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는 지상의 혼란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달려드는 광흑랑을 바라보았다.
자세한 사정은 가늠할 수 없겠으나 조교들이 무심결에 철창을 열어 버린 모양이었다.
하나, 오히려 좋았다.
검이나 창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본디 그의 무맥은 권각에 있었으니.
눈을 뜨고 혈도의 역할을 하는 케이블을 통해 기체 내부에 내력을 흘려보냈다.
하단전의 그릇이 미약하게 진동하고, 나아가 새로운 육신과 어느 정도 합을 맞춘 그는 가볍게 주먹을 폈다 쥐었다.
여전히 완벽하진 않다.
하나…….
‘미물을 죽이기엔 충분하다.’
〔단테, 일단 물러서라. 수습은 조교들이 할 테니…….〕
뒤늦게 들려오는 다급한 세실의 목소리를 뇌리에서 지운다. 방해이고, 잡념이다.
내력을 끌어 올렸다.
기체 내부에 느껴지는 케이블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혈도를 그렸다.
동시에 발을 반보 앞으로 내디뎠다.
쿠웅- 소리와 함께 대지의 진동이 마석과 기계로 이루어진 기체를 따라 흐르고, 나아가 복부를 노리고 누런 침을 흘리며 입을 벌리는 광흑랑의 기척을 느껴 보았다.
-케허엉!
순간적으로 단테를 제외한 시간이 느려진다.
아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단전이 순간적인 소모를 견디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으나 주저하지 않았다.
놈의 이빨이 기체에 닿기 직전이다.
탐욕스럽고 광증에 찬 놈의 괴성 때문인지 들리진 않았으나, 탄식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나 천마는 동요하지 않는다.
그저, 팔을 뻗어 그대로 내리찍어 누를 뿐이다.
내디딘 발을 축 삼아 허공에서 유려한 선을 그린 나이트 프레임의 주먹이 일순간 가속했다.
잿빛의, 그리고 흑빛의 도색이 순간적인 속도를 이기지 못해 살짝 갈라졌다.
끼긱거리는 관절부의 굉음 또한 무시했다.
마침내, 가속에 가속을 거듭한 순간 팔 쪽을 연결하던 케이블 하나가 견디지 못한 채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팔의 혈도가 순간 끊어지는 듯한 감각이 척추를 따라 흘렀으나 개의치 않았다.
단지 흩어지려는 내력을 잡아끌어 일순간 허공에 점멸할 뿐이었다.
어차피 사라질 내력이라면 가속이라도 높여 주는 편이 좋을 테니.
그렇게 출수된 주먹은 이윽고 허공에서 지상으로 추락했다.
광흑랑의 머리에 닿는 순간 추락하니.
콰드드드득!
순간의 출수에 그대로 피육이 되어 사방으로 뿌려졌다.
검은 뇌가 연무장의 바닥을 적시고, 부서진 두개골이 단테가 탄 기체를 스쳐 격납고 벽에 꽂혔다.
일격(一擊).
그저 내리찍어 누른 출수에 광흑랑의 머리가 터졌다.
단번에 기체를 찢어 버릴 정도로 날카롭던 발톱은 하릴없이 추락해 잔잔히 떨렸고, 바닥에 점점이 떨어지던 누런 침은 핏물에 뒤덮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야말로 기이.
또한, 괴이.
그 광경을 본 훈련병들은 말이 없었다.
다가올 영창에 담배나 피우려던 로한은 입에 담배를 꼬나문 채로 굳었으며, 다급히 단테에게 피할 것을 종용하던 세실은 멍한 눈으로 푸른 장벽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검은 핏물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로한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며 통신기를 들고 세실에게 물었다.
“대위님, 헌병으로 연락할까요? 아니면 정보국?”
“……왜?”
“쟤 신고하려고요.”
“뭘로?”
“간첩……?”
실없는 농담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세실도 진심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른쪽 어깨 관절부 케이블이 끊어진 듯합니다.〕
일격에 마수를 잡고 태연하게 통신하는 저 모습을 보면 자동적으로 공화국이나 법국, 내지는 연합 왕국에서 간첩을 보냈나 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정보국을 조금 더 재촉해야 할 듯싶었다.
기갑천마
그래, 저게 정상이라고
한편 그 시각.
단테는 밖의 경악과 침묵을 일절 신경 쓰지 않은 채,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다.
‘손속이 쓸데없이 과했군.’
실로 오랜만에 마수를 마주해서일까.
아니면 아직 묘한 구석이 남아 있는 이 강철의 몸뚱이를 시험하고자 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드물게 흥분한 듯했다.
어깨가 아렸다.
기체와 동화된다는 말은 곧 일순간이나마 나이트 프레임과 파일럿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단테는 끊어진 케이블의 위치에 일종의 환상통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 그는 별다른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 고통을 깊게 생각하는 것도 우스운 탓이다.
때문에 그는 그저 시선을 옮겨 저 멀리 검은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린 광흑랑을 무심한 눈으로 응시했다.
단번에 머리를 터트렸기에 사방으로 비산한 피육이 연무장을 더럽혔다.
다행히 호신기와 닮은 푸른 장막에 막혀 훈련병들에게 쏟아진다거나 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치우려면 꽤 고역일 듯싶었다.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닌가.’
실수한 건 조교들이다.
즉, 저들이 알아서 하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이윽고 통신기를 손에 쥐고 말했다.
“오른쪽 어깨 관절부 케이블이 끊어진 듯합니다.”
이 정도만 말해도 복귀 명령이 떨어질 것이다.
때문에 단테는 돌아올 말을 기다리며 조금 전 나이트 프레임의 움직임을 뇌리에서 복기했다.
순간적인 출수임과 동시에, 지극히 단순한 움직임이었다.
하나…….
‘속도가 한계를 넘은 순간 버티질 못했어.’
퇴역한 기체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나이트 프레임이란 기체의 한계인가.
더욱이 생각보다 내력을 잡아먹는 속도가 빨랐다.
이 경우엔 낭패다.
훈련기라서 그러면 다행이겠으나, 이후 받는 기체도 이리 쉽게 케이블이 끊어진다면 오히려 본말전도인 것이다.
‘위력은 마음에 들건만.’
듣기론 실제 전선에서 쓰이는 나이트 프레임은 더욱 질이 좋다고 들었다.
때문에 내심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흥미로우면서도 걸리는 부분이 많은 병기가 아닌가.
‘일단 운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겠군.’
내력을 쌓는 데 좋은 영약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쉬움에 살짝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때 통신기가 울렸다.
〔……복귀해도 좋다, 단테.〕
묘한 감정이 담긴 세실의 목소리다.
내색하려 하진 않았으나, 이면에는 괴이를 대하는 듯한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하나 단테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위령을 향한 길은 많았다.
당장에 관심이 가는 것이 군문일 뿐.
그런 생각을 끝으로 기체를 본디 있던 자리에 놓고 지상으로 내려와 격납고를 나서자, 훈련병들과 조교들의 웅성거림이 귓가에 꽂혔다.
“대체 뭐야?”
“아니…… 몰락 귀족이라는 거 거짓말 아니야? 어렸을 때부터 훈련받지 않고서야 저게 가능할 리가…….”
태반이 훈련병이고 일부는 조교와 교관들이었다.
다만, 모두가 질투와 시기, 나아가 괴이를 대하는 듯한 배척을 담은 것은 같았다.
그러나 그때.
“그럼.”
세실 특유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웅성거림을 뚫고 연병장에 울렸다.
“다음 순서는 유엘이다, 훈련병 유엘.”
“……아, 예?”
“네 차례다.”
“어, 예!”
뒤늦게 유엘이 격납고로 달려갔다.
그녀는 단테를 스쳐 지나갔고, 단테는 잠시 무심한 눈으로 세실을 바라보곤 원래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 섰다.
“시작해라.”
실로 자연스럽게 훈련이 재개되었다.
머잖아 열린 격납고 저편에서 유엘의 기체가 기동하는 소리가 울렸고, 교관과 조교들은 세실의 눈치를 보며 훈련병들을 단속했다.
하나 로한은 달랐다.
그는 정작 평온한 얼굴로 격납고를 응시하는 단테의 모습에 담배 끝을 질겅질겅 씹으며 중얼거렸다.
“거참, 묘한 놈일세.”
짧지는 않았던 군 생활 중 처음 보는 유형이었다.
지독히 주변에 무심하다.
때때로 오만할 정도로 당돌하며, 분명 존대를 하고 있음에도 왜인지 하대를 받는 느낌조차 받았다.
그런데 제일 이상한 건…….
‘기분이 나쁘질 않단 말이지.’
단테의 행동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치에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단테가 저런 행동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더욱이 겉으로는 딱히 건드릴 것도 없는 에이스였기에 뭐라 지적할 부분도 없었다.
‘에이, 몰라.’
그 때문에 로한은 곧 담배꽁초를 바닥에 대충 퉤- 하고 뱉고는 히죽 웃었다.
어차피 무슨 짓을 할 생각도 없었지만 지켜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적잖이 재미있는 놈이니 말이다.
-카아아아아!
때마침, 유엘과 마수가 맞붙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고개를 들자 막 무기를 쥐고 거대한 늑대에게 달려드는 유엘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흐아아아앗!〕
정석적인 파지법으로 미스릴 소드를 쥔 유엘의 검격이 일순간 마수를 향해 쇄도했다.
하나 늑대는 그 검격을 가볍게 피하곤 그대로 유엘이 탄 기체의 종아리를 깨물었다.
〔어, 어라?〕
콰드드득!
소리와 함께 당황한 유엘의 목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로한은 피식 웃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 저게 정상이라고.”
균형을 잃은 유엘의 기체가 순간 기우뚱하자, 늑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훈련기의 머리를 향해 도약하며 입을 쩌억 벌렸다.
그러자 유엘의 눈앞이 검은 장막으로 가득 찼다.
기체 안에 있어 죽지 않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몸이 굳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3층에 달하는 거대한 육신을 지닌 마수가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손이 떨렸다.
심신의 동요에 마나 하트는 동력을 잃은 톱니바퀴처럼 멈췄고, 곧 유엘은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어지는 결말은 꽤 당연한 것이었다.
콰아아아앙!
-커허어엉!
굉음과 함께, 늑대의 광기 어린 포효가 연병장을 울렸다.
자욱한 흙먼지가 걷어지자 서서히 늑대와 유엘이 탄 기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카드득, 까득.
늑대는 유엘이 탄 기체의 머리 부분을 육포라도 되는 양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세실은 통신기를 들어 조교들에게 명령했다.
“중단시켜.”
〔……옙, 대위님.〕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일까, 조교들은 빠르게 유엘에게 다가가 날뛰는 늑대를 잡아 억지로 뜯어냈다.
그 과정에서 쇠 긁는 소리를 내며 유엘의 헤드 옆면이 살짝 긁혔으나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캬아아아!
당연하게도 늑대는 날뛰며 그들이 탄 기체의 팔을 긁어 댔으나, 조교들은 기체를 조작해 가볍게 그것을 대충 떼어 내고 익숙하게 철창 안으로 던져 넣었다.
“무슨 마수를…….”
그 모습에 훈련병들은 어이가 없는 듯 보였으나, 정작 단테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광흑랑은 본디 집단을 이뤄야 비로소 껄끄러워지는 놈이기에 한 마리, 한 마리는 저리 다루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탓이다.
그리고 그런 단테의 뒤로 세실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음, 저스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