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5장 강국, 코리아 - 3 >
“대통령님, 현재 독도 인근에서 우리 측 군함과 일본 측 군함이 대치 중에 있답니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안보수석 이정탁이 집무실로 뛰어들며 보고했다.
최강철은 오바마의 방한에 대한 답방 스케줄을 외교부장관 이창래에게 보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뭐라고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지른 건 최강철이 아니라 이창래였다.
가뜩이나 요즘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는 함대가 대치하고 있다는 소릴 듣자 얼굴이 시퍼렇게 굳어졌다.
최강철이 입을 연 것은 이창래가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 급히 입을 닫을 때였다.
“자세히 말씀해 보시죠.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늘 오후 2시에 일본의 지리탐사선이 무단으로 독도에 접근해 왔답니다. 그래서 저희 쪽 해경이 그 배를 나포했는데 일본 측이…….”
안보수석의 말은 간단하고도 복잡했다.
이런 와중에 지리탐사선이 무단으로 들어왔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고 기다렸다는 듯 일본의 구축함들이 나타난 것도 기분이 나빴다.
슬쩍 시간을 보자 3시 20분이 지나고 있었다.
불과 1시간 20분 만에 일본 지리탐사선을 나포했고 급하게 출동한 대한민국의 초계함을 일본의 구축함이 압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시간상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최강철의 표정도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 쪽은 초계함만 나가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일본 함대에서는 지리탐사선을 돌려보내라며 엄포를 놓고 있는 중이랍니다. 만약 그대로 나포해 간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군요.”
“우리 군의 대응은요?”
“대통령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화상 통화가 연결되어 있으니 받아보시죠.”
안보수석 이정탁이 급히 집무실에 있는 모니터의 전원을 넣은 후 잠시 기다리자 합참 작전상황실이 나타나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합창의장 정국영이었다.
-충성, 합창의장 정국영 대장입니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양쪽의 대치 상황이 팽팽해진 상태입니다. 일본 측은 16시 정각까지 지리탐사선을 인도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진압해서라도 데려가겠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일본 구축함은 몇대가 와 있습니까?”
-대치선에 3대, 후방 50㎞ 지점에 이즈스함 5대, 그리고 후방 100㎞ 지점에 일본이 자랑하는 1함대의 항모전단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자들이 고의로 일을 벌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함대는 어디 있지요?”
-저희 동해함대는 포항에서 대기 중입니다. 최대한 서두르고 있지만 16시 안에 대치선까지 이동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음…….”
어려운 상황이다.
미리 준비한 채 도발해 온 적을 맞이하기엔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일본의 의도가 너무 불순했다.
어디까지 준비한 걸까?
만약 일본의 의도대로 움직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랬기에 입을 굳게 닫고 생각에 잠겼던 최강철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침묵은 짧았다.
“총장님, 동해함대는 대기하십시오. 그리고 공군 쪽도 움직이지 말라고 하세요.”
-대통령님!
“지시대로 하십시오. 불리한 싸움은 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지리탐사선을 그대로 놔주란 말씀입니까?
“그럴 리가요. 우리 땅을 무단으로 침입한 자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지요. 동해함대는 완벽한 출동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대기하십시오. 공군도 마찬가집니다.”
-대통령님, 그리되면 자칫, 현재 대치하고 있는 초계함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시간이 16시라고 했습니까?”
-예, 대통령님.
“지금 시간 15시 27분, 만약 정말 일본이 도발을 한다면 정확히 16시 05분에 신풍 제거 전략 1을 발동하십시오. 일본의 배짱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두고 봅시다.”
-헉!
최강철의 명령을 받은 합창의장 정국영이 얼마나 놀랐는지 긴 신음성을 흘려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준비해 놓은 신풍 제거 전략 1을 쓴다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군인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일본을 상대로 준비한 신풍 제거 전략은 그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 * *
강릉함의 함장 유일도 중령은 마른침을 삼키며 전방을 주시했다.
지금 그들 주변에는 2척의 초계함과 3척의 해경순시선이 일본의 지리탐사선을 중간에 가둔 채 진영을 갖추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 전방에 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일본 측은 3척의 초계함과 3척의 구축함이 있었고 그 뒤로 새까맣게 전함들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상황실에 따르면 후위에서 다가오는 전함들은 일본이 자랑하는 이지스함 공고급 구축함들이었다.
계속해서 상황을 보고했지만 사령부에서는 그저 대기하라는 지시만 내리고 있었다.
언제 지원군을 보내냐고 물었으나 사령부에서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지리탐사선을 내놓으라는 일본 측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는 지시만 반복했다.
시계를 보자 일본 측이 제시한 16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과연 일본은 어떤 선택을 할까?
만약 정말 공격을 해온다면 자신과 부하들은 오늘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수평선을 노려봤다.
그때 레이다병의 발악적인 외침이 들려왔다.
“함장님, 적의 구축함으로부터 락온되었습니다. 적들의 구축함이 모두 우리 함정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 씨발놈들이.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일을 벌일 생각인 모양이다.
레이다병의 외침에 장병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해갔다. 이대로 선제 공격을 받는다면 살아날 가능성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유일도 중령의 굳게 닫혔던 입술이 열린 것은 16시를 불과 10분 남겼을 때였다.
“부함장, 함포와 미사일을 준비하도록.”
“함장님!”
“놈들이 공격을 하면 우린 곧장 들이받는다. 어차피 우리 방어 능력으로는 놈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어. 그럴 바에는 한 놈이라도 같이 죽어야 되지 않겠나. 다른 놈은 필요없어. 우린 오직 저놈만 잡는다.”
유일도 중령이 당당하게 서 있는 중앙의 구축함을 가리켰다.
3척 중 중앙에 위치한 구축함의 형태로 봤을 때 최근에 일본이 개발한 야마토급 최신형 호위함일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죽는다면 같이 죽는다.
이순신 장군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했지만 유일도 중령의 머리속에는 오직 같이 죽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함장의 명령에 대기하고 있던 장병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죽어갔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다.
일요일인 어제 저녁에 족구를 하면서 휴식을 즐겼는데 그것이 세상과 이별하는 마지막 축제였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장병들은 함장의 지시에 따라 급하게 공격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그들의 의지로 삶과 죽음이 결정되지 않는다.
조용했던 함정이 유일도 중령의 명령에 따라 수많은 복창 소리가 연이어 이어지며 시장판으로 변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유일도 중령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군인으로 살다가 군인으로 죽겠다며 다짐했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딸과 늦둥이 아들의 모습이 차례대로 눈앞에 다가왔고 아침에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던 아내의 모습도 보였다.
미안해… 여보, 먼저 가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우리 애들 잘 키워줘.
이런 씨발, 좆도.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냐!
“준비 끝났나. 락온, 락온. 목표는 중앙의 저 계집처럼 생긴 놈이다. 모든 화력은 전부 집중해. 우리에겐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 알았나?”
“알겠습니다!'
5분 앞으로 다가온 시간.
먼저 쏠 수는 없다. 놈들이 먼저 쏘기를 기다렸다가 단숨에 해치워야 한다.
옆을 바라보자 울산함의 함포가 자신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중앙의 구축함으로 향하고 있는 게 보였다.
역시 최 중령답다.
그는 자신의 의도를 눈치채고 확실하게 야마토급 구축함을 잡기 위해 화력을 집중시킬 생각인 것 같았다.
손해는 아니다.
2척의 초계함과 일본이 자랑하는 최신예 야마토급 구축함을 맞바꿀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다.
마른 침을 삼키며 이를 악물고 수평선에 떠 있는 일본 구축함을 바라보았다.
그때 눈앞에 있는 함선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함장 유일도 중령입니다.”
-합창의장이다. 지금 상황 어떤가?
“놈들이 락온을 한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공격을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함포와 미사일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어차피 갈 거라면 한 놈이라도 데려갈 생각입니다.”
-이런 쯧쯧… 정말 죽을 생각이냐?
“예, 그렇습니다!”
-까불지 말고 그대로 있어. 어차피 쏴봐야 소용없다. 함포는 사정거리에 닿지 않고 미사일은 전부 격추될 거야. 뒤쪽에 있던 이지스함들이 30㎞ 전방까지 다가왔어. 내 말 무슨 소린지 알겠나?
무슨 소린지 왜 모르겠는가.
이지스함들이 30㎞ 전방까지 다가왔다는 건 초계함에서 쏘는 미사일들이 모조리 격추된다는 뜻이었다.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그냥 앉아서 죽으란 말입니까?”
-우리 내기할까?
“무슨 말씀이신지…….”
-일본 놈들의 배짱이 우리보다 센지 아닌지 말이다. 난 일본 놈들이 널 쓰러뜨리지 못한다에 백만 원 건다. 어쩔래, 나랑 내기해 볼 테냐?
“…….”
-쐈다, 이 자식아. 혹시 죽을지 모르니까 대가리 꽉 박고 있어. 다시 말하지만 대응 사격 하지마. 그러면 정말 죽으니까!
전화가 끊겼다.
그런 후 적의 구축함에서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레이더병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이게 뭐야… 이 마당에 나보고 뭘 어쩌라고 그렇게 전화를 끊어!
“함장님, 곧 도착합니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뭘 어째, 쏘지 말라는 말 못 들었어? 그냥 대가리 처박고 있으라잖아!”
시뻘게진 눈으로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는 부함장과 장병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성은 마비되었고 오직 합창의장의 명령만이 뇌리를 사로잡았다.
명령.
이보시오, 합창의장. 그 명령에 나와 내 병사들이 총 한번 못 쏘고 저승 구경을 한다면 나는 죽어서라도 당신을 그냥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 모가지 손질 잘해놓고 있어!
그 시각 의성의 금봉산 동쪽 능선이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후 30여 기의 미사일이 전자동 발사대에 의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최대 사거리 1,000㎞를 자랑하는 천궁-1호의 모습은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되어 악마의 이빨처럼 보였다.
계속되는 정밀도개량으로 적중도 100%를 자랑하는 천궁-1호의 파괴력은 웬만한 도시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천궁-1호가 무서운 것은 비룡에서 개발한 자기 조립체 및 각인 기술을 이용한 나노패턴 제조 기술과(Nano-Imprint Technology) 세계 최초로 개발한 SAP-1이 합쳐져 몸통에 수많은 돌기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돌기의 역할은 최신 미사일에 내재되어 있는 근접 인식 시스템의 전파를 완전 흡수해서 차단하는 기능을 가졌다.
이 말은 레이더로 작동하는 요격미사일의 충돌을 완벽하게 회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철소의 용광로 등에서 회수된 부차생성 물질인 산화철 가루가 전파 흡수 성능을 갖는 마그네타이트(Fe3O4)를 포함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완벽한 전파 흡수 장치를 개발했는데 그것이 바로 SAP-1이었다.
SAP-1은 세계에 아직 발표되지 않은 신기술이었고 거기에 덧붙여 나노패턴 제조 기술이 합쳐지자 어떤 MD시스템도 무력화시켜 버리는 무적의 미사일이 탄생되었다.
“쐈답니다.”
“우리 함대는요?”
“대통령님의 판단이 맞았습니다. 이놈들은 단숨에 승부를 볼 정도로 배짱이 없었어요. 일단 위협 사격을 가한 후 우리의 대응을 지켜볼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격을 하면 그때 박살을 내겠다?”
“그런 거죠.”
“여우 같은 놈들이군요. 임 박사님, 시작하시죠. 합참에서는 일본이 공격하면 별도의 지시없이 바로 갈기라고 했습니다. 이제 배짱 싸움에서 누가 이기는지 확인해 볼 시간입니다.”
“알겠습니다.”
천궁 미사일 지대장 이춘만 대령의 말을 들은 비룡의 선임 연구원 최문수가 복잡한 계기판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런 후 곧바로 버튼을 눌렀다.
그의 손이 버튼을 떠나는 순간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서 있던 30기의 천궁-1호가 불을 뿜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은 비장했다.
오늘 창공을 향해 날아간 30기의 미사일은 대한민국과 일본의 관계를 재정립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 대통령님,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난 대통령님이 이런 결단을 내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진짜 배짱이란 겁니다. 일본 총리는 우리 대통령에 비하면 잔챙이에 불과해요. 이제… 일본 총리가 어떻게 나올지 정말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