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 괜찮은 식사였어.’
단테는 그렇게 생각하며 꽤 오랜만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일관적이었다.
‘미친놈인가?’
당장 있던 식욕도 떨어질 마당에 저 단테라는 놈은 두 번이나 더 배식받았다.
심지어 한 번 더 받으려다가 식사 시간이 끝났다는 말에 짐짓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연병장으로 나온 것이다.
당연히 조교는 물론, 훈련병들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특히 페고르와 유엘은 직감했다.
‘엮이지 말자.’
둘 다 어느 정도 세상을 겪어본 경험상, 저런 놈하고 엮이면 귀찮아진다는 것쯤은 진즉에 체득하고 있었다.
그때 연병장에 모여 있는 훈련병들의 앞으로 세실이 걸어 나와 단상에 올랐다.
그녀는 훈련병들의 얼굴을 한번 가볍게 훑고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반갑다. 나는 제3 육군 기갑 부사관 훈련소 수석 교관인 세실 드 아크레데 대위다.”
세실 드 아크레데.
즉, 귀족이었다.
하지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제국군의 장교는 귀족, 평민은 부사관…… 이게 일반적인 상식이었으니까.
그녀는 온전히 자신에게 쏠린 훈련병들의 시선을 느끼며, 단테가 그토록 기다리던 말을 내뱉었다.
“제군은 지금 바로 나이트 프레임을 보러 갈 것이다. 자세한 얘기는 도착해서 하도록 하지. 모두 트럭에 태워.”
“예!”
드디어 그 대단하다는 나이트 프레임을 보러 가는 것이다.
‘부디 실망하지 않으면 좋겠군.’
단테는 내심 기대하며 트럭에 올랐다.
기갑천마
나이트 프레임 (1)
‘제3 육군 기갑 부사관 훈련소’는 여타 보병들이나 다른 훈련소와 목적부터 다르기에 필연적으로 필요한 곳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격납고였다.
“나이트 프레임 10기가 1개의 격납고에 보관된다. 그러니 각 분대의 구성이 열 명인 거다.”
세실은 트럭에서 내려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격납고의 크기에 압도된 훈련병들에게 말했다.
“나이트 프레임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지금 물어봐라. 추후 따로 교육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 귀관들이 탈 기체니까.”
그녀의 말에 훈련병들 태반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머잖아 한 훈련병이 손을 번쩍 들자 세실은 그를 지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이트 프레임이 정확히 뭡니까?”
아무래도 대상이 귀족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미녀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름 모를 훈련병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나 질문 자체는 첫 질문으로 꽤 괜찮은 것이었기에 세실은 곧바로 답했다.
“나이트 프레임이란, 대(對)군단용 결전 병기로서 그 자체로 하나의 보병 연대급으로 평가받는다. 기본적으로 마석을 가공한 메인 코어를 동력원으로 하며 제원은 기체의 세대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야.”
그녀의 설명이 꽤 흥미로웠는지, 훈련병들은 귀를 열고 병아리처럼 눈동자를 빛냈다.
“뭐, 다 제쳐 두고 ‘나이트 프레임’이 뭐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겠군.”
순간 그녀의 입가에 씁쓸한 조소가 흘렀다.
“귀관들의 목숨이라 생각해라.”
“목숨…… 말입니까?”
“그래. 목숨.”
그녀는 훈련병들을 한번 주욱- 훑었다.
태반이 갓 성인이 된, 자의도 아니고 타의로 끌려온 이들이다.
이 중 몇 명이 전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전선에서 나이트 프레임은 늘 어려운 임무를 맡는다. 때로는 1개 대대급만 데리고 네임드 마수들을 향해 돌진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다른 보병들을 살리기 위해 단신으로 수천의 마수들을 막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기갑 장교와 부사관의 평균 생환율이 몇이나 될 것 같나?”
그녀의 물음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답하지 못했고, 때문에 그녀는 잔인한 진실을 무덤덤하게 입에 담았다.
“34.4%.”
대략 3분의 1.
“근 5년간 북부에 투입된 기갑 전력의 평균 생환율이다.”
단순한 서류로 본 것이 아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기갑 사단의 중대장으로 북부에서 근무했으니까.
“간단히 생각해도 세 명 중 두 명이 돌아오지 못한다. 북부라서 그런 거 아니냐고? 다시 말하지만 기갑 전력은 언제나 격전지를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현재는 전선이 어느 정도 고착화가 되어 여유가 있으나, 과거 전선이 한창 밀렸을 땐 제국의 근위 기갑 군단까지 투입될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탈출이나 기동 정지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격전이 일어난 장소에 고립된 기갑 장교를 구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지.”
안타깝게도 이게 현실이었다.
세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훈련병들에게 말했다.
“그래도 제군은 운이 좋은 편이다. 일반병의 의무 복무 기간이 10년인 데에 반해, 부사관은 7년만 버티면 전역을 신청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물론 원하면 연장할 수도 있고.”
대부분 2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리라.
거기까지 말한 세실은 곁에서 시계를 가리키는 로한의 신호에 고개를 끄덕이곤 격납고 개폐를 담당하는 조교에게 눈짓했다.
끼이이익.
족히 20m는 될 법한 거대한 문이 열리며 곧 격납고 내부가 서서히 드러나자 훈련병들은 참았던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와.”
“……저게 진짜 사람이 만든 거라고?”
마장기(魔裝機).
나이트 프레임(Knight Frame).
그것을 실물로 처음 본 단테의 감흥은 딱 하나였다.
‘……엄청나게 크군.’
격납고의 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고개를 끝까지 들어야 간신히 얼굴이 보이는 거대한 기체의 모습은 잠시였으나 그를 압도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하나 단테는 곧 정신을 차린 후, 천천히 기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서역의 기사.
그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바로 그것이었다.
언젠가 그림으로 보았던 풀 플레이트 아머라는 걸 거인이 입고 있으면 저런 모습일까.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나이트 프레임들의 오른쪽 어깨에는 ‘3’과 훈련병을 뜻하는 마크가 새겨져 있다는 거였다.
그때 엄청난 나이트 프레임의 크기에 압도당한 훈련병들의 뒤에서 세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재는 거의 퇴역한 2세대 나이트 프레임이다. 비록 퇴역한 기체라고는 하지만 훈련병들에게 이보다 좋은 기체는 없지.”
사실이었다.
기본적인 조작감조차 최악인 1세대와 달리 2세대부터는 탈 만했으니까.
거기에 제국에서나 퇴역이지 프란 공화국이나 카리튼 연합 왕국에선 아직 현역으로 굴리는 기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이유 전부는 아니었다.
“2세대 나이트 프레임은 현존하는 기체 중 가장 동화율이 높게 책정된 기체다. 그만큼 섬세한 조작감을 자랑하지만, 당연히 고통 역시 생생하게 전해지지.”
2세대 기체가 개발되었던 시기는 그야말로 처절했던 때였다.
거기에 메인 코어를 만드는 기술도 섬세하지 못했고, 동화율을 낮춘 새로운 메인 코어를 만드는 기간 동안 언제 전선이 밀릴지 모르니 반강제적으로 도입된 기체인 것이다.
하지만 그걸 달리 말하면.
“동화율을 끌어 올리는 데에는 최고의 기체라는 뜻이다.”
그만큼 기체에 빠른 적응을 해 주게 만듦으로써 훈련용으로 아주 적합하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설명에 단테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이야.’
사실 그도 내심 의문이 들긴 했다.
당장 환골탈태로 키가 커져도 며칠간 어색해하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 저런 거대한 육신을 움직인다면 얼마나 적응이 어려울까.
그런데 최대한 자신의 몸처럼 느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것이다.
한편 세실은 한창 나이트 프레임에 시선을 빼앗긴 훈련병들을 바라보다가 곁에 서 있는 로한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그는 그녀의 명령에 곧바로 훈련병들의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훈련병들에게 시선이 몰리자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칙대로라면 제군이 나이트 프레임에 타게 되는 시점은 신병 휴가를 다녀온 직후다. 그전에는 기초적인 교육을 받아야 함은 물론 기체 앞으론 얼씬도 못 하지.”
신병 휴가는 입소하고 약 두 달 후에나 받을 수 있다.
즉, 앞으로 두 달이 지나야 탈 수 있다는 말에 단테는 미간을 좁혔다.
‘흠.’
달갑진 않은 소리다.
저 말대로라면 두 달을 의미 없는 짓을 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니까.
물론 식사를 무료로 할 수 있다는 점은 썩 마음에 들긴 했지만.
“하지만.”
그러나 그때.
로한은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덧붙였다.
“자원자 딱 한 명, 먼저 타보는 기회를 주는 것이 모든 기갑 훈련소의 관례다. 그러니 원래는 거수를 받아 한 명을 추려 내야 하겠지만…….”
그의 말에 페고르는 물론, 유엘도 당장이라도 손을 들려는 듯 팔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로한의 시선이 단테에게 향했다.
로한과 단테의 붉은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닿았고, 그는 정확히 단테를 지목하며 말을 마쳤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지목하지. 훈련병 단테, 이번 기수는 너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단테에게 쏠렸다.
비단 훈련병뿐만 아니라 세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는지 로한을 바라보며 살짝은 의문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정작 단테는.
“예, 알겠습니다.”
오히려 만족한다는 듯 옅은 미소까지 지은 채, 조교를 따라 나이트 프레임 옆의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