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로도 훈련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단테만큼의 역량을 보여 준 이는 없었다.
차라리 유엘이 그나마 나은 편이었고, 태반은 마수와 마주하자 동화율이 급락하여 넘어지거나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럼에도 이변은 있었으니.
바로 페고르였다.
〔뒈져어어!〕
통신기 너머로 외침이 울렸고, 곧 페고르의 손에 쥐어진 152mm 라이플이 불을 뿜었다.
타다다다당!
마석에 의해 가속된 마탄이 늑대의 경로를 따라 흩뿌려졌다.
-크아아앙!
그러나 마수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늑대는 대지를 한번 박차고 도약해서 탄막이 형성된 지형을 벗어났고, 그대로 페고르를 찢어 죽이겠다는 듯 발톱을 뻗었다.
“……아!”
“끝이네.”
그 모습에 지켜보고 있던 훈련병들은 페고르 역시 그대로 끝날 것이라 직감했다.
하나 그 순간.
끼기기긱- 소리와 함께 일순간 푸른 장막이 흔들렸다.
동시에 단테의 눈 역시 묘하게 번뜩였으니.
‘반응이 썩 나쁘지 않구나.’
단테의 생각이 조금 더 빨랐다.
그 찰나의 순간 페고르는 원하던 대로 늑대의 앞발을 쥐었고, 과부하된 왼팔에서 몸을 비트는 광흑랑의 모습이 보였다.
“오호.”
곁에서 로한의 흥미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세실 역시 조금은 놀랐다는 듯 중얼거렸다.
“……의외로 전투 센스는 좋은 건가?”
그녀의 말대로였다.
저건 센스, 즉 직감이 꽤 괜찮다는 증거다.
그 찰나의 순간 손을 뻗어 손목을 잡아 움직임을 봉쇄했으니.
저건 나름 괜찮은 기예였다.
〔……죽어라. 괴물.〕
마침 살짝 갈라진 목소리가 통신기에 울렸다.
그리고 페고르는 힘겹게 팔을 들어 올려 손에 쥔 라이플의 총구를 놈의 턱 아래로 겨냥했다.
철컥- 소리가 울렸다.
늑대는 페고르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몸을 비틀었으나.
타다다다다당!
일순간 턱을 꿰뚫고 쏘아진 탄환 수십 개가 뇌를 헤집었다.
단테처럼 머리가 터지진 않았으나 정수리 부근에서 관통한 총알 파편 일부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윽고 두 번째 고깃덩어리로 변해 버린 광흑랑의 육신이 페고르의 기체 발치로 떨어진다.
하나 페고르의 상태도 그리 좋진 못했다.
〔하윽…… 쿨럭, 커헉!〕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마 그릇을 넘어선 마나 하트 운용으로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나아가 마수의 손을 낚아챈 왼팔도 적잖은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고.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단테는 페고르에 대한 관심이 살짝은 생기는 것을 느끼며, 아예 기동이 정지되어 안광이 꺼진 나이트 프레임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만.”
페고르가 마지막 순번이었다.
바람이 불어와 세실의 검은 제복의 끝자락을 살짝 들었다 내렸다.
그녀는 훈련병들을 훑으며 말했다.
“한 달의 실전 훈련이 끝나면, 나머지 한 달은 인근 전선으로 파견되어 진정한 의미의 실전 훈련에 돌입한다. 그전까지 마수를 사냥하지 못하면 역시 포병대로 전출된다. 모든 훈련병은 명심하도록.”
“……!”
한 달의 실전.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실전.
그녀의 말에 훈련병들은 훈련소에서 남은 날이 채 두 달이라는 걸 새삼 깨닫기라도 한 듯, 살짝 동요한 낯으로 웅성거렸다.
하나 이어지는 말은 없었고.
곧 조교의 도움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온 페고르가 합류하자 세실은 말했다.
“해산.”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단테는 망설임 없이 내무반 방향으로 걸었다.
물론 향하는 곳은 내무반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오늘 저녁은 베이컨 파스타라고 했던가.’
의외로 이곳의 음식은 그의 입에 맞았다.
기갑천마
유달리 달빛이 밝았다
검은 하늘이 짙게 깔려 훈련소의 위에 장막을 드리웠다.
마석을 동력으로 하는 불이 어둠을 밝히고자 켜지고, 식당에선 군침이 흐르는 냄새가 잔잔히 퍼졌다.
단테는 늘 그랬듯 식판 가득 음식을 받아 거의 지정석이라 불리는 구석 자리에 앉아 묵묵히 식사를 시작했다.
‘자리가 없지도 않은데.’
굳이 자리가 모자라지도 않는데 왜인지 그곳을 고집하는 것이다.
유엘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뒤에서 들려오는 훈련병들의 속삭임을 귀에 담았다.
“왜 저렇게 재수가 없냐.”
“몰락 귀족이라는 거, 거짓말이라며? 비록 나라는 망했어도 태생부터 귀하신 분이라는 거지.”
“야, 그래도…….”
“뭐, 내가 틀린 말 했냐?”
들려오는 말이 심상치 않았다.
그 때문에 유엘은 씁쓸한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묵묵히 식사를 시작했다.
그들이 말하는 대상이 비단 단테 혼자는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저것들이 듣자 듣자 하니까…….”
그때 그녀의 곁에 앉아 있던 소녀가 미간을 좁혔다.
동그란 안경이 살짝 비틀리고 옅게 붉은빛을 띠는 단발이 찰랑거렸다.
“괜찮아, 다나.”
“괜찮기는……. 지들이 뭘 안다고.”
다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나 뒤에서 단테뿐만 아니라 유엘도 함께 씹어 대는 훈련병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자연히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직전이었지만.
“아…… 시끄러워라.”
한창 식사를 하던 로한의 한마디에 다나는 황급히 자리에 앉았고, 뒷말을 하던 훈련병들 역시 피클이나 씹어 대며 입을 닫았다.
본능적인 처세였다.
덕분에 조용해진 식당 안에는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쩝쩝거리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유엘은 자신을 위해 나서준 다나에게 눈짓으로 고마움을 표하고는 다시 어딘가 복잡한 눈으로 단테를 응시했다.
‘몰락 귀족…….’
그 말을 들은 직후, 하루도 그를 의식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짝사랑이나 그런 부질없는 감정이 아니라 데지안 왕국의 귀족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한편 그 시각.
단테는 자신에게 쏠리는 유엘이나 다른 훈련병 내지는 교관이나 조교들의 시선을 일절 신경 쓰지 않은 채 식사에 여념이 없었다.
‘맛있군.’
포크라는 식기로 면을 말아 베이컨을 찍어 입에 넣는다.
토마토의 시큼한 맛과 면의 질감이 썩 나쁘지 않다.
훈련소에서 들어와 느끼는 것인데, 일개 군문의 식당이 적당히 먹을 만하니 바깥의 식당은 어떠할까.
‘한 번쯤 여유가 생기면 들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무한한 경쟁을 뚫고 신교의 교주 자리에 오른 뒤 가졌던 유일한 취미가 미식이었다.
그런 그에게 생경한 음식들은 썩 나쁘지 않은 유흥이 되어 줄 만했다.
단테는 어느새 식판을 싹 비우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익숙하게 다시 음식을 담았다.
“거참.”
그 여유로운 모습에 세실과 함께 앉아 식사하던 로한이 무심결 웃음을 터트릴 정도였다.
“담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미친놈인 건지.”
단테를 바라보는 시선이 배는 늘었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늘 있었던 마수와의 실전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인 단테는 신경조차 쓰지 않으니 되레 지켜보는 이들이 체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식당의 자리가 채 절반이 채워지지 않을 정도가 되자, 비로소 단테가 일어났다.
그는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식판을 반납하고 곧바로 내무반으로 향했다.
“……아!”
그 즉시 다나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 먼저 보낸 후 그를 기다리고 있던 유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끝까지 남아 둘을 지켜보던 로한은 피식 웃으며 곁에 앉아 있는 세실에게 말했다.
“고백은 아니겠죠?”
“퍽이나.”
단테와 유엘.
둘의 성격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실없는 농담이다.
더욱이 한쪽은 몰락 귀족이고 한쪽은 망명 귀족이 아닌가.
“할 말이 많겠지.”
“뭐, 그렇겠죠.”
둘은 그 말을 끝으로 식당을 나섰다.
그리고 식당은 뒤늦게 편안한 공기를 되찾으며 다시금 말소리가 가득 차게 되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