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들은 내무반에서 모두 환복 후 점심 전까지 쉬고 곧바로 격납고로 모였다.
쉬는 시간이 너무 적은 게 아니냐는 일부 훈련병들의 불만도 있긴 했으나, 태반은 드디어 나이트 프레임을 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눈을 반짝였다.
“자, 다들 모였나?”
“예!”
세실은 일전에 올랐던 단상에서 우렁찬 소리로 답하는 훈련병들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훈련을 받은 훈련병들은 이제 병아리라고 불릴 만큼 어설프지 않았다.
분대별로 각을 맞춰 선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오늘, 제군의 목숨이 될 기체에 오르는 날이다. 함께하지 못한 이들이 있어 아쉽겠으나 그만큼 귀관들이 제국에 중요한 인재라는 뜻이지.”
약 1백여 명이었던 훈련병의 수는 어느새 일흔 명이 조금 넘는 수로 바뀌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나 하트를 끝까지 만들지 못하거나 동화율 검사에서 탈락한 이들은 모두 포병으로 보내진 것이다.
비록 근무해야 하는 기간은 늘겠으나 그것을 반기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다.
포병은 인기가 많은 병과니까.
여하튼 세실은 도열해 있는 칠십여 명을 훑다가 말을 이었다.
“분대별로 실습에 들어간다. 제1 분대장.”
그녀의 명령에 미리 대기 중이던 조교들과 교관들은 1분대를 격납고 안으로 인솔하며 빠르게 세팅을 끝냈다.
덕분에 채 20분이 지나기 전에 모든 기체가 격납고 밖으로 나와 길게 늘어섰고, 세실은 동화율과 각종 정보가 간략히 뜨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작해.”
허락이 떨어지자, 총 10기의 2세대 나이트 프레임들의 각 관절에서 끼기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로한은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3번 넘어집니다.”
콰아아앙!
격납고 옆 연병장이 무너질세라 큰 소리를 내며 제일 먼저 바닥에 그대로 처박힌 건 훈련소 마크와 3번이 쓰여 있는 기체였다.
걸어 보려 했는지 왼쪽 다리를 들자마자 넘어진 모습이 사뭇 우스꽝스러웠으나, 세실은 별달리 표정 변화 없이 통신기를 들어 말했다.
“3번기. 누구지?”
〔후, 훈련병 페고르입니다. 끄응…….〕
“상황 보고.”
〔배운 대로 마치 내 몸처럼 생각하며 움직였는데, 도중에 동화가 끊긴 거 같습니다. 그보다 바닥에 부딪힌 무릎이 아픈…….〕
힐끔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동화 실패」
「동화율 53%」
「기동 불가능」
“대기해라.”
〔옙.〕
세실은 그 한마디로 페고르의 말을 침묵시키곤 통신기를 껐다. 그러자 곁에 서 있던 로한이 말했다.
“53%면 처음치고 괜찮지 않습니까? 의식적으로 다리를 움직인 것도 그렇고요. 한 일주일이면 적당히 걸어 다니겠습니다.”
“그렇겠지.”
단테가 보여 주었던 73%라는 수치가 뛰어난 거지, 페고르라는 훈련병의 동화율 역시 못난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범재보단 살짝 뛰어난 정도라고 해야 할까.
거기까지 생각한 세실은 문득 단테를 떠올리곤 고개를 돌려 그를 찾았다.
머잖아 10분대의 끝자락에 특유의 무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그를 발견하자 세실은 이틀 전 정보부에서 왔던 문서를 떠올리고는 미간을 좁혔다.
-몰락 귀족이라 특정할 정보가 모자람. 데지안 왕국 전담팀에 정보 공유 요청 중.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정보였으나, 왜인지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세실은 고개를 저었다.
‘설마 뭐가 있겠어.’
설마 단테가 출신을 속인 평민이고, 불법적인 과정으로 마나 하트를 얻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기껏해야 복무 기간을 늘리는 선에서 징계가 끝나리라.
그때 콰아아앙 소리를 내며 3기의 기체가 연달아 바닥으로 쓰러지자 세실은 통신기를 들고 입을 열었다.
“됐다. 전원 대기.”
한편 그 시각.
단테는 근 두 달 동안 끈덕지게 달라붙던 시선을 느끼며 살짝 고개를 돌렸다.
“……앗!”
그러자 2분대의 끝에서 그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던 유엘은 황급히 시선을 피하는 걸 본 단테는 다시금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다.
‘귀족이었다고 했던가.’
바보도 아니고 저리도 의식하는데 모른다면 천마라는 칭호가 아까웠다.
문제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
로한은 워낙 내면이 능글맞은 뱀과 같은 놈이라 그렇다고 쳐도, 저 아이는 대체 왜 이리도 자신을 의식한단 말인가.
잠시 생각하던 그는 이내 늘 그랬듯 관심을 꺼 버렸다.
어차피 용건이 있으면, 일전처럼 찾아올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때마침.
“2분대, 위치로.”
1분대의 훈련이 끝났다.
기갑천마
실습 (2)
총 10대의 나이트 프레임 중 무려 8대가 바닥에 어설픈 자세로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나 세실을 비롯한 교관들은 오히려 넘어진 기체들을 더 높게 평가했다.
나머지 2기는 아예 미동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움직이지 못한 기체에 탄 훈련병은?”
“도란, 그리고 리아입니다. 동화율은 각각 34%, 37%네요.”
두 달간의 교육 끝에 남은 일흔 명의 평균 동화율은 40%대였다.
즉, 그들은 낙제되는 컷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훈련병이라는 뜻이었다.
세실은 수첩에 둘의 이름을 메모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켜보다가 가망이 없다고 보이면 포병으로 보내야겠군.”
“예,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국의 입장에서도 나이트 프레임에 타는 기갑 장교, 그러니까 파일럿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 하겠으나…….
굳이 동화율이 낮은 파일럿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육성할 바엔 포병 쪽으로 넘기는 게 비용적으로도 더 이득이니까.
“조교들, 기체 원위치.”
그녀가 통신기를 들고 명령하자, 훈련병들이 탄 기체를 격납고 밖으로 옮겼던 수송차들과 더불어 5기의 나이트 프레임이 훈련병들의 기체로 걸어갔다.
그리고 능숙하게 팔을 뻗어 넘어진 기체들의 자세를 바로세우기 시작했다.
끼기긱-!
강제적으로 들어 세우는 것이었기에 움직임 자체는 둔탁하기 그지없었지만, 이미 수차례 해 본 경험 때문인지 기체나 콕피트의 손상은 전무했다.
그렇게 모든 기체가 똑바로 서게 되자 기체 안에 탄 훈련병들은 멀뚱히 눈을 굴리며 간부들을 바라보았다.
분명 탈 때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했으니, 내릴 때도 격납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담긴 눈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제군, 콕피트 열어라.〕
통신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들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예?”
〔안 들려? 콕피트 열라고.〕
이 목소리는 로한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기체 너머로 시선을 옮기며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다가 머잖아 세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미 두 달간의 경험으로 세실이 로한을 억제하는 역할이라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아.”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세실은 그제야 나지막이 입을 열었고, 그러자 그들은 그녀가 로한의 말 같지도 않은 명령을 막아 주리란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시간 없다. 모두 열어.〕
이내 통신기를 받아든 세실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히자, 그들은 마지막 기대가 처참하게 부서지는 것을 느끼며 체념 섞인 얼굴로 콕피트를 열 수밖에 없었다.
우웅-!
조금 전, 기체에 탔을 때 들었던 콕피트가 열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고, 곧 강풍이 일순간 내부로 밀려 들어왔다.
“우으읏!”
뺨을 스치는 거센 바람에 훈련병들은 일순간 콧잔등을 찡그리며 의자에 더욱 몸을 밀착했다.
난생 처음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왔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세실의 명령에 훈련병들은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1번부터 5번 훈련병, 전원 의자에서 일어나 앞에 선 조교의 손에 탑승한다.〕
“자, 잘못 들었습니다?”
〔그럼 다시 말해 주지. 의자에서 일어나 조교의 나이트 프레임이 뻗은 손 위로 뛰어내리라고 말했다.〕
세실의 목소리는 지극히 친절했다.
그 때문에 거기서 오는 괴리감은 훈련병들에게 더욱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3번, 페고르는 멍한 눈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등 위에 열린 콕피트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산 정상이 보였다.
지상과는 또 다른 맑은 공기가 그를 반겼다.
“이, 이건 미친 짓이야. 저 여자는 미쳤어.”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중얼거림은 로한이 몰래 열어 놓은 오픈 회선을 따라 세실의 귀에 정확히 꽂히고 말았다.
〔3번 훈련병부터 오른다. 30초를 주지.〕
그제야 훈련병들은 깨달았다.
세실 역시, 로한 못지않게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으어…….”
한편 페고르는 통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명령에 욕지거리를 삼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마음을 다잡은 그는 조심스럽게 팔걸이를 쥐고는 최대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휘이이잉-.
동시에 콕피트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남색 머리카락을 살짝 스쳤다.
그 아찔한 감각에 순간 다리 힘이 풀릴 뻔했으나 페고르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멈출 순 없어.’
나라가 마수들의 발에 짓밟혔을 때의 무력감을 다시 겪을 생각 따윈 없었다.
또한 이대로 물러서는 것 역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여기서 못 하면 그 망명 귀족이나 몰락 귀족이 비웃겠지.’
무능한 주제에 귀족이란 핏줄 하나로 사는 놈들에게 뒤처질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그 때문에 페고르는 떨리는 몸과 심장을 애써 부여잡으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머잖아 콕피트의 끝, 그러니까 아래가 훤히 보이는 경계에 다다를 수 있었다.
“……허어업.”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질색하며 숨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높았다.
높아도 너무 높았다.
저 아래에 도열한 훈련병들의 모습이 개미처럼 보이고, 머리 위로는 손만 뻗으면 닿을 듯이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훨씬 멀긴 했으나 적어도 페고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때 그의 귓가로 로한 특유의 능글맞은 목소리가 꽂혔다.
〔이미 30초 지났다. 페고르, 설마 겁이 나서 못 하고 있으면 말하도록. 내가 직접 올라가서 발로 차 줄 테니까.〕
직접 발로 차 준다.
남이 말했으면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미 지난 날 로한의 광기어린 모습을 직접 겪은 그로선 섬뜩해질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스읍, 후.’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콕피트 바로 아래로 뛰어 내렸다.
“으아아아아아……!”
원망과 두려움, 엿 같음이 섞인 외침이 허공에 울렸고, 뒤이어 페고르가 벌벌 떨며 살아 있음을 보여 주자 다른 네 명의 조교 역시 기다렸다는 듯 기체를 조작해 손을 뻗었다.
한편 지상에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로한과 세실은 어딘가 개운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
“이제야 저희 때 교관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저렇게 내리고 나서 곧바로 권총 뺏어서 조교 쐈던 게 엊그제 같은데요.”
“……용케 사형을 면했군, 중사.”
“뭐, 맞추진 못했으니까요.”
로한의 광기 어린 과거를 하나 더 알게 된 조교들은 순간 움찔했으나, 세실은 별달리 큰 신경을 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둘 다 이미 겪어 본 일이었으니까.
로한 역시 부사관 훈련소를 수료했고, 세실 역시 제국 사관학교를 수료했다.
그리고 저건 부사관학교나 사관학교 모두 통용되는 일종의 신고식이었다.
실제 전선의 격납고는 훈련소의 것보다 훨씬 열악한 경우가 많다.
물론 대부분 지속적인 정비와 개보수로 시설을 유지하긴 하지만 그것도 완전한 해답은 아니었다.
급하면 아예 기체를 눕혀서 타기도 하고, 심할 땐 그냥 대충 기어서 오른다.
더욱이 여차하면 콕피트를 연 뒤 그대로 뛰어내려 비상 탈출도 해야 하기에 아예 가치가 없는 짓거리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위와 같은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당연히 관련된 훈련 커리큘럼은 짜여 있었지만, 신고식을 폐지하자고 말하는 기갑 장교는 아무도 없었다.
로한은 피식 웃었다.
“거참, 다들 속이 보이는데…… 또 이해는 돼서 웃깁니다.”
나이트 프레임을 타기 전, 특히 평민이라면 높은 건물은 그야말로 평생 한 번쯤 가 볼까 말까 한 장소다.
그런 이들이 처음으로 저렇게 높은 곳에서 안전장치 없이 나이트 프레임의 손에 의지해 내려오려면 얼마나 두렵겠는가.
즉, 내가 당한 걸 너희들도 당해 보라는 심보였다.
“으으…….”
“어, 엄마.”
생각을 끝내자, 때마침 기체 위에 올라탔던 열 명의 훈련병 전원이 벌벌 떨며 지상에 주저앉아 있었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세실은 멍하니 서 있는 2분대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하나. 2분대 전원 탑승.”
그리고 그 탑승이란 말에 조교들이 탄 5기의 나이트 프레임이 손바닥을 까닥거리는 순간 그들은 체념한 채, 사색이 된 얼굴로 주섬주섬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