……’라고 중얼거리곤 단테가 아닌 곁에 선 로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중사라고? 군에 복무한 기간은?”

“글쎄요. 족히 7년은 되어 가지 싶습니다만.”

“중사치고는 많네? 사병이었다가 부사관으로 자원한 건가?”

“예. 뭐…….”

“미친놈이었네?”

그녀는 자연스럽게 단테를 반쯤은 무시한 채 로한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녀로선 병아리나 다름이 없는 단테보다 로한 쪽이 더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허.’

당연히 단테는 헛웃음을 흘렸다.

분노보다는 그저 ‘어디까지 하나 구경이나 할까?’ 정도의 감상이었다.

그리고 그건 로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이쪽 병아리는 좀 반반하네? 흐음, 제도 물이 좋긴 하다니까…….”

그런 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은근히 입술을 훑으며 어딘가 퇴폐적인 미소를 흘렸다.

그 때문에 단테가 로한이 말했던 목격자 제거를 염두에 둔 주먹을 꽂으려던 그때.

“마수입니다!”

병영 끝에 만들어진 초소에서 한 병사가 외쳤다.

동시에 대지의 떨림이 이어지고, 케린은 언제 가벼운 모습을 보였냐는 듯 입에 문 담배를 바로 바닥에 떨궈 발로 비벼 끄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명령했다.

“파일럿들 기체 탑승하고, 죄수들 준비시켜. 포병들 위치로.”

“예!”

마찬가지로, 병사들 역시 익숙하다는 듯 빠르게 지정된 위치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둘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개판 어쩌고 말한 건 봐줄게. 이참에 전쟁이 어떤 건지 잘 보렴.”

그녀가 향한 곳은 대대의 제일 후미에 건축된 간이 격납고였다.

솔른 상사를 비롯한 장교들 역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케린 소령의 어깨에 대충 걸쳐진 외투의 비어 있는 팔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렸다.

그러자 막사 앞에 단테와 로한은 덩그러니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허헛, 한 방 먹으셨습니다?”

케린이 말한 것이 내심 통쾌했던 것일까.

로한은 싱긋 웃으며 말했으나, 정작 단테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인 마수가 태산을 이루거늘.’

전생에 죽여 쌓았던 시체만 세어도 장강을 메울 수 있을 텐데, 그걸 또 입으로 내뱉기도 뭐 했기에 단테는 그저 답했다.

“시끄럽다, 로한 중사.”

“……아, 진짜.”

당연히 로한의 얼굴은 썩었다.

그 때문에 뭐라고 되받아치려던 그때.

“빨리 움직여!”

“뛰라고, 이 새끼들아!”

귓가에 꽂히는 어딘가 강압적인 외침에 고개를 돌린 그들이었다.

그리고 곧 눈앞의 광경을 본 로한은 무심결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으니.

“이야, 진짜네.”

일명 프래깅(fragging).

고의적 아군 살해를 뜻하는 단어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마수들이 등장한 강가와 밀접한 초소로 일련의 형벌 부대원들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달리게 만드는 것은 사명이나 용기 따위가 아닌, 뒤에 선 아군 병사들의 총탄이었다.

“으아아아악!”

“허억, 아아아아!”

머리 위로 총탄이 빗발쳤다.

손에 쥔 총을 들고 살기 위해 몸을 돌린 이들은 여지없이 쏟아지는 총탄에 벌집이 되었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

앞으로 내달리는 것뿐이었다.

그래, 앞으로.

강가를 건넌 거대한 마수들을 향해 내달리는 것뿐이란 말이다.

“개, 개새끼들아아아!”

두려움과 원망이 담긴 괴성 속에 단말마의 욕설이 섞였다.

그렇게 강가 최전선 참호에 다다른 그들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시야를 어둡게 가리는 거대한 마수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살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해 방아쇠를 찾기 위해 손을 더듬거리고, 이윽고 손에 쥔 기관단총이 불을 뿜었다.

“죽어어어!”

“으아아아아아!”

살아남은 수십 명의 마탄이 막 대지에 올라 몸을 터는 마수들의 몸에 꽂혔다.

파바박- 따위의 피육음과 함께 온갖 색상의 핏물이 대지를 적셨다.

하나, 그뿐.

-꾸어어어어.

낮고 깊게 울리는 마수의 굉음과 함께 강가를 건넌 거대한 육신이 얼어 버린 동토를 부쉈다.

흙이 튀고 나아가 참호를 뒤덮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수들의 시선이 참호의 형벌 부대에게 꽂힌 순간 대기하고 있던 포병들에게 장교가 외쳤다.

“발포!”

콰아아앙!

파아아아앙!

마석을 동력으로 하는 마력 포대들이 일제히 포신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만들며 불을 뿜었다.

일부 빗나간 포탄이 참호에 박혀 형벌 부대원들을 죽였으나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아니, 개의치 않은 것이 아니라 외면이자 무시였다.

그 직후. 후방의 격납고에서 일련의 나이트 프레임들이 병영의 옆을 내달려 전장으로 쇄도했다.

로한은 선두에 선 케린의 기체를 응시하며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형벌 부대에 관한 법이 개정된 지가 언젠데, 저 미친년이.”

케린 소령의 전술은 간단했다.

형벌 부대원들을 최전방의 참호에 박아 넣고, 마수들의 이목이 쏠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 순간 포격으로 발을 묶은 후에 나이트 프레임을 투입하여 섬멸하는 것이다.

문제는 저런 형태의 전술은 금지된 지가 10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내 팔이!”

“아아아아아아악!”

미끼가 된 부대는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평균 생환율 10%대라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엄연히 제국법으로 금지된 전술을 사용했다는 건 중대한 문제였다.

그 증거로 총구의 섬광과 마력포의 잔불로 드러난 전장의 상황은 처참, 그 자체였다.

“엄마……. 사, 살려.”

팔다리가 모조리 짓눌린 청년이 몸을 부르르-떨다가 추욱 늘어졌다.

그리고 마수는 마치 바닥에 떨어트린 과자를 줍듯 혀를 내밀어 청년의 시체를 삼켰다.

콰득, 소리가 울린다.

검붉은 핏물이 얼어 버린 흙을 녹인다.

그리고 그 순간.

〔어머, 잘 씹네?〕

어느새 놈의 앞에 도착한 케린은 3세대 나이트 프레임 자이언츠의 메인 코어에 오버 클럭에 가까운 출력을 밀어 넣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겨워. 진심으로.〕

기체의 관절부가 꿈틀거린다.

나아가 케이블을 따라 그녀의 마나가 폭발적으로 쇄도하고, 손에 쥔 거대한 망치가 금색 마나를 머금으며 허공에 거대한 반원을 그린다.

콰드드득!

쩍 벌어진 마수의 입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그러자 마수는 살벌한 피육음만을 남긴 채, 그대로 머리가 짓이겨져 추욱 늘어졌다.

〔소령님!〕

그때 뒤에서 솔른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곧바로 망치를 회수하곤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곰을 어설프게 흉내 내기라도 한 듯 뒤뚱거리는 거대한 마수가 그녀를 향해 앞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투엉!

피인지, 침인지 모를 타액이 허공에 흩날렸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괴성에 나무 위에 쌓여 있던 눈들이 추락했다.

하나 케린은 별다른 동요도 없이 혀를 쯧, 하고 찬 채 손을 뻗어 마수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뿌득-거리는 감각과 함께 엄청난 하중이 케이블을 따라 어깨 관절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미간을 좁힌 채 외쳤다.

〔솔른!〕

〔예!〕

콰드드득,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놈의 심장이 단번에 꿰뚫렸다.

족히 작은 건물과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장창이 두근거리는 녹빛 심장을 정확히 찌른 것이다.

케린은 시선을 돌려 전장을 살폈다.

강을 넘어온 마수의 수는 많지 않았기에, 이미 전장은 소강상태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살짝 시선을 내려 엉망이 된 참호를 바라보았다.

투입된 수십의 형벌 부대원 중 생환한 이들은 채 열 명이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절반은 팔다리가 하나씩 날아갔으니, 운이 좋아도 병신이고 운이 나쁘면 죽으리라.

“…….”

머리를 짓이긴 마수의 이빨 사이로 살짝 드러난 소년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일까.

표정이 굳어 있었다.

〔소령님, 괜찮으십니까.〕

그때 개인 회선으로 솔른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언제 심각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웃으며 말했다.

〔솔른, 지쳤어?〕

〔……아닙니다.〕

〔내 막사로 와. 술 한잔하자.〕

〔알겠습니다.〕

그 말을 남긴 채 통신기를 껐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듯 최전선으로 향해 전장을 수습하는 일반 병사들의 표정을 살폈다.

당연히 좋진 않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봤다.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가 섞인 병사들을 얼굴을 말이다.

그 때문에 케린은 묵묵히 격납고로 기체를 옮기며 되새겼다.

‘어쩔 수 없어.’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죽는 건 형벌 부대뿐이다.

범죄자라는 말이다.

그녀에겐 의무가 있다.

이 빌어먹을 시대에 태어나, 죄 없이 전장에 끌려온 수많은 장병들을 살려 돌려보낼 의무가.

“그들도 사람입니다! 사람이라고요!”

무심결, 조금 전 자신을 찾아와 미친 듯이 울부짖었던 웬 샌님의 말이 떠올랐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술을 많이 마셔야 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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