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히 격납고, 그것도 원래 10번 기체가 있던 곳에 세우고 엘리베이터로 내려온 단테는 자신에게 꽂히는 모두의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자신에게 꽂히는 경악과 놀라움, 나아가 질투의 시선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건 차라리 적응에 가까웠다.
전생에서도 이런 시선들은 언제나 그를 쫓았으니 말이다.
‘물론 적의와 악의가 더 많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몰리는 시선을 무시하고 세실에게 동화율을 물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답은 87.5%라는, 꽤 정확한 수치가 들려왔다.
‘나쁘지 않구나.’
일전보다 단전을 넓혔기 때문인지, 아니면 저 나이트 프레임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있었다.
조금 전 느꼈던 감각.
마치 혈도의 개수가 늘어난 듯한…… 아니, 몸의 혈도와 그 케이블이라는 것이 연결되어 또 하나의 육신을 조종하는 감각은 새로움과 동시에 묘한 충동을 일으켰다.
-이 거대한 육신으로 무공을 펼치면 어떨까?
한 명의 무림인으로서도, 나아가 한 명의 사내로서도 해 보고 싶은 일이었다.
그가 그런 충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본적으로 마수는 거대하다.
대군주는 말할 것도 없고 중원을 침략한 마수 중 제일 작은 놈이 어지간한 성인 사내보다 컸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 때문에 무림인들은 늘 체격적인 열세를 품고 싸움에 임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트 프레임을 탄다면 말이 다르다.
저 거대한 육신을 자신의 몸처럼 쓸 수만 있다면…….
순간 단테의 입꼬리가 드물게 올라갔다.
‘아무래도 탈영은 보류해야겠군.’
나이트 프레임이 쓸모가 있다면 탈영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언제라도 도망칠 자신도 있는 데다가 밥도, 돈도 주고 알아서 전선으로 보내 줄 테니 말이다.
즉, 단테에겐 나름 천직이라는 뜻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탈영이란 선택지는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 넣은 채 조금 전 세실이 읊조린 동화율을 떠올렸다.
‘87.5%라…….’
2세대 나이트 프레임이라 동화율을 높이기 쉬운 걸 고려해도 썩 나쁘지 않은 수치였다.
때문에 그는 곧 목표를 정했다.
‘95%까진 올려 봐야겠어.’
그 정도면 완전히는 아니지만, 약간의 불편함 정도만을 느끼며 온전히 기체를 지배할 수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단테는, 여전히 멍한 조교들과 훈련병들을 힐끔 바라보다가 원래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하나 그 순간.
“대단하군. 생도들도 첫날부터 격납고에 제대로 가져다 놓는 경우는 손에 꼽는데 말이야.”
동시에, 중년인의 시선이 어색한 얼굴을 한 세실을 향했고, 그녀는 곧바로 경례를 올렸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충성.”
뒤이어 로한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황급히 경례를 올렸으나, 정작 중년인은 세실의 경례만을 진지하게 받아넘긴 후 곧장 단테의 앞으로 걸어갔다.
“따로 조종을 배운 건가?”
한편 단테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중년인을 살피다가 순간 주먹을 꽉 쥐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하군. 꽤.’
굳이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으나, 풍기는 기도나 자신을 갈무리한 모습만 봐도 가늠이 갔다.
그는 단순히 나이트 프레임의 조종을 위해 마나 하트를 수련하는 장교들과 달리, 꽤 체계적인 외공을 익힌 듯했다.
단테는 살짝 시선을 내려 중년인의 계급을 확인했다.
‘소장이라……. 장성급인 건가.’
아직 완전히 제국군 계급 체계를 외우진 못했으나 적잖이 높은 자리에 있는 이라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더욱이…….’
순간, 단테의 눈이 세실에게로 닿았다.
다른 이들은 눈치챘을지 모르겠으나, 그는 조금 전 세실과 중년인 사이에 오간 묘한 기류를 진즉에 눈치챈 후였다.
‘아버지라도 되는 건가.’
지금 보니 살짝 닮은 것 같기도 했다.
하나, 그런 생각과 달리 단테는 입을 열어 그의 물음에 답했다.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런가,”
두 달 전, 로한의 지목으로 잠깐 오르긴 했으나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흐음.”
단테의 말에 중년인은 실로 흥미가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머잖아 결심한 듯, 묘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나?”
그의 말에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합니다.”
정말로 궁금했다기보다는 반사적인 호응에 불과했다.
하나 그는 그것에 만족했는지 허허 웃으며 손을 뻗으며 말했다.
“세르겐 드 아크레데 소장일세.”
세르겐 드 아크데레.
단테는 그 이름을 뇌리에 각인시키며, 마찬가지로 손을 뻗으며 답했다.
“훈련병, 단테입니다.”
기갑천마
북부로 보내 주십시오
세르겐 드 아크레데 소장.
그는 근처 간부들에게 간단한 몇 가지를 물어본 직후, 일전에 세실과 로한이 대화를 나눴던 격납고 간부 휴게실로 향했다.
당연히 뒤에는 단테도 함께였고 말이다.
세르겐은 끙차- 소리를 내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러고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단테에게 슬쩍 들었다.
“한 대 피우겠나?”
“괜찮습니다.”
“웬만하면 피우지그래. 훈련소에서는 담배 보급이 안 돼서 참기 힘들 텐데.”
흡연자이기 때문일까, 그는 진심으로 끔찍하다는 듯 눈살을 찡그리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훈련소에도 보급 좀 하자니까. 젊은 청춘들 억지로 불러다 쓰는 주제에 말이야. 하여튼 제국의 꼰대들은…….”
단테의 눈에는 자신 또한 ‘제국의 꼰대’로 보인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르겐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재차 권하는 듯 담뱃갑을 내밀었다.
그 때문에 단테는 결국 한마디를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전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소장님.”
“음? 아, 그랬나.”
세르겐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새하얀 종이로 말려진 궐련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회색 연기가 스읍, 후- 하며 내뱉어지고, 잠깐의 침묵과 함께 둘 사이를 맴돌았다.
“그래, 몰락 귀족이라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세르겐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담배의 끝을 질겅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데지안 왕국 감시국 놈들의 개짓거리를 용케 피했군.”
“운이 좋았습니다.”
하도 감시국, 감시국거리니 이젠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놈들이 얼마나 지독했기에 이리도 그 감시국이라는 걸 언급할까.
그런 단테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세르겐은 탁자 위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곤 말했다.
“궁금하나?”
“예?”
“우리가 왜 감시국을 미친놈들로 보는지.”
문득 세르겐의 갈색빛이 도는 눈과 단테의 눈이 마주쳤다.
백발에 가까운 머리와 달리 총기를 잃지 않은 그 눈을 잠시 바라보던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간단한 이치일세. 자네라면 집 밖이 불타고 있는데 쓰레기를 버리겠나? 아니면 집 밖에 타고 있는 불부터 끄겠나?”
“불부터 끌 것 같습니다.”
“그게 상식이지. 그런데 놈들은 아니었어.”
피식, 세르겐은 입꼬리를 올렸다.
동시에 어느새 입에 물은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한숨에 가까운 연기를 허공에 흩뿌리며 말을 이었다.
“나라가 망한 건 작년이지만, 실제로 망해 가던 건 족히 10년은 되지. 듣기론 유엘이라는 아이가 망명 귀족이라는 이유로 쓴소리를 들었다지?”
그의 말에 단테는 처음 훈련소에 입소했던 날, 페고르가 유엘에게 보였던 적의를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를 못 할 건 아니야. 그 아이는 잘못이 없다고 하나 데지안 왕국 귀족들은 확실히 무능했으니까.”
이어지는 세르겐의 설명은 꽤나 길었으나, 요약해 보자면 간단했다.
기갑 전력을 늘리라는 주변 왕국의 충고를 무시하다가 어쩔 수 없이 편성, 그마저도 귀족들 중심으로 굴리며 끝없는 삽질을 이어 가다가 결국 나라가 망하자 제일 먼저 제국으로 망명…….
‘흑도만도 못한 놈들이군.’
데지안 왕국에 대한 단테의 평가였다.
흑도라 칭하는 놈들은 적어도 자신의 밥줄을 지키기 위해 노력은 한다.
그런데 데지안 왕국의 귀족이라는 놈들은 그마저도 게으르게 하다가 제일 먼저 도망쳤다는 말 아닌가.
여태껏 무표정을 고수했던 단테의 미간이 찡그려지자, 세르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뭐, 데지안 왕국 출신인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말일세.”
그의 말에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는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평민이었던 진짜 단테는 몰랐던 무능함을 더 잘 알게 되었을 뿐이다.
거기까지 말한 세르겐은 다시금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쿨럭- 기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앞에 서 있는 단테를 바라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곤 말했다.
“이거, 잡담이 너무 길었군. 이해 좀 해 주게. 나이를 먹다 보니 쓸데없는 말이 늘더군.”
“괜찮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그래, 이제 네 달 후면 전선으로 배치될 텐데 가고 싶은 전선은 있나?”
그 말에 단테는 순간 눈을 깜빡였다.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나, 그는 마치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주겠다는 것처럼 들렸으니 말이다.
그런 단테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세르겐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훈련소 수석은 가고 싶은 전장을 고를 수 있도록 최대한 존중해 주는 법이네. 물론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한직으로 빠지는 건 안 되지만 말이야.”
거기에 나이트 프레임의 파일럿이다.
고작 소장이 한직으로 뺄 수도 없을뿐더러, 그 역시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의 말에 단테는 잠시 고민하는 듯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나름 신중한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가.
‘어딜 고를까? 서부 전선이면 좋겠군. 거기라면 영지와도 가까우니 말이야.’
프란 공화국과 인접한 서부 전선은 마수들의 침략이 잦은 편이지만 인기가 많은 전선이다.
기본적으로 날씨가 좋아서 그런 것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여유가 있는 전선이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프란 공화국 그 머저리들의 정예가 주둔하기에 전투 자체도 적었고 말이다.
완전히 한직은 아니지만 나름은 한직인 셈이다.
그렇기에 세르겐은 단테가 서부 전선을 말할 것이라 짐작하곤 수염을 쓸었다.
“그럼 전…….”
그때 단테의 입이 나지막이 열렸다.
“북부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뭐?”
세르겐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