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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천마-4화 (4/197)

밖을 둘러본 시간이 길었던 것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병사들이 빠르게 도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1층에서 일련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슬슬 이동하려는 건가.’

그리고 예상하기가 무섭게, 복도에서 웬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훈련병 전원 기상.”

뭐랄까, 능글맞은 목소리가 과거 제갈 놈들과 사뭇 닮아 문득 미간을 좁혔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갈세가와는 딱히 좋은 기억이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놈들이 무능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오대세가 중에선 남궁을 제외하면 가장 정파다운 놈들이었다.

그럼 어째서 좋은 기억이 없는가?

간단한 이치다.

‘적이었으니까.’

그는 천마였다.

그리고 대군주, 즉 중원의 말로 거귀와 요괴들이 중원을 침략하기 전에 신교와 무림맹은 언제나 서로를 적대했고 말이다.

‘뭐, 이런 생각은 나중에 해도 될 일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곧 기억 속에서 단테가 챙기려 헌 가방에 담아 놓았던 물건들이 생각나자,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방을 손에 쥐었다.

‘가볍군.’

하긴, 열다섯 살에 고아가 된 아이에게 귀중품이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문고리를 잡아 돌리곤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곧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가던 병사 중 한 명이 천휘를 발견하곤 말했다.

“아, 단테. 가자.”

“……아, 그렇군.”

다시 생각해 보니 지금 그는 단테였다.

병사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한 단테의 모습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묵묵히 1층으로 내려가는 그 모습에 관심을 끊었다.

어차피 오늘 이후로는 보지 못할 테니……라는 생각이리라.

한편 1층으로 내려간 천휘, 아니 단테는 아까 복도에서 외친 듯한 붉은 머리에 실눈을 가진 남자를 힐끔 바라보곤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미간을 좁힌 이유는 남자 때문이 아닌, 그의 허리춤에 꽂혀 있는 웬 ‘ㄱ 자’ 모양의 은색 물체 때문이었다.

‘저건…….’

장신구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곧 그게 마탄(魔彈)이라는 걸 쏘아 내는 무기임을 알 수 있었다.

‘음.’

문득 궁금해졌다.

저 무기의 위력은 얼마나 될까?

호신강기를 뚫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곧 결론을 내렸다.

‘머잖아 알게 되겠지.’

군대에 남든, 아니면 탈영하여 다른 곳에서 다른 길을 찾든 확인할 수 있는 날은 많으리라.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곧 일대의 건물에서 일련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수를 세보니 대략 백 명을 조금 넘어 보였다.

문득 아이들의 수를 세던 단테는 비릿한 조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꼴에 성인까지 기다려 주긴 하는군.’

신교든, 무림맹이든, 흑도든 아이 때부터 무공을 수련시키는 것과 달리 이 세계는 성인까지 기다려 주는 듯했다.

그것이 최소한의 양심인지, 아니면 부품으로써 완성되기를 기다린 것인지는 지금으로써는 판단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아, 대위님.”

그때 아이들이 건물 사이 넓은 연병장에 모두 모이자 한 단발의 여자가 걸어와 붉은 머리의 남자에게 무언가를 전해 듣곤 뒤이어 명령했다.

“모두 훈련소로 이송시킨 후 분대장까지 뽑아 놔. 난 연대에 들렀다 갈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녀는 그 답을 끝으로 별다른 말없이 어딘가 씁쓸한 눈으로 아이들을 살피곤 곧 입술을 질끈 깨물며 사라졌다.

그것을 본 것은 기껏해야 단테와 붉은 머리의 남자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단테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죄책감을 가지고 있나.’

대위라고 했던가.

그녀의 얼굴과 눈빛은 단테가 아닌 천마 천휘가 보아 왔던 수많은 이들의 얼굴과 사뭇 닮아 있었다.

자신이 행하는 일이 떳떳하지 않다.

괴로워하며, 번민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저런 이들은 끝내 장기 말이 되는 것을 택한다.

결국 체념하는 것이다.

바뀌지 않을 것을 알기에.

또는, 바꾸지 못할 것을 알기에.

“자, 이 트럭에 타면 된다.”

단테는 그저 기계적으로 아이들을 트럭이라는 철 마차에 태우는 병사들의 손길을 가볍게 피한 후, 자의로 트럭에 오르며 조금 전 봤던 여자의 얼굴을 깔끔하게 지웠다.

왜냐면…….

‘그저 권력에 체념했다면, 기억할 가치도 없지.’

단테는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이 철 마차의 흔들림이 꽤 적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도착할 때까진 잠을 좀 자 두는 게 좋을 듯싶으니 말이다.

물론 완전히 잠이 들지는 않고 반쯤은 의식을 남겨 두었다.

추후 오직 자신을 따르는 세력을 일군 후라면 모를까, 사방이 신뢰할 수 없는 이들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눈을 감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시간?

아니, 얼추 네 시간은 흘렀을 것이다.

출발했을 땐 아침이었던 것과 달리, 훈련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뜬 채로 그들을 반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침내 트럭이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추자 아이들과 트럭에 함께 타고 있던 병사들은 신속히 하차하며 비몽사몽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외쳤다.

“전원 하차!”

그건 일전에 시설에서 보여 주었던 온화했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그러나 놀란 아이들과 달리 단테는 태연한 얼굴로 제일 먼저 트럭에서 내려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대충 이런 식인가.’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격납고와 꽤 거대한 훈련소의 모습은 그에게 꽤 신선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그때 트럭 아래서 명령하는 병사들의 모습에 허겁지겁 내린 아이들의 앞으로 일전의 붉은 머리 남자가 걸어 나와 입을 열었다.

“반갑다, 제군. 나는 제3 육군 기갑 부사관 훈련소 수석 조교 로한 중사다.”

그는 그저 눈앞에 서 있는 아이들을 한번 가볍게 훑곤 히죽 웃으며 덧붙였다.

“이제부터 귀관들은 자랑스러운 제국군의 부사관이자 기갑 기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게 된다.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고아 내지는 이민자 출신으로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었을 귀관들에게 제국이, 나아가 황제 폐하께서 충성을 증명할 기회를 주신 것이니.”

그리고 그 말이 아이들에게 닿았을 때.

돌아오는 것은 정적뿐이었다.

-사회의 암적인 존재.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의 반응은 꽤 여러 가지였다.

분노나 모멸감을 느끼고 로한을 노려보거나.

저런 말과 대우가 익숙한 듯, 고개를 숙인 채 체념하거나.

또는 그저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거나.

한편 단테의 반응은 간결했다.

‘말이 많군.’

당연한 일이다.

진짜 단테였다면 저 말에 상처를 받든, 분노하든 했겠지만 지금 단테는 그였으니 말이다.

그는 그저 조금이라도 빠르게 그 나이트 프레임이라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 걸까.

짝-!

“자, 그럼.”

로한은 낮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짧게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한 후, 태연하게 어느새 아이들의 앞에 선 조교들에게 말했다.

“명단에 따라 10명씩 분대로 나눠. 그리고 내무반으로 인솔해.”

“예!”

곧바로 아이들은 훈련소 내부로 인솔되어 명단에 따라 빠르게 분류되었고, 곧 그들은 각기 배정받은 내무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단테 역시 배정받은 내무반의 제일 구석 창가, 관물대라는 곳에 짐을 내려놓고는 안을 살피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때.

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조금 전 그들을 인솔했던 조교가 들어와 내무반 안이 떠나가도록 외쳤다.

“연병장 집합! 1분 준다!”

본격적인 훈련의 시작이었다.

기갑천마

입소 (2)

짐을 내려놓기 무섭게 아이들, 아니 훈련병들은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곧바로 연병장으로 뛰어나와야 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열 명의 조교와 수석 조교인 로한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모두 연병장에 도착하자마자 앞에 서 있는 조교들에게 말했다.

“뭐 해?”

딱히 주어가 없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조교들은 기다렸다는 듯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엎드려! 이 새끼들아!”

“10초 준다!”

강압적인 그 분위기에 훈련병들은 우물쭈물할 새도 없이 바닥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단테 역시 별다른 반발 없이 엎드렸으나, 속으로는 내심 혀를 찼다.

‘쓸데없는 짓을.’

마음 같아선 이런 귀찮은 짓은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마수나 죽이러 북부로 향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나이트 프레임이라는 걸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에 참았다.

“일어나!”

그때 엎드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교들이 외치자 훈련병들은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막 허리를 펴기도 전에 로한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다시.”

당연히 태반은 그 말을 듣지 못했지만, 곧 그것이 다시 엎드리라는 소리라는 걸 이해한 순간 훈련생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곱게 6개월을 보내진 못할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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