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은 서서히 고통을 잊어 가는 듯, 옅어지는 숨소리를 내뱉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목에 걸린 군번줄을 조심스럽게 푼 후 소녀의 이름이 각인된 부분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쓸었다.
“아레아.”
훈련병의, 소녀의 이름이었다.
기억이 났다.
3분대에서 나름 괜찮은 성적을 보였던 아이다. 그녀는 잠시 묵묵히 아레아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유언이 있니?”
물음에 답하려 입이 달싹거린다.
하나 핏물에 목이 막혔는지, 아니면 그저 슬슬 한계에 다다른 것인지…….
아레아는 잠시 무언가를 힘겹게 삼키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세실을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동, 생이…… 아파……요.”
그녀의 말에 세실은 언젠가 읽었던 훈련병들의 가정사를 떠올렸다.
아레아의 동생은 희귀병이었지만, 그녀의 입대로 간신히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울컥, 하고 심장이 떨렸다.
하나 세실은 그저 손을 뻗어 아레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말렴, 아레아.”
바닥에 떨어진 군모를 주워 그녀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동시에 아레아가 듣지 못하도록 권총의 해머를 젖혔다.
“언젠가 로한이 네 목숨값은 비싸다고 말했어. 기억나니?”
“……네.”
“그 목숨값이.”
철컥-.
세실은 아레아를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왜인지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관자놀이에 서늘한 총구를 가져다 댔다.
나아가, 그녀는 결국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속삭였다.
“……네 동생에게, 제국이라는 후견인을 만들어 준거란다.”
‘제국이라는 후견인.’
착각일까.
아레아는 환하게 웃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그리고 그 순간.
타앙-!
콕피트를 울리는 총성과 함께, 한 명의 군인이 고개를 숙였다.
기갑천마
오랜만이구나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숲을 달렸다.
쿠웅, 따위의 묵직한 발걸음이 때아닌 밤을 깨웠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발치에 부러진 나무가 걸리고, 밤늦은 거인의 걸음에 새들은 밤잠을 설치며 하늘을 날았다.
길은 이미 뚫려 있었다.
상급 마수가 제국군을 뒤쫓으며 생긴 피의 길이리라.
분노하지 않았다.
이미 잃은 것을 나열하면 태산을 쌓았건만, 어찌하여 분노하겠는가.
다만 문득 의문이 들었을 뿐이다.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놈들은 대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탐하며, 무엇을 갈망하기에 이리도 달려든단 말인가.
문득 그의 시선이 검디검은 밤하늘을 배경 삼아 아득한 과거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