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3화 (13/197)

기체에 오른 유엘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황급히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왕국에서 아버지의 기체에 탔을 땐 간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한 게 전부였기에 익숙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그녀와 다른 훈련병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체에 탄 그들이 모두 의자에 앉자 로한의 목소리가 울렸다.

〔10분대까지 하려면 시간 없으니까 빨리 움직이자고.〕

동시에 파일럿과 기체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뻗어지고, 살짝 따끔한 감각과 함께 마나 하트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후우.”

옅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이미 몇 번은 조종해 본 나이트 프레임이었지만, 늘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준비됐지? 시작해.〕

좁은 콕피트 내부에 명령이 떨어지자, 양옆에서 기체를 움직이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머잖아 쿠웅- 소리가 울리는 걸 보면 아마 몇 번 움직이지 못하고 넘어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반면 유엘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무작정 움직이려 하지 않고, 천천히 기체와 동화된 감각을 느끼려 애썼다.

‘예전처럼, 예전처럼 하면 되는 거야.’

아직 왕국이 위기가 아닐 때, 잠시나마 움직여 본 것에 불과했으나, 그녀는 분명 기체를 조종한 경험이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그 감각을 최대한 기억하려 노력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내가 걷는 것보다 살짝 뒤꿈치를 내리고, 허리가 틀어지지 않게.’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한다.

그리고 껄끄럽기 그지없는 케이블의 감각과 기체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겼다.

마나 하트가 두근거리며 마나를 펌프질하며 끌어 올렸고, 케이블을 따라 흐른 마나는 나이트 프레임 내부의 메인 코어에 닿아 그녀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동력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쿠웅-!

마침내 한 걸음을 부드럽게 내디디고.

쿠웅-!

다시금 한 걸음, 또 한 걸음…….

“으윽…….”

어느 순간 탈력감이 밀려왔다.

마나 하트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육체적인 탈력감과 정신적인 피로감이 엄청났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라는 걸.

“……아.”

아쉬움에 탄식을 내뱉었지만, 더 움직이다간 넘어지리라는 생각에 유엘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야, 역시 망명 귀족은 좀 다르네?〕

귓가에 꽂히는 로한의 능글맞은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고,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기체가 다른 훈련병들을 지나 격납고의 바로 앞에 다다랐다는 걸 말이다.

기갑천마

실습 (3)

“……아!”

잠시 멍을 때리던 유엘은 머잖아 정신을 차리곤 기쁨과 고양감이 가득 찬 숨을 내뱉었다.

비록 조작이 미숙하여 기체가 멈춰 설 때 살짝 삐걱거리는 느낌이 들긴 했으나 그녀를 비롯해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유엘은 어느새 몸에 연결된 케이블이 떨어진 거도 느끼지 못한 채, 무릎을 끌어안고 나지막이 고개를 파묻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아버지…….”

조금 전 기체를 마음대로 조종했던 감각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려는 듯, 심장에 두 손을 모으며 살포시 눈을 감았다.

동시에 그녀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힌다.

“봤어요? 딸이 이렇게 컸어요.”

너무나 그리운, 그러나 이젠 볼 수도 없는 그리운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녀는 눈물을 닦았다.

만약 아버지가 앞에 있다면 울지 말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을 테니까.

문득 페고르가 가슴에 꽂은 비수 같은 말이 생각났다.

-무능해서 나라를 말아 먹은 주제에 무슨 염치가 있다고 그렇게 당당하지?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데지안의 귀족들은 무능했고, 왕국은 멸망했으니.

그러나 그녀는 확신했다.

적어도 자신은, 아버지는 그들이 말하는 무능한 귀족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때마침 그녀가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른 그 순간, 통신기 너머에서 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엘, 더 움직일 순 없나?〕

그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눈을 감고 마나 하트와 여러 가지를 살폈지만, 머잖아 눈을 뜨고 고개를 저었다.

“예, 이 정도가 한계인 것 같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실습 첫날부터 이만큼 할 수 있는 건 그녀밖에 없을 테니까.

확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비록 데지안 왕국이 무너졌다고는 하나, 그녀 역시 언젠가 가문을 이을 소자작으로서 기본적인 교육은 받았으니까.

그 때문에 그녀는 꽤나 자신만만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순간.

〔저런.〕

로한 특유의 능글맞고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꽂히자 그녀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하고 말았으니.

〔그럼 어쩔 수 없군. 유감이다.〕

“예?”

영문 모를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한 그녀였다.

하나 곧 기체를 따라 미약하게 울리는 진동에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로한의 진의를 깨달은 그녀는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까 까먹고 말 안 했는데, 직접 격납고 안까지 기체를 조종하지 못하면 엘리베이터는 탈 수 없다.〕

그 말은 곧, 탈 때와 똑같이 내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뒤에 다다라 손바닥을 까닥거리는 조교의 기체를 발견하곤 멍한 얼굴로 통신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뭐 해? 얼른 타.〕

실로 잔인한 현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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