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해? 얼른 타.”
로한은 그 말을 끝으로 통신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머잖아 저 멀리 격납고 바로 앞에서 체념한 얼굴로 콕피트를 여는 유엘의 얼굴이 보이자 그는 실로 개운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이 맛에 조교 하지.”
한편 세실은 로한이 무슨 짓을 하든 말든 스크린에 뜬 동화율을 바라보며 내심 감탄이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동화율이 78%라…….”
역시 뛰어난 수준의 동화율이었다.
망명 귀족임을 고려하더라도 유엘의 재능은 꽤 특별했다.
때문에 세실은 수첩에 적어 놓은 유엘의 가문명을 지긋이 응시했다.
「로트메일」
‘로트메일이면 데지안 외곽 쪽에 자리한 자작령이었나.’
데지안 왕국이 외국, 그리고 특히 제국에 그리 호의적인 국가는 아니었던 탓에 관련 정보가 많지 않았으나 한 번쯤은 들어 본 가문이었다.
물론 관광지나 거점으로 유명한 건 아니었고, 그녀의 아버지이자 자작이었던 유르틴 드 로트메일 때문이었다.
‘몇 안 되는 왕국의 개혁파였지만 좌천되어 최전선을 전전했다고 했나.’
그리 명성이 드높은 귀족은 아니었으나, 그만큼 조용히 할 일을 한 귀족이자 군인이라는 뜻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세실은 미간을 좁히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쯧, 이러니 나라가 망하지.”
그때 스크린을 보며 메모하던 세실의 곁으로 로한이 다가왔다.
“이야, 78%네요. 단테보다 높네?”
대략 두 달 전쯤 단테가 보여 줬던 동화율이 73%였으니, 그보다 무려 5%나 높은 수치였다.
물론 나이트 프레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작 5% 차이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일단 전장에 나가면 의지할 건 기체밖에 없는 파일럿에게 5%라는 수치는 결코 작은 게 아니었다.
“……젠장.”
문득 로한의 귀에 작게 중얼거린 욕설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그를 바라보자 뒷모습을 바라보자 축 처진 페고르의 어깨와 함께 부들거리는 꽉 쥔 주먹이 시야에 잡혔다.
“……절대 안 져. 무능한 귀족 놈들에게.”
제 딴에는 혈기와 치기를 담아 중얼거리는 것이겠지만, 마나 하트가 일정 경지에 다다른 로한이나 세실의 귀에는 너무나 정확히 꽂혔다.
로한과 세실은 서로를 힐끔 바라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뭐, 적당한 복수심은 건강에…… 아니,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니까.’
목표를 좇는 인간은 때때로 기대 이상의 성장을 보여 주기 마련이다.
특히 그 목표를 좇는 동기가 복수심이라면 더더욱.
다행히 페고르도 일전의 훈육으로 어느 정도 감정 절제를 할 줄 알게 되었는지, 혼자 부들거리는 것 말고 딱히 돌발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그러는 사이.
“허어억……!”
“우우욱!”
어느새 조교들의 손에 의해 모두 지상으로 내려온 제2 분대원들이 숨을 집어삼키고 구토하는 소리에 맞춰 로한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자!”
경쾌한 짝,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고, 로한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기 직전의 표정을 짓고 있는 제3 분대원들을 바라보며 아주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3분대, 탑승!”
그리고 당연히.
3분대 역시 체념한 채로 조교들의 손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