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35화 (35/197)

단테가 순순히 놈들을 따른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로 놈들에게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고, 둘째로는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쯧,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내심 충만한 기에 만족했던 것인가.

최소한 일류 정도만 닿았어도 능히 퇴로는 열 수 있었을 텐데.

놈들은 세실의 눈에 닿지 않는 곳에서 곧바로 단테를 제압했다.

포승줄과 같은 것으로 그의 몸을 묶고, 검은 헝겊을 씌워 시야를 가렸다.

그러고는 철로 된 마차, 동력차에 태운 후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하루, 아니 이틀은 족히 달렸을까.

단테는 어느새 완전히 가득 찬 하단전의 내력을 느끼며, 곧 그들이 이끄는 대로 차에서 내려 웬 방으로 옮겨졌다.

‘지하실인가.’

기감으로 주변을 훑어 결론이었다.

순순히 의자에 앉자, 곧 그를 데려온 이들은 빠르게 방 밖으로 나갔다.

내심 고문을 생각한 단테로서는 꽤 김이 새는 전개였다.

동시에 궁금했다.

놈들이 바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렇게 다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슬슬 지겨워져 포박을 풀고 탈출할지를 생각하던 단테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검은 헝겊이 벗겨지고, 곧 환한 조명이 눈을 찔렀다.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내력을 운용해 시야를 되돌리자, 그 순간 무심하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름, 단테.”

앞을 바라보자, 한 중년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 세상의 귀족이 끼는 금테의 단안경(monocle)이 유달리 도드라져 보였다.

“나이는 열여섯 살. 데지안 왕국 외곽 도시 쥬른 출신. 열다섯 살 당시 마수에게 모든 가족을 잃고 제국군의 도움으로 왕국 탈출에 성공.”

그는 단테의 정보를 읊었다.

“12대 조상까지 특이 사항 없음, 마나 적성 최하, 모친 쪽 역시 중소 규모의 상단 가문…….”

천휘가 아닌, 진짜 단테의 정보를.

그 때문에 단테는 중년을 묵묵히 응시하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고.

“……그러므로 몰락 귀족일 가능 전무.”

탁, 하고 그가 손에 쥔 서류를 닫고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곤 물었다.

“틀린 사항 있나?”

기갑천마

환영한다, 단테

“틀린 사항 있나?”

단테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 선 남자가 풍기는 기도를 천천히 살필 뿐.

그렇게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먼저 입을 연 것은 남자였다.

스읍, 후-!

그는 허공을 향해 뿌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로한을 쐈다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동적인 일이었다.

뭐랄까, 묘하게 얄미웠다고 해야 할까.

오랜만에 지친 상태에서 마음대로 데려가겠다느니, 어쩌니 하니 무심결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물론 머리가 조금 식자 실소가 나왔다.

근 여섯 달 동안 너무 평화롭게 지낸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어려졌다고 마음도 함께 어려진 것인지.

문득 과거 반로환동을 했었던 검마가 떠올랐다.

망백(望百 : 91세)의 나이에서 약관의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지, 때때로 충동적이고 철없는 짓을 하곤 했다.

그 때문에 하루는 술잔을 기울이며 물었지.

어찌 그러냐고.

대답이 뭐였던가.

기억하기론 ‘교주도 이리되어 보시오…….’라고 했었나.

그때였다.

과거를 회상하는 단테의 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단장이 입을 달싹였다.

“우린 블랙 가드다. 나는 제7 단장이고.”

“그런가.”

단테의 입에서 반말이 흘러나왔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군문이 아닌 다른 조직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무심결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단테의 모습에 순간 단장은 피우던 담배를 탁자 위에 놓인 재떨이에 치익, 하고 끄고는 물었다.

“두렵지 않나?”

순간 단테의 적색 눈이 중년인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동시에 단테는 피식 조소를 흘리며 되물었다.

“어째서 두려워해야 하지?”

두려움은 잃을 것이 있어야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런데 어찌 두려움이 있을까.

당장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해도 일말의 아쉬움이 맴돌지언정 후회나 두려움이 있을 리가.

정을 붙였던 이들은 모두 죽었다.

머물던 세상이 무너졌고, 단지 죽지 못하여 살아 있을 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을 꼽자면 거귀, 즉 대군주를 직접 잡아 죽이지 못하는 것일까.

그 때문에 단테는 귀찮게 말을 돌리지 말라는 듯 중년인의 검은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용건이 뭐지?”

내심 흥미가 돋은 참이었다.

제거하려 했으면 귀찮게 끌고 올 이유도 없었을 것이니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으리라.

그것이 무엇일까.

순간 스스로를 제7 단장이라 소개한 중년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불쾌감이라기보다는 흥미에 가까운 것이었다.

“용건이라……. 빨라서 좋군.”

그 역시 마찬가지로 시간을 길게 끌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단테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발맞춰 마찬가지로 간결한 답을 내놓았다.

“블랙 가드에 들어와라.”

어쩌면 예상한 답이었기에 동요는 없었다.

그러나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이미 블랙 가드는 그의 과거를 조사했다.

그 때문에 단테가 몰락 귀족이라 말한 게 거짓임을 알고 있다.

즉, 자신은 지금 불분명한 과거가 불안 요소에 가깝다.

멀리 생각할 이유도 없다.

과거를 특정할 수도, 가진바 힘의 출처를 알 수도 없는 이를 이리도 쉽게 조직 내부로 들인다라…….

‘무슨 속셈이지?’

그런 그의 의문을 눈치챈 것일까.

단장은 단테의 적색 눈동자를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궁금한 얼굴이군. 어째서 과거를 속인 걸 알면서 이런 제안을 하느냐고.”

굳이 답하진 않았다.

단장 역시 답을 바라고 꺼낸 말은 아닌 듯, 책상에 놓은 서류철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간단하다. 과거 따위, 마수를 죽이는 데에 하등 걸림돌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

금테 안경이 살짝 떨린다.

이윽고 그는 입에 또 한 대의 담배를 꼬나물고 말을 이었다.

“블랙 가드가 왜 존재하는지 궁금하지 않나, 단테?”

“글쎄.”

“우리의 존재 의미는 하나다.”

치익, 습.

“이 빌어먹을 전쟁의 승리.”

흰 궐련의 끝에 붉은 불이 붙었다가 이윽고 회색 재 사이로 파고든다.

그리고 머잖아 연기와 함께 입을 연 그는 단테를 응시했다.

“네가 정말로 몰락 귀족이든, 아니면 귀족의 대서고에 숨어들어 마나 연공법을 훔쳐 왔든, 전설 속의 드래곤이 나타나 네게 연공법을 전수했든, 나는…… 우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

50년이다.

자그마치 50년이란 말이다.

처음 마수가 이 대지를 밟고 그만한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고,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

문득 남자의 눈에 광기가 흘렀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전쟁을 방해하는 놈들이 너무 많다. 제국군을 좀먹는 버러지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무지렁이들이 제국 밖에서 작금의 국익을 읊어 대며 제 나라의 배를 채우고 있지.”

그렇기에 블랙 가드가 태어났다.

혹자는 말하곤 한다, 그들이 충성하는 곳은 황실이 아니라 제국이라고.

하지만 블랙 가드들은 답한다.

-충성하지 않는다. 단지 증오할 따름이다.

마수를 증오한다.

제국군을 갉아먹는 버러지들을 증오하며.

나아가 무능한 이를 증오한다.

“그러니 우린 네가 필요하다, 단테.”

서류를 집었다.

아깐 미처 읽지 않은 정보를 읊었다.

“양산형 기체가 미처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적인 출력, 상급 마수를 단독으로 묶은 것도 모자라 단신으로 척살하고, 나아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마수에 대한 손 속까지.”

로한의 보고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부족한 인력을 모아 그를 감시하게 시켰다.

치익, 소리를 내며 담배를 껐다.

그러고는 여전히 침묵하며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단테를 바라보며 말했다.

“블랙 가드로 와라. 우리는 네가 필요하다. 너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확신에 찬 목소리가 방을 울린다.

“나이트 프레임으로 육탄전을 즐겨 한다지.”

로한이 보낸 정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단테는 무투술을 기본으로 하는 전투를 구사한다.

그러나 문제는 양산형 기체로는 그렇게 정밀하고 부담이 많이 가는 전투를 그리 많이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그는 말했다.

“4세대 나이트 프레임을 얻을 수 있다. 네가 단장급에 오를 수 있다면 말이지.”

4세대 나이트 프레임은 일반 양산형과 다르다.

기체 하나하나가 코드네임이 붙으며, 비용 문제로 격납고에 보관하는 것과 달리 ‘마스터 키’라고 불리는 작은 마도구에 기체를 보관할 수 있다.

단테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기에, 그의 눈이 일순간 번뜩였다.

4세대 나이트 프레임이라…….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단테가 흥미를 보였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단장은 이내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펜리르라고 하는 놈이다. 비록 지금은 4세대 중에선 구형으로 치부되는 놈이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상급 마수 서넛은 찢어발길 수 있지.”

단테는 여태껏 묵묵히 그의 말을 경청하다가, 이내 확신했다.

‘오랜만에 보는군.’

단장이라 소개한 중년인의 말 속에는 숨기지 못할 마수에 대한 증오가 느껴졌다.

제 딴엔 숨긴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단테는 분명히 보았다.

굳이 누군가를 회상할 필요도 없었다.

중원이 마수에 침략당한 직후, 그와 마주하는 무인들 태반이 그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진심으로 흥미가 돋았다.

단순히 죽지 못해 흘러가듯 목적을 정했던 그에게 새로운 자극이었다.

때문에 단테는 물었다.

“만약 거절하면?”

“설득하겠지. 하지만 끝끝내 함께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뒷말을 꺼낼 이유도 없었다.

그 때문에 단테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확신이 들었다.

적잖이 미친놈들이다.

무심결 과거 신교의 교도들과 사뭇 닮은 모습이 보였다.

결국 그들이 견지하는 것은 패도다.

특히 마수에 대한 적의가 마음에 들었다.

잠시나마 중원의 향수를 느낄 만큼 말이다.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의 뜻이었다.

그러자 그를 바라보던 단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은 채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블랙 가드가 된 것을 환영한다, 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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