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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천마-26화 (26/197)

흙먼지와 함께 흑백사의 꼬리가 쇄도했을 때, 단테는 생각했다.

‘어린놈이다.’

움직임이 유려하지 못했다.

다분히 직관적이고 너무 정직했다.

달리 말하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버러지였다.

무거운 팔을 뻗어 놈의 꼬리를 흘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도약해 내력을 터트리며 그대로 내리찍어 눌렀다.

콰과과광-!

굉음과 함께 놈의 고통 섞인 비명이 귓가를 스쳤고, 단테는 놈의 머리 위로 착지해 언제 걷혔는지 모를 흙먼지 너머로 그저 멍하니 서 있는 병사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한심했다.

아니, 차라리 실망에 가깝다.

하릴없는 육신을 이끌고 서 있는 병사들은 이해가 된다.

하나 나이트 프레임에 올라 있으면서 저리 가만히 있는 건 무슨 추태란 말인가.

무기의 발전이 안전함에 대한 환상을 양산한 것인가.

그마저도 아니면 치열하지 않았던 삶을 증언하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북부는 조금이나마 다를까.

만약 북부마저 이런 꼬락서니라면, 적잖이 실망할 듯싶은데.

그때였다.

갑작스러운 통신 회선이 연결되고,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콕피트 내부를 울렸다.

〔단테, 허가받지 않은 기갑 병기 탑승은 징계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규율을 찾았다.

그런 세실의 성격은 썩 마음에 들었기에 단테는 답했다.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동의할 수밖에 없군. 하지만 훈련병이 낄 자리가 아니야. 빠르게 전선에서 이탈해라.〕

기갑 장교들이 족히 5명은 필요하다.

나아가 부사관도 최소 10명은 넘게 투입해야 해볼 만한 것이 상급 마수인 것이다.

어떻게 놈의 머리 위에 올라탔는지 몰라도 더 이상의 작전 수행은 아까운 인재를 잃을 가능성이 컸다.

〔이미 사단에 지원 요청을 보냈다. 이후 지연전은 남은 8기의 부사관이 하면 되니 빨리…… 이, 이런!〕

세실의 말은 끝맺음 되지 못했다.

단테의 주먹에 땅속에 처박힌 흑백사의 머리가 서서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세실은 통신기를 내려놓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마력 포대를 향해 외쳤다.

〔당장 포 발사해! 단테가 빠져나올 시간을 벌어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두려움에 굳어 있던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지금 움직인다고 단테를 엄호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기에 세실은 통신 회선을 돌려 아직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부사관들을 향해 드물게 화를 터트렸다.

〔훈련병이다! 훈련병도 대적하는데 부사관이라는 놈들이……! 상관의 무능이 옮기라도 한 건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늘 능글맞던 로한마저 흠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화를 낸다는 건 진심으로 상대에게 실망했다는 말이니까.

〔아…… 하, 하지만 대위님, 상급 마수는……!〕

그럼에도 머저리 같은 부사관들은 아직도 주저하고 있었다.

결국, 무능한 상관을 닮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세실이 우려하던 대로.

단테는 거대한 뱀의 머리 위에 올라탄 채로 그대로 수십, 아니 거의 100m가 넘는 상공 위로 그대로 솟구쳤다.

“……안 돼.”

저기서 떨어져도 죽진 않겠지만, 적잖은 내상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상급 마수는 놓치지 않겠지.

그녀는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격납고를 돌아보았으나 입술을 질끈 깨물 수밖에 없었다.

‘남은 나이트 프레임이 없어.’

아마 단테가 타고 나간 것이 마지막 남은 예비 기체였을 것이다.

결국 모든 방법이 막히고 말았다.

‘이렇게 또 아까운 목숨이…….’

자질이 뛰어나던 아이다.

과거가 조금 의심스럽긴 해도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면 제국을…… 아니, 대군주의 군단에 맞설 수 있는 든든한 군인이 되었을 인재였다.

하나 오늘 그런 인재를 잃은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미처 끊지 못한 단테와의 통신 속에서 의미를 모를 중얼거림이 내뱉어졌다.

〔……불꽃이 진 천지에 백월이 비추니, 본좌는 천마로서 기꺼이 달빛을 빛내는 심야가 되리라.〕

노래?

아니, 시구처럼 느껴지는 나긋한 목소리가 세실에게만 닿을 정도로 작게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천마월광천하(天魔月光天下).

일순간 푸르른 하늘에 검은 내력의 아지랑이와 함께 환한 달빛과 같은 섬광이 일었다.

단테의 몸에 자리한 망령의 증거가 이 세상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콰과과과과광!

족히 수십 발의 마력포를 쏟아부은 듯한 굉음과 함께 허공에 원 모양의 마나가 일점으로 모였다가 머잖아 흑백사의 상체를 잡아 삼킬 듯 아래로 뻗혔다.

그리고 단테의 주먹이 막 흑백사에게 닿은 그때 허공에서 구름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무언가에서 무수한 마력 파장이 일었다.

그 때문에 병사들은 단테가 아닌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우웅!

우우우웅!

마력 파장에 구름이 흩어졌다.

이윽고 드러난 자태를 본 누군가가 탄성이 섞인 외침을 내뱉었다.

“비행함……! 비행함이다!”

말 그대로 하늘을 바다 삼아 허공을 항해하는 비행함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단테의 주먹과 거의 동시에 허공에서 쇄도한 섬광이 흑백사의 육신을 강타했다.

족히 작은 산이라 할 수 있을 육신이 두 번의 섬광에 그대로 무너지고, 단테가 탄 기체는 갈라지며 타들어 가는 살덩이를 발판 삼아 대지 위로 안전히 착지했다.

누가 봐도 위태롭던 단테를 비행함이 구한 모양새였다.

그 때문에 로한은 어느새 평온을 되찾은 능글맞은 얼굴로 세실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거참, 운이 좋은 건지, 실력이 좋은 건지 모를 놈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니.”

“예?”

하지만 세실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보지 못했겠지만, 단테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그가 무언가를 하려 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시선은 평지 위에 홀로 서 있는 단테의 나이트 프레임으로 향했다.

‘비행함의 도움이 필요 없던 건 아닐까?’

평소라면 망상이라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다름 아닌 단테였기에, 그녀는 진심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때.

“어, 저거…… 황, 황실 비행함인데요?”

로한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기갑천마

너, 로열 가드 하자

콕피트 내부에 열기가 감돌았다.

적당히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으며 단테는 살짝 달아오른 숨을 후- 하고 내뱉었다.

동화율이 낮아 적잖은 부담이 온 탓이었다.

물론, 역량의 문제라기보단 시간의 부족이었다.

만약 제대로 동화율을 맞추고 적응할 시간이 있었다면 큰 부담 없이 흑백사를 죽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 해도…….’

단테, 그 자신에게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바로 턱없이 부족한 내력의 총량이 그것이었다.

그는 단전에 남은 내력을 대강 가늠하곤 쯧, 하고 혀를 찼다.

‘잡아먹는 내력이 생각보다 많아.’

2세대 나이트 프레임은 최소한의 장갑을 제외하곤 거의 골격 정도만 남겨 둔 상태로 훈련을 진행했다.

그러나 완전히 장갑과 각종 무구를 갖춘 아틀라스를 조종하자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잡아먹는 내력이 상상 이상이다.’

나이트 프레임이라는 거인이 움직이는 방식은 간단했다.

거인의 심장 역할을 하는 메인 코어에 마나 하트를 운용해 마력을 공급해 거인을 조종하는 것이다.

문제는 움직이는 데에 필요한 내력과 무공을 펼치는 내력은 별개로 취급된다는 것.

가뜩이나 내력이 모자라다.

하지만 이류 정도는 되면 만족스럽진 않아도 나름 싸울 만은 하겠다 싶었다.

‘틀렸다.’

이류로는 턱도 없다.

최소 일류, 아니 절정에는 다다라야 그나마 만족할 정도로 움직일 수 있을 듯한데…….

거기까지 생각한 단테는 문득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살다 살다 내력의 모자람을 토로할 때가 오다니.

‘영약이 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군.’

마나와 기는 본질적으로 같다.

그러니 이 세계에 영약과 비슷한 효험을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 해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그래도 나름 기꺼운 점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기체의 내구성이 그랬다.

조금 전 상급 마수를 끝낸 것은 일전에 광흑랑의 머리를 터트렸을 때와는 격을 달리하는 절초였다.

그런데도 손끝이 저린 감각을 빼곤 이리도 멀쩡하지 않은가.

단테는 의자의 팔걸이를 쓸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 정도면 쓸 만하군.”

괜히 세실이 일전에 목숨을 운운한 것이 아니다.

그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탈력감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지상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거대한 비행함을 바라보며 무심결 중얼거렸다.

“대체 저런 것들은 어찌 만드는 것인지…….”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라도, 이 세계의 기이한 병기들을 볼 때면 때때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문득 저 병기가 쏜 마력포를 떠올린 단테는 조금 전의 상황을 복기하다가 곧 결론을 내렸다.

‘내가 더 빨랐다.’

찰나의 순간이긴 했으나, 이미 자신의 절초에 죽어 버린 놈이었다.

그렇기에 이후 적중한 마력포는 그저 시체를 한 번 더 때린 것에 불과한 것이다.

단테는 남은 내력을 운용하여 앞으로 걸었다.

〔저, 저기…….〕

그러자 뒤늦게 그의 곁으로 살아남은 8기의 나이트 프레임이 붙었으나, 단테는 눈 길하나 주지 않고 그들을 지나쳤다.

짐짓 오만하고 방자하게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으나 부사관 중 누구도 그런 그의 모습을 탓할 수 없었다.

다만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저 훈련병, 정체가 뭐지……?〕

그들도 기갑 부사관이다.

즉, 훈련병 시절을 겪었기에 알 수 있었다.

조금 전 단테가 보였던 움직임과 행동을 훈련병이 보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말이다.

하나 결국 누구도 묻지 못했다.

무능할지언정, 수치를 모르진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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