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래, 가 보게.”
단테와 대화를 끝낸 세르겐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휴게실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북부라고?
혹시 몰라 물었다.
근처 간부들이 북부에 대해서 잘 못 알려 준 것 아니냐고.
아니, 사실 확신했다.
분명 조교나 교관이 훈련병들을 놀릴 생각으로 북부가 한직이라거나, 아니면 그나마 나은 전장이라고 속인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만약 단테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친분이 있는 훈련소장의 조인트를 깔 생각까지 한 그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단테의 답은 역시 예상을 벗어났으니.
-격전지이자 좌천지라 들었습니다. 반드시 북부로 가고 싶습니다.
잘 아는 건 아니었으나, 북부에 대한 진실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더욱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혹여 데지안 왕국과 관련이 있나 싶어 되새겨 봐도 북부는 혹독한 만큼 원래부터 빈 땅에 가까웠다.
그런데 어째서…….
그때 단테가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실과 로한이 휴게실 내부로 들어와 경례를 올렸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둘의 경례 소리가 휴게소 안을 울렸고, 세실의 얼굴을 확인한 세르겐은 언제 고민했냐는 듯 입꼬리를 한계까지 치켜세우곤 입을 열었다.
“세실!”
“소, 소장님. 이름 말고…….”
“내 딸아!”
그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세실을 품에 끌어안았고, 곁에 서 있던 로한은 어이쿠- 소리를 내며 빠르게 몸을 피했다.
당연히 세실은 몸을 피하려 했으나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세르겐의 품속이었고 말이다.
“아, 아빠!”
그 때문에 그녀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세르겐의 품 안에서 버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고통을 받았을까.
실로 오랜만에 딸을 안아본 세르겐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서 떨어졌고, 세실은 잔뜩 구겨진 군복을 다듬으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후, 갑자기 왜 오신 겁니까? 요새 북부 쪽 일도 바쁘시면서.”
“아, 그 일 때문이란다.”
세르겐은 그녀의 물음에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곁에 서 있던 로한이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설마 훈련병들까지 데려다 쓸 정도로 북부가 급한 겁니까, 소장님?”
로한의 말에 세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세르겐 소장,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작 세르겐은 무슨 개소리냐는 듯 로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제국군을 대체 뭐로 보는 건가? 설마 그런 짓을 할 리가 있겠나. 아무리 징집병이라고는 해도 우린 데지안이나 프란 놈들과는 달라.”
“그건 맞죠.”
확실히 제국을 데지안 왕국과 프란 공화국에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그럼 왜?”
한편 세실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자신을 아끼는 건 맞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단순히 딸이 보고 싶다고 이리 말도 없이 올 사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게 말이다.”
그녀의 물음에 세르겐은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품속에 넣고 다니는 작은 원통형 마도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세실과 로한의 표정은 급속히 굳어 갔으니.
“……기밀이군요.”
“그래.”
저것의 정체는 다름이 아닌 도청을 막는 사일런스 마법이 담겨 있는 마도구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둘은 곧바로 세르겐이 말하려는 것이 가볍지 않음을 깨달았다.
곧 세르겐이 딸깍- 하며 원통을 누르자 일련의 마력 파장이 휴게소를 감쌌다.
이걸로 완전히 안심할 순 없겠으나 일단 일차적인 안전장치는 한 셈이리라.
세르겐은 그 마도구를 탁자 위에 놓고, 곧 품에서 다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자 로한이 손을 뻗어 불을 붙여 주었고, 한 모금을 머금은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이번 기수를 훈련시키고 나면, 제3 육군 기갑 부사관 훈련소는 일시적으로 폐쇄한다.”
“……예?”
“흐음?”
그의 말에 세실은 반쯤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고, 로한 역시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실적 부족입니까? 아니, 그래도 폐쇄까지는 너무 과한데…….”
“고작 그런 이유가 아니다, 로한.”
로한이 살짝 간을 봤으나, 세르겐은 고개를 저었다.
고작 실적 부족으로 훈련소를 폐쇄한다는 건 말도 안 되니까.
“그럼 이유가 뭡니까?”
그 때문에 세실은 물었다.
실적 부족이 이유가 아니라면 달리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런 그녀의 물음에 세르겐은 그녀를 만나곤 처음 미간을 좁혔다.
내심 딸에게 이런 말을 하기가 싫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젠 아이가 아니니……. 거참, 언제 이렇게 커 버렸는지.’
그렇게 군인이 되는 걸 반대했는데, 가출하다시피 제국사관학교로 가서 대위까지 오른 아이다.
이제 와 사실을 숨겨 봤자 머잖아 알게 될 테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제일 먼저 말해 주는 것이 그나마 미움을 덜 받는 길이다.
세르겐은 다시금 재떨이에 담배를 버리곤, 자신에게 꽂히는 세실과 로한을 바라보며 유달리 씁쓸한 입을 열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기용 가능한 전력 모두 다가오는 겨울에 북부 전선으로 배치될 거다.”
“기용 가능 전력 모두라면?”
“최소 5개 군단이지만…….”
세르겐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덧붙였다.
“상부에선 10개 군단까지 생각하고 있다.”
“……10개 군단, 그렇다면 설마?”
어림잡아도 쉽게 가늠이 가지 않는 대군이다.
그런 만큼 그들은 그 대군이 어떤 적과 마주하게 될지 곧바로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 네임드다.”
그리고 마침내 의심이 현실이 된 순간.
늘 웃던 로한의 표정이 어색하게 일그러지고, 세실은 아예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기갑천마
목적을 말하자면 위령이다
네임드.
그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절대 작지 않다.
제국군…… 아니, 현재 대륙을 살아가는 이들 중 저것이 어떤 존재를 뜻하는지 모를 리가 있기는 할까.
그 때문에 세실은 떨리는 목소리로 미간을 좁히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네임드라니, 대체 언제부터?”
북부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북부는 격전지였기에 이번엔 조금 힘에 부치나 보다…… 정도로 생각한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네임드라니.
네임드가 어떤 존재들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가히 재앙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데지안 왕국을 무너트린 것도 네임드였지.’
데지안 왕국이 아무리 망해 가고 있었다고는 해도 엄연히 왕국이다.
기갑 전력이 모자란 것이지 마장기로 국경을 수호할 정도는 되었다.
즉, 마수들에게는 한 방이 부족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그 부족했던 한 방을 갈긴 것이 바로 네임드였다.
‘듣기로는 일격에 마력 포대 수십 문을 터트리고, 군단급 보병을 학살했다지.’
그런 존재다.
하나하나가 과거 실존했다던 드래곤에 비견될 만큼의 무력을 가진 최악의 적.
둘의 얼굴이 끝도 없이 굳어졌기 때문일까.
세르겐은 적잖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예 처음 보는 네임드는 아니라는 거다.”
“새로운 네임드가 아니라면, 차라리 다행이긴 합니다.”
로한이 답했다.
이왕 나타날 거라면 차라리 아는 놈인 게 나았다.
물론 아예 나타나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말이다.
그 때문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놈입니까? 소장님.”
북부에 나타난 네임드의 코드명.
로한은 그것을 묻고 있었다.
그의 물음에 세르겐은 몇 번 입을 오물거리다가 답했다.
“나이트메어.”
실로 섬뜩한 코드명이나 어딘가 귀에 익었다.
로한은 실눈을 살짝 뜨며 물었다.
“익숙한데……. 어, 설마?”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놈이 맞을 거다.”
순간 로한의 얼굴에 질린다는 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트메어라고 한다면…….
“……세계수를 죽였다던 네임드 중 하나.”
세실은 침음성을 흘리며 이번 사태에 왜 이리도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깨달았다.
다름 아닌 엘프라는 종족의 미래를 꺾어 암흑기로 밀어 넣은 주범이 아닌가.
과거엔 엘프였으나, 이번엔 제국이 아니라는 보장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피바람이 불겠군요. 아……버지.”
세실은 무심결에 아빠라고 부를 뻔한 것을 틀어 아버지라는 말을 내뱉었다.
왜인지 아버지를 만나면 자꾸만 풀어지곤 한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건 침묵이었다.
제각기 다른 생각에 잠겨 있을 테지만, 속이 복잡한 것은 모두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 그리고 말이다.”
이어지는 침묵을 끊으려는 듯, 세르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단테, 그 아이가 북부로 향하고 싶다더구나.”
“예?”
그의 말에 세실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고, 로한 역시 꽤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세실과 달리 흥미가 더욱 담긴 얼굴이긴 했지만 말이다.
“중사.”
반면 세실은 미간을 좁히며 로한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그가 북부에 대해 잘못된 상식을 심어 줬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 대위님,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저 아닌뎁쇼?”
“중사 말고 그런 장난을 칠 사람이 없을 텐데?”
당연히 로한은 억울할 수밖에 없었으나, 세르겐은 자신의 딸이 오해하는 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딸이라서 편애하는 것도 맞지만 로한 저놈의 평소 행실은 확실히 의심할 만한 것이니.
“소, 소장님, 무슨 말씀이라도 좀…….”
아무리 로한이라도 세실에게 저런 눈초리를 받는 것은 억울했는지 세르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음 같아선 아예 오해하게 만들어 저 놈팡이를 조금 골려주고 싶었으나 결국 자충수다.
훗날 딸이 진실을 알게 되면 잔소리를 들을 테니까.
“세실, 이번엔 로한이 아니다. 단테 그 아이는 북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어.”
“예?”
“으흠, 그렇습니까?”
세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고, 로한도 이번엔 놀랐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때문에 세르겐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하는 자신의 딸에게 덧붙였다.
“아마 복수 때문이겠지.”
고민을 해 봐도 나오는 답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 세르겐의 말에 로한은 알만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애가 좀 맛이 간 느낌이 있긴 했습니다.”
흥미로운 걸 떠나서 느낀 점이다.
본래부터 인간들 사이에서 성인은 열여섯 살이 아니었다. 과거엔 열아홉 살이 성인으로 인정받았고 열여섯 살은 그저 약혼하는 나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창 전선이 밀릴 때 어쩔 수 없이 법적인 성인 나이를 세 살이나 내려 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땐 그만큼 절박했으니까.
결국 법이나 명분 따위는 종족 생존의 위에 설 수 없으니.
그런 만큼 열여섯 살의 아이들은 때때로 혈기를 억누르지 못하는 면이 많았다.
일전의 페고르가 그러했고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장 다 큰 어른도 감정을 이기지 못할 때가 많거늘, 단테는 늘 무표정이었다.
“아마 복수 말고는 다른 게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겠죠.”
그 점은 페고르와 닮았다.
페고르는 복수심이 귀족에게 향했다는 것과 그것을 억누르지 못한다는 것이지만, 단테는 그 복수심이 마수에게 향했다는 것만 다를 뿐.
“그럴지도.”
로한의 말을 들은 세르겐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맛이 썼다.
때문에 그는 다시금 담배를 물 수밖에 없었다.
많은 것을 잃어 가는 시대다.
그리고 그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의 원죄였다.
치익- 습, 후…….
그런 생각을 하며 세르겐이 막 담배에 불을 붙였을 때였다.
“음?”
불현듯 뇌리에 스친 이질적인 파장에 살짝 고개를 돌린 그는, 반사적으로 권총을 뽑아 들고 휴게소의 벽을 겨눴다.
“아버지?”
갑작스러운 행동에 세실이 당황하여 그를 불렀으나, 세르겐은 미간을 좁히며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뗄 뿐이었다.
‘……착각인가?’
일순간, 휴게실 내부를 파고드는 마력 파장을 느꼈다.
그러나 실로 미약한 감각이었기에 확신이 없었다.
혹여나 대화를 누가 엿들은 게 아닌가 생각했으나, 이내 세르겐은 고개를 저으며 권총집에 권총을 밀어 넣었다.
하급 장교들에게 배속되는 마도구라면 모를까, 소장이자 후작인 그에게 배속된 마도구는 정보국도 쉽게 감청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물건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잠시 자신이 예민했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며 세실과 로한에게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시각.
‘들킬 뻔했군.’
단테는 권총이 발사되었을 때, 곧바로 반격하기 위해 끌어올린 내력을 서서히 가라앉히고 빠르게 격납고를 나섰다.
대화가 길어졌기 때문인지, 이번에도 훈련병들은 먼저 귀환한 후였다.
그 덕분에 단테는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홀로 걸을 수 있었다.
“아마 복수 말고는 다른 게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겠죠.”
귓가를 스치는 바람 사이로 로한이 내뱉은 말이 섞여 들어왔다.
얼핏 들으면 그를 단순한 복수귀(復讐鬼)로 치부하는 모양이었으나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죽은 이가 산자의 몸을 취해 옛 복수를 천명하니, 달리 표현할 말도 없겠지.’
단지 원인과 목적이 다를 뿐이다.
저들은 단테라는 아이가 가족, 내지는 국가를 위해 복수하리라 생각한 듯싶었으나 그건 사실과 달랐다.
그의 원인은 중원도, 신교도, 하릴없는 목숨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기회가 오지 않다면 눈을 감았을 것이다.
삼도천의 강줄기를 건너 황천에 다다랐을 것이다.
그곳에서 뒤늦게 오는 위선자들의 혼령이나 잡아 뜯으며 적적한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원인은 인과를 모를 환생이었다.
그 때문에 목적을 말하자면 위령(慰靈)이다.
협이나 의를 입에 담으며 싸웠던 정도라는 놈팡이들에게.
가진바 천성은 비루하나 살기 위해서 싸웠던 흑도의 버러지들에게.
마지막으로 못난 교주를 따라 패도를 견지한 신교도들에게.
혼령이 되어 바스러졌을지 모르는 이들에게 올리는 위령의 첫 일보일 뿐인 것이다.
문득 나뭇잎들이 바람에 잡고 있던 가지를 놓아 단테의 눈가를 스쳤다.
마치 화산의 매화처럼 휘날리는 그것들을 바라보던 단테는 무심결 중얼거렸다.
“네임드라…….”
아마도 거귀의 새끼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놈들의 저력은 단테 역시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대군주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많은 지역이 그놈들에게 무너졌으니.
정도의 황보세가가 그러했고, 흑도의 패군방이 그러했다.
‘악몽, 악몽이라.’
나이트메어(Nightmare).
즉, 악몽(惡夢).
이름만 들어도 어떤 놈인지 기억이 날 듯했다.
그 때문에 단테는 그 이름을 찬찬히 곱씹으며 묵묵히 내무반으로 향했다.
‘네 달 뒤가 기대되는군.’
아무래도 오늘은 수련을 조금 더 과하게 해야 할 듯싶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