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5화 (15/197)

3분대에서 단테가 속한 10분대까지 차례가 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유엘과 페고르를 포함해도 기체를 움직인 훈련병이 몇 명 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었고, 가뜩이나 적었던 훈련병들의 숫자가 두 달간 걸러지며 더욱 적어졌기 때문도 있었다.

“자, 이제 마지막 10분대!”

로한의 말에 10분대는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터벅터벅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막상 앞에 다다랐다고 해도 선뜻 오르기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었다.

“하아…….”

“후우, 습!”

한숨을 내뱉는가 하면 심호흡하면서 긴장감을 줄이려는 훈련병도 있었다.

그 모습이 답답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죽겠다.”

“……이건 미친 짓이야.”

그도 그럴 것이, 제일 마지막 순서라는 뜻은 앞선 훈련병들이 고통받는 걸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하나 언제까지고 망설일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10분대원들은 그야말로 체념하며 차례차례 조교가 탄 나이트 프레임의 손바닥 위로 몸을 안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느새 단테의 차례가 되었고, 그는 까닥거리는 조교의 손바닥 위로 망설임 없이 앉았다.

그 대범한 모습에 로한이 저 멀리서 휘파람을 부는 게 보였으나, 정작 단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묵묵히 점점 높아지는 경치를 감상할 뿐이었다.

‘이렇게 보니 넓군.’

일전에도 느낀 사실이지만, 제국의 국력은 얼핏 봐도 꽤 대단한 듯싶었다.

지난 50년 동안 무너진 왕국과 이종족을 흡수하며 더욱 국력이 강해졌다고 했던가.

‘이종족이라…….’

듣기론 귀가 뾰족한 종부터 키가 작거나, 아예 우락부락하고 송곳니가 튀어나온 놈들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나중에 볼일이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으레 그랬듯 관심을 꺼 버린 그는, 어느새 콕피트의 앞임을 깨닫고 10번 기체라고 적혀 있는 나이트 프레임의 콕피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휘이잉, 소리를 내며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검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으나, 다른 훈련병들과 달리 단테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의자에 앉았다.

그도 그럴 게 드높은 전각이나 절벽에서 떨어져 본 적이 있는데 고작 이 정도 높이에서 두려워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의자에 몸을 안착하자, 곧 케이블들이 뻗어져 몸 곳곳에 연결되었다.

이미 해 보았기 때문인지 반발감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단전과 연결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으음, 이런 거였나.’

지난번에는 단전에 담긴 내력이 미약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어느 정도 내력을 쌓은 지금은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단전에 쌓인 내력이 몸 곳곳의 혈도를 따라 나이트 프레임의 메인 코어에 전달되었다.

동시에 우우웅- 소리가 울리며 미약한 진동과 함께 메인 코어가 활성화되는 감각이 척추를 따라 뇌리에 꽂힌다.

문득 미소를 띠었다.

‘좋구나.’

일전에 강제적으로 연결이 되었다는 건 미천한 경험에서 오는 착각이었다.

이미 케이블이 연결된 순간부터 이 기체는 그에게 호응한 것이다.

뭐랄까, 케이블의 수만큼 혈도가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 덕분에 단테는 확신했다.

이 기체를 완벽하게는 움직이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제어할 수는 있으리라고.

그리고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심장이 아닌 아랫배에 자리한 하단전의 내력을 끌어 올리며 첫발을 내디뎠다.

쿠웅-!

단테가 막 첫발을 내디딘 그 순간.

지상의 반응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오, 역시.”

로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고, 세실 역시 수첩에 무언가를 끄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유엘은 놀라움과 그래도 나보단 못하리라는 표정으로 단테의 기체를 좇았고, 페고르는 입술까지 짓씹으며 미간을 좁혔다.

쿠웅-!

그러나 그것도 잠시.

쿠웅-!

“……어라?”

쿠웅-!

단테가 탄 10번기의 발걸음이 한번 대지를 울릴 때마다 모두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로한은 점점 눈을 동그랗게 뜨기 시작했다.

세실은 수첩에 끄적거리던 펜을 멈췄으며, 유엘은 경악이 담긴 얼굴을, 페고르는 아예 입을 벌린 채 기체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그건 다른 훈련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단테의 기체가 목적지에 다다르고…….

채 2분이 지나기 전에 격납고에서 당당히 걸어 나온 단테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훈련병들을 한번 훑다가, 세실과 로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동화율은 몇입니까?”

그의 말에 세실은 천천히 시선을 내려 스크린에 뜬 단테의 동화율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손에 쥔 수첩을 탁-닫고는 어딘가 복잡한 얼굴로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87.5%다.”

당연히 정적이 흘렀다.

기갑천마

훈련병, 단테입니다

부웅- 소리와 함께 연병장에 제국군의 상징색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검은색 군용차가 멈췄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연병장에 모인 간부들과 훈련소장은 이윽고 차에서 내리는 중년인에게 일제히 경례를 올렸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과연 간부들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진급을 향한 욕심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의 경례는 훈련병들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절도가 넘쳤다.

그러나 정작 그 경례를 받은 중년인은 되었다는 듯 손을 가볍게 휘젓곤 말했다.

“충성은 무슨……. 훈련소장만 남고 다들 들어가.”

그 털털한 모습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조교들과 교관들은 익숙하다는 듯 빠르게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머잖아 훈련소장과 그를 보좌하는 부관만 남게 되자 중년인은 품에 손을 넣어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고, 훈련소장은 익숙하다는 듯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고맙네, 중령.”

그는 일전의 경례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성의를 담아 화답해 주고는 막 타들어 가기 시작한 담배를 깊게 머금었다.

일반적인 장성들이 시가를 고집하는 것과 달리 그는 여느 병사들이나 피우는 궐련형 담배를 태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편리하니까.’

스읍, 후- 소리와 함께 회색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는 말없이 반쯤 담배를 태우다가 용건을 꺼냈다.

“우리 따…… 아니지, 우리 세실 대위는 어디에 있나?”

“격납고에 있습니다.”

“아, 하긴. 벌써 두 달이 흘렀나?”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흐른다.

새삼스럽게 그것을 느끼며, 그는 어느새 다 탄 담배꽁초를 휴대용 재떨이에 버리고는 저 멀리 보이는 격납고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보자. 그럼 딸도 볼 겸 훈련병들의 수준도 한번 눈으로 확인해야겠군.”

겸사겸사 떡잎이 남다른 훈련병은 기억도 해 두고 말이다.

그는 그런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훈련소장 역시 마찬가지로 그를 뒤따르며 격납고를 향해 걸었다.

훈련병들이 트럭으로 이동할 만큼 절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으나 둘은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나무를 새로 심었나? 미관이 좋아진 느낌인데.”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공화국에서 들여온 품종이 가로수로 좋다기에 심어 보았습니다.”

“오호. 그 품종 이름이 뭐길래?”

“아, 그건 말입니다…….”

오히려 중년인과 훈련소장은 스스럼없이 잡담을 나누며 격납고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격납고 옆의 연병장에서 움직이는 나이트 프레임들을 본 중년인은 문득 눈에 띤 한 기체를 보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오호.”

비록 격납고 내부까지 들어가진 못했고 첫 조종인 만큼 미숙한 부분이 보였지만 그래도 수준급의 조종이었다.

때문에 그는 곁에 서 있는 훈련소장에게 물었다.

“대단하군. 사관학교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겠어. 망명 귀족인가?”

“예. 유엘 드 로트메일이라고, 정보국에서도 포섭 대상자로 삼았던 로트메일 자작의 장녀입니다.”

“로트메일이라……. 기억이 나는군. 확실히 왕국에는 아까운 인재였지.”

이미 죽었다는 걸 알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긴 전쟁을 겪고 있는 이 세계는 가지지 못할 인재조차도 아쉬울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그런 안타까운 표정은 곧 울상으로 콕피트에서 걸어 나오는 유엘의 모습에 깨지고 말았다.

그는 그녀를 놀리듯 허공에서 까닥거리는 조교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거참, 아직도 하는 건가?”

“뭐, 관습이지 않습니까.”

당장 중년인과 곁에 선 훈련소장도 모두 겪은 신고식이었기에, 둘은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미소를 띨 뿐이었다.

“옛날 생각이 나는데.”

“그렇습니다.”

둘은 어느새 잡담과 함께 훈련병들의 우스운 모습을 눈에 담으며 최대한 천천히 격납고로 향했다.

어차피 크기가 큰 만큼 모두 눈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대화를 나눴을까.

마침내 마지막 순서인 10분대가 기체 위로 올랐고, 중년인은 아쉽다는 듯 담배를 물며 말했다.

“유엘이라는 훈련병을 제외하면 다 평범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에 훈련소장은 불을 붙이는 대신, 함께 담배를 입에 물며 그의 말에 심심한 동의를 표했다.

그렇게 둘은 각자의 담배에 불을 붙이곤 깊게 한 모금을 머금었다.

그때.

“으흠?”

막 연기를 내뱉던 중년인의 눈에 10번이라 써진 기체가 앞으로 걷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진 유엘이 이미 보여 주었던 모습이었기에 그저 또 한 명의 망명 귀족인가 하는 정도의 감흥이 전부였다.

하나 그 생각은 곧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으니.

머잖아 멈추리라 생각했던 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10번이 각인된 나이트 프레임은 격납고 안으로 깔끔하게 안착했다.

“…….”

그 때문에 잠시 입에 담배를 물고 침묵한 중년인은 마찬가지로 별달리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훈련소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 오늘이 분명 첫 번째 실습이라고 했었지?”

“예,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그의 말을 들은 중년인은 망설임 없이 담배를 재떨이에 버렸다.

그러고는 언제 놀랐냐는 듯 흥미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딸을 보러 오길 잘한 거 같군.”

‘역시 우리 딸은 복덩이가 분명해.’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 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