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93화 (293/308)

< 제42장 황제로 가는 길 - 4 >

개인택시 운전기사 김 씨는 서초동에서 일하는 윤 씨와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택시기사들의 활동반경은 비슷비슷했기에 윤 씨와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는데 자주 같이 밥을 먹는 사이였다.

오늘따라 감자탕 집에는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이제 3일 후면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대부분 선거에 관한 것들뿐이었다.

그중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노인들의 목소리가 가장 컸는데 그들은 최강철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글씨, 그놈이 원흉이여. 북한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그렇게 퍼줬단 말이여. 그런놈한티 장관직을 맡겼으니 나라가 이 꼴이 된 겨.”

“맞어, 맞어. 북한 놈들은 이미 핵폭탄까지 만들었다잖어. 이제 보랑께. 조금 있으믄 그짝에 들어간 우리 기업들을 볼모로 돈을 더 내놓으라 지랄할 거라고.”

“이러다가 전쟁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미국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항공모함 함대를 보냈다니까 다행이지 안 그러믄 큰일 날 뻔했어.”

“그렇지.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자 은인이여. 6.25동란 때 미국에서 우릴 구해주지 않았으면 지금쯤 벌써 빨갱이 세상이 되었을걸?”

“하여간 최강철 그 자슥이 문제여. 그런 놈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를 전부 말아 먹을겨!”

얼마나 소리가 큰지 그 시끄러운 감자탕 집에 있던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다.

술도 얼근하게 들어갔는지 노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떠들었는데 일부러 들으라고 그러는 것 같았다.

감자탕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김 씨가 인상을 북북 긁기 시작한 건 노인들이 최강철에 대한 비난 강도를 점점 높여갈 때였다.

“아니, 씨블. 우리 강철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저 염병을 떠는 거야. 통일부 장관이 그럼 통일을 위해 노력을 하지, 그럼 뭘 위해 노력을 해? 당연한 거 아냐?”

“북한이 전쟁준비를 한다잖아.”

“전쟁준비는 무슨. 핵폭탄을 실험했다고 전쟁이 나냐? 그리고 우리나라 군사력이 얼마나 강한데 전쟁이 터져. 이건 아무래도 냄새가 나. 우리 강철이를 떨어뜨리려고 어떤 새끼들이 수작을 부리는 것 같단 말이야.”

“그래도 북한이 저렇게 나온다면 큰일이긴 하지.”

“에이, 씨발 좆도. 어떻게 우리나라는 대선 때만 되면 북한이 지랄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동안 평화무드가 지속되면서 통일이 금방 될 것처럼 그랬는데, 어째 선거일 앞두고 이런 일이 생겨. 안 그래?”

“그건 그렇지.”

“그래서 윤 씨는 강철이 안 찍을 거야?”

“난 무조건 강철이 찍는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가 안 좋아. 다른 기사들하고 이야기해보니까 돌아선 놈들이 꽤 있어.”

“북한 때문에?”

“그것도 그렇지만, 강철이가 돈이 많잖아. 그렇게 돈 많은 놈이 대통령이 되면 권력을 이용해서 피닉스 그룹에 혜택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놈들이 많아.”

“염병, 강철이가 불쌍한 사람들한테 쓴 돈이 얼마나 되는데 그런 개소리를 해. 말이 되는 소릴 지껄여야 그런가 보다 하지!”

“걔들 얘기는 이런 거야. 복싱에서 번 돈은 최강철한테 껌값이라 이거지. 워낙 돈이 많으니까 남들 보라고 적선하듯 준거라 더 구만. 세계 제일의 갑부가 권력까지 잡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남북경협과정에서 특혜받은 걸 보면 얼마나 해쳐먹을지 상상도 안 된데. 그래서 반대하는 놈들이 많아.”

“이런 병신새끼들. 그럼 다른 재벌 놈들은 뭐야? 다른 재벌 놈들이 없는 놈들을 위해 그런 거액을 내놓는 건 본 적 있고? 강철이가 자기 이익을 위해 거의 1조나 되는 돈을 내놨다고? 윤 씨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어?”

“왜 나한테 화를 내고 그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참 웃긴 새끼들이야. 남이 잘한 걸 깎아내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놈들은 정신구조가 틀려먹은 새끼들이야…….”

뭐라고 더 떠들고 싶었다.

언제는 국민 영웅이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천사라며 칭송하더니 이제 와서 그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거라고 깎아내리는 놈들의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말을 멈춘 것은 갑자기 사람들의 대화가 일시에 중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원인을 찾아 시선이 돌아갔다.

감자탕 집 홀 상단에는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는데 그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별담화문 발표!’

드라마가 중단되며 커다란 자막과 함께 특별 생방송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모습이 나타났다.

텔레비전 앞에 있던 30대 회사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볼륨을 높이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아나운서의 멘트가 감자탕 집을 울리며,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퍼져나갔다.

“국민 여러분, 오늘 오후 7시에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특별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담화문의 내용에는 핵폭탄개발 및 군사력증강에 대한 해명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입장발표가 있었습니다. 먼저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담화문을 보시겠습니다.”

아나운서의 멘트는 흥분으로 가득 차서 마치 전쟁이 터진 것처럼 떨려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감자탕 집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에서 이번 담화문에 담긴 내용의 심각성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화면이 바뀌며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친애하는 남조선 인민 여러분, 저는 이번 사태에 대해서 직접 해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먼저 핵폭탄 실험을 했다는 미국의 발표는 허구임을 밝힙니다.

함경남도 문호리에는 어떤 핵폭탄 개발시설도 없습니다. 문호리에는 석탄광산이 있으며 석탄을 캐기 위한 폭파는 있었지만, 우리 북조선에서는 어떤 핵폭탄 실험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휴전선에서 철수한 병력을 다시 전진배치 했다는 사실도 거짓입니다.

우린 남조선과의 약속을 확실히 지키며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친애하는 남조선 인민 여러분. 우리는 남조선과의 신뢰를 깨트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지난 8년 동안 남조선이 북조선에 보여준 고마움을 우린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북조선의 국방위원장으로서 남조선과 약속한 것처럼 양측이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린 남북경협으로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무기를 개발하거나 군사력을 증진하는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 인민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그런 생각 아래 북조선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남조선 인민 여러분. 우리 북조선의 진정을 의심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 북조선은 앞으로도 남조선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평화통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짧고도 강력한 담화문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의지는 사람들을 놀라 게 만들기 충분할 정도로 확고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담화문이 끝나는 순간 김 씨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봤지, 도대체 어떤 새끼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퍼뜨렸어! 이건 모두 최강철을 모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분명해. 오죽 답답했으면 김정일이 저런 담화문을 발표하것어. 통일을 반대하는 새끼들이 일부러 만들어 낸 거라고. 찾아내야 해. 어떤 새끼들이 거짓말을 퍼트려서 국민들을 속였는지, 찾아내서 죽여야 한다고!”

김 씨가 고함을 지르자 그동안 급격하게 변했던 상황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최강철의 지지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었다.

그들은 그동안 당했던 분풀이를 하려는 듯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는데, 시선이 최강철을 욕했던 노인들에게 향해 있었다.

그러나 노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보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저 빨갱이 수괴 놈의 말을 어떻게 믿어. 새빨간 거짓말이야. 핵무기를 개발해 놓고 오리발을 내미는 거여. 뭘 쳐다봐? 이놈들아! 어린 시키들이 어른 공경할 줄도 모르고, 눈깔을 새파랗게 치켜뜨고 째려보네. 이래서 우리나라가 문제여. 여기저기에 빨갱이들 투성이라니까!”

어이가 없는 말이다.

노인들은 최강철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적의를 나타내며 오히려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그때 듣고 있던 김 씨가 기어코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놈의 빨갱이 지겹지도 않습니까? 도대체 우리 중 누가 빨갱이란 말입니까? 영감님들은 집에 손자들이 전부 빨갱이로 보이나요? 최강철을 응원했던 우리나라 국민들이 전부 빨갱이로 보이냔 말입니다!”

* * *

최강철은 캠프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담화문을 시청한 후 측근들과 회의를 시작했다.

역시 김정일이다.

자신이 알아서 해결하겠다더니 김정일은 가장 극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대한민국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회장님,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아침에 전화가 왔더군요.”

“김 위원장한테 직접요?”

“예, 오늘 텔레비전을 보면 알 거라더니 이런 방법을 썼네요.”

“하아, 정말 대단하네요. 웬만해서는 저렇게까지 할 수 없었을 텐데요. 김 위원장이 회장님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김도환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일국의 지도자가 어떤 사안에 대해 직접 해명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최고책임자의 한마디는 국가의 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만약 문제가 발생해서 수습이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면, 그때야 직접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김정일은 담화문에서 최강철의 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최강철을 생각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담화문에서 최강철의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 상황은 오히려 악화일로에 치달았을 게 분명했다.

적들은 김정일이 최강철을 돕기 위해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이용해 공세를 강화할 게 뻔했다.

“지금 인터넷이 난리가 났습니다. 대부분의 댓글이 누군가가 회장님을 음해하기 위해 만든 음모라며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판이 뒤집혔어요. 이젠 한시름 놔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자들은 다시 반격을 할 겁니다.

북한에서 저를 돕기 위해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고 우길 게 분명해요. 충분히 먹힐 수 있는 논리입니다. 비록 내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를 엮어내려 할 겁니다.

더군다나 북한의 발표가 신빙성이 없다는 걸 떠들어 대겠죠. 이렇게 그냥 물러설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이젠 괜찮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나와 이야기를 했으니 국민들도 믿을 수밖에 없어요.”

“확실하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놈들이 하는 짓을 보니 저는 이번에 반드시 대통령직을 맡아야겠습니다.

외세가 들어와 국정을 간섭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이 되자 사회 전반에 그들의 뿌리들이 나타나는군요. 정말 질긴 뿌리들입니다. 저는 대통령이 되면 그 뿌리들을 아예 송두리째 뽑을 생각입니다.

“어쩌시려고요?”

“제가 직접 언론사와 기자회견을 갖겠습니다. 준비해 주세요. 모든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 * *

선거를 3일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담화문으로 인해 발칵 뒤집혔던 언론은 최강철이 기자회견을 연다고 하자 다시 한번 난리가 났다.

연일 계속되는 충격으로 정신이 없을 정도였는데 최강철 까지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겠다고 하자, 언론들은 미친 듯이 여의도 대한정의당 당사로 달려왔다.

현재의 언론은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었다.

최강철을 공격하는 쪽과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쪽.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정동을 지지하는 언론들은 그동안 최강철의 재산과 특혜문제, 북한의 핵 개발 그리고 군사력 증진문제를 두고 교묘하게 최강철을 씹어댔다.

하지만 그 숫자는 최강철에게 우호적인 언론에 비하면 훨씬 적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호 언론이 조용하게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최강철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어차피, 시작된 공세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어하면 오히려 불을 지피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담화문이었다.

최강철의 우호 언론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담화문을 발표하자마자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고의로 거짓말을 했다며 십자포화를 터트렸다.

워낙 한꺼번에 여러 언론이 배후음모론을 들고나왔고, 새삼스레 최강철의 업적을 집중 조명해 나갔다.

하지만 보수언론을 비롯해서 그동안 최강철을 공격했던 언론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북한의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과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실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그들은 끈질기게 최강철의 재산에 대해서 물고 늘어졌다.

그가 마이다스 CKC를 설립한 후 어떻게 재산을 형성해 왔는지 일일이 열거하며, 수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쏟았다고 주장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IT 버블사태를 예로 들었다.

한국 마이다스 CKC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해서 먹고 빠지는 수법으로 수많은 서민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었다.

팽팽한 긴장감.

그동안 부친상으로 인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최강철이 기자회견을 자처하자 양쪽 언론은 긴장감 속에서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여기가 이번 대선의 승부처란 사실을 말이다.

특히 보수언론 쪽은 최강철을 죽이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북한 문제는 둘째치고 그가 가진 재산내역과 형성과정만 공격해도 충분히 죽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최강철이 전 언론이 모인 앞에서 입장표명을 하는 순간, 입을 떡 벌린 채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0