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겐이 다녀간 후에 꽤 많은 것이 달라졌으니, 일단 대략 10명의 훈련병이 추가로 포병으로 전출되었다.
끝까지 기체를 움직이지 못하거나, 움직였음에도 동화율 70%를 넘기지 못한 이들이었다.
자질의 부족이었고, 노력의 부족이었다.
그 때문에 남은 60여 명의 훈련병은 다시금 재편되어 6개의 분대로 쪼개지게 되었다.
일전에 10분대였던 단테는 아이러니하게도 제1 분대로 오게 되었고 말이다.
훈련병들의 하루는 실로 간결했다.
구보를 하고, 식사를 한다.
교범이나 전술을 외우고 마탄을 쏘았으며.
남은 시간은 오롯이 나이트 프레임을 조종하는 데에 쓰였다.
그렇게 다시금 두 달이 흘렀다.
태반의 훈련병이 얼마간 뛸 수 있을 정도로 숙련이 되었고, 단테는 대략 삼류 무인 정도의 단전을 회복했다.
그리고 오늘.
일전보다 한층 더 군인으로서 각이 잡힌 훈련병들을 한번 훑은 세실은, 격납고 앞에 오와 열을 갖춰 도열해 있는 훈련병들에게 말했다.
“드디어 첫 실전이다.”
그녀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그그그긍.
저 멀리, 제3 격납고라고 적힌 곳의 문이 열리고 3층 건물 크기의 거대한 철창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자마자, 단테는 무심결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제대로군.’
그도 그럴 것이.
-캬아아아!
다름이 아닌 마수였으니 말이다.
기갑천마
간첩 신고는 헌병이던가?
-캬아아아!
-커허헝!
철창에 갇힌 마수의 외침이 훈련병들에게 꽂혔다.
철창의 견고함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위태롭게 흔들리는 철창이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시각각 훈련병들의 얼굴에 온갖 감정이 드러났다.
두려움, 질림, 복수심…….
그러나 정작 그들을 인솔하는 세실의 눈은 한 남자에게 꽂혔으니, 그건 바로 흑발에 적안을 한 단테였다.
‘복수심이라 했지.’
단테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한 무표정이었다.
미간을 좁히지도 않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지도 않았으며, 나아가 동공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안타까웠다.
‘마수를 처음 보는 게 아니야.’
과거를 알 도리가 없으나, 마수를 처음 보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대체 어떤 과거를 가진 것일까.
여러모로 범상치 않았기에, 유달리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연민이든…… 아니면 경계이든 말이다.
한편 훈련병들은 제각기 죽을 맛이었다.
‘저런 거랑 싸워야 한다고?’
‘……미친 짓이야.’
그들 중 직접 마수를 본 이가 몇이나 될까.
피난을 올 때는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제국군의 인도를 따라 무작정 달릴 뿐이었다.
뒤처지면 죽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직접 마수와 마주했던 이가 없지는 않았다.
“…….”
침묵하는 유엘이 그러했고.
으드득.
이를 가는 페고르가 그러했으며.
‘광흑랑(狂黑狼)인가.’
정체를 가늠하는 단테가 그러했다.
물론 단테가 마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남들과 사뭇 달랐으니, 침을 질질 흘려 대며 연신 머리를 철창에 박아 대는 놈들을 두 눈에 담으며 그는 과거를 떠올렸다.
‘청해 외곽에서 날뛰던 미물들이군.’
곤륜의 속가 문파 몇 개를 박살 냈던 전적이 있는 놈들이다.
광흑랑, 미친 검은 늑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놈들이라고 악명이 자자했다.
자고로 광견이 무서운 이유가 눈이 돌아가서 아니겠는가.
하나 글쎄.
단테는 주먹을 꽉- 쥐며 생각했다.
‘정신이 차릴 때까지 맞아도 여전히 미쳐 있을까.’
자고로 광견에게는 매가 약인 법이지.
그때 어느 정도 실전 훈련할 준비가 끝나 가는 듯하자 세실이 입을 열었다.
“먼저 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
그녀의 말에 단테는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 때문에 막 손을 들려던 유엘은 잠시 단테의 뒤통수를 지긋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음, 탑승해라.”
세실도 유엘이 손을 들려던 것을 보았으나, 누가 봐도 단테가 훨씬 빨랐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아쉬워하는 유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순서는 유엘이다.”
“아…… 예!”
그녀의 말에 유엘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페고르는 뭐가 아니꼬운지 미간을 좁혔지만 말이다.
한편 단테는 곧장 격납고로 향해 엘리베이터 위로 올랐다.
이번에 탑승할 기체도 늘 탑승하던 10번 기체였다.
우웅- 소리를 내며 콕피트의 입구가 열리고, 단테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케이블을 의식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언제나 묘한 감각이다.’
기체에 오른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횟수로만 따져도 50번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나이트 프레임이라는 마장기 위에 오를 때면 언제나 새로운 감각이 그를 감싸곤 했다.
처음에는 불쾌함이었고.
두 번째에는 만족감이었으며.
현재는, 묘한 즐거움이었다.
〔단테, 준비됐나?〕
늘 들려오는 로한의 목소리에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예.”
그렇게 답하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마수는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밖에 준비되어 있는 거라곤 마수를 가둬 놓는 철창뿐.
실전을 겪기 위해 풀어놓으면 자칫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좋아. 우리도 준비가 끝났다.〕
동시에 그그긍- 소리를 내며 격납고의 입구가 열렸고, 단테는 곧 로한이 말한 ‘준비’라는 게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우웅- 소리가 나며 진동하는 푸른 장막이 훈련병들과 교관들을 보호하듯 펼쳐져 있었다.
때문에 단테가 기체의 고개를 살짝 꺾어 로한을 바라보자, 그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설마 미쳤다고 대놓고 놈을 풀까.〕
그의 말에 대충 기감을 퍼트려 그들을 감싸고 있는 푸른 장막을 살펴보자, 그것이 일종의 호신기와 비슷한 형질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 튼튼해 보이진 않다만.’
굳이 튼튼할 필요가 없다.
두세 번만 버텨 준다면, 곁에 단테와 마찬가지로 나이트 프레임을 타고 있는 조교들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말이다.
‘마도구라는 것들은 참 기이한 것이 많군.’
아마 저 호신기도 마도구를 이용한 것이리라.
단테는 추후 하나쯤 장만해 두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걸었다.
쿠웅! 쿠웅!
육중한 진동이 연병장 대지를 흔든다.
일전보다 확실히 진일보한 조종 실력은, 마치 진짜 거인이 걷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연병장으로 걸어 나오자, 내심 지켜보고 있던 조교들도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뭐 하는 놈이야?”
“그러게 말이다.”
조교들 역시 훈련소를 겪었기에 단테가 지금 보여 주는 실력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모를 리가 없다.
아니, 절절히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 옳으리라.
그때였다.
〔니들 뭐 하냐? 멍 때리네?〕
“아, 아닙니다!”
귓가에 꽂히는 로한의 목소리에 살짝 몸을 떨며 황급히 기체를 조작했다.
로한을 두려워하는 것은 비단 훈련병들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막 조교들을 갈구던 로한에게 단테가 물었다.
“맨손으로 싸웁니까?”
〔아, 생각해 보니 설명을 안 해 줬네. 원하는 무기가 있나?〕
이건 로한의 실수였다.
애초에 전선에서도 무기를 쓰는데 맨손으로 마수를 잡으라는 건 부조리를 넘어선 무리수였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그는 대충 머리에 떠오르는 무기들을 읊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추천할 건 아무래도 미스릴 소드나 152mm 라이플인가.’
초보자가 쓰기에 그것보다 좋은 건 없다.
그러나 그때였다.
“괜찮습니다. 맨손으로 하겠습니다.”
〔응?〕
로한과 세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맨손으로 마수를 잡겠다고?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다.
문제는 이번이 첫 실습이라는 것이다.
훈련병이 맨손으로 마수를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더 이상 돌아오는 단테의 답은 없었다.
그 때문에 로한이 막 통신기를 들어 뭐라고 말하려던 그때.
철커엉, 소리와 함께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들어 연병장을 바라본 둘은 머잖아 조교들과 연결된 통신기를 들고 외쳤다.
〔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예? 풀라고 하신 거 아니었…….〕
그러나 돌아오는 건 어벙한 대답 뿐.
그리고 그 순간.
-커허어엉!
철창 밖으로 빠져나온 미친 늑대가 곧바로 단테의 기체를 향해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자 로한은 되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핫, 영창인가?”
동시에 그는 품을 뒤져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체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