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3화 (3/197)

한편 그 시각.

“추, 충성! 제국에 영광을!”

천휘에게 자신들도 모르게 목적지를 정해 준 두 병사는 땀을 삐질 흘리며 눈앞에 선 여자에게 황급히 경례를 올리고 있었다.

“…….”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가 경례를 받아 주지 않자, 결국 한 병사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세, 세실 대위님, 무슨 문제라도……?”

“빨리도 물어보는군.”

그러자 그녀, 아니 세실은 되레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본 뒤 작게 한숨을 내쉬고 냉랭한 어투로 답했다.

“귀관이 의자를 대신해서 앉고 있는 그 상자. 안에 담긴 게 뭐지?”

“안에 담긴 거라면……? 히이익!”

그녀의 말에 병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시선을 내려 상자 구석에 적힌 물품 이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사색이 되어 상자에서 멀어졌다.

그러자 곁에 있던 병사 역시 글자를 확인하고는 어째서 그녀가 저런 반응인지 깨달았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통신 박스 전용 마석」

그건 다름 아닌 마석이었다.

기갑천마

입소 (1)

“후, 로한 중사.”

“예, 대위님.”

세실의 말에 곁에 서 있던 로한은 실눈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는 몰라도 헤실헤실한 웃음을 지으며 병사들 사이로 성큼 들어가 상자를 열었다.

그러고는 잠시 푸른빛을 내는 마석을 살핀 그는 손을 탁탁 털고 일어나 말했다.

“큰 이상은 없습니다. 충격에 과부하된 것도 없고요.”

“……다행이군.”

마도 공학의 핵심 동력원 역할을 하는 마석은 대부분 빈틈없는 처리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 어지간한 일에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통신 박스용으로 쓰이는 최하품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싼 가격으로 만들어진 양산품이다 보니, 작은 충격에도 과부화가 되는 불량품들이 간혹 가다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리 좀 제대로 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병사들이 단독으로 여기로 옮겼을 리는 없고, 아마 보급반이 귀찮다는 이유로 미리 가져다 놓은 것이리라.

‘뻔하지.’

마석이 불량일 확률이 있긴 하나 매우 낮고, 불량이라고 해서 무조건 터지는 것도 아니다.

반면 통신 박스의 마석은 주기적으로 바꿔 줘야 하는데, 매번 마석 보관 창고까지 걸어가서 바꾸기엔 귀찮았던 것이리라.

그게 늘 당연했을 테니까 의식하지도 못한 채 저렇게 태연히 앉아 있던 것이고 말이다.

즉, 안전 불감증이었다.

“됐다.”

세실은 뭐라 대답하지도 못하고 입술을 오물거리는 병사를 바라보다가 옅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음부턴 주의하도록. 저 상자들은 다시 보관 창고로 옮겨 놓고.”

“아,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은 채 경례를 받아 주고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그녀의 곁에 있던 로한이 그녀를 뒤따르며 나지막이 물었다.

“봐주실 생각입니까?”

“담당자 이름과 계급.”

“이름 나르텐, 계급은 하사입니다.”

“특이 사항은?”

“병사들 사이에서 평가가 나쁘지 않습니다. 융통성이 있고, 하사임에도 씀씀이가 크더군요.”

고작 하사가 씀씀이가 크다……?

조금만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부호의 자식이라거나 하는 특이 사항도 없는데 말이지.

‘어쩌면 보급반 전체가 엮여 있을 수도 있겠어.’

세실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살짝 짚은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군 기강을 우습게 알고, 횡령까지 했다는 뜻이군.”

“바로 그렇습니다.”

“징계위로 넘겨.”

“옙.”

안 그래도 시설에 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힘든 일이다.

그런데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기분을 단번에 눈치챈 로한은 가방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번에 훈련소로 갈 아이들의 목록입니다.”

“……가져와.”

사적인 감정은 사적인 감정이고, 일은 일이다.

그녀는 새삼 그것을 다시 되뇌며 로한이 건넨 서류를 받아 들고 꼼꼼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세실을 곁에서 보는 로한은 실눈을 호선으로 그으며 어딘가 살짝 어긋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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