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308화 (완결) (308/308)

< 제46장 운명의 끝 - 2 : 완결 >

인생은 시간 속에 지나가고 그 시간의 흐름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백발로 변해 버린 머리카락, 늙음을 감추지 못하고 늘어난 주름.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지 벌써 22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로 자리매김하며 세계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에도 바쁘게 살았다.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우주개발 분야였는데 자신의 재산을 그 분야에 전부 투자했다.

우주개발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그렇다고 쉽게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정부에서도 비룡의 우주개발 사업에 상당한 금액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최강철은 자신의 투자처에서 들어오는 이익금을 전부 그곳에 쏟아부었다.

수많은 실패가 반복되었지만 점점 성과가 나타났다.

달을 정복했고, 화성에 착륙해서 신인류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신인류 프로젝트는 화성을 개발해서 인류가 정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세계 최초의 거대 사업이었다.

그리고 우주개발 사업을 시작한 지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태양계를 하나씩 정복한 후 더 먼 곳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이토록 우주개발 사업에 집중한 이유는 이것이 그가 대한민국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봉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 *

이성일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최강철이 서울대 병원으로 간 것은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던 3월의 봄날이었다.

그가 도착했을 때 오래전 같이 동고동락했던 윤성호 관장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성일의 병명은 폐암이었다.

그렇게 담배를 끊으라고 이야기했음에도 사업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지 계속해서 피우더니 기어코 폐암에 걸려 버렸다.

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암이 정복되었지만 모든 생명이 진화하는 것처럼 암도 변종이 나타났는데 이성일이 걸린 병은 초급성 폐암이란 것이었다.

“어서와, 최통. 조금 늦었네.”

“성일이 아직 괜찮죠?”

“자네를 기다리고 있어. 그놈은 죽을 때가 되어도 농담을 하더군. 나한테 자네를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그랬어. 자네를 못 보면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 오래 살 수 있을 거라더라.”

“미친놈…….”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눈을 감은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이성일의 모습이 보였다.

불쑥 솟아 오른 배, 말라비틀어진 얼굴.

고통으로 인해 계속해서 진통제를 맞아왔기 때문인지 얼굴은 편안해 보였으나 호흡은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상태였다.

“성일아, 나 왔다.”

부드럽게 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남아 있는 머리카락은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줄어든 상태였다.

천천히 손을 내밀자 앙상하게 변해 버린 놈의 손이 잡혔다.

고목나무처럼 거칠어진 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에서 이성일은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고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놈이 병상에 누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파왔다.

“우리… 강철이 왔구나…….”

“깼어?”

“오지… 말라니까 왜 왔어……. 너만 안 오면 난 오래 살 수 있는데. 이 자식아, 이젠 널 봤으니 난 죽은 목숨이다.”

이성일이 얼굴에서 웃음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기력이 다했기 때문인지 그의 웃음은 마치 울음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성일아… 아프냐?”

“응, 아파. 그래서 미치겠다. 이제 널 봤으니 떠나야지……. 널 기다리느라 너무 힘들었어.”

“미안해… 성일아,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친놈아, 너 덕분에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데 그런 소릴 해… 헉, 헉… 고마웠다. 널 봤으니 이젠 여한도 없어. 강철아… 먼저 가서 기다릴게. 너는 남아서 신나게 살다 천천히 와…….”

“성일아!”

눈을 감는 이성일의 모습을 보면서 최강철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성일은 더 이상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성일아, 성일아… 이 자식아!

놈의 몸을 붙잡고 몸부림을 쳤다.

전생에서도, 그리고 다시 산 인생에서도 놈은 언제나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었다.

친구를 먼저 보내는 아픔이 이토록 클 줄은 몰랐다.

최강철이 통곡을 터뜨리자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병원이 순식간에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병실 밖 복도에는 그를 따라온 수행원과 수십 명의 기자들, 그리고 병원 관계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최강철은 이미 오래전 대통령직을 떠났지만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지구촌 전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위인이었기에 그가 움직이면 최소한 30여 명 이상의 기자들이 따른다.

의사가 들어와 이성일의 사망 선고를 했을 때 최강철의 통곡은 최고조에 달했다.

절규였다.

자신의 생명과 같았던 친구를 떠나보내며 최강철은 오랫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내가 죽는다 해도,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언제나 사랑했던 너를…….

* * *

이성일을 보내고 제주도로 돌아온 최강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상심이 큰 것도 있었지만 그 역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서지영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모든 것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루시퍼와 했던 약속, 그 약속된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던 오후.

최강철은 서지영의 손을 이끌어 바닷가로 향했다.

제주도로 온 후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와 함께했던 산책길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한참동안 거닐던 최강철은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에 오른 후 벤치에 앉아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서지영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바다는 점점 붉은 빛으로 변하며 황혼이 내려앉는 중이었다.

“여보, 날씨가 제법 싸늘해졌어요. 그만 들어가요.”

“조금만 더 있다 갑시다.”

“오늘따라 왜 그래요?”

“응, 당신과 조금 더 있고 싶어서 그래.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게 있어.”

“또 출장이에요? 이번엔 어디로 가는데요?”

“멀리, 아주 멀리.”

“이 양반 봐. 이젠 어디로 출장가는 것도 비밀인 모양이네. 당신 혹시 예쁜 애인 생긴 거 아니에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옆에 있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겠어? 말도 안 되는 상상이야.”

“호호… 다 늙어빠진 할망구가 아직도 예뻐 보인다구요?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거짓말이란 거 금방 들통 나니까.”

“정말이야, 난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지영 씨, 평생 동안 내 옆을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당신… 왜 이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내와 함께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이별을 했다.

차마 아내에게 떠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사람의 직감이란 무섭다.

아니, 어쩌면 자신은 떠나야 할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으나 오후가 되자 오늘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랬기에 서지영과 함께 오후 내내 시간을 같이 보냈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라고 했던가.

마치 한바탕 즐거운 꿈을 꾼 것 같았다.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에 들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영원히 뜨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미련이 자꾸 목덜미를 잡아왔다.

하지만, 운명이란 것은 인간의 힘으로 막지 못하는 법이다.

“이봐, 최강철. 그동안 잘 있었어?”

어느샌가 주변이 온통 백색으로 변했고 그 옛날 처음 만났을 때 그 소름끼치던 모습으로 루시퍼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을 다시 살도록 만들어준 악마, 그는 섬찍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전혀 두렵지 않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좋군, 좋아. 역시 심장이 강해. 전혀 놀라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어차피 약속된 시간이었잖아. 그리고 난 약속을 어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래, 다시 살아본 인생. 어땠나, 괜찮았어?”

“응, 즐거웠다. 아주 좋았어.”

“뭐가 그리 좋았나?”

“모든 게 다. 더 없이 행복했고 더 없이 즐거웠다. 루시퍼, 고마워.”

“정말 너는 이상한 인간이야. 나는 지금도 궁금해. 네가 다시 살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너를 쭈욱 지켜보고 있었다. 난 처음엔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가려는 거라 생각했어. 너를 그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복수. 그리고 네가 전생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 예를 들면 인간이 지니고 있는 욕심과 욕망, 그리고 타락을 원할 것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너는 전혀 그런 삶을 살지 않더군. 다시 살았던 너의 삶은 지켜보기 민망할 정도로 고지식했어. 재미도 없었고 말이야. 말해봐. 도대체 넌 왜 그런 삶을 선택한 거지?”

“내가 그렇게 산 건 나 같은 놈을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지?”

“나로 인해 사회가 바뀐다면 나같이 억울하게 자살하는 놈들이 없어질 거라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재미는 없었지만 그렇게 살았어. 왜 그런 눈으로 봐. 뭐가 이상해?”

“크크크… 이제 보니 넌 미친놈이었구나.”

“그럴지도 모르지.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던 건 아니야. 네 말대로 나한테 아픔을 준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어. 돈을 많이 벌어 내 마음대로 갑질하면서 남들 위에 군림할 생각도 했었다. 세상을 마음껏 조롱하고 싶었거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허탈해지더구만. 네가 나한테 선물해 준 것들은 그런 삶을 나에게 허락하지 않더라.

뛰어난 머리, 강철 같은 심장, 체력, 그리고 미래의 기억. 그런 능력을 가진 놈은 절대 평범하게 살 수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 선물을 받은 게 후회되는 모양이지?”

“아니, 후회되지 않는다. 내가 말했잖아. 더없이 행복했고 즐거웠다고.”

“그럼 다행이고.”

“이봐, 루시퍼. 나 잠깐만 눈 뜨면 안 돼?”

“왜?”

“아내에게 마지막 이별의 입맞춤을 하고 싶다. 허락해 줄 수 있겠나?”

“쯧쯧… 넌 이미 죽었어. 그리고 이곳은 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공간이다. 네 모습을 봐. 이런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루시퍼의 말을 들은 최강철은 그때서야 급히 맞은편에 걸린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강철 갑옷을 두른 전사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매끈한 피부, 그리고 칠척에 달하는 탄탄한 몸매. 등 뒤에 멘 장검에서는 푸른빛이 연신 솟아올라 그의 몸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 눈을 돌리자 루시퍼의 눈빛이 푸르게 변한 것이 보였다.

“어때 네 모습?”

“기가 막히는군. 이게 원래 내 본모습인가?”

“응, 그게 바로 네 모습이야. 천상계 최고의 전사, 전장의 화신이지.”

“이런 제길…….”

온생 하얀색으로 치장되어 있던 벽들이 사라졌고 그의 발 아래로 투구와 갑옷을 쓴 채 장검을 들고 있는 수많은 병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병사들의 끝에 있는 건 피가 튀기는 전장이었다.

아비규환이다.

지평선 끝에서 벌어지는 전장은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최강철이 죽음으로 이어진 전장을 보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지금부터 네가 해야 하는 일이지.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너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대신 영혼을 나에게 저당 잡혀야 한다고. 지금부터 너는 본래의 네 모습으로 돌아가 전쟁의 영웅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싸운단 말이냐?”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차츰 알게 돼. 하지만, 분명히 장담하지. 네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자, 가자. 미치도록 잔인하며, 처절한 전장의 세계로!”

# 운명의 끝 (2)

인생은 시간 속에 지나가고 그 시간의 흐름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백발로 변해 버린 머리카락, 늙음을 감추지 못하고 늘어난 주름.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지 벌써 22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로 자리매김하며 세계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에도 바쁘게 살았다.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우주개발 분야였는데 자신의 재산을 그 분야에 전부 투자했다.

우주개발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그렇다고 쉽게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정부에서도 비룡의 우주개발 사업에 상당한 금액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최강철은 자신의 투자처에서 들어오는 이익금을 전부 그곳에 쏟아부었다.

수많은 실패가 반복되었지만 점점 성과가 나타났다.

달을 정복했고, 화성에 착륙해서 신인류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신인류 프로젝트는 화성을 개발해서 인류가 정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세계 최초의 거대 사업이었다.

그리고 우주개발 사업을 시작한 지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태양계를 하나씩 정복한 후 더 먼 곳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이토록 우주개발 사업에 집중한 이유는 이것이 그가 대한민국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봉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 *

이성일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최강철이 서울대 병원으로 간 것은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던 3월의 봄날이었다.

그가 도착했을 때 오래전 같이 동고동락했던 윤성호 관장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성일의 병명은 폐암이었다.

그렇게 담배를 끊으라고 이야기했음에도 사업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지 계속해서 피우더니 기어코 폐암에 걸려 버렸다.

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암이 정복되었지만 모든 생명이 진화하는 것처럼 암도 변종이 나타났는데 이성일이 걸린 병은 초급성 폐암이란 것이었다.

“어서와, 최통. 조금 늦었네.”

그런 놈이 병상에 누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파왔다.

“우리… 강철이 왔구나…….”

“깼어?”

“오지… 말라니까 왜 왔어……. 너만 안 오면 난 오래 살 수 있는데. 이 자식아, 이젠 널 봤으니 난 죽은 목숨이다.”

이성일이 얼굴에서 웃음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기력이 다했기 때문인지 그의 웃음은 마치 울음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성일아… 아프냐?”

“응, 아파. 그래서 미치겠다. 이제 널 봤으니 떠나야지……. 널 기다리느라 너무 힘들었어.”

“미안해… 성일아,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친놈아, 너 덕분에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데 그런 소릴 해… 헉, 헉… 고마웠다. 널 봤으니 이젠 여한도 없어. 강철아… 먼저 가서 기다릴게. 너는 남아서 신나게 살다 천천히 와…….”

“성일아!”

눈을 감는 이성일의 모습을 보면서 최강철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성일은 더 이상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성일아, 성일아… 이 자식아!

놈의 몸을 붙잡고 몸부림을 쳤다.

전생에서도, 그리고 다시 산 인생에서도 놈은 언제나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었다.

친구를 먼저 보내는 아픔이 이토록 클 줄은 몰랐다.

최강철이 통곡을 터뜨리자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병원이 순식간에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병실 밖 복도에는 그를 따라온 수행원과 수십 명의 기자들, 그리고 병원 관계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최강철은 이미 오래전 대통령직을 떠났지만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지구촌 전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위인이었기에 그가 움직이면 최소한 30여 명 이상의 기자들이 따른다.

의사가 들어와 이성일의 사망 선고를 했을 때 최강철의 통곡은 최고조에 달했다.

절규였다.

자신의 생명과 같았던 친구를 떠나보내며 최강철은 오랫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내가 죽는다 해도,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언제나 사랑했던 너를…….

* * *

이성일을 보내고 제주도로 돌아온 최강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상심이 큰 것도 있었지만 그 역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서지영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모든 것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루시퍼와 했던 약속, 그 약속된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던 오후.

최강철은 서지영의 손을 이끌어 바닷가로 향했다.

제주도로 온 후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와 함께했던 산책길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한참동안 거닐던 최강철은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에 오른 후 벤치에 앉아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서지영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바다는 점점 붉은 빛으로 변하며 황혼이 내려앉는 중이었다.

“여보, 날씨가 제법 싸늘해졌어요. 그만 들어가요.”

“조금만 더 있다 갑시다.”

“오늘따라 왜 그래요?”

“응, 당신과 조금 더 있고 싶어서 그래.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게 있어.”

“또 출장이에요? 이번엔 어디로 가는데요?”

“멀리, 아주 멀리.”

“이 양반 봐. 이젠 어디로 출장가는 것도 비밀인 모양이네. 당신 혹시 예쁜 애인 생긴 거 아니에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옆에 있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겠어? 말도 안 되는 상상이야.”

“호호… 다 늙어빠진 할망구가 아직도 예뻐 보인다구요?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거짓말이란 거 금방 들통 나니까.”

“정말이야, 난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지영 씨, 평생 동안 내 옆을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당신… 왜 이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내와 함께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이별을 했다.

차마 아내에게 떠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사람의 직감이란 무섭다.

아니, 어쩌면 자신은 떠나야 할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으나 오후가 되자 오늘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랬기에 서지영과 함께 오후 내내 시간을 같이 보냈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라고 했던가.

마치 한바탕 즐거운 꿈을 꾼 것 같았다.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에 들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영원히 뜨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미련이 자꾸 목덜미를 잡아왔다.

하지만, 운명이란 것은 인간의 힘으로 막지 못하는 법이다.

“이봐, 최강철. 그동안 잘 있었어?”

어느샌가 주변이 온통 백색으로 변했고 그 옛날 처음 만났을 때 그 소름끼치던 모습으로 루시퍼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을 다시 살도록 만들어준 악마, 그는 섬찍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전혀 두렵지 않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좋군, 좋아. 역시 심장이 강해. 전혀 놀라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어차피 약속된 시간이었잖아. 그리고 난 약속을 어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래, 다시 살아본 인생. 어땠나, 괜찮았어?”

“응, 즐거웠다. 아주 좋았어.”

“뭐가 그리 좋았나?”

“모든 게 다. 더 없이 행복했고 더 없이 즐거웠다. 루시퍼, 고마워.”

“정말 너는 이상한 인간이야. 나는 지금도 궁금해. 네가 다시 살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너를 쭈욱 지켜보고 있었다. 난 처음엔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가려는 거라 생각했어. 너를 그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복수. 그리고 네가 전생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 예를 들면 인간이 지니고 있는 욕심과 욕망, 그리고 타락을 원할 것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너는 전혀 그런 삶을 살지 않더군. 다시 살았던 너의 삶은 지켜보기 민망할 정도로 고지식했어. 재미도 없었고 말이야. 말해봐. 도대체 넌 왜 그런 삶을 선택한 거지?”

“내가 그렇게 산 건 나 같은 놈을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지?”

“나로 인해 사회가 바뀐다면 나같이 억울하게 자살하는 놈들이 없어질 거라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재미는 없었지만 그렇게 살았어. 왜 그런 눈으로 봐. 뭐가 이상해?”

“크크크… 이제 보니 넌 미친놈이었구나.”

“그럴지도 모르지.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던 건 아니야. 네 말대로 나한테 아픔을 준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어. 돈을 많이 벌어 내 마음대로 갑질하면서 남들 위에 군림할 생각도 했었다. 세상을 마음껏 조롱하고 싶었거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허탈해지더구만. 네가 나한테 선물해 준 것들은 그런 삶을 나에게 허락하지 않더라.

뛰어난 머리, 강철 같은 심장, 체력, 그리고 미래의 기억. 그런 능력을 가진 놈은 절대 평범하게 살 수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 선물을 받은 게 후회되는 모양이지?”

“아니, 후회되지 않는다. 내가 말했잖아. 더없이 행복했고 즐거웠다고.”

“그럼 다행이고.”

“이봐, 루시퍼. 나 잠깐만 눈 뜨면 안 돼?”

“왜?”

“아내에게 마지막 이별의 입맞춤을 하고 싶다. 허락해 줄 수 있겠나?”

“쯧쯧… 넌 이미 죽었어. 그리고 이곳은 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공간이다. 네 모습을 봐. 이런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루시퍼의 말을 들은 최강철은 그때서야 급히 맞은편에 걸린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강철 갑옷을 두른 전사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매끈한 피부, 그리고 칠척에 달하는 탄탄한 몸매. 등 뒤에 멘 장검에서는 푸른빛이 연신 솟아올라 그의 몸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 눈을 돌리자 루시퍼의 눈빛이 푸르게 변한 것이 보였다.

“어때 네 모습?”

“기가 막히는군. 이게 원래 내 본모습인가?”

“응, 그게 바로 네 모습이야. 천상계 최고의 전사, 전장의 화신이지.”

“이런 제길…….”

온생 하얀색으로 치장되어 있던 벽들이 사라졌고 그의 발 아래로 투구와 갑옷을 쓴 채 장검을 들고 있는 수많은 병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병사들의 끝에 있는 건 피가 튀기는 전장이었다.

아비규환이다.

지평선 끝에서 벌어지는 전장은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최강철이 죽음으로 이어진 전장을 보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지금부터 네가 해야 하는 일이지.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너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대신 영혼을 나에게 저당 잡혀야 한다고. 지금부터 너는 본래의 네 모습으로 돌아가 전쟁의 영웅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싸운단 말이냐?”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차츰 알게 돼. 하지만, 분명히 장담하지. 네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자, 가자. 미치도록 잔인하며, 처절한 전장의 세계로!”

“성일이 아직 괜찮죠?”

“자네를 기다리고 있어. 그놈은 죽을 때가 되어도 농담을 하더군. 나한테 자네를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그랬어. 자네를 못 보면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 오래 살 수 있을 거라더라.”

“미친놈…….”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눈을 감은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이성일의 모습이 보였다.

불쑥 솟아 오른 배, 말라비틀어진 얼굴.

고통으로 인해 계속해서 진통제를 맞아왔기 때문인지 얼굴은 편안해 보였으나 호흡은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상태였다.

“성일아, 나 왔다.”

부드럽게 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남아 있는 머리카락은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줄어든 상태였다.

천천히 손을 내밀자 앙상하게 변해 버린 놈의 손이 잡혔다.

고목나무처럼 거칠어진 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에서 이성일은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고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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