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흘렀다.
결과적으로 로한의 말은 대부분 옳았다.
가트 소령은 대위로 강등되었고, 형벌 부대의 지휘관으로 좌천되었다.
백작가의 후계자임을 생각하면 과한 처사라고 생각될 수 있겠으나, 그의 휘하에서 첸서를 따르던 부사관 일부가 군법 재판에서 양심고백을 한 탓이 컸다.
-가트 소령은 평소 방자한 지휘로 군 기강을…….
-제국군의 기둥인 장교에게 사적인 주종 관계를 제안하는 등…….
그 위태롭던 상황에서 단테를 방치한 것에 대한 속죄라도 되는 양, 그들은 자신들이 처벌받을 것을 각오하고 진술을 내뱉었다.
물론 평소 잘 지내던 첸서를 바로 잊고 단테에게 손을 내미는 가트에 대한 환멸도 있었을 것이다.
단테에 대한 훈장 서훈은 어찌 보면 당연한 절차였다.
고작 기갑 부사관 훈련병이 단신으로 상급 마수를 상대로 몇 분이나 버텼다는 건 제국의 언론들도 다룰 정도로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덕분에 단테의 공로는 꽤 화제가 되었다.
50년에 이은 전쟁에서 전쟁 영웅은 언제나 환영받는 존재이니까.
-위 장병은 지극히 불리한 전세에서도 용감히 분투하여 전 제국군의 귀감이 되었으므로…….
2급 제국무훈장.
무훈을 세운 장병에게 서훈하는 가장 낮은 등급의 훈장이긴 했으나, 역사상 훈련병 때 서훈받은 것 또한 단테가 유일했다.
“축하한다, 단테.”
서훈을 대리한 인물은 세실이었다.
가트 소령이 대위로 강등당한 직후 임시 연대장은 그녀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단테의 군복에 직접 은으로 만든 훈장을 달아 주었고, 단테는 흠 없는 경례로 화답했다.
그렇게 서훈식이 끝난 직후.
세실은 곧바로 훈련병들에게 말했다.
“제군, 임무다.”
막 기체가 배정된 직후였다.
기갑천마
제51 수색대대, 맞습니까
슬슬 날씨가 서늘해진 탓인지, 숨결 사이로 옅은 입김이 섞였다.
세실은 그런 훈련병들을 천천히 훑으며 말했다.
“일주일 전, 이곳으로 상급 마수가 침투한 건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굳이 근 몇 년간 전투 기록이나 군 문서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가트 소령과 같은 무능한 군인이 지휘관으로 있었다는 것만 봐도 충분히 증거가 되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다.
세실은 비단 훈련병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군기가 잡힌 병사들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바뀌는 건 없다. 제국을 위해 싸워라. 후방에 있을 가족을 위해, 또 곁에 있을 전우를 위해 싸워라.”
상급 마수가 나타난 이상 그들이 겪을 전투는 절대 가볍지 않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곁에 있던 전우가 죽고, 다치며, 미쳐 가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싸워야 했다.
살기 위해서, 또 살리기 위해서.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듣던 병사들은 손에 쥔 총을 꽉 쥐었다.
비록 잠시나마 해이해졌다 했으나, 결국 그들 역시 제국의 군인인 것이다.
그때였다.
엄숙해진 분위기 속에서 단테가 그녀에게 물었다.
“임무가 뭡니까.”
비단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궁금하게 여기던 참이었다.
마침 세실도 얘기하려던 참이었기에 별다른 답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틀 전, 상급 마수의 진격 루트와 전초기지 부지 정찰을 목표로 나선 인근 수색대대가 현재 고립되었다.”
그녀가 설명한 내용은 간단했다.
고립된 대대는 마지막으로 위치를 보내고 연락 두절.
퇴로가 마땅치 않은 고지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거로 확인되어 인근 부대들이 그들을 구원한다는 것이었다.
“인근 97연대와 104연대의 기갑 병력이 마수들의 양 측면을 흔들 거다. 그럼 우리는 후방을 빠르게 치고 들어가 퇴로를 열고 대대원들을 수습한 후 빠르게 복귀한다.”
그녀가 말하는 기갑 전력이라 함은 나이트 프레임뿐 아니라 궤도를 이용한 각종 병기 또한 포함하는 것이었기에, 능히 상급 마수를 묶어 놓을 정도의 화력은 되었다.
가능하다면 죽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훈련병들은 당연하게도 두려움을 배제할 수 없었다.
“실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결국 훈련을 받았다고 한들, 진짜 전쟁에 몸을 던진 그 순간부턴 감흥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였다.
“뭐야. 다들 쫄았냐?”
로한 특유의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고급스러운 기름 라이터를 딸깍거리며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 너희 하나 키우는 데 제국이 들인 돈이 얼마인데, 설마 쉽게 죽도록 놔둘까?”
고리타분한 윤리나 따스한 인류애적인 충고가 아니었다.
지극히 단순한 비용적인 문제다.
6개월간의 훈련비용이나 나이트 프레임 1개의 비용만 합쳐도 벌써 얼마인가.
더욱이 어디까지나 훈련병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위험한 임무를 배정할 이유는 근본적으로 없었다.
“앞으로 너흴 써먹을 전장이 몇 개인데, 고작 대대 구하자고 사지로 밀어 넣겠어?”
냉정하고 계산적인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로한의 말이 훈련병들을 안심시켰다.
어떤 첨언도 없는 무미건조하고 염세적인 말이었기에 더욱 그런지도 몰랐다.
“뭐, 그래도.”
로한은 손에 쥔 라이터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고는, 다시 훈련병들에게 시선을 향하며 덧붙였다.
“만약 상급 마수와 마주하면 보병이 죽든 말든 곧바로 이탈해라. 너희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니까.”
로한은 단테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쟤가 미친놈이지.’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것이다.
작지 않은 목소리였기에 훈련병들에게도 닿았다.
하나 대부분은 반감보단 순순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가슴에 달린 훈장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그런 훈련병들의 시선에 화답하기라도 하는 듯, 은색 제국기가 각인된 훈장에 햇빛이 부서져 반짝인다.
“자, 그럼.”
하나 그것도 잠시.
세실은 짝, 하고 박수를 쳐 이목을 집중시킨 후 훈련병들을 한번 훑고 말했다.
“위치로.”
그리고 그 즉시.
훈련병들은 사단에서 파견 나온 공병들이 임시로 세운 격납고에 줄줄이 세워진 3세대 나이트 프레임, 아틀라스에 올랐다.
우우웅.
끼기기긱.
머잖아 탑승한 순서대로 안광이 붉게 달아올랐고, 곧 60기의 거인이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