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307화 (307/308)

< 제45장 운명의 끝 - 1 >

남북 경협이 시작된 지 벌써 15년.

그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 휴전선 부근에 설치된 공동 경제 구역은 대한민국의 수출품을 전 세계로 움직이는 전진기지로 성장했고, 북한의 자치구도 10개로 늘었다.

북한은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자본 체계를 구축하며 인민들의 재산을 용인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상당한 재산을 구축한 사람들이 속출했다.

공장들과 대규모 기업들이 연이어 생겨났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급격히 올라갔다.

불과 1,000달러였던 북한 주민들의 소득 수준이 만 달러까지 올라갔으니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었다.

북한에는 5개의 고속도로망이 구축되었고 철도망도 빠르게 신설되어 물류망을 확충했다.

5년 전부터는 북한과의 공식적인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수시로 왕래가 되었다.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 남한의 지원 아래 북한의 경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상하는 중이었다.

막대한 자원, 싼 노동력, 그리고 남한이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 합쳐지자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최강철은 대통령에 오른 후 김정일 위원장과 3달에 한 번 꼴로 만났다.

그가 내려오기도, 최강철이 올라가기도 했는데 그들은 만날 때마다 언제나 흉금을 털어놓으며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정일이 심혈관 쪽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최강철은 혈관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서울대의 조영국 박사를 매달 평양으로 보내 그의 건강 상태를 살폈다.

그토록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어버렸기 때문인지 김정일은 최강철만 만나면 골프를 치자고 졸라댔다.

오늘도 두 사람은 평양 근교에 있는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마치고 샤워장의 욕조에 마주 앉았다.

“최통, 어째 갈수록 잘 치나. 난 이제 상대가 안되는구먼.”

“위원장님 나이가 있잖습니까. 저야 아직 생생하니까 당연한 거죠.”

“이 사람아, 골프는 구력으로 치는 거야. 자네 운동신경이 탁월해서 그래.”

“하하… 그런가요.”

최강철이 유쾌하게 웃자 장난스럽게 따라 웃던 김정일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나저나 저번에 말한 거 생각해 봤나?”

“실무진들이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우린 껍데기만 남았어. 국민들은 잘살게 되었지만 우리 공산당은 빈껍데기가 되었어. 더군다나 병력까지 전부 감축해서 우리에겐 남은 것이 전혀 없다네. 아마, 지금 남한과 전쟁을 하면 반나절도 견디지 못할걸?”

“그거야 그동안 군비를 전부 경제 쪽에 돌렸으니까 그렇죠. 위원장님의 탁월한 결단이 없었으면 북한의 경제가 이렇게 발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공치사하지 마시게.”

“공치사라뇨, 정말입니다.”

“이봐, 최통. 난 이제 아무런 미련이 없네. 아버지 수령님의 유언을 지켰다는 생각에 나는 요즘 잠을 잘 자. 그게 다 자네 덕이지. 자네가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공화국을 발전시킬 수 있었겠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합치세. 우리도 이 정도면 꽤 올라왔으니 합쳐도 남한이 받는 충격이 덜 할 거야. 그렇지 않아?”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합쳐서 최통이 통합 대통령을 해. 난 뒤로 물러날 테니까. 어차피 요즘 들어 기력이 자꾸 떨어지는 걸 보니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아. 내가 살아 있을 때 해야 돼. 알지?”

“고마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는 통합 대통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쪽은 북쪽처럼 영구 집권 같은 건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게 어디 있어. 자네는 남한 쪽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잖아. 그런 사람이 집권하는 게 어때서!”

“하하, 저희 쪽 국민들은 생각이 다를 겁니다.”

“하여간 남한은 이상한 동네야. 그래서 그렇게 발전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이쯤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고 싶어. 분란을 없애려고 아들놈들을 전부 외국으로 쫓아냈고 친중파도 깡그리 제거했네. 이제 우리가 합치는 데 방해가 되는 어떤 것도 없어. 하지만 시간이 늦어지면 변수가 발생할지도 몰라. 지금은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조용하지만 과거를 생각하는 놈들이 아직도 있거든. 그러니 서두르게.”

“알겠습니다. 하지만 단시간 내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아왔으니까요. 그러니 먼저 위원장님이 해주실 게 있습니다.”

“뭔가?”

“군대를 완전히 해산시켜 주십시오. 어떤 자들도 이상한 짓을 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 * *

북한이 군대를 해산하겠다고 공표한 것은 최강철이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한 달 후였다.

김정일은 측근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군대를 해산해 버렸는데 각종 무기는 전부 남한으로 반출하는 조치를 취했다.

정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북한과의 자유무역과 왕래를 통해 적대 의식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지만 북한은 엄연한 군사력을 지닌 독립 국가였고 언제든지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무의식이 있었는데 군대 자체를 해산해 버리자 대한민국 국민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군대의 해산 소식은 북한과의 통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북한 군부의 반대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퇴역 군인들이 자치구와 각 기업에 입사해서 최상의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자신들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있었다.

평화 통일에 대한 소식은 그로부터 6개월 후 남북 수반의 공동성명으로 인해 현실화되었다.

최강철과 김정일이 손을 굳게 잡고 양쪽 정부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던 것이다.

정부가 바빠졌고 정치계 또한 정신없이 움직였다.

통일을 위해서는 수많은 난제들이 있었으니 그것들을 선결할 필요성이 있었다.

통합 대통령을 선출하고 남한의 지방정부 체계를 원칙으로 하는 통일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런 후 공산당의 해체와 국회의원의 선거가 논의되었고 북한의 행정 구역이 재정비되기 시작했다.

평화 통일.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최강철은 대통령으로서 통일을 맞이할 수 없었다.

8년이란 길었던 대통령의 임기는 어이없게도 통일의 꿈이 눈앞으로 다가온 순간 끝이 났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헌을 해서라도 통합 대통령으로 최강철을 추대해야 된다는 논의가 일었으나 최강철은 단칼에 그런 논란을 잠재웠다.

내가 대통령이 된 것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 위함이었지 대한민국을 새로운 독재 국가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통합 대통령은 민주연합의 추성호가 선출되었다.

그는 민주연합을 4년 동안 이끌며 최강철 정부의 잘못된 점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는데 과감한 결단력과 뛰어난 지도력을 가져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북한 쪽에서도 공산당 출신의 인사가 후보로 나왔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남한의 인구는 북한보다 배는 많았고 자유경제가 도입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공산당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했기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영악하다.

대한정의당에서 무려 16년 동안 집권을 했기 때문인지 국민들은 민주연합의 후보를 과감하게 선택했다.

정권이 오래 지속되면 썩는다는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기 전날.

최강철은 자신과 평생을 같이해 왔던 김도환과 신규성, 그리고 이창래와 함께 청와대에서 마지막 식사를 가졌다.

각료들과는 어제까지 공식적인 행사를 전부 마쳤기 때문에 오늘은 측근들 하고만 자리를 마련했다.

“대통령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보다는 여러분이 수고 많으셨죠, 부족한 저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우리 얼굴이 붉어지잖아요. 일부러 그러는 거죠.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고?”

“눈치채셨습니까?”

“이런…….”

최강철의 농담에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올랐다.

김도환의 입이 불쑥 열린 것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슬그머니 지워졌을 때였다.

“아깝지 않습니까?”

“뭐가요?”

“통일을 위해 밑밥을 던져놓느라 들인 공인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 고기만 낚아 올리면 되는 순간인데 그냥 일어서게 되었으니 아까우셨을 텐데요?”

“뭐, 욕심이 났지만 간신히 참았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욕심을 부리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한둘입니까. 박수 칠 때 떠나는 게 멋있잖아요. 그게 제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하긴 그렇죠. 복싱을 할 때도 그랬으니까요.”

“제가 원래 한 멋 합니다.”

“어이구, 이제 대통령님도 꽤 나이가 되셨어요. 그렇게 젊은 시절처럼 멋 부리면 주책이라고 합니다.”

“아직 청춘이에요.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그런데 이젠 뭐 하실 겁니까. 바쁘게 일하다가 놀면 허탈할 텐데요?”

“그동안 집사람한테 너무 소홀했어요. 국가 일 하느라 바쁘다며 잔소리에 꿋꿋이 버텼지만 백수가 되면 핑계거리도 없으니 꼼짝하지 못해요. 그래서 당분간 집사람 모시고 여행이나 다닐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래도 제주도로 내려가시는 건 너무했어요.”

“왜요?”

“거기까지 가려면 비행기 값 많이 든단 말입니다. 우리 호주머니도 생각해 주셨어야죠.”

그동안 잠자코 있던 신규성이 나서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그가 돈이 없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전부 돈이 없다는 말과 똑같다.

“놀러 오시라고 일부러 그쪽으로 간 겁니다. 그리고 남은 삶 동안 바다를 보면서 살고 싶었어요.”

* * *

최강철이 퇴임하는 날 모든 국민들이 텔레비전 앞으로 몰려들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대통령의 퇴임을 맞이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죽을 때까지 대통령으로 일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퇴임은 그래서 아쉽고 슬프다.

새롭게 통일 대통령으로 당선된 추성호가 조촐하게 하려던 당초의 취임식을 포기하고 여의도 광장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최강철 때문이었다.

국민들이 최강철의 퇴임식에 참여하겠다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고, 그 역시 전임 대통령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보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단상에 오른 최강철은 바다처럼 몰려든 국민들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뱉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국정을 운영하면서 부족한 부분도 있었고 잘못된 점도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국민 여러분의 뜨거운 지지로 인해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내일부터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통일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추성호 대통령님은 뛰어난 식견과 국정 운영 능력을 지니신 분으로 남북 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잘 이끌어 나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 역시 미력한 힘이나마 새로운 정부가 훌륭하게 국정을 운영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대한민국이 세계를 주도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충분합니다. 그러니 미래는 우리 대한민국의 것이란 걸 잊지 말아주십시오. 국민 여러분 다시 한번 깊이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최강철의 퇴임식을 지켜보던 김영호와 류광일의 눈이 붉어졌다.

그들은 이제 회사에서 은퇴한 후 제2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전공을 살려 조그마한 무역상을 운영하는 중이었다.

“멋있네. 최고였어.”

“그럼, 전임 대통령보다 훨씬 더 잘했어. 정우석 대통령도 잘했지만 그건 옆에서 최강철이 도와줬기 때문이야.”

“아쉬워, 조금만 더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은퇴하는 지금까지 국민들의 지지도가 80%를 넘고 있으니 우리나라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정치사에서 유래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최강철이 국민들을 감동시킨 거겠지. 저 인간은 복싱을 할 때부터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잖아.”

“그러고 보면 참 많은 일을 했네.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이만큼 성장시켰고 통일까지 끌어냈으니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거야.”

“개헌에 찬성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60%를 넘었어. 그런데 최강철 대통령이 직접 거부했다고 하더구만.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면서 말이야. 정말 멋있는 인간이지 않냐?”

“두말하면 잔소리지. 저 사람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멋있어.”

화면에서는 이제 최강철이 마지막 인사를 끝내고 단상에 서서 국민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최강철이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 여의도 광장에 몰려 있던 50여만 명의 군중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런 후 그 옛날 복싱을 할 때처럼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최강철, 최강철, 최강철……!”

아쉬움이다. 그리고 슬픔이다.

사람들은 최강철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돌아서서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더 보고 싶다는 염원이었다.

그건 김영호와 류광일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젊음을 빼앗긴 그들의 주름진 눈가에 습기가 가득 찼다.

“고생했어요. 우리 대통령님. 우린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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