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0화 (10/197)

“흠.”

단테는 자신도 모르게 기체를 움직여 버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내력을 활성화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의문을 가지려는 찰나.

문득 그는 몸 곳곳에 연결된 케이블을 떠올리고 눈을 감았다.

혈맥에 흐르는 기혈을 따라 몸을 훑자 곧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옅게 흐르는 내력이 기감에 걸렸다.

‘이 무슨……?’

어떤 원리인지 이해조차 할 수 없는 현상에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본디 단전에 내력을 담는다는 말은, 그 자신이 하나의 그릇이 되어 자연에 떠다니는 기를 길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내력이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움직이다니.

불쾌감에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그때.

〔……훈련병 단테, 들리나?〕

콕피트 내부에 울리는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깨웠다.

일전에 들려오던 로한의 목소리가 아니라 미성인 걸 보니 세실이라는 대위였다.

“예, 들립니다.”

그녀의 말에 답하자, 세실은 잠깐의 침묵 끝에 그에게 물었다.

〔마나 하트가 있었나?〕

마나 하트.

이 세계에서 중단전, 즉 심장에 만든 단전을 부르는 명칭이었다.

단테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이미 나이트 프레임을 움직인 후였다.

괜히 어설픈 변명으로 의심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진실과 거짓을 섞어 판단 자체를 흐리는 편이 나을 터였다.

단테의 답에 세실은 되물었다.

〔망명 귀족이었나? 분명 서류상으로는 데지안 외곽 도시의 평민으로 쓰여 있던데.〕

그녀의 해석은 일반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민이 마나 하트를 익혔다고 이해할 바에는 차라리 신분을 숨겼다고 이해하는 게 더 납득하기에 편했으니까.

하나 단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여기서 망명 귀족이라 말하는 건 하책이다.

이 세상의 정보 단체가 얼마나 집요하고 정확할진 모르지만, 과거라는 건 털고 털다 보면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그럼 마나 하트는 어디서 익혔지?〕

마나 하트란 구시대, 그러니까 과거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들이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때부터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군단의 침략 이후로는 아니었다.

당장 나라가 망할 판에 그런 걸 가릴 새가 어디 있겠는가.

자연히 대다수 나라는 재능이 있는 평민들에게 마나 하트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단테가 마나 하트를 익히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의 출신.

〔데지안 왕국은 평민에게 마나 하트를 전수하지 않았을 텐데.〕

이미 단테도 알고는 있는 상식이었다.

많은 국가가 전선을 서서히 고착해 가는 와중에도 나라가 무너진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말하는 게 옳을까.

잠깐의 고민 끝에 그는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아버지께?〕

“예.”

그의 말에 세실은 잠깐의 침묵 끝에 되물었고, 단테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그녀에게 답했다.

“저희 집안 남자들 대대로 마나 하트를 익혔습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밝혀지면 집안이 몰살당할 수도 있기에 숨기고 살았습니다.”

흔하지 않겠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더욱이 단테 말고는 가문의 생존자가 없는 상황에서 제일 사실 확인이 어려운 방법이기도 했고 말이다.

단테는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고, 부족한 부분은 그들의 상상에 맡겼다.

원래 인간의 상상력이란 때때로 자신의 눈을 가리는 법이니까.

〔…….〕

단테의 말에 통신기에선 정적이 흘렀다.

그 때문에 단테는 그사이 남은 내력을 갈무리하며 트럭에서 내리며 보았던 전경을 떠올리곤 탈출 경로를 구상했다.

만약 믿어 주지 않으면 탈영해야 하니까.

그러나 그때.

〔그런가. 그러면 말이 되는군. 망명 귀족이 아니라 몰락 귀족이었는가.〕

망명 귀족과 몰락 귀족은 같은 듯 조금 다른 구석이 있었다.

망명 귀족은 데지안 왕국이 무너지면서 망명한, 그러니까 나라가 망해서 몰락한 케이스라면, 몰락 귀족은 이미 한참 전에 작위에서 쫓겨난 케이스다.

세실은 그걸로 납득을 끝냈는지, 곧 의심을 거둔 목소리로 물었다.

〔움직임이 멈춘 걸 보면, 팔을 움직이는 게 한계인가?〕

“예, 더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이질 않는군요.”

〔기다려라. 동화를 끊어 주지.〕

거짓말이었다.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대충 내력을 가늠해 보니 10여 분 정도는 움직일 수 있으리라.

하나 단테는 묵묵히 동화라는 것을 끊어 주길 기다렸다.

‘더 눈에 띄면 귀찮아진다.’

이미 본의 아니게 충분히 눈에 띄고 말았다.

덕분에 몰락 귀족이라는 답지도 않은 거짓말도 해야 했고 말이다.

우웅.

한 2분 정도 기다렸을까.

콕피트 내부의 전등이 한번 깜빡임과 동시에 그의 팔다리에 연결되어 있던 케이블이 뻗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스르륵- 들어갔다.

그 기괴한 모습이 흡사 사혈곡 마인들이 부리는 뱀과 같아서 문득 실소가 흘렀다.

그때 콕피트가 열리고 환한 격납고의 불빛과 함께 조금 전 그를 기체로 안내했던 조교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테, 대위님께서 부르신다.”

기갑천마

비밀이 있는 남자

단테의 기체가 격납고로 들어가는 동안, 훈련병들은 조교들의 인솔하에 먼저 내무반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기체를 움직인 게 대단한 건가?”

“그러게.”

“그보다 걔, 대체 뭐지?”

올 때와 마찬가지로 트럭을 타고 이동하던 훈련병들은 그사이 어느 정도 말을 텄는지, 조금 전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크게 두 가지뿐이었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냐며 의문을 표하거나, 단테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몰락 귀족? 몰락 귀족이라고?’

트럭 구석에 앉아, 입술을 질끈 깨문 유엘은 후자였다.

그것도 다른 아이들처럼 호기심 수준이 아닌 그보다 더 깊은 의문이었다.

‘가문 남자들에게 대대로…… 그게 가능한 일인가?’

세실이나 로한처럼 서류로 읽은 이들과 달리, 데지안 왕국의 귀족이었던 유엘은 왕국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이 얼마나 지독하고 추잡한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가축에 불과한 평민들에게 귀족의 마장기인 나이트 프레임을 타게 할 수는 없다며 알아서 국가의 명을 단축했겠는가.

그마저 있던 나이트 프레임도 예산이나 패배를 이유로 계속 감축하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 빌어먹을 돼지들 때문에 아버지는…….’

거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생각을 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어차피 데지안 왕국은 무너졌고, 왕국의 귀족들 역시 태반이 죽거나 제국으로 망명했으니까.

다만 지금 그녀의 화두는 단테였다.

‘거짓말일까? 아니면 운이 좋았던 몰락 가문인 걸까?’

데지안 왕국은 비록 작금에 이러선 소국이 되었으나 과거에는 나름 대륙에 이름을 떨치던 왕국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에게도 비수라 부를 만큼 매서운 무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왕국의 감시국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하나뿐.

‘몰락한, 그들의 기준으로 귀족으로 불릴 자질이 없어진 이들만을 정리하는 귀족파의 사냥개들.’

순간, 그녀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다른 귀족들은 어떨지 몰라도 그녀는 그들을 진심으로 혐오했으니까.

어쨌든 단테의 말에 유엘이 의문을 가진 부분이 바로 이점이었다.

감시국이 정리하는 것은 여러 가지다.

말 그대로 가문의 핏줄을 이은 모두를 죽이거나, 아니면 재산을 정리한다거나 남긴 세력이라거나 말이다.

그러나 필수적인 것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가문의 마나 하트 연공법을 폐기하는 일이었다.

귀족과 평민을 철저히 다른 인종으로 보는 데지안 왕국의 귀족들에게, 몰락 가문이 들고 있는 마나 하트는 불안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단테는 분명 가문에게서 이어받았다고 했지.

유엘은 고개를 돌려 이젠 멀어져 잘 보이지도 않는 격납고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원래는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그 단테라는 남자에게 무언가 비밀이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각.

유엘과 다른 트럭에 탄 페고르 역시 무언가 진중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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