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34화 (34/197)

3분대와 4분대는 좌측을 택했다.

순조로웠다.

가끔 마수를 마주하더라도 조교나 교관들의 도움 없이 손쉽게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졸속이라 하지만 그래도 제국군이 되기 위해 길러진 그들이었다.

때문에 머잖아 중급 마수도 짝을 지으며 상대할 수 있도록 경험이 쌓였다.

〔뭐야, 쉽잖아?〕

〔괜히 쫄았네.〕

비록 잡아 죽인 중급 마수가 97연대 측과의 교전 도중 도망친 놈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감이 붙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오죽하면 훈련병들이 단테의 이름을 거론할 정도일까.

〔솔직히 상급 마수를 잡은 거면 몰라도, 버티는 것 정도는 나도 하겠다.〕

〔제일 빨랐잖아. 원래 기회는 잡는 놈이 승리자지, 뭐.〕

‘어쩌면 나도 단테처럼 버틸 수 있었지 않을까? 그래, 내가 불가능했을 리가 없어.’

그런 생각이 은연중 훈련병들의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단테를 무시하든, 무시하지 않든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페고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조금 더 빨랐다면.’

‘나이트 프레임이 1기라도 더 있었다면.’

‘어쩌면, 콧대 높은 귀족들에게 한 방을 먹일 수 있었을 텐데.’

단테의 무력을 무시하지 않았다.

더욱이, 몰락 귀족이라 하여 유엘보단 거부감이 덜 한 게 사실이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실전에 들어가면 비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페고르는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였는지 말이다.

-까득.

놈 특유의 소리가 울리자, 페고르는 황급히 몸을 피하며 곁에서 함께 놈의 공격을 막아 내던 훈련병에게 외쳤다.

〔피해!〕

그러나 그 순간.

〔아, 안……!〕

콰드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이트 프레임의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그리고 곧 대지를 뚫고 솟구친 검은 꼬리가 접힌 꼬치를 꿰뚫듯 그대로 훈련병의 육신과 기체를 연결했다.

비명도 들려오지 않는다.

다만 드높은 허공까지 솟구쳤다.

이내 추락하는 모습만 보아도 죽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페고르! 물러서!〕

그때 뒤에서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특유의 거대한 망치를 들고 페고르를 황급히 뒤로 감췄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그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는 걸 아는 페고르는 미간을 찡그리며 외쳤다.

〔차라리 합공해야 합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내가 시간을 끌 테니까 차라리……!〕

까드득-!

이빨을 갈았다.

짜증이 났다.

당장 어떻게 도망가겠는가.

아니, 애초에 도망을 치다가 몰리고 몰린 것이 이 이름 모를 거대한 호수의 앞이었다.

그 때문에 페고르는 손에 쥔 라이플을 앞으로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그러자 교관도 체념한 것인지 특유의 옅은 하늘색 마나가 감도는 망치를 휘둘렀다.

후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망치가 상급 마수를 단번에 깨트릴 듯 휘둘렸다.

그러나 둘 다 알았다. 저 검은 뼈가 고작 이런 공격에 부서질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래도 타격은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문득 페고르는 쩌억 입을 벌리는 놈을 응시했다.

과거 실존했다는 드래곤의 뼈에서 검은색을 칠하고 날개를 떼어 내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까드득, 까득.

다시금 턱관절이 경련하는 소리가 울리자, 교관은 황급히 자리를 박차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저 소리가 울리면 반드시 대지를 뚫고 꼬리가 솟구쳤으니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까득.

놈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듯한 모습을 본 교관은 통신기가 켜져 있는 것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나지막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웃, 웃었어……?〕

콰드드득.

뻗힌 것은 꼬리가 아닌 놈의 거대한 입이었다.

뼈를 가르고 육신을 찢는 참혹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나이트 프레임의 온 장갑에 이빨 자국이 파고들었고, 통신기 너머로 고통이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끄, 끄아악! 아아아악!〕

기본적으로 파일럿들은 동화율에 비례하여 기체의 고통을 일정 부분 느낀다.

지금 교관은 산 채로 씹어 먹히는 느낌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거다.

그러나 페고르는 멍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 다름이 아닌 마수의 표정 때문이었다.

‘즐기고…… 있어?’

분명 표정 따위, 감정 따위 못 느낄 미물이자 괴물일 것이다.

그런데 저 거대한 본 드래곤은 마치 즐기기라도 하는 듯 교관의 나이트 프레임을 씹어 뜯고 있었다.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놈은 분명히 즐기고 있었다.

타앙!

머잖아 통신기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모를 페고르가 아니었기에, 허공에서 추락하는 교관의 기체를 묵묵히 바라보던 페고르는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여기서 죽을 순 없어.”

버티면, 버티면 지원군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 버티면…….

까드득.

순간적인 엄청난 고통이 페고르를 집어삼켰다.

뒤늦게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리자 라이플을 쥔 오른팔이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엄청난 고통이 멀쩡히 달려 있는 오른팔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생전 느껴 본 적이 없는 고통에 이빨이 딱딱 부딪혔다.

그럼에도 페고르는 이어질 공격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동했다.

그러나 그 순간.

까득.

재차 뻗어진 꼬리가 페고르의 왼쪽 무릎을 꿰뚫었다.

그러자 이번엔 미처 참지 못한 페고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뒤집었다.

“끄아악! 아아아악!”

팔이 날아갔다.

무릎이 꿰뚫렸고, 척추를 따라 고통이 밀려온다.

한없이 되새겼다.

이건 단순히 기체의 고통이라고.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고.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오른쪽 다리마저 꿰뚫는 상급 마수의 잔인함뿐이었다.

‘끝……인가.’

이미 반쯤은 고통에 정신을 놓았다.

감기는 눈과 감각이 없는 팔다리를 본능적으로 편하게 하고 싶어서인지, 의자에 몸을 묻고 멍한 눈으로 상급 마수를 보았다.

‘단테…… 그 괴물 같은 새끼.’

정말 귀족들은 특별하기라도 한 것인가.

몰락 귀족이라면서, 어떻게 저런 놈을 상대로 그렇게 버틴 걸까.

문득 존경심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까득.

다시금 귀에 울리는 놈의 소리에 페고르는 눈을 떴다.

딱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끝까지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점점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대지를 뚫고 뻗어진 검은 뼈가 단번에 콕피트를 꿰뚫을 듯 시야를 가득 메웠다.

정말로 죽음인 것이다.

오히려 심장이 가라앉았다.

죽음이라 생각하니,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이 차오른 탓이다.

그 순간.

“커어어억!”

페고르는 갑자기 왼쪽으로 빨려가는 듯한 시야에 몸을 부르르 떨며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잡힌 것은…….

‘다, 단테……?’

발로 자신을 차 버린 듯, 한쪽 다리를 들고 당장이라도 놈의 꼬리에 꿰뚫릴 듯한 단테의 기체였다.

그리고 그것이, 호수에 처박혀 정신을 잃기 전 페고르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단테는 호수에 반쯤 가라앉아 그대로 기동이 정지된 페고르의 기체를 바라보다가, 자신을 향해 뻗어지는 꼬리를 응시하며 손을 뻗었다.

스륵.

왼쪽 손목의 케이블이 뚜둑-하며 살짝 갈라지고, 단테는 망설임 없이 금나수의 묘리를 담아 놈의 꼬리를 틀어쥐곤 덧붙였다.

〔오랜만이구나. 묵골이룡(墨骨螭龍).〕

기갑천마

호수에 달빛이 비친다

묵골이룡.

쉽게 말해, 검은색 뼈를 가진 이무기라는 뜻이다.

‘흑백사보다 배는 껄끄러운 놈이다.’

흑백사는 상급 마수 중에서도 약한 축에 속한다.

그러나 눈앞에 선 놈은 달랐다.

‘남은 내력을 갈무리한다.’

심장 고동이 낮아지고, 의자에 몸을 묻은 채 거인에게 온전히 동화된다.

미약한 동요가 일었던 내면을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힌다.

뿌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에 쥔 꼬리의 뼈를 부수고 그 안에 기체의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놈을 끌어당겼다.

-까드드득!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놈이 순순히 단테의 손에 끌려올 리가 만무했다.

오히려 역으로 손가락을 박아 넣은 단테의 기체가 끌려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순간. 단테의 입꼬리가 미약하게 올라갔다.

-까득, 까드득!

콕피트 너머로 저 버러지의 생각이 읽히는 듯했다.

역으로 당겨진 기체를 단번에 제압한 후 유린하려는 것이리라.

‘건방진 놈.’

이무기와 닮았기 때문일까.

놈들은 언제나 모든 동족이 오만했고, 맞서 싸우는 이들을 기만하다가 죽이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놈은 알까.

그런 점이 오히려 스스로를 죽인다는 걸.

파앙!

파공성과 함께 놈의 몸에서 뻗어진 뼈로 된 가시 수백 개가 일순간 단테의 아틀라스를 노리고 뻗혀 왔다.

그와 동시에 그를 끌어당김으로써 자유를 얻은 꼬리가 대지 속으로 파고들었다 단테의 발아래에서 솟구쳤다.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형국이다.

하나, 단테는 일말의 당황도 없었다.

대지를 박차고, 나아가 솟구치는 놈의 꼬리뼈 또한 디딘 후 도약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허리를 비틀어 그대로 앞으로 쇄도했다.

수백 개의 가시가 그를 노리고 뻗혔다.

족히 하나하나가 웬만한 성인 남자와 맞먹는 크기였다.

그러나 정작 단테는 어떠한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뻗을 뿐이다.

퍼억, 소리와 함께 기체의 어깨에 가시가 박혔다.

동시에 케이블로 동화된 단테의 어깨에도 꽤나 지끈한 고통이 밀려온다.

머잖아 또 하나의 가시가 배에 박혔다.

그 뒤는 무릎이었고, 나아가 복부였으며, 또한 목이었다.

어쩌라는 것인가.

이따위 고통 따위는 이미 숱하게 겪어 보았다.

때문에 단테는 그저 미간을 찡그리며 어느새 놈의 목을 틀어쥘 수 있을 정도로 근접한 상황이었다.

-까, 까득!

드물게 당황한 듯한 놈의 관절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단테는 그런 놈에게 걸맞은 대우를 해 줄 생각이었다.

콰드득, 소리가 나게 왼쪽 발을 대지에 박아 넣었다.

나아가 가시가 박힌 허리를 빠르게 돌려 가속한 직후, 남은 내력의 반을 쏟아부어 그대로 놈의 목에 찍어 눌렀다.

묵빛보다 더욱 검은 섬광이 흩뿌려졌다.

나아가 정적이 호수 위를 감싸고, 내지는 까득거리는 놈의 의문 섞인 울림만이 가득 찰 뿐이다.

하나, 그 순간.

콰과과과과광!

일순간 정적을 깨고 놈의 목을 따라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갔다.

그 어느 때도 고강했을 듯한 묵빛 뼈가 갈라지고, 사이사이 단테가 뻗은 내력이 질주했다.

-까드드득, 까득, 까드드득!

놈이 몸을 떨었다.

검은 하늘 아래 오직 뼈만 남은 검은 이무기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이다.

성대가 없기에 울 수 없다.

날개가 없기에 날 수 없고.

생명이 없기에 피를 흘릴 수도 없다.

그 때문에 그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이다.

단테는 방심하지 않고 곧바로 놈의 갈비뼈를 박차고 호수 근처로 물러섰다.

이번 공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한 탓이었다.

-까, 드득!

아니나 다를까. 놈은 곧 흉흉한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고통을 떨쳐 내곤 고개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언제 목뼈가 산산이 갈라졌었냐는 듯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 분노가 치솟은 탓일까.

놈은 곧바로 단테를 향해 미친 듯이 쇄도했다.

일전의 여유롭고 오만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흥분한 모습이었다.

‘쯧.’

곧바로 다음 공격을 출수하려던 단테는 무심결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내력이 모자랐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연대를 나서 몇 번의 전투를 했고, 또 몇 마리의 중급 마수를 찢어 죽였던가.

애초에 이류의 내력으로도 이렇게까지 움직일 수 있던 것도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까드득! 까득!

하나, 그렇다 해도 멍하니 서 있을 순 없는 일이다.

때문에 단테는 처음으로 기체의 후면에 매여 있던 미스릴 소드의 검파를 쥐었다.

서늘하고 묵직한 감각이 케이블을 따라 단테의 뇌리를 울렸다.

이윽고 묵골이룡의 육신에서 수없이 분열된 묵빛 뼈가 하나의 거대한 채찍이 되어 뻗어진 그 순간.

스읍- 후.

단테의 입에서 서늘한 한숨이 흘렀다.

그러고는 내력을 끌어모아 최대한 간결하고 살상력이 높은 절초를 떠올린다.

‘일격으로 끝낸다.’

어지간한 상처는 멀끔히 재생해대는 놈이다.

그러니 웬만해선 일격에 끝내는 것이 좋겠지.

단테는 그렇게 생각하며 추욱-늘인 검에 내력을 담고 몸을 갈라 놓을 듯 뻗어지는 채찍을 피하며 그대로 검을 뻗었다.

유려하지도, 그렇다고 투박하지도 않은 검격이 허공에 그어졌다.

머잖아 뻗어진 검로를 마주한 놈은 코웃음을 치며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역시, 검은 못 써먹겠군.〕

단테는 망설임 없이 손에 쥔 검을 놓았다.

그러고는 어느새 놈의 품 안으로 파고든 단테는 저도 모르게 씨익 웃음을 흘리며 일전에 미처 완전히 뻗지 못한 절초를 다시금 뻗었으니.

허리를 반쯤 돌렸다.

순간 호수에 반쯤 잠긴 발을 대지에 단단히 박아 넣은 단테는 그대로 모든 내력을 거뒀다.

케이블을 혈도 삼아 돌진하던 내력이 일순간 단테의 단전으로 회수된다.

그리고 머잖아 단테의 주먹이 완전히 뻗히기 직전.

그는 머리 위에 있을 묵골이룡에게 서늘한 작별 인사를 대신할 말을 나지막이 읊조렸으니…….

천마월광천하(天魔月光天下).

검은 하늘, 흐려진 구름에 달빛마저 자취를 감춘 밤.

오직 별빛만이 자리하던 호수의 끝자락에 일순간 달이 떠올랐다.

콰과과과과광!

폭발적인 내력이 단테의 뻗힌 팔을 향해 달렸다.

나아가, 묵빛 뼈와 마주한 내력은 그 자체로 하나하나가 서늘한 달빛이 되어 놈의 검은 육신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이미 고통은 의미가 없었다.

묵룡이룡은 서서히 기울어 가는 시야를 느끼며, 비로소 자신이 죽었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족히 뼈로 태산을 쌓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던 육신이 하릴없이 허물어졌다.

이무기가 되지 못한 육신이 물 밑으로 가라앉고, 검은 하늘 아래 외롭게 흐르는 호수에 떠오른 섬광은 달이 되어 유려하게 흘렀다.

동시에 단테는 입가에 주륵- 흐르는 핏물을 느끼며 노곤한 눈으로 의자에 몸을 묻었다.

‘……무리를 했나.’

고작 반년 만에 이류까지 올려놓았다지만, 생각보다 기체 조종에 드는 내력이 많다 보니 그마저도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단테는 쯧, 하고 혀를 찬 후 진심으로 다짐했다.

조만간 영약 비슷한 거라도 찾아서 먹어야겠다고.

머잖아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곤한 몸과 지친 육신이 그를 괴롭혔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체 자체가 고슴도치가 된 건 둘째로 치더라도 당장 내력이 없으니 잠시 내려서 쉴 생각이었다.

상급 마수가 죽은 자리엔 마수들이 쉬이 다가오지 못한다.

적어도 며칠간은 그랬다.

때문에 단테는 망설임 없이 콕피트를 열고 호수 위로 떨어져 내렸다.

철퍽, 소리가 울린다.

그토록 거대한 이무기가 죽어 재로 변했기 때문일까.

호수의 수위는 꽤 얕아져 있는 상태였다.

단테는 그런 호수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정확히는 옮기려 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들리는 세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단테.”

“대위님.”

살짝 고개를 돌렸다.

땀에 절었기 때문일까.

흘러내린 흑발 사이로 노곤한 적색 눈동자가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이냐고.’

분노도, 당황도, 내지는 체념도 아니다.

단테가 가진 것은 지극히 단순한 의문뿐.

그 때문에 세실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

‘상급 마수를 단신으로.’

그녀가 본 것은 하나뿐이다.

아레아의 마지막을 지켜본 후, 아니나 다를까 단테가 성급하게 먼저 떠난 것을 확인하고 뒤늦게나마 뒤를 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단테가 부디 무리하지 않기를 바랐다.

상급 마수다.

다름 아닌, 상급 마수란 말이다.

네임드만 위험한 게 아니다.

상급 마수 또한 어지간한 병력이 있어야 상대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괴물이다.

비록 단테가 일전에 버텼다고 해도 아예 상대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란 뜻이다.

하나, 곧 흔적을 따라 호수에 도착한 세실이 본 광경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호수 안에서 단테가 검을 놓았다.

그 때문에 세실은 그가 상급 마수와 맞서고도 버틴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빠르게 그를 구하기 위해 창을 빼 든 상태였다.

그러나 그 순간.

어딘가 낯이 익은 섬광이 흩뿌려지고, 머잖아 굉음과 함께 본 드래곤처럼 보이는 상급 마수가 쓰러졌다.

재로 변하더니, 머잖아 자취를 감췄다.

일개 훈련병이, 그것도 부사관이 상급 마수를 단신으로 사냥했다.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세실은 스스로도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그저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지쳐 보이는 단테를 겨누며 물을 뿐이었다.

“대체, 네 정체가 무엇이냐.”

그때였다.

“어…… 크흠!”

비단 단테뿐만이 아니라 세실에게도 귀에 익은 헛기침이 울렸다.

흠칫하며 고개를 돌린 그녀는 이 자리에 있을 리가 없는 남자를 보며 당황과 경계가 섞인 눈으로 그의 이름을 읊조렸으니.

“……로한?”

바로 다름 아닌 로한이었다.

특유의 실눈이 묘하게 어색한 낌새를 띤다.

그는 정말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 세실과 단테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러고는 까라면 까야지,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고는 아직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세실을 향해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대위님, 어…… 저도 진짜 이러기는 싫은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상부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어서요. 하핫…….”

“로한 중사, 지금 무슨 말을…….”

세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가뜩이나 단테의 문제로 생각이 복잡한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란 말인가.

“세실 대위님.”

하나 그 순간.

로한이 품속에서 꺼낸 검은 징표를 본 세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으니.

검은 바탕에 금색으로 눈 하나가 그려져 있다.

눈은 마치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라는 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로 간결하면서도 어딘가 섬뜩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조직의 상징임을 아는 이에겐, 때때로 더욱 섬뜩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면…….

“……블랙 가드?”

로한이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블랙 가드의 엠블럼이었으니까.

경악하는 세실의 얼굴이 눈에 담기자 로한은 씁쓸하다는 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래서 하기 싫다니까…….’라고 중얼거렸으나, 이내 세실을 바라보며 딱딱한 무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현 시점부로 훈련병 단테의 신병은 저희 블랙 가드 측에서 맡아야겠습니다, 세실 대위님.”

당연하게도.

정적이 흘렀다.

기갑천마

틀린 사항 있나?

블랙 가드.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세실은 자신도 모르게 단테에게 겨눴던 총구를 로한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혼란과 배신감이 담긴 눈으로 그를 응시하며 물었다.

“……로한, 대체 언제부터?”

로한 중사.

그와의 인연은 짧지 않았다.

그가 부사관이 아니라, 병장이었을 때부터 함께했으니 족히 3년, 아니 4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블랙 가드라니?

블랙 가드가 어떤 조직인지 묻는다면 흔히들 데지안의 감시국이나 카리튼 연합 왕국의 특임대 따위의 사냥개들이 언급되곤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세실은 알았다.

그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미친 집단인지 말이다.

감시국?

그저 귀족이란 이들을 위한 청소부에 불과하다.

특임대?

마찬가지다.

그저 이빨과 발톱을 날카롭게 간 사냥개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블랙 가드는 아니다.

애초에 그들이 모시는 주체는 황실이 아니라 바로 제국 그 자체였다.

때문에 그들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그들을 조직이 아닌 하나의 ‘가문’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그녀도 단편적으로 아는 게 전부였다.

다만 언젠가 아버지와 오빠가 한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블랙 가드하고는 절대 엮이지 말거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후작이자 제국군의 소장인 세르겐.

로열 가드의 제4 단장 세로스.

가족임을 떠나, 직위만을 따져도 절대 가볍게 들을 수 없는 충고였다.

손이 떨렸다.

앞에 선 로한이 내민 엠블럼이 잠시 가짜가 아닌지 생각했지만 의미가 없는 일이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지금 로한은 진심이라는 걸.

그 때문에 그녀는 총구를 내릴 수 없었다.

“……이유를 설명해.”

뒤에 단테가 서 있었다.

비록 먼저 총구를 겨눈 것은 그녀였지만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단신으로 상급 마수를 죽였다.

물론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북부에서 에이스라 불리는 이들은 종종 보여 주는 전공이라고 하니…….

다만 그렇다고 단테가 상급 마수를 죽인 것을 속 편히 넘길 수도 없었다.

에이스.

그렇게 불리려면 모두 전투에 이골이 난 군인들이다.

태반이 몇 년을 전장에서 구르며 수백, 어쩌면 수천에 달하는 마수를 죽인 이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단테는 어떤가.

제대로 된 실전을 처음 겪은 순간, 동화율을 제대로 끌어 올리지도 못한 아틀라스를 끌고 상급 마수에게 몇 분을 버텼다.

그뿐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몇 분을 버티는 것과 아예 단신으로 상급 마수를 죽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인 것이다.

상식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인간 외의 것을 보는 듯한 두려움이 일었기에 본능적으로 총을 뽑았다.

그럼에도 쏠 생각은 없었다.

하나 로한은 달랐다.

“어째서 단테를 데려가려는 거지? 블랙 가드가?”

세실은 어느새 싸늘하게 굳어 버린 목소리로 로한을 겨누며 물었다.

블랙 가드.

그들이 가진 단편적인 정보만을 알고 있음에도 이리도 꺼림칙하다.

불쾌하며, 엮이지 말아야 할 것만 같은 직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그 때문에라도 이유를 알아야 했다.

단테의 과거가 어떠하든, 정체가 무엇이든…… 지금 로한이 하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그녀를 무시하는 처사였으니까.

물론 대위 나부랭이라면 무시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가진 신분은 대위가 전부가 아니었다.

영지 귀족이자 후작가인 아크레데 가문의 장녀인 것이다.

당연히 로한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볼을 긁으며 능글맞게 답했다.

“그게…… 저도 명령받는 처지라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일단 단테는 부상으로 인한 후방 이송으로…….”

그때였다.

타앙,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빠르게 세실의 머리 곁을 스치고 로한에게 쏘아졌다.

미처 반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사격에 세실은 몸이 굳었지만, 정작 표적이 된 로한은 언제 능글맞게 웃고 있었냐는 듯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으음.”

“로, 로한 중사! 괜찮……!”

뒤늦게 쏘아진 것이 단테의 총구에서 나온 총탄이라는 걸 깨달은 세실이 황급히 로한의 안위를 살폈다.

비록 뒤통수를 맞았다고 하나 그간의 정을 한순간에 버릴 순 없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무슨…….”

“……진짜 쐈네? 그것도 심장을 노리고.”

하나 곧 그녀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으니.

분명 총을 맞았으리라 생각한 로한이 너무나도 멀쩡하게 서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런 그녀의 뒤로 어딘가 권태로운 단테의 목소리가 울렸다.

“마도구인가.”

‘편리하군. 쓸데없이…….’ 따위의 말은 삼켰다.

뒤늦게 로한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 안에 보석처럼 장식되어 있던 마석에 쩌적, 하고 갈라졌다.

세실 역시 베리어가 각인된 마도구라는 걸 깨닫고 단테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지독한 귀찮음과 짜증, 내지는 분노마저 번뜩이는 그의 눈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네놈들을 따라간다는 거지?”

불쾌했다.

또한 귀찮았고, 나아가 후회가 되었다.

낌새가 느껴졌을 때 죽여야 했나.

그런 단테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한은 쓸모를 잃은 목걸이를 가볍게 뜯어 바닥에 투욱- 버리곤 여전히 자신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객기 부리지 마라, 단테. 일단 총구부터 내리고 말해 보자고. 안 그러면…….”

단테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소리가 다시 허공을 가르고, 이번엔 정확히 로한의 목젖을 조준해 쏘아진 총탄이 빠르게 쇄도했다.

그러나 그 순간.

다시금 펼쳐진 베리어가 총알을 막음과 함께 단테의 발치에 일순간 총탄이 박혔다.

“아, 이거 비싼 건데.”

로한은 이번에도 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이번엔 제복 안쪽에 넣어 두고 있던 작은 수정 하나를 떨궜다.

반면 세실은 단테의 발치에 박힌 총알에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격수.”

단테 역시 눈치를 챈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그는 잠시 주변을 훑다가 머잖아 저 멀리 무언가 살짝 반짝이는 나무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타앙!

쏘아진 총탄을 다시금 베리어가 막았다.

이번만큼은 로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친, 저격수의 위치를 단번에 특정했다고?’

상식이 파괴되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어째서 단장이 이런 명령을 내렸는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위험한 동시에…… 매력적인데?’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언제나 필연적으로 인재를, 그것도 규격 외의 인재를 갈구하는 블랙 가드에겐 단테는 반드시 붙잡아야 할 존재였다.

그 때문에 로한이 뭐라 입을 열어 그를 회유하려던 그때. 단테가 무심한 눈으로 말했다.

“다섯, 아니 여섯인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로한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머잖아 숲속에서 일련의 검은 제복을 입은 이들이 걸어 나왔다.

제국군이 입은 검은 제복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그들이 입은 제복에는 마치 통일이라도 된 듯 로한이 보인 엠블럼과 같은 문양이 박혀 있었다.

단테는 새로이 호수에 등장한 이들을 훑으며 생각했다.

그가 이 세계에 점차 적응하며 의문을 가졌던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군이 집중하는 훈련의 방식이었다.

마나 하트, 즉 중단전을 단련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림의 것처럼 경지를 쌓아 올리는 것보단 단순히 담을 수 있는 크기를 억지로 늘리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뿐인가.

체술이나 무기술은 모두 기체를 위한 기본기만을 알려 줄 따름이다.

즉, 진짜 무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태반이 단순히 기체를 조종하기 위해서, 또는 마력포라는 것을 다루기 위해 마나를 늘이는 수련을 거듭할 뿐이었다.

그나마 달랐던 것은 세르겐과 로열 가드라던 세로스가 전부일까.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놈들은 다르다.

‘절정, 아니…… 족히 초절정은 된다.’

제국군과 달리,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진짜 무인이었다.

그것도 웬만큼 경지를 쌓은. 문득 단테의 시선이 로한에게 닿았다.

‘저들에 비해 경지가 낮지 않은가.’

일전에 잠시나마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도 그렇고, 여태까지 기도를 숨긴 것만 봐도 초절정이라 생각하기엔 충분했다.

“거참, 진짜 물건이라니까.”

로한은 웃음을 지었다.

블랙 가드의 불문율을 알면서도, 내심 단테의 과거가 궁금해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제압이 먼저였다.

‘일단 팔 하나만 부러트릴까.’

저놈은 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진짜로 쏠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일단 조장의 권한으로 팔 하나 정도는 부러트릴 생각이었다.

설마, 이제 와 자진으로 따라갈 리도 없으니 말이다.

때문에 로한이 조원들에게 명령하려던 그때였다.

투욱, 소리와 함께 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단테는 성큼 그들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그래.”

“어?”

비단 로한뿐만이 아니라, 건방진 단테를 제압하고자 손을 풀던 조원들 역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까지 진짜 죽일 기세로 총을 쏘던 놈이 아니던가.

“얘기를 들어 보지.”

어느새 단테는 멍한 얼굴로 서 있는 로한의 앞으로 다가와 말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로한은 결국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하, 하하하핫!”

새로운 자극이었다.

그 때문에 눈물까지 맺히도록 웃은 로한은 ‘그래, 그래야지.’라고 중얼거리며 단테를 조원들에게 인도했다.

“잠깐, 단테……!”

당연히 세실이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이번엔 로한이 더 빨랐다.

“곧 97연대가 올 겁니다. 그때 생존자를 수습한 후 돌아가면 된다고 저희 단장님께서 말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앞에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리며 할 말을 찾던 그녀는 옅은 한숨과 함께 물을 수밖에 없었다.

“……후, 언제부터지?”

단장이라 그랬다.

블랙 가드의 단장이라면 적어도 그녀의 선에서 뭘 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

때문에 그녀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블랙 가드였냐고.

“어, 음…….”

그런 그녀의 물음에 로한은 어색하게 붉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정체를 밝힐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기에 그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던 것이다.

결국, 내뱉어질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병사 때는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세실은 침묵하며 총을 내리고 그에게서 몸을 돌린 채 호수를 향해 걸었다.

그녀가 로한과 함께한 시간 중, 병사의 시간은 극히 일부다.

결국 태반이 기만된 시간이었다는 뜻이다.

내심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로한은 그런 그녀에게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럼.”

단 한마디.

그것이 그녀에게 보일 수 있는 마지막 배려임을 알기에 로한은 그 말을 끝으로 곧바로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문득 세실의 고개가 돌아갔다.

멀어지는 단테와 로한의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무심결 서늘한 무언가가 뺨에 닿았다.

살짝 시선을 올리니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떨어졌다.

“하아…….”

답답함과 복잡함에 한숨을 내뱉고, 머잖아 양 뺨에 닿은 눈이 사르륵 녹았다.

마침내 겨울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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