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3장 자주국방의 꿈 - 2 >
밀고 당기는 전술.
이해창 국방부 장관은 외교부 장관 이창래와 함께 미국으로 넘어가 협상을 시도하며 시간을 끌었다.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미군의 주둔비용을 올려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무기수입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으니, 그들의 협상은 가지를 전부 쳐내고 곧장 전략무기 수입에 관한 것으로 범위를 축소시켜 나갔다.
한편으로 정부는 현재 미군 주둔에 대한민국이 얼마나 많은 부담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며, 주둔비용의 추가부담은 부당하다 것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국민들은 그동안 정부에서 쉬쉬하며 기밀로 지켜왔기에 이런 사실을 모르다가 매년 1조에 달하는 비용이 주한미군쪽에 지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미국은 전략무기를 다른 나라에 판매한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전략무기가 다른 나라에 들어갔을 경우 세계경찰로서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미국이 전략무기의 판매에 쉽게 응할 리 만무했다.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미국은 또다시 주한미군의 철수를 들먹거리며 대한민국을 협박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랬기에 미리 알려야 했다.
주한미군의 철수에 대한 불안보다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국민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도록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 * *
미국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국방장관 도널드 햄은 이해창 장관이 내민 구매목록을 확인한 후 난색을 보였다.
“이 장관님, 이 무기들은 판매가 제한된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 무기를 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방이지 않습니까? 적대국이 아닌데 왜 팔지 못하겠다는 겁니까?”
“미국의 이익에 위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우리 까놓고 말합시다. 당신들이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는 건 대한민국이 무기를 수입하지 않았기 때문 아니오!”
“듣기 거북하군요. 주한미군은 그동안 한반도의 전쟁을 억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 장관님도 알다시피 미국은 한미연합작전을 매년 시행하면서 엄청난 돈을 퍼부었지만, 당신들은 한 푼도 대지 않았소. 우리 미군이 왜 한반도에 상주하는지 잊으면 안 됩니다.
미국은 한반도에 2 만에 달하는 병력을 상주시키며 매년 3조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습니까?”
“이보시오. 그건 당신네 병사들의 월급과 무기유지 및 훈련비용이잖소. 그걸 왜 우리보고 대란 말이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린 한반도에 상주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네 한국에서 요청했기에 있을 뿐이오. 그 사실을 간과하지 않길 바랍니다.”
“음…….”
이해창 장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눈앞에서 빙글거리는 도널드 햄의 면상을 한 대 갈기고 싶었지만, 대통령에게 받은 밀명으로 인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우리 국민들은 현재 미군 주둔에 들어가는 비용을 알게 된 후 반미감정이 점점 커지는 중입니다. 자, 우리 쉽게 갑시다. 정말 원하는 게 뭡니까? 어차피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은 올려주지 못한다는 걸 당신네도 알고 있을 거요. 그러니 원하는 걸 말하시오.”
“좋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적정금액만큼 우리 무기들을 수입해주시오. 그러면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에 관해서는 없었던 거로 하지요.”
“우리보고 쓸모없는 무기들을 계속 사란 말입니까?”
“왜 쓸모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대한민국의 무기체계는 전부 미국의 방위시스템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무기들은 한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우린 이미 당신들이 팔고자 하는 재래무기 수준 이상의 무기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연동시스템이란 미명아래 그동안 형편없는 무기들을 계속 샀지만, 이젠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입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린 이 목록에 있는 전략무기들을 원합니다. 그렇게 할 거면 하고, 안 그럴 거면 당신들 마음대로 하시오!”
이해창이 자신이 가지고 온 목록서류를 도널드 햄의 면전에 내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튕겨야 한다.
놈들이 어떻게 나오든 일단 배짱으로 밀어붙여야 팽팽한 싸움을 벌일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란 건 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다.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던 과거와 현재가 다른 이유는, 대한민국에 세계를 웅비할 신무기들이 꿈틀거리기 때문이었다.
* * *
협상은 진전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었으니 어떤 결론도 쉽게 도출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시간을 끄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순차적 주한미군 감축안을 꺼내 들며 압박을 강행했다.
하지만 최강철이 이끄는 정부는 미국의 압박에 한편으로는 회유를, 한편으로는 강경 대응을 하면서 6개월을 버텼다.
최강철이 비밀리에 금산으로 향한 것은, 미국의 국방부 장관 도널드 햄이 다음 달 15일까지 한국 측의 명확한 답변이 없으면 주한미군의 순차적 철수를 시작하겠다며 공식문서를 보내온 다음날이었다.
수행은 비서실장인 김도환과 안보수석, 국방부 장관과 공군참모총장으로 최소화했고 언론에는 일체 알리지 않았다.
그가 금산의 비룡 컨트롤타워에 도착하자 정일환 박사를 비롯해서 비룡의 핵심 수석연구원들이 현관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정 박사님, 오랜만입니다.”
“대통령님. 축하 인사가 늦었습니다. 진즉 전화를 드리고 싶었지만, 곧 만날 날을 기약하며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 마음 잘 알죠. 정 박사님과 제가 어디 한두 해 같이한 사입니까?”
정일환 박사의 인사에 최강철이 활짝 웃었다.
정말 오래된 인연이다.
비룡을 만든 지 벌써 17년. 그동안 정일환 박사는 비룡을 이끌며 머리가 백발로 변해 있었다.
“대통령님 올라가시죠.”
“예.”
정일환 박사의 안내에 따라 비룡의 핵심 연구 단지이자 금산 전체를 관장하는 컨트롤타워에 들어섰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전자기기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무려 오백 평에 달하는 사무실에는 각종 모니터와 전자기기들이 빽빽하게 깔려 있었는데, 30여 명의 요원들이 자리를 잡은 채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번 ‘불사조-3’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고 있는 유일성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정 박사님이, 유 박사님이 이 분야의 세계 최고라고 그렇게 자랑을 많이 하셨어요.”
“부끄러운 말씀입니다.”
50대 중반의 유일성은 최강철의 말을 듣고 얼굴을 붉혔다.
그는 MIT 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MIT 공대 역사상 최연소 박사였고, 프랑스의 항공사 다쏘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다 비룡으로 스카우트되어 온 전투기제작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최강철은 사무실 중심에 모여 있는 연구진과 차례대로 악수를 한 후 미리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수고에 대한 치하. 그리고 오랜 연구 과정에서 생겼던 일화들을 이야기하고 잠시 담소를 나누며 연구진들을 위로했다.
유일성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정일환 박사가 이제 시작하자는 듯 눈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커튼이 자동으로 닫히며 전면 상단에서 대형모니터가 부드럽게 내려왔다.
“대통령님, 그럼 지금부터 저희 비룡에서 완성한 불사조-3과 삼족오-2에 대한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불사조-3입니다. 불사조-3의 핵심은 완벽한 스텔스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일성 박사의 설명은 1시간 가까이 지속되었다.
미국이 자랑하는 F-22랩터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국산 전투기 불사조-3.
유일성 박사가 설명해 나가는 불사조-3의 무기체계, 비행속도, 작전반경 등은 최강철의 입에서 저절로 웃음이 피어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에 이어 스텔스 폭격기 삼족오-2의 설명도 이어졌다.
도시하나를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삼족오-2는 적의 레이더를 무력화시키며 유령처럼 날아가, 단숨에 심장부를 강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군요.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게 전부 대통령님께서 저희를 믿어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세계 어떤 항공사도 비룡처럼 막대한 연구예산을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연구진과 시설을 가지고 이 정도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말아야죠.”
“하하… 정 박사님이 저를 다 칭찬해 주시고 별일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럽니다. 대통령님께서 그동안 연구가 늦다고 얼마나 저를 닦달하셨습니까? 이젠 그런 소리 듣지 말아야죠. 앞으로는 저도 아부 같은 거 하면서 살 생각입니다.”
“아이고…….”
정일환 박사의 농담에 최강철이 정말 유쾌하게 웃었다.
대통령을 맞이해서 긴장했던 좌중의 분위기가 그 웃음소리로 한꺼번에 풀어졌다.
대통령인 최강철도, 여기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오늘만큼은 실컷 웃어도 된다.
“대통령님, 이제 실물을 보셔야죠.”
“그놈들, 어디 있습니까?”
“활주로에 준비해 놨습니다. 밖에 차량이 있으니 5분 정도만 이동하시면 예쁜 모습을 보시게 될 겁니다.”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는군요. 엄청나게 강한 선수들과 싸울 때도 이런 느낌은 받은 적이 없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슴이 떨려서 일어나기도 힘듭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대통령님께 이 놈들을 보여드리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일어선 최강철이 손을 잡자 정일환 박사가 뜨겁게 마주 잡아 왔다.
그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남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으니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감동을 숨길 수가 없다.
준비된 차량으로 이동해서 활주로로 이동하자 멀리서 준비하고 있는 두 대의 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강철은 경호원들이 열어주기 전에 문을 열고 바깥으로 먼저 움직였다.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급했다.
문을 열고 나온 대통령이 부지런히 걸어 나가자 경호원들이 깜짝 놀라 부랴부랴 그의 몸을 에워쌌다.
개활지.
이런 곳은 저격하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강철은 그런 위험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웅장하게 서 있는 불사조-3와 삼족오-2를 향해 달리듯 걸어 나갔다.
그리고는 동체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멈춰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더없이 강해 보였다.
이놈들을 만나기 위해 무려 17년이란 세월을 기다렸다.
그동안 쏟아부은 돈을 따진다면 1,000억 달러에 육박했으니 정말 비싼 돈이 들어간 놈들이었다.
그럼에도 막상 만나게 되자 더없이 반가웠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날렵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불사조-3의 동체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불사조-3, 삼족오-2. 너희들은 대한민국의 힘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푸른 영공을 잘 부탁한다!”
* * *
대한민국의 언론이 발칵 뒤집혔다.
국방부 장관이 직접 금산에 기자들을 불러 모은 후, 불사조-3과 삼족오-2의 개발을 공식화했기 때문이었다.
금산으로 모였던 기자들은 꿈의 전투기라 불리는 불사조-3과 삼족오-2의 기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감격에 몸을 떨어댔다.
창공을 날아오른 불사조-3과 삼족오-2는 순식간에 공간을 넘어서 새까맣게 점이 되었다. 그들의 육안에서 사라지기까지 무시무시한 이동속도를 자랑했다.
국방부에서 준 보도자료와 영상들이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화면을 통해 국산 전투기와 폭격기의 모습을 본 국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도 차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계 최고의 전투기와 폭격기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보도에서 국산 전투기와 폭격기를 완성하기 위해 그동안 노력해 왔던 과정들이 여과 없이 알려졌다. 국민들은 그때야 탄성을 지르며 열렬한 환영을 나타냈다.
전투기와 폭격기는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전력중 하나였다.
오죽하면 달라는 대로 주겠다는 애원을 무시하며 미국이 F-22랩터를 보물처럼 다루겠는가.
타국에 비해 월등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불사조-3과 삼족오-2의 등장은 대한민국 군사력의 위상을 한순간에 바꿔놓을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6개월을 질질 끌었던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은 불사조-3과 삼족오-2가 등장하면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한미군의 철수를 우려했던 국민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국산 전투기와 폭격기의 개발이 알려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당당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당황한 것은 미국이었다.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있던 한국의 신형 전투기와 폭격기가 자신들이 자랑하는 F-22랩터, B2A 수준이란 게 알려지자 미국은 난감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한국이 이지스함을 비롯해서 항공모함을 제작하며 대양함대를 지향하고 있었지만, 전투기와 폭격기의 수준이 미달되는 한 그 전력을 무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불사조-3과 삼족오-2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만약 현재 제작이 거의 완료된 항공모함 광개토대제에 불사조-3가 탑재된다면 동아시아의 해상은 한국이 경영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더 큰 문제는 입으로 뱉어 놓았던 미군 철수 문제였다.
북한의 위협 운운하면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떠들었던 미군 철수 문제가 이제 그들에게 계륵이 되어 버렸다.
그냥 없었던 것으로 하자니 전 세계에 얼굴을 들지 못했고, 정말 철수한다면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기 때문이었다.
2 만에 달하는 병력을 철수하기 위해서는 수용장소와 시설들이 필요하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데 미국 정부는 현재 그걸 감당할 능력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칼은 이제 대한민국 정부가 쥐게 되었다.
이해창 국방부 장관은 도널드 햄에게 최후통첩을 보내 미국의 결단을 촉구했다.
“F-22랩터는 이젠 필요 없소. 대신 최근에 개발된 차세대 공중급유기와 조기경보기, 헬파이어-3을 우리에게 판매하시오. 그러지 않을 거면 주한미군을 철수해도 좋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