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300화 (300/308)

< 제44장 여명 작전 - 3 >

민정식 교수는 두 명의 제자가 끌려 나간 후 돌아오지 않자 괴한들이 던져준 빵을 입에 대지 못했다.

뱃가죽이 등에 닿을 정도로 힘들었으나 제자들의 생사 여부를 알지 못했기에 배고픔을 까맣게 잊었다.

불안감이 엄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과연 제자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의 의문이 해소된 것은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

IS와 협력 관계에 있는 시리아 언론 기자가 찾아와 그들이 처형당했다는 말과 한국 정부가 석방금을 보내오지 않으면 매일 2, 3명씩 죽일거란 말을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후 피눈물을 흘렸다.

자신은 살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좋지만 제자들은 아직 청운의 꿈을 제대로 피우지 못한 젊은이들이었다.

개중에는 아내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세상에 나오길 기다리는 제자도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가 될 거라며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출산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카밀이라는 기자의 손을 잡고 자신은 괜찮으니까 제자들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그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기만 했다.

“이보시오, 프로페서. 당신들은 IS의 성전을 방해한 악마들이오. 그런 사람들을 그냥 살려 보낼 것 같소? 당신들은 한국 정부에서 돈을 내놓지 않으면 전부 처형될 수밖에 없어요. IS는 이런 경우 한 번도 그냥 돌려보낸 전례가 없거든. 어제 미국 언론에서 당신네 정부가 석방금을 지불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하더군요. 두 사람을 처형한 건 한국 정부에 경고를 보내기 위함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IS 지도부는 한국 정부가 돈을 주지 않으면 무조건 당신들을 처형시킬 겁니다.

왜인 줄 아시오?”

“으… 모릅니다.”

“인질들을 하나씩 처형하면서 성전에 참여한 전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동시에, 서방과 IS의 성전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경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오.”

“어떡하면… 어떡하면 좋겠소, 카밀. 제발 방법을 가르쳐 주시오. 제자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말했잖소. 당신네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한국 정부에서 돈을 지불하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이미 틀린 것 같더군요. 한국 정부에서는 당신들을 버릴 생각인 것 같으니 안타깝지만 당신들이 살긴 어려울 것 같소.”

“이보시오, 카밀. 한국 정부가 절대 그럴 리가 없소. 우리 대통령은 국민들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우리 정부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시오. 내가 어떻게 하든 정부를 설득시켜 보겠소.”

마지막 희망이다.

만약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와 제자들은 전부 죽는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희 한영대학교 의료봉사단은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이역만리 타국인 이라크까지 날아왔습니다. 저희들은 대한민국의 일원임과 동시에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며 이곳에서 보름이 넘도록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이곳이 전쟁터지만 이렇게 납치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저희들의 잘못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이들은 벌써 두 명의 의사를 처형시켰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죽일 거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우리 정부에서 석방금을 주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랍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저희들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제발 저희들을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저희들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들에게 석방금을 지불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 *

청와대 춘추관에 대통령인 최강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은 민정식 교수의 호소 장면으로 인해 밤새도록 대한민국이 시끄러웠던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동안 여론은 둘로 나뉘어 갑론을박하고 있었는데 대책위원회에서 석방금을 주지 않겠다는 결론이 흘러 나가면서 많은 국민들이 지지를 보냈다.

인질들의 생명이 위험하지만 테러리스트에게 대한민국이 굴복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이렇게 인질들을 희생하게 된다면 누가 조국을 위해 충성을 할 것이냔 논리였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랬기에 정답이 없었고 언론들도 일방적으로 정부의 선택을 비난하지 못했다.

하지만 민정식 교수가 초췌한 모습으로 화면에 나와 눈물 흘리는 장면을 보게 된 국민들은 금방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그동안의 생각은 순식간에 허공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고, 그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슴속에 가득 찼던 것이다.

언론들은 대통령이 직접 담화문을 발표한다고 하자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국가의 수반이 직접 나온다는 건 정부의 입장을 공식화하겠다는 뜻이고 그건 지금 흘러 나온 정보처럼 석방금을 주지 않겠다는 발표일 가능성이 컸다.

대통령이 나오는 이유는 국민들의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직접 나와 국민들을 설득하려는 게 분명했다.

정부는 국민이 원한다면 어떤 일도 해야 되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한 이상 방침을 바꾸어 세상의 놀림감이 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랬기에 최강철을 기다리는 기자들의 침묵은 더 없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춘추관에 나타난 최강철의 표정 역시 무거웠다.

그는 문으로 들어온 후 가볍게 목례만 하고 담화문을 꺼내 들었는데 처음 내용은 그동안의 과정에 대한 설명과 희생당한 유족에 대한 위로, 그리고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것들이었다.

기자들의 표정이 바뀌며 소란스러움이 생긴 것은 담화문 말미에 다다랐을 때였다.

대통령의 입에서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우리나라 국민이 희생당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IS에서 요구한 금액을 지불하고 봉사단 전원을 구해올 생각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국격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나 저에게는 국민들의 생명이 우선입니다. 그러니, 국민 여러분. 저의 결정을 지지해 주십시오. 집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족들의 품으로 그분들을 돌려보낼 수 있도록 저와 저희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국방부로 삼군 참모총장이 급하게 달려온 것은 최강철의 특별 담화문이 벌어지는 시각이었다.

육, 해, 공 삼군의 참모총장들을 콜한 건 국방부장관 이해창이었다.

이런 일은 드물다.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전군 지휘관 회의를 제외하고 국방부장관이 삼군 참모총장을 콜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육군참모총장 김인철이 장관실로 올라갔을 때는 이미 해군참모총장 마영석과 공군참모총장 문장용이 먼저와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장관실로 들어와 거수경례를 올려붙이자 이해창이 손짓으로 빨리 오라는 시늉을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최강철 대통령이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는 중이었다.

자리를 잡고 김인철 대장이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장관의 행동으로 봤을 때 그들을 부른 것은 대통령의 특별 담화문과 관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네 사람은 묵묵히 담화문을 읽어 내린 최강철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신음을 흘려냈다.

예상과 전혀 다른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최강철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자존심보다 국민들의 생명을 선택했는데 막상 그가 그런 선택을 하자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창 장관의 굳게 닫혔던 입이 천천히 열린 것은 최강철 대통령이 담화문 발표를 마치고 퇴장할 때였다.

“갑자기 불러서 놀랐습니까?”

“그렇습니다. 담화문 내용을 보니 대통령님은 이 상황을 원만히 해결하고 싶어 하시는 모양이군요.”

“그렇게 보이셨습니까?”

김인철 대장이 대답하자 이해창 장관이 빤히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러자 김인철 대장과 나머지 참모총장들의 안색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들이다.

그들은 야전에서 뼈가 굵은 지휘관이었고 총장에 오를 만큼 뛰어난 두뇌와 판단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이해창을 향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닌 모양이군요. 장관님, 답답합니다. 이제 저희들을 부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대통령님께서는 담화문에서처럼 석방금을 내고 인질들을 구출할 생각이십니다.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대통령님은 이 일을 절대 그냥 넘기지 않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그럼?”

“파병입니다.”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놈들의 심장을 박살 내서 대한민국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전 세계에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다짐하셨습니다.”

“규모는요?”

“광개토대제 항공모함 전대입니다. 거기에 해병대 1개대대와 특전사 1개대대가 움직입니다. 목표는 놈들의 세력들이 웅크리고 있는 시리아 북부 도시 하마, 알라카, 할라부이고 해병대와 특전사는 지도자인 알 바드리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으…….”

이해창 장관의 설명에 삼군 참모총장의 입에서 동시에 무거운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역대 최대 규모의 파병이다.

더군다나 파괴력 면에서 역대 어떤 파병보다 월등했고 강력했다.

광개토대제 항공모함 전대의 전력은 웬만한 국가는 송두리째 뽑아놓을 정도로 막강했는데 거기에 해병대와 특전사가 따라붙는 작전이었으니 점령전도 가능했다.

이해창 장관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삼군 총장들이 전부 그의 얼굴을 바라볼 때였다.

“정치권 쪽은 대통령님이 알아서 하실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즉시 파병 준비를 시작해 주세요.”

“기일은요?”

“보름입니다. 어렵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무슨 수를 쓰던 기일을 꼭 맞춰주시기 바랍니다!”

민주연합의 대변인 허석문은 당의 입장 발표 초고문을 작성하다가 원내대표의 콜을 받고 올라갔다.

최강철 대통령의 특별 담화문이 발표된 이틀 후 막대한 석방금을 지불하고 인질들이 풀려났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민주연합은 총공세를 펼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강철의 지지율은 80%에 달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취임 후 3년 동안 경제 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전반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완벽하게 보완해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국가와 국민에게는 더 없이 훌륭한 지도자였으나 민주연합의 입장에서 본다면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은 존재였다.

민주연합의 지지율은 30%를 조금 넘는다.

최강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기 때문에 대한정의당의 지지율도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 터진 IS 인질 사건은 민주연합으로 봤을 때는 절호의 기회였다.

대통령의 결정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대한민국이 테러리스트들의 협박에 굴복해서 이천만 달러를 지불한 것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중이었다.

세계의 유수 언론들이 대한민국의 선택을 비웃었다.

인질 사태가 있을 때마다 한국 정부에서 굴복했기 때문에 앞으로 전 세계의 테러리스트들이 계속 한국인들을 인질로 잡을 것이란 예상을 내놓으며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IS의 인질 사건은 민주연합 쪽에 반격의 실마리를 만들어준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든 최강철 대통령과 정부, 대한정의당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대변인 허석문은 원내대표실로 들어서지 못했다.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나온 원내대표 윤민철이 그의 팔을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우리 당 입장 발표는 조금 늦춰야 되겠어요. 대통령이 오후에 국회에서 연설을 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음… 이번 일에 관해서 설명하려는 거군요. 뻔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낌새가 이상해요. 저쪽 원내대표가 우리 쪽 의원들을 전부 참석시켜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왔어요. 뻔한 일이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요.”

“저쪽에서는 무슨 일 때문인지 말하지 않던가요?”

“안 대표는 절대 먼저 말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입이 봉쇄되었단 뜻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란 뜻이기도 하고.

“음…….”

“우리 일단 들어나 보고 발표문을 터뜨립시다. 적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나서 공세를 펼쳐도 충분해요.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간절한 애원이 통했던 걸일까.

그날 오후, 괴한들이 민정식 교수를 데리고 감옥을 빠져나와 커다란 강당으로 데려갔다.

거기에는 무장을 갖춘 복면 괴한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한쪽에는 카메라가 세팅되어 있는 게 보였다.

그가 강당의 중앙으로 다가가자 긴 칼을 든 자가 다가와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그런 후 카밀에게 뭔가를 떠들었다.

“프로페서 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랍니다. 오늘 이 방송이 나간 후에도 한국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당신부터 차례대로 처형한답니다.”

“알겠소.”

“저 사람들이 준비되면 신호에 맞춰 말을 하시오.”

모든 게 종교적인 의식이 먼저 선행되는 모양이다.

복면을 쓴 괴인들은 저희들끼리 모여 뭔가를 떠들더니 기도까지 마친 후 처음과 똑같은 위치에 자리 잡은 후 카밀에게 신호를 보냈다.

“프로페서 김, 이제 말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복면 괴한들이 들고 있는 총과 칼.

문명의 이기를 도외시하고 오직 총과 칼로 자신들의 신을 위해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광신도들이 바로 이자들이다.

이 악마들에게서 제자들을 지키고 싶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제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다.

카메라가 켜짐과 동시에 빨간 불이 반짝이는 걸 보면서 민정식 교수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그의 눈에 담긴 간절함, 그리고 절망이 가득 담긴 시선.

카밀의 말대로 정부가 석방금을 주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면 살아날 가능성이 전무했다.

그렇기에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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