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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천마-7화 (7/197)

“식사는 물품을 받은 후, 간단히 씻은 다음이다! 그리고 물품을 배분받은 시점부터 귀중품이나 각종 개인 물품을 제외한 모든 짐은 조교에게 제출한다. 알겠나?”

“예!”

어제 일로 약간은 군기가 잡힌 건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반사적인 행동인지 훈련병들은 어제보다 다소 딱딱하게 외쳤다.

물론 조교들의 눈에는 여전히 모자랐지만 어쩌겠는가.

이제 입소한 지 채 하루가 안 된 애들인데.

조교들은 각기 맡은 분대를 이끌고 물품을 배분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단테는 자신이 소속된 분대가 10분대이고 그가 조금 늦은 사이 분대장까지 뽑아 놓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여기 있다.”

조교에게 물품을 받으러 가자, 그는 어딘가 껄끄러운 얼굴로 단테를 바라보곤 기계적으로 물품을 주었다.

당연하게도 단테는 별다른 감흥 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고 말이다.

‘군복과 간단한 옷가지가 전부군.’

작은 봇짐처럼 포장된 가방 안에 있는 것은 딱 최소한의 옷가지가 전부였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모두 검은색이라는 것 정도일까.

‘그러고 보니…….’

대군주니, 나이트 프레임이니 해서 딱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국군의 군복은 딱 검정이 끝이었다. 중간중간 다른 색이 살짝은 섞였으나 그래도 검은색이 압도적이었다.

‘하다못해 흑도라고 자처하던 사파 놈들도 이렇게 흑색으로 떡칠하진 않았거늘.’

운동복 내지는 활동복으로 입는 듯한 반팔티라는 거도 검정, 속옷도 검정, 하다못해 양말조차 검정이었다.

단테는 이내 ‘아무렴 어떤가.’라고 생각하며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땀을 흘렸으니 개운하게 씻은 후 나이트 프레임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할 생각에 내심 기대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그때.

“……저기.”

낯선, 그러나 들어는 본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리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시야에 잡힌 것은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던 유엘이었다.

“무슨 일이지?”

“잠시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요.”

“여기서 하지.”

“……여기서요?”

무미건조한 단테의 말에 유엘은 되레 당황한 듯 주변을 살폈다.

그가 10분대였기에 훈련병 대부분은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였지만 아직 남아 있는 훈련병과 조교들이 은연중에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유엘은 잠시 입술을 몇 번 오물거리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어제, 왜 그런 거죠?”

“뭐가?”

“비록 치료를 받아서 후유증이나 흉터는 없다지만, 그래도 한 실수에 비하면 너무 과분한 처벌이었어요. 그런데 말리지는 않고 어째서…….”

그녀의 말에 단테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계속해 보라는 듯한 그의 얼굴에 유엘은 살짝 머뭇거렸으나 이미 얘기를 꺼냈으니 멈출 순 없었다.

“어째서 방관한 거죠? 아니, 그건 방관보단 차라리…….”

무시에 가깝지 않았나요……라고 말하려던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어제의 일은 그녀를 비롯한 다른 조교들의 상식에도 어긋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라면 보통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보이는 반응은 크게 세 가지 아닌가.

말리거나, 동조하거나, 방관하거나.

그가 보인 반응은 셋 다 아니었다.

하나 그녀의 물음에 대한 단테의 답은 너무나 간결했으니.

“네 말대로라면 뭐가 문제지?”

“……네?”

“작지만 잘못을 저질렀고, 과분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치료를 잘 받아서 작은 흉터 하나 없고 따로 불이익을 받지도 않았지. 그럼 문제가 있나?”

“그, 그건.”

궤변이다.

목 끝까지 그런 말이 차올랐으나 그녀는 차마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단테의 시선 때문이었다.

‘무슨 눈이…….’

보통 영롱하게 빛난다거나, 루비처럼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적색 눈동자이건만 단테의 눈은 전혀 아니었다.

추하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다.

단테의 눈동자는 뭐랄까.

그래, 무언가 결여 된 느낌이 강했다.

그 때문에 유엘은 그의 눈동자가 주는 묘한 위압감에 제압되어 뭐라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이 이어졌을까.

단테는 잠시 시간을 살피곤 말했다.

“할 말 없으면 이만 가 보지.”

그는 그녀가 긍정하기도 전에 몸을 돌려 건물 내부로 사라졌고, 유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기갑천마

미친놈

간단히 몸을 씻고 지급된 군복으로 갈아입자, 비단 단테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 역시 나름 군인 티가 나기 시작했다.

“쟤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한편 아까 유엘과의 대화 때문인지, 아니면 페고르 또는 조교들의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은 어제 있었던 일을 두고 저들끼리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대충 들려오는 소문만 솎아 봐도 그리 고운 내용은 아니었으나 정작 그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나이트 프레임을 보러 가는 건 식사 후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홀로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전날의 일로 아무런 생각이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로한에게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잠시 그를 바라보았으나, 험악한 말과 행동을 하는 데에 반해 정작 실눈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즉,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뜻인데 다가 만약 죽였다고 하더라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무리 중원에 비해 성인이라 치는 나이가 어리다 하더라도 성인이라면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은 질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냄새는 괜찮군.’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쪽만 열려 있는 식당 문으로 들어갔고, 곧 식당 내부가 온전히 시야에 잡혔다.

원체 기수별 인원이 적기 때문인지 식당 자체의 크기는 꽤 아담한 편이었다.

길게 늘어진 배식 라인과 식탁들을 잠시 훑은 그는 지금이 이 시대로 넘어와 먹는 첫 식사라는 걸 새삼 깨닫고 식판 앞에 섰다.

“음.”

다른 훈련병들을 보니, 이 식판이라는 그릇에 일정량을 배식받아 가는 방식인 듯싶었다.

보통 중원의 무력 집단과는 사뭇 달랐다.

당장 신교만 해도 대충 벽곡단에 물을 던져 주거나, 따로 식대를 챙겨 주는 게 전부였는데 말이다.

‘나쁘진 않군.’

물론 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식욕이 떨어지고 맛도 없는 벽곡단에 비하면 이 정도는 선녀라고 할 수 있겠지.

“맛있게 먹어라.”

배식을 맡은 조교의 말을 대충 넘긴 그는 식판을 들고 비어 있는 구석 자리로 향했다.

그러자 구석을 노리던 몇몇 무리는 잠시 갈등하다가 다른 자리로 피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빵, 수프, 이건…… 베이컨과 샐러드라고 부르는 건가.’

식판에 담긴 음식은 꽤나 조촐했으나, 나름대로 구성이 갖춰져 있었다.

단테의 기억에 따르면 빵은 중원의 밥과 같은 느낌이고 수프는 국, 베이컨은 고기, 샐러드는 나물로 보면 되리라.

썩 기대가 되었다.

그는 기억에 따라 빵을 살짝 뜯어 수프에 적신 후 입에 넣었다.

아니, 넣으려 했다.

우당탕!

“다시 말해 봐, 뭐라고 했냐?”

“이 개자식이…….”

갑자기 식당 안을 울리는 소음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손에 빵을 쥔 채 살짝 고개를 들어 상황을 살피자 식당의 중심부에서 얼굴이 벌게진 채로 서로 욕지거리를 주고받는 훈련병들이 보였다.

“그래서, 네가 멍청하게 자빠진 게 나 때문이라고?”

“뭐? 멍청하게?”

얼핏 대화를 듣자니, 아까 구보 중에 넘어진 놈들끼리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의자까지 집어 던진 걸 본 단테는 여전한 무표정으로 빵을 입에 넣고 씹었다.

‘나쁘지 않군.’

쌀로 만들어진 밥과 같은 찰기를 기대할 순 없었지만, 깔끔한 빵에 살짝 짠 수프를 찍어 먹자 나름대로 먹을 만은 했다.

거기에 샐러드라는 나물에 뿌려진 소스는 묘하게 입맛을 살아나게 만들었다.

“뭐 하는 짓거리야! 자리에 안 앉아?”

그리고 단테가 막 두 번째 조각을 수프에 찍고 입에 던져 넣을 때쯤, 배식하던 조교 한 명이 인상을 찡그리며 둘에게 외쳤지만 이미 흥분한 훈련병 한 명이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아오!”

“컥!”

그는 ‘설마 치겠어?’라는 주변의 예상을 가볍게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채 말릴 틈도 없이 주먹을 날렸다.

당연히 턱을 제대로 맞은 훈련병 역시 반쯤은 눈이 돌아가 달려드는 건 한순간이었다.

“으아아! 말려!”

“이 개자식이……!”

“머, 멈춰! 멈추라고!”

당연히 조교들은 당황해 배식하던 차림 그대로 밖으로 튀어나왔다.

설마 때리겠냐고 생각하던 이들은 훈련병들만이 아니라 조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판이군.’

단테는 그렇게 생각하며 베이컨을 씹었다.

살짝 식어서 아쉽긴 했어도 이것 역시 먹을 만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식사를 마쳐 갈 무렵.

“이게 뭐 하는 짓거리들이지?”

지극히 싸늘한 목소리가 식당 내부에 울리자, 배식하던 조교들은 물론 훈련병들을 말리기 위해 달려 나온 조교들 역시 일제히 식당 입구 쪽을 바라보며 경례를 올렸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우렁차게 울리는 조교들의 경례에 훈련병들은 압도당한 듯 입을 다물었고, 단테는 조교들의 시선이 향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흠.”

그리고 곧 모습을 드러낸 여자의 얼굴과 계급을 확인한 그는 마지막 남은 빵 덩어리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생각보다는 빠르게 얼굴을 보게 되는군.’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불과 하루 전에 봤던 만큼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위라는 계급 역시.

“거기 둘. 이리 와.”

“예!”

그때 세실의 곁에 서 있던 로한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훈련병을 직접 뜯어 말린 조교들을 불렀다.

그러자 조교들은 혹여 1초라도 늦을까 황급히 다가와 로한과 세실의 앞에 도열 했다.

“보고해 봐.”

“사소한 말싸움이 주먹다짐으로 발전했습니다!”

“너희는 그걸 보고만 있었고?”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군 생활 끝나냐?”

“아닙니다!”

“뭐가 아닌데?”

“그만.”

로한은 히죽 웃으며 뭐라 더 말하려 했지만, 이내 세실이 입을 열자마자 곧바로 입을 닫았다.

그녀는 두통이라도 느끼는 건지 살짝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개판이군, 개판이야…….”

생각보다 연대에 오래 붙잡혀 있었다지만 고작 하루다.

그런데 하루 만에 훈련병들끼리 주먹다짐이라니.

사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강제로 징병된, 갓 성인이 된 아이들의 혈기는 언제나 돌발 상황을 일으키기 마련이니까.

그 때문에 그녀는 사전에 상황을 막지 못한 두 조교를 잠시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문제를 일으킨 훈련병들은 신병 외출에서 제외다. 너희 둘도 마찬가지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둘은 식사 중지시키고, 밤까지 완전 군장 시켜서 연병장 돌게 해.”

“예! 알겠습니다!”

그 말에 서로 주먹을 몇 대나 주고받았던 훈련병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는 창백하게 얼굴이 변했지만, 이미 깨달은 후에는 늦는 법이다.

덕분에 제일 먼저 말리러 뛰어나왔다가 외출 금지를 받은 조교들은 완전 군장이라는 명령을 받자마자 싸운 당사자들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상황이 일단락되자, 로한은 마치 미어캣처럼 멀뚱멀뚱 자신들을 바라보는 훈련병들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뭐 해? 구경났어?”

“……!”

어딘가 섬뜩한 그 미소에 어제 일을 떠올린 훈련병들은 혹여 불똥이 튈까 빠르게 식판에 고개를 처박았고, 세실은 대충 로한이 한 짓을 예상한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식사 후 연병장으로 집합.”

이 이상 식당에 있으면 훈련병들이 체할지도 모르기에,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곧바로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한편 그 세실이 나가자 단테는 곧바로 식판을 들고 배식 라인 초입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긴장하고 있던 조교와 다른 훈련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꽂혔다.

“후, 식판 반납하는 곳은 저쪽이다.”

그런 단테의 모습에 근처에 서 있던 조교가 말했지만,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은 후 말했다.

“한 번 더 받으려는데, 문제가 됩니까?”

그리고 당연히…… 식당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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