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21화 (21/197)

식당을 나선 유엘은 곧바로 단테의 뒤를 쫓았다.

그에게 직접 대화를 하자고 말해 조용한 곳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할 말은 아니었기에.

‘어디로 갔지?’

그러나 곧바로 뒤따랐을 텐데, 그를 놓치고 말았다.

유엘은 초조한 듯 입술을 질끈 깨물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를 반기는 건 슬슬 쌀쌀해지는 밤공기와 깜빡거리는 연병장의 불빛뿐이었다.

“여기다.”

그때였다.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건물 사이의 골목에 그녀가 찾던 얼굴이 서 있었다.

흑발과 사뭇 어울리는 적안은 무표정과 어울려 냉기가 흘렀다.

그는 입을 살짝 달싹거리며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말했다.

“들어와라. 뒤의 소각장이면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을 테니.”

“……어, 음. 네.”

분명 나이는 같았다.

그런데 왜인지 그가 내뱉는 말에는 동년배의 미숙함이 아니라 묘한 연륜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그녀는 별달리 반문도 하지 못한 채 단테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무슨 수작이라도 부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으나, 별달리 와닿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 하더라도 결국 훈련소 안이 아닌가.

터벅, 터벅…….

둘의 걸음이 소각장의 중앙에 닿았다.

한쪽 구석에선 각종 쓰레기가 마석을 동력으로 하는 소각로에 던져져 타들어 가고 있었고, 다른 쪽에선 분류된 쓰레기가 겹겹이 쌓여 어딘가 음습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딜 봐도 둘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비록 망명했다하나 귀족으로서 살아온 유엘이 그러했고, 한때 십만 신교도들에게 추앙받았던 단테가 그러했다.

하나, 단테는 이번에도 별달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눈만큼이나 붉은 입술을 열어 물었다.

“내게 할 말이 있던 것 아니었나? 일부러 내가 식사를 끝낼 때까지 기다리던데.”

“……맞아요.”

확신에 찬 무심한 목소리에 유엘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숨긴다고 숨겼으나 내심을 들킨 것이다.

그녀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머잖아 그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무심한 얼굴이다.

입을 여는 것도 새삼 걸릴 만큼.

소각로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흔드는 바람이 일순간 공터를 맴돌고, 나아가 단테의 머리를 살짝 휘저었다.

‘일전에 보였던 태도 때문일까.’

좋게 봐도 정상은 아니다.

갑자기 소각로로 뒤따른 일이 살짝은 후회가 되었다.

순간적인 분위기를 탄 것이 이리 돌아온 것이다.

“……당신.”

유엘은 입을 열었다.

지금 존대를 입에 담는 것이 단지 귀족으로서 배웠던 예절인지, 아니면 어딘가 모를 분위기에 압도되어서인지는 차마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근 네 달 동안 그를 지켜보며 품었던 의문을 풀 기회다.

그 때문에 그녀는 천천히 덧붙였다.

“진짜 정체가 뭐죠?”

단테를 지나 그녀에게 닿은 바람이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살짝 들었다가 내려놓았던 때였다.

“몰락 귀족, 그 말을 전 믿지 않아요. 감시국이 일을 그렇게 허술하게 하지 않으니까.”

한번 물꼬가 트이니, 그녀는 더 망설이지 않았다.

어느새 금빛 눈에는 확신이 담겨 앞에 선 남자를 향해 진실을 묻고 있었다.

세실과 로한, 나아가 제국의 감시국이 얼마나 일을 잘하고 정보를 수집하든, 그 국가에서 살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기류와 상황이 있다.

그녀에겐 감시국이 그러했다.

“권력이란 허상과 고귀한 핏줄이란 아집을 지켜 내고자 귀족들이 만든 사냥개가 바로 감시국이죠. 그들은 태생부터 귀족과 비귀족을 가리기 위해 태어났고, 그것은 귀족이었음에도 귀족 될 자질을 잃은 이들 역시 포함되는 일이에요.”

언젠가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을 그에게 돌려준다.

“그런 그들이 마나 하트를 수차례 이어 가는 걸 두고만 보고 있었다고요? 차라리 당신이 마나 하트를 자력으로 익혔다는 게 훨씬 이해하기가 쉽죠. 거기에 당신이 보였던 기체 조종 실력은…….”

“거기까지.”

순간 유엘의 입술이 다물어진다.

그녀의 앞에 선 단테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그녀를 묵묵히 응시했다.

핏물이라도 담긴 듯 새빨간 눈이 그녀의 눈과 마주하자, 문득 묘한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그녀가 채 그것에 미간을 좁히기도 전, 단테의 입이 열렸다.

“유엘 드 로트메일.”

“……예.”

그녀의 풀 네임이다.

나아가, 이젠 멸망해 버린 데지안 왕국의 귀족임을 알려 주는 마지막 상징이기도 했다.

단테는 그 이름을 잠시 곱씹다가, 무심결에 말을 내뱉었다.

“시간 낭비를 했어.”

“뭐라고요?”

시간 낭비를 했다.

그의 무도한 말에 순간 유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의 딴에는 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내뱉은 물음이거늘, 저자에겐…….

무시를 당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입을 열어 단테에게 뭐라고 쏘아 줄 참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데지안 왕국은 무너졌다.”

“……?”

실로 무덤덤한 목소리가 유엘의 귀를 스쳤다.

나아가 소각로의 위로 승천하는 듯한 연기에 섞여 허공으로 흩어진다.

“국토 태반이 마수의 터전이 되었고, 듣기론 수도인 데지아는 둥지가 되었다더군. 그나마 제국이 뒤늦게 펼친 남부 방어선이 아니었다면 아예 왕국령 전부가 마수들의, 군단의 터전이 되었을 거다.”

멎은 바람에 흔들리던 단테의 흑발이 살짝 이마를 덮는다.

“그럼에도 국토 회복은 불가능하지. 마수를 몰아내는 것도 비현실적일뿐더러 만일 그것을 이룬다고 해도 그곳은 이제 왕국이 아니라 제국령이 될 테니까.”

이미 데지안 왕국은 지워졌다.

나라는 망했고, 허울뿐인 망명 귀족들과 데지안 왕국의 난민들이 왕국이 남긴 전부였다.

“……뭘 말하고 싶은 건가요, 당신.”

유엘의 얼굴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굳이 나라가 망한 것을 읊어서 저 남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혹 남들처럼 데지안 왕국 귀족들의 무능함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녀의 눈에 슬픔이 스쳤다.

그렇다면 반박할 말이 없었기에.

“데지안 왕국은 무너졌다. 유엘, 이제 그 이름을 볼 수 있는 건 역사책에서밖에 없겠지.”

거기까지 들은 유엘은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저 남자는 답을 해 주는 대신 귀족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택한 듯싶었다.

언제나 비수가 되는 말이었다.

“그러니.”

그러나 이윽고 이어지는 단테의 말은.

“쓸데없는 의문은 가지지 말고 훈련이나 열심히 해라. 네 말대로 내 출신에 문제가 있으면 어련히 제국 헌병대가 나서서 날 체포해 갈 테니까.”

비수나 모욕이 아닌, 한심하다는 듯한 충고였다.

“……예?”

순간 유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이 남자가 대체 뭐라고 말한 건가.

그러나 단테는 더 할 말은 없다는 듯,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단테가 앞서 들어왔기에 나가려면 그녀를 지나쳐야 하는 탓이다.

사박사박.

겹쳐지는 발걸음이 아닌, 단테 혼자만의 발걸음이 흙으로 된 소각장의 바닥에 자국을 남긴다.

멍한 얼굴로 뒷모습을 바라보는 유엘을 지나친 그는 어느새 하늘을 빛내는 백월(白月)을 바라보며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그래, 무너졌지.”

단테라는 아이와 천마였던 천휘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잃었다는 것이다.

단지 단테는 나라를 잃었고.

천휘는 하나의 세계를 잃었을 뿐이다.

문득 심마가 뇌리에 드리웠다.

사라진 것은 잊힌다.

기록하고 기억하는 이가 없으면 더욱더 빨리 잊히곤 한다.

그럼 중원은 어찌 되는 것일까.

만약 천휘가 아닌, 단테로서 시간이 흐른다면 과연 자신에게서도 중원은 흐릿해지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지.’

그는 잠시 씁쓸한 눈으로 심야를 채운 달빛을 응시하다가, 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심마를 드리운 그의 머리 위로.

유달리 달빛이 밝았다.

기갑천마

겨울은 이미 시작되었다

일련의 심마가 스쳤지만, 단테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꾸준한 수련을 병행하며 나이트 프레임을 이용한 전투에 적응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성과가 없지 않았다.

그날부터 2주가 지난 새벽.

삼류밖에 안 되던 단전의 내력을 이류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중원의 무림인들이 보기엔 적잖이 놀랄 만한 일이었으나 단테는 이미 예상한 바였다.

신공이라 불리는 백월의 묘리와 풍부한 진기가 합쳐지는데, 이보다 늦었으면 오히려 자신의 자질을 의심했을 것이다.

더욱이 이미 한 번은 밟았던 길이 아니던가.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비록 나이트 프레임에 탑승하여 전투하는 임무가 태반이라고 하여도 결국 군인인 이상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교범이나 전략을 외우는 것과 사격이 바로 그것이었다.

타앙-!

단테가 손에 쥔 권총이 불을 뿜고, 허공을 빠르게 가르며 일순간 표적지를 꿰뚫었다.

그는 팔을 따라 흐르는 반동을 느끼며 손에 쥔 은빛 무기를 내려다보았다.

‘리볼버라고 했던가.’

이 세계의 군인들이 애용하는 무장이다.

벽력탄에 사용되는 화약을 작게 담아 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으나 실상은 달랐다.

화약은 없다.

손에 쥔 이가 마나를 공급하여 화약을 대신하는 것이다.

자세한 구조를 알 순 없겠으나, 듣기론 내부에 폭발 마법과 여러 가지 마법을 가공해 마도 공학의 묘리를 담아 제작했다고 한다.

당문의 암기와 닮았다.

그러나 사용법 자체는 놀랄 정도로 간단했다.

극히 소량의 마나를 흘린 채 방아쇠라는 걸 당기기만 하면 그뿐이다.

더욱이 탄두에는 마찬가지로 마석이 박혀 있어 살상력 또한 꽤 뛰어난 편이었다.

‘실로 위험한 물건이다.’

미간을 좁혔다.

일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실제로 사용할 때마다 섬뜩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리볼버가 아닌 기관단총이나 소총 따위로 불리는 것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물론 중원에서 고수라 불릴 정도면 총탄 따위 수십, 어쩌면 수백 발은 튕겨 내고 베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쥔 것이 개인이 아니라 세력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것이다.

녹침채의 산적들은 하찮다.

흑도의 방파라면 단지 귀찮을 뿐이고, 무림맹의 무지렁이들이 그리한다면 코웃음을 치리라.

하나 황제의 군문은 다르다.

무심결 천자(天子)의 황금기를 든 수천, 수만의 군문이 일제히 이 총이라는 것을 들고 신교를 향해 전진하는 것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큰 수련도 필요 없다.

앞으로 겨누고, 단전을 운용하며 그저 손가락만 당기면 된다.

그 사소한 손짓에 수만, 수십만의 총탄이 허공을 날아 무인들의 호신강기를 두드릴 것이며, 나아가 육신을 관통할 것이다.

‘그리 달갑진 않다.’

그러나 기분과 달리 쓸 만한 무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 일이다.

때문에 그는 약실을 열어 마탄을 넣고 다시금 사격을 시작했다.

타앙-! 타앙-!

순식간에 쏘아진 탄환에 표적지의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꿰뚫리고, 나아가 단테의 사격이 끝났다.

그 순간 곁에 서 있던 조교는 힐끔 표적지를 확인하곤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훈련병 단테, 만발이다.”

그의 말에 단테는 탁- 하고 손에 쥔 리볼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하나 이번엔 딱히 큰 웅성거림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사격 자체는 대다수 훈련병 역시 만발을 쏘기 때문이었다.

제일 성적이 좋지 않은 훈련병이 만발에 근접하니, 딱히 큰 편차는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다만 근 몇 달간의 훈련으로 그렇게 변했을 뿐이었다.

단테가 자리에 앉은 직후, 다른 훈련병들도 차례차례 사로에 올라 권총을 쥐었다.

그리고 막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때.

“다들 동작 그만.”

사격장의 문이 열리고,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갈색 칼 단발에 검은 제복을 입은 세실의 무표정이 단테의 눈에 맺혔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교관과 조교, 훈련병들의 경례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그녀의 얼굴을 살핀 그는, 이윽고 살짝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는데.’

무표정을 꾸며 냈다지만, 미간이 살짝 좁혀지고 눈동자 역시 미약한 노기를 머금었다.

겉으론 평정을 연기한다고 해도 그의 눈을 피할 순 없었다.

머잖아 세실의 입이 열리자, 단테는 어째서 그녀의 심기가 뒤틀린 건지 대충은 눈치챌 수 있었다.

“전원 내무반에서 제복으로 환복 후, 군장을 꾸린 채 연병장으로 집합해라.”

“대위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교관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중위 계급장을 단 그의 물음에 세실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그래, 어차피 알게 될 테니.’라고 작게 중얼거리곤 조금은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상보다 전선 배정 시기가 앞당겨졌다. 현재 훈련소에 남아 있는 6개 분대는 빨리 움직여라. 그리 시간이 많지 않으니.”

“……예?”

그녀의 말에 놀란 것은 훈련병들보단 조교와 교관이었으니, 그도 그럴 게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닌가.

제국은 왕국이나 공화국과는 다르다.

엄연한 절차가 있다.

그것은 제국군이라 하여 다르지 않다.

강력한 황권을 중심으로 세워진 군율은 작은 일정조차 큰 이유가 없이는 변경되지 않는다.

더욱이 훈련병들은 단순히 참모나 일반 부사관이 될 이들이 아닌, 개개인이 하나의 보병 연대급으로 취급받는 중요 전략 자원이다.

그러니 세실의 명령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말을 꺼낸 교관은 무언가를 되물으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번엔 곁에 서 있던 로한이 더 빨랐다.

“상부의 명령이다. 그러니 움직여. 상주 인원을 제외한 조교와 교관은 모두 함께 움직인다.”

그의 말에 세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서 제일 상급자인 세실의 명령, 그리고 나아가 상부의 뜻이라는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군인은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빠르게 훈련병들을 인솔하여 사격장을 떠났다.

“후.”

한편 그들이 모두 떠난 자리에 로한과 단둘이 남은 세실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역시 달갑지 않기는 매한가지였기에.

그때 곁에 서 있던 로한이 말했다.

“북부의 상황이 생각보다 더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렇게 서두르는 걸 보면.”

“……그렇겠지.”

이번 명령에서 특정된 건 그들이 몸담은 제3 육군 기갑 부사관 훈련소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훈련소 전부이리라.

직접적인 사정을 듣진 못했지만 대충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제국은 훈련병들의 빠른 전력화를 원하고 있었다.

조금은 불량품으로 만들어지더라도.

원래 6개월의 훈련 기간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제국 사관학교에서 나이트 프레임에 오를 기갑 장교는 4년을 훈련받는 데에 반해, 평민들은 부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졸속 훈련을 받고 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다.

‘소모품이라는 거지, 결국은.’

뿌득-!

이빨이 갈렸다.

시설에 가서 아이들을 데려올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새삼 치솟는다.

그러나 그뿐.

문득 세실의 감정 속에 체념이 섞였다.

아버지가 제국군의 소장이라도, 또한 제국의 후작이라 해도 그녀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군에 몸담은 언젠가부터 뼈저리게 느낀 잔인한 진실이었다.

“아, 그나저나.”

그런 그녀의 복잡한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적발을 대충 쓸어 넘기던 로한은 이윽고 실눈을 호선으로 올리며 능글맞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누가 봐도 명백히 말을 돌리는 모양새였다.

“단테에 대한 정보는 왔습니까? 저도 좀 궁금한데요.”

“아직이다. 아쉽게도.”

그녀는 그렇게 답하곤 사격장을 나섰다.

새삼 정보국의 정보를 받는 배송지를 변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적어도 한 달은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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