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99화 (299/308)

< 제43장 여명 작전 - 2 >

문영일보의 장세형과 경성일보의 길현만은 점심을 먹고 무거워진 다리를 쉬기 위해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요즘 들어 인질 사태로 인해 여기저기 백방으로 돌아다녔더니 피곤이 겹쳐 죽을 판이었다.

그럼에도 나오는 건 별로 없었다.

이라크는 가까운 나라가 아니었고, 현재 내전 중이었기 때문에 특파원들이 긴급하게 나갔지만 들어오는 소식은 한정된 것뿐이었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협상팀을 긴급하게 현지로 보냈다는 것과 조만간 정부의 입장을 조율해서 발표하겠다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정부 관계자들을 끊임없이 따라다녀야 했고 앞으로 진행될 내용에 대해 추측성 보도라도 해야만 데스크에서 그나마 고생했다는 말을 해준다.

정부의 입장은 난감한 상황일 것이다.

과거 이라크 상사원 김선일 사건과 아프카니스탄 탈레반에 납치되었던 샘물교회 사건을 보더라고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김선일 사건은 버티고 버티다 결국 정부에서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처형되었지만 샘물교회 사건은 2명이 희생된 후 600억이란 거액을 탈레반에 지불하고 구출했다.

석방금을 지불한 후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테러리스트들의 협박에 굴복해서 석방금을 준 대한민국의 행동은 국가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될 정도였다.

그랬기에 정부는 새롭게 방침을 굳힌 후 다시는 인질들에 대한 석방금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되새겼다.

하지만, 방침은 방침일 뿐.

막상 일이 터지자 국민들은 연일 정부가 나서서 인질들을 빨리 구출해 오라고 난리였다.

그런 여론을 부추긴 건 언론의 역할이 컸다.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건 정부의 곤란함과 상관없이 가장 근본적이 원칙이었으니 언론은 연일 무슨 수를 쓰더라고 인질들을 데려오라며 정부를 두들겼다.

“지금쯤 이창래 장관이 미치기 일보 직전이겠구만.”

“그 양반도 어쩔 수 없을 거야. 내가 듣기로 대책위원회에서 벌써 결론이 났다더라.”

“어떻게?”

“일부 의원들이 돈을 주자고 했지만 대부분 반대를 했대. 이따 오후쯤에는 발표가 나올 것 같아. 더 이상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야.”

“버틸 수 있을까?”

“그건 모르지.”

“아마, 못 버틸 거야. 그 새끼들은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놈들이거든. 돈을 주지 않으면 조만간 인질들을 살해하기 시작할 거다.”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뭐야!”

장세형의 말을 들으며 안색을 흐리던 길현만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주변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목소리를 키웠다.

커피숍에는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웅성거림이 커지더니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금방 상황을 눈치챈 장세형이 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낸 후 포털사이트를 열었다.

“이런 씨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자 장세형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대충 기사를 읽어 내린 그는 젊은 친구들의 반응을 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기자의 촉각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건너편에서 뭔가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을 향해 뛰어가 보고 있던 컴퓨터를 확인했다.

“뭡니까?”

“누구세요?”

“지금 보고 있는 게 뭐죠. 이게 뭐냐고요?”

놀란 걸까.

장세형이 거칠게 묻자 청년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그런 후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IS에 납치되었다는 인질들의 처형 장면이랍니다. 지금 카페와 블로그에서 난리에요.”

“어디 봅시다.”

장세형에 이어 길현만까지 뛰어와 동영상을 확인했다.

황색 죄수복을 입은 동양인. 그리고 그 뒤에 총을 든 채 버티고 서 있는 세 명의 복면을 쓴 괴한 모습이 한동안 나왔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같은 동양인이라 해도 한국인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아랍어가 몇 마디 흘러나온 후 화면 좌측에서 칼을 든 괴한이 천천히 인질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칼을 들어 인질의 목에 가져다 댔다.

“안 돼!”

장세형의 입에서 저절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도 많은 젊은이들이 이 장면에서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 * *

“으…….”

외교부장관 이창래의 목에서 깊고 깊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앞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었고 참모들이 민기철의 참수장면을 같이 지켜보는 중이었다.

인간의 잔인함은 도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괴한은 마치 소의 머리를 잘라내듯 살인을 했는데 마지막에는 머리를 치켜들고 웃는 장면까지 나왔다.

“저 개새끼!”

장관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욕설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참모들은 컴퓨터에 분노의 시선만 던진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연 것은 욕설을 터뜨린 이창래였다.

컴퓨터에서 참수형을 끝낸 인질범들이 뭔가를 떠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동영상이 끝나자 아랍어 전문가인 김형철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김 교수님, 마지막에 저놈들이 한 말이 뭐죠?”

“하루를 더 기다리겠답니다. 내일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면 두 명을 더 죽이겠답니다. 그리고 또 소식이 없으면 세 명을 죽이겠다는군요.”

“흐으… 흐으…….”

김형철의 말을 들은 이창래의 주먹이 벌벌 떨렸다.

가차 없는 놈들이다.

잔인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이토록 가차 없이 몰아붙이는 걸 보면 이런 방면에서 수없이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 눈알이 시뻘겋게 변한 이철명 차관이 나섰다.

“장관님, 동영상 수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막기도 힘들어서 완전한 삭제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막아야 합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CNN쪽과 아랍쪽 방송사들에게도 협조 공문을 보내놓으세요. 다시 또 이런 동영상이 나오면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뭘 말입니까?”

“이대로 우리가 세운 방침대로 그냥 있으면 저놈들은 계속해서 인질들을 죽일 겁니다. 장관님, 생각을 다시 해야 합니다.”

“방침을 바꾸자는 말입니까.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이 또 조롱받자는 말이에요?”

“국민들의 생명이 우선이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자존심은요. 다 죽이라고 그러세요. 그럼 내가 저 개새끼들을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도륙 낼 테니까요. 우리 대한민국을 얼마나 우습게 봤기에 저런 답니까. 대통령께 건의해서 특전사를 보내 싸그리 다 죽일 겁니다.”

“그건 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인질들이 있는 곳은 시리아 북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까지 파견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훨씬 커다란 희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압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망가뜨리며 테러나 하는 놈들에게 굴복할 수는 없어요.”

“장관님, 벌써 국민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대로 인질들을 더 희생시킨다면 국민들은 정부를 믿지 못할 겁니다.”

“이 차관님. 나는 그런 건 두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놈들이 대한민국을 우습게 알고 있다는 겁니다.”

어렵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대로 돈을 줘서 대한민국이 테러리스트들에게 굴복하는 모습만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저절로 한숨이 나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왜, 장관을 한다고 수락했을까. 그냥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면 이런 괴로움은 생기지 않았을 거란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아직 대통령에게 대책위원회에서 결정된 내용을 보고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더욱 암담했다.

대통령은 과연 자신의 결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란 생각이 들자 또 다시 한숨이 몰려나왔다.

최강철은 자신에게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만들지 말라는 부탁을 했었다.

그 말은 자신과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뜻이었다.

그때, 주머니에 있던 전화벨 소리가 미친 듯이 울렸다.

“여보세요?”

-장관님, 비서실장 김도환입니다. 급히 들어오시죠. 대통령님이 찾으십니다.

부랴부랴 이창래가 청와대로 들어오자 긴장된 표정으로 비서실장 김도환이 그를 맞아들였다.

오랜 동지들이다.

그들은 최강철과 오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고 워낙 친밀하게 지냈기 때문에 웬만한 사정은 뻔히 안다.

“화가 많이 나셨습니까?”

“예.”

“보셨나요?”

“보셨습니다.”

“누가 보여 드렸습니까?”

“제가 직접 보여 드렸습니다. 대통령님은 동영상을 보시면서 몸을 부들부들 떠셨습니다.”

“으…….”

충분히 예견한 일이다.

최강철의 성격으로 봤을 때 국민의 목숨이 테러리스트의 칼날 속에서 사그러드는 모습을 보며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들어가면 난리가 나겠군요.”

“그럴 겁니다. 위원회에서 석방금을 주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면서요. 그게 일부 언론에 흘러나가서 지금 난리가 아닙니다.”

“알아요.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우리 결정에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테러리스트들에게 굴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아직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셔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저도 모릅니다.”

“그럽시다.”

김도환의 안내를 받은 이창래가 성큼성큼 집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어떤 말을 해도 버틸 생각이었다.

자신은 대한민국의 장관이었고 외교를 총괄하는 수장이었으니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의향이 있었다.

그가 집무실로 들어서자 최강철의 뒷모습이 보였다.

최강철은 창가에 서서 멀리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대통령님, 부르셨습니까?”

“밤새도록 고생이 많으셨죠. 일단 앉으세요. 우리 차나 한 잔 같이할까요?”

“예.”

이런 젠장.

부드럽게 나오자 더욱 긴장이 되었다.

최강철이 이렇게 부드럽게 나온 다는 건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오면서 알게 된 최강철의 성격은 외유내강이었다.

커피가 나왔고 세 사람이 앉아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그 침묵은 곧 최강철로 인해 깨졌다.

“석방금을 주지 않기로 결정하셨다면서요?”

“대부분의 위원들이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세계인들에게 우리가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거겠죠?”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아주 힘든 결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장관님. 저는 장관님께 분명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씀드렸죠. 혹시 제 부탁을 잊으셨던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움직였지만 인질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제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창래가 깊숙이 고개를 숙이자 최강철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져 갔다.

그런 후 앞으로 몸을 끌어당겨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장관님, 장관님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까짓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국민의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 겁니다.”

“저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터에서는 수많은 병사들이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그건 역사적으로 언제나 발생했던 일이지 않습니까. 대통령님,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장관직에 오르면서 다시는 우리 대한민국이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물며 하찮은 테러리스트들에게 대한민국이 굴복하는 걸 저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하지만, 장관님. 국가는 국민입니다. 국민이 없으면 국가도 없는 것이죠. 저는 장관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저 역시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국민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그런 영광을 얻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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